그녀가 그의 앞에 나타난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가 삶에 대해 집착하게 할 치명적인 덫이 될 것을. 독고 수,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서이랑 이 나타났다. 한때 자신의 부하였고 지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게 한 서 상사의 딸이기도 한 그녀가. 그런데 그녀는 그에게 죽음이 아닌 살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자꾸만 불어넣고 있었다. 치명적인 덫이 될 것이 뻔 한 그녀인데 바보 같이 그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세영 씨가 대표님한테 반했나 봐요.” “이런. 무슨 소리인지. 지금 내 꼴을 보고 반할 여자가 어디 있어. 눈이 뒤통수에 달리지 않았다면. 후후.” 그는 온통 흙투성이인 자신의 옷을 보고 웃어 넘겼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주름이 칼처럼 선 제복을 입은 남자 동기나 상급자 속에서 지내온 그녀지만 지금 그처럼 멋있어 보이는 남자를 본 적 없었다. 머리카락에는 나뭇가지가 군데군데 붙어있고 옷은 흙투성이에다 손은 긁혀 피가 맺혀 있었지만 그 어떤 고가의 슈트나 제복을 입은 남자보다 멋있어 보였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느라 자신의 상처쯤은 모른 채 선 그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이었다. “그럴까요? 보통의 여자들은 자신을 구한 남자에게 반하는 법인데…….” “하하하. 그렇다면 서이랑 소위도 나한테 반했나? 아니잖나. 그러니까 그런 농담 그만하고 야식이나 좀 해 먹자고. 저녁 먹은 것은 이미 다 소화된 것 같으니까.” “그, 그러죠.”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호탕한 웃음에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웃은 그의 얼굴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36살이나 된 아저씨가 아니라 그녀 또래의 남자쯤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잠시 그녀의 심장이 착각하고 떨렸다.
장진우, 그는 그녀 외에 아무도 몰랐다. 오로지 그녀, 서영우만 사랑했고 그녀만 바라봤다.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멀리서. 그러다 그녀가 돌아왔다. 그가 있는 고향으로. 지치고 다친 몸으로. 다시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여전히 사랑하는 그녀를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기에 뜨겁게 가슴에 안았다. 서영우, 그녀는 그 외에 아무도 몰랐다. 오로지 그, 장진우만 사랑했지만, 너무 다른 환경에 도망쳐야만 했다. 그런데 다친 몸으로 내려간 고향에서 그는 그녀를 안고 놓아주지 않겠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다. 용기 내어도 될까? 욕심내어도 될까? 그를 가져도 될까? 첫사랑과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까? 그에게 안긴 채 그녀는 두려움에 떨었다.
첫사랑의 배신으로 많이 아팠던 소민은 곁에 있어준 친구 우림덕분에 자신의 상처가 아물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그런데 어느 날 돌아온 첫사랑 훈은 다시 그녀를 흔들어댔다. 첫사랑은 모두 대단한 것이라고 했다. 죽는 순간까지 가는 거라고. 그녀도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첫사랑은 과거일 뿐.“내가 늘 널 아프게만 했는데도 넌 왜 내 곁에 있니?”“오래전부터 널 여전히 사랑하니까. 바보 같지만 여전히 너여야만 하니까. 내게는 네가 첫사랑이잖아. 알면서 왜 그래.”우림의 말에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이제 그녀는 첫사랑과 엔딩하고 진짜 사랑을 시작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