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계략을 피해서 열 번째 맞선 자리에 나간 날, 이상한 남자를 만났다. “전 거짓말 못 합니다. 선보러 나간 지 두 시간 만에 돌아오는 게 저희 집에서는 아주 이상한 일이라서요.” 마음에도 없는 자리 집어치우자는 말에 무례하다고 화를 내지도 않고, “아는 게 없으면 배우면 되고, 술이야 좋아할 수도 있는 거고, 예전이라면 흡연은 과거형이네요. 그 정도면, 개차반은 아닌데요.” 탈선 따윈 모를 얼굴에 안 어울리게 핀트 어긋난 대답만 하고, “그런 조건으로 계속 현지아 씨 만날 생각, 저도 없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날 거라고 말하는 남자. 그런데……. “운이 더럽게 나빴다 치고 그 거래, 한번 해 보죠.” 술이 들어가고도 가벼움 없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는 그 남자를 본 순간부터, 문득 알고 싶어졌다. 나와 어울리지도 않는 그 남자가, 생긴 것만큼 바르게 사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할 거라면서 나를 자꾸 울리는 그 남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