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시
김시시
평균평점
과일은 깨끗이 씻어서

“내가, 그렇게 싫습니까?” 입 안에서 작은 복숭아가 톡 터졌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김혁주 씨는 나한테 모르는 사람에 가까워요.” 얼마 전 깜짝 트레이드로 유니콘스 선수가 된 김혁주는 말 그대로 노현에게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요 며칠 어쩌다 보니 자꾸 마주치지만, 그래 봐야 본업 잘하는 먼 직장 동료쯤. “계속 연락하면 안 되는 겁니까?” “안 했으면 좋겠어요.”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서 남아 있는 젤리를 입에 몽땅 털어 넣었다. 노현은 지금 지쳐 있었고, 상대방을 헤아릴 여력이 없었다. 뭐든 더 깊어지고, 진해지기 전에 자르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사과합니다. 집에 잘 들어갔을 하노현 씨, 잘 자요.] 말 되게 안 듣는 김혁주 때문에 오늘도 웃고 말았다. In Play. 그가 포기하지 않았으니,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 좀 빨리 좋아해 줘

“서주강 씨, 자요?” 그 말에 나는 잠들지 않았지만 잠들어 있어야 했다. “미안해요, 서주강 씨. 나는 분명히 사과했어요. 못 들은 건 서주강 씨야.” 혹시 나에게 경고하는 건가. 정신 바짝 차리고 선을 넘어오지 말라고. 먼저 고백해 놓고 이제 와서? “그러니까, 나 좀 빨리 좋아해 줘. 죄 그만 짓고 싶다, 나도.” 당신은 어째서 죄를 지으면서까지 나에게 감정을 구걸하는 거지. 천천히 눈을 떴다. 창문 너머 푸른 잎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눈동자를 사정없이 찔렀다. “예뻐요.” 호기심에 굴복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시작했다. 속절없이 사랑에 빠져 버린 남자 역. 부디 대사와 시선 처리가 모두 자연스러웠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