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갑작스런 결정으로 고모할머니의 비서를 따라 서울에 온 크림. 아무도 반겨 주지 않은 그 집에서 스스로에게 약속한 유예 기간, 한 달. “오늘은, 나랑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요?” 떠나왔던 산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고드름 나무 같은 그를 느껴 버렸다. 그 사람의 긴 그림자가 외로움으로 담겨 버렸다. “아저씨의 소확행은 뭐예요?” 도국, 그에게 닿고 싶었다. 연결되고 싶었다. “나중에도 기억할 것 같아요. 시나몬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 본 오늘, 이 순간을.” 이토록 다정한 봄날에 우리 시리고도 달콤한, 시나몬 아이스크림처럼.
남자에게서 결핍된 어떤 부분이 들여다보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 결핍이 정서적인 영역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그걸 자신의 손으로 채워주고 싶어진다면 위험의 한계치에 이르러 있다는 의미. 가슴 속에서 빨간 불이 위태롭게 반짝거렸다. 다인은 민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물을 바라보았다. 물 위로 햇빛이 내려 잔잔히 떠다녔다. 이따금 여린 바람이 귓가로 귀엣말처럼 소곤소곤 스쳐가곤 했다. 가슴 속을 불안하게 떠돌던 불빛들이 차분히 스러졌다. 그제야 다인은 민설을 돌아보았다. 순간, 다시금 가슴에 불이 켜졌다. 자신에게로 와 있는 민설의 눈빛. 언제부터였을까. 방금 돌아본 것 같지는 않았다. 제법 오래 고정되어 있었다는 느낌. 다인은 미소 짓지도 못하고 스르르 고개를 돌려버렸다. 가슴 안에서 하프 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다.
동백꽃, 그리고 파도 소리에 둘러싸인 빛과 고요를 품은 작은 섬. 그곳에 비밀에 싸인 그녀, 서니은이 발을 디뎠다. “우리는 온도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사이 같아요.” 햇빛이 찬란한 바닷가 도시 은파, 그 속의 오렌지 하모니카. 그곳에 상처를 간직한 그, 장유번이 다시 흘러들었다. “잘 그린 수묵 담채화라고 정정하죠.” 우연인 듯, 운명인 듯 가슴에 깊이 박힌 ‘상처’라는 공통점이 서로를 속절없이 끌어당겼다. “그럼 다시 시작해요. 나랑 같이.” 어둠과 대비되는 유리 저편의 세상은 온갖 빛들로 찬란했고 유번의 시야에는 오로지 니은만이 환했다. 이곳 은파에서 나에게 선물은 이미 너, 서니은.
“당신이,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민이 울음을 깨물 듯 잠시 말을 깨물었다. 민의 눈이 젖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죽여버릴지도 몰라요.” 민이 하얀 두 손으로 가슴을 열고 심장을 왈칵 움켜쥐었다 놓는 느낌이다. 정원은 가슴 속에서 실제로 지독한 통증을 느꼈다. 통증을 감추며 정원은 서늘하게 물었다. “나를?” 민의 눈빛이 가로로 여리게 흔들렸다. 그리고 열리는 입술. “……나를.” 민의 그 언어가 정원의 심장에 들어와 유리조각처럼 박혔다. 손목을 움켜쥔 민의 손, 손등에 동그란 뼈마디가 힘겹게 돌출되었다. “민.” 네가 너를, 죽이도록 두지 않아. 결코, 그런 일은 없어. 나는, 네게서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네가 내게서 사라지지 못하게 철저히 내 소유로 가지듯이.
정체 모를 남자의 은밀한 제안. 그 남자를 만나는 목요일, 오후 4시. “알고 싶어, 너를.” 그 비밀스러운 순간들을 세세히 듣고, 알고 싶어진다는 것에 세연은 막막한 두려움을 느꼈다.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잘 알게 된다는 것, 그럼으로써 마음이 깊어진다는 것. 그런 과정들 뒤에는 필연적인 상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를 이해하게 되어 버릴지 모르니까. ‘세상 모든 걸 등진 채 당신의 심장에 이마를 대고 싶어져.’ 하루도 미뤄 둘 수 없는 마음, 그게 무엇이든 좋았다.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다 해도 지금은 좋았다. 열 번의 목요일 두 개의 열쇠 그리고 한 권의 다이어리, 목요일에 만나면.
1권 “내키진 않지만, 제게 주어진 독배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독배라…….” 이카로스의 멤버 율과 직원 서재이 사이에 터진 스캔들. 이 사태의 가장 확실한 해결 방법은 자신과의 결혼이다. “싫어하진 않아.” 서로에게 감정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 말이 가슴을 찌르는지. 자연스러운 서재이의 우리, 라는 말에 굳게 잠긴 마음의 문이 열리는지. 마음에도 무게 중심이 있다면. 옮겨 가고 있었다. 서재이에게로, 시나브로. 재이 마음에도 무게 중심이 있다면. 옮겨 오고 있기를. 시나브로, 손무영에게로. “한자로는 숫자 0의 의미는 아닌데.” “저도 2는 아니에요. 그래도 재밌잖아요.” 0이었던 무영이, 재이를 만나서, 2가 되었다. 2권 “3과 4를 위하여.” 0이었던 무영이 재이를 만나 2가 되고, 다시 3이거나 4가 되어 가족을 이루는 것.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하나 더 생겨서 좋았다. 외로움의 자리가 그 사람의 무게만큼 줄어들었다. “언제나 우선순위는 우리, 우리 둘. 다른 사람은 그다음으로 두는 거야.” “서재이의 최우선 순위는 손무영. 이제부터는 꼭 그럴 거예요.” 무영의 마음, 그 올곧은 진심이 가슴을 두드렸다. 손무영이라면, 손무영이라서 가능한 것들. “웃고 있다, 서재이.” “응, 웃고 있어요.” 앞으로 펼쳐질 무대가 몇 막, 몇 장일지, 그 모든 무대들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무자비한 모든 날들에 축배를.
<하이드 지킬, 나 1> “2015년 SBS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 소설 출간!” 영원한 고전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로맨틱코미디 버전 소설, 《하이드 지킬, 나》 세상에서 제일 나쁜 남자 지킬과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남자 하이드! 전혀 다른 두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달콤 발랄 삼각로맨스! 영원한 고전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로맨틱코미디 버전, 《하이드 지킬, 나》가 소설로 출간되었다. 악의 표상 하이드와 선량한 선비 같은 지킬 박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역할은 그렇다. 하지만. SBS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역할이 바뀌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두려워 까칠도도 나쁜 남자로 살아온 지킬 박사와 사랑밖에 모르는 스윗가이, 하이드씨의 이야기로! 소설 《하이드 지킬, 나》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남자 지킬과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남자 하이드, 그리고 전혀 다른 두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달콤 발랄 삼각로맨스이다.
“누구?”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명품 조각상 같은 남자가 물었다. “면접 보러 왔는데요.” 남자가 책상을 양팔로 짚고는 느긋하게 기대어 섰다. “다른 알바 같은 것들 다 그만둔다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어.” “아직 이력서도 안 보셨거든요?” “여기서만 일하겠다면, 고은채 씨가 필요한 만큼 맞춰 주지.” 남자가 책상에서 몸을 떼고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힘주어 말했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움켜쥐는 게 내 특기야.” 그는 이미 저만치 뒤로 물러나 책상에 기대어 선 채 나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머릿속에 경고 등이 반짝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