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없이, 빚 걱정 없이 호화롭게 살 수 있어. 근데 그건 내 옆에서만 가능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끈질기게 달라붙던 남자, 우태성. 그런데 어느 날 정인에게 뜬금없이 결혼을 제안한다. 3년 뒤, 이혼과 함께 위자료를 두둑이 챙겨주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악랄한 미소에 넘어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남기고 간 수표 다섯 장에 흔들리는 마음. 결국……. “나 결혼해. 그러니까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할 것 같아.” 5년을 만나 사랑했던 남자를 버리고 결혼을 선택했다. 더 독하고 못 됐게, 이 얄궂은 현실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내가 가르쳐준 건 곧잘 까먹더니. 남이 몸소 가르쳐준 건 안 까먹나 보네.” 우연한 곳에서 만난 10년 전, 과외 선생님. 그리고 그와 함께 보낸 단발적인 밤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오만한 착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와 그녀, 그 사이에 있는 묘한 접점을. 명함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진 그를 아쉬워했지만, 그저 가슴에 묻기로 했다. 연락만 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을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건만…. ‘미, 미친…! 뭐야. 선생님이 왜 여기 있어?!’ 잊으려고 노력했던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다른 곳도 아닌 회사였다. “내 명함을 못 본 건 아닐 테고. 2주 동안 연락을 못 한 변명을 아주 잘 대야 할 텐데.” 아주 지독하고 완전하게 엮여버린 그의 손아귀에서, 그녀는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데……. 지독하게 가지려는 남자와 완전하게 안기고 싶은 여자의 치명적인 감각이 떠오른다.
“자요, 우리. 바람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지만 부부잖아요.” 술기운을 빌어 상사이자 남편이 된 강준에게 척척하게 엉겨 붙어 이 결혼을 시작을 알린다. 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했던 연인의 바람, 그리고 이별. 그래서 선택해야 했다. 피해가고 싶었던 이 정략결혼을. “생각보다 난 착한 남자가 아니야.” 언제나 고압적인 태도로 상대방을 짓밟는, 상사 우강준이 아닌 남편 우강준은 살벌하게 유혹하는 차희를 밀어내는 법이 없는데…….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아마 나 같은 입장에 선 남자들은 널 그냥 재웠겠지. 로맨스를 가장한 남자들이 대체로 선택하는 방법.” “근데 난 그런 쪽은 아니라.” 혼란스러운 마음을 뒤흔드는 그는 차희보다도 더 맹렬하고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하지만 1년 뒤. “내가 처음에 말했던 조건. 기억하지?” 이어지는 복잡한 상황 속, 해결책 하나 보이지 않는 그녀의 마음에 던진 돌멩이 하나. 그가 차희에게 던진 돌은, 다름 아닌 협의 이혼 신청서였다.
‘아무 생각 하지 마.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그저 숨죽여 살아.’ 저택의 총괄 실장, 서화음. 설화관에 있는 이들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지내 온 지 4년. 이건 가진 것 하나 없는 제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존 전략이자 거친 세상을 버틸 자기 최면이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그저 숨죽여 살았다. 차악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에 도리어 발목을 잡혀 버리기 전까지는. “안 궁금해요?” “…….” “내가 왜 이렇게 서 실장 몸에 집착하는지, 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 실장하고 침대에서 뒹굴고 싶어 하는지, 왜 안 묻느냐고.”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처럼, 차갑고 쓸쓸하지만 온 순간을 절정으로 꾸미는 남자를. 머리를 찡하게 울리는 강렬함이, 매 순간 절정으로 치닫게 하는 쾌락적인 음률이, 일방적이면서 폭력적인 악상을 닮은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자신 있었다. 그런데 유난히 추운 올겨울, 어울리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가 아쉬웠던 걸까. “떨려요. 부회장님을 볼 때마다… 설레요.” 겨울 새벽의 찬 이슬을 맞으며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을 사랑하게 돼 버렸고, “내가 결혼한 후에도 서 실장과 내 관계에 변함은 없어요.” 그 사랑은 길을 잃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