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하
윤재하
평균평점
그늘을 갖는 법

사락사락, 버들잎들이 내는 소리 사이로 사각, 바람과 같은 감각으로 차민의 눈에 사강이 새겨졌다. “사강 씨, 어려운 질문 하나 해도 돼요?” “뭔데요?” “여기는 왜 오게 된 거예요?” 질문을 해 놓고도, 웃음을 잃어 가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여자 혼자 낯선 도시로 떠나온 이유가 가볍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곤란한 답일지언정 그가 듣기를 원하는 의지는 단 하나. 홍차민은 문사강에 대해 알고 싶었다. “저, 사강 씨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겁니다.” “왜 여기에 왔는지,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요.” “상관없어요.” “그게 우리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이어도요?” 어떤 것을 깨달았을 때 나오는 진리의 빛이 차민의 얼굴을 밝혔다. “그 일은 이미 우리한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죠.” 커다란 그늘을 가진 나무와 같은 그의 마음으로 조금, 아니, 조금은 많이 지쳐 있던 사강이 막 들어선 순간이었다.

달콤 쌉싸래한 비밀

내가 갖고 싶은 건 채하 씨예요.한 여자가 길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정후. 며칠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 모습에 그는 말도 걸어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 것을 아쉬워한다.하지만 자신의 회사 신입 환영회에서 그 여자, 채하를 다시 만나게 되고, 기억 속의 모습과는 또 다른 그녀의 모습에 정후는 점점 빠져들게 되는데&helli...

폭양

“너는 밀고 싶을 때까지 밀어. 내가 버틸 테니까.”하지 마.그 말은 고집스럽게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너랑 최대한 가깝게 있고 싶어.”사람이 습관이 되는 것은 싫다.그러나 나는 이미 길들여졌다.길들여진다는 건 눈물을 흘릴 각오를 한다는 것.확신 없는 각오를 부여잡고 승도 앞에 섰다.“손.&rdquo...

이상한 여우, 비

모두 바빠 보이는 평일 오후의 느긋한 산책.어쩐지 불온한 것 같은 그 일은요우에게 새로이 생긴 취미였다.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만도 않음을 확인받는 길 위에서,비와 닮은 그를 만났다.“안 그쳤으면 좋겠다.”비처럼 요우를 껴안는 말.순간, 비꽃이 바닥을 물들이듯 가슴에 귤색 물감이 번졌다.“맞으면 젖겠네요. 그런데 피할 수가 ...

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

“더 기다릴 수 있었는데, 빨리 나왔네.” 한 번 시작된 일은 되돌릴 수 없어. 인생이 잔인하게 속삭였다. 유독 단정하던 교복과 틈 없이 완벽한 슈트가 겹치는 순간, 12년 세월이 실감났다. “할 말이 뭐야?” “나도 잘 지냈어.” 내가 쫓기듯 도망친 그 시절에 서서 여전히 반짝거리는 차규일. 결코 달갑지 않은 재회. 아무리 고의로 무례해도, 그는 너무나 태연하다. “백서이 그대로네.” 변했다는 걸 스스로 잘 알면서도 도리 없이 그의 눈길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이제 막, 꽤나 익숙한 저 눈빛의 의미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