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윤수영 씨의 경호를 맡게 됐습니다.” 불쑥 나타나 당신을 지키러 왔다는 남자, 상원. 말도 감정 표현도 없는 그가 이따금 내비치는 서툴고 다정한 모습에 마음이 소란하다. “저한테 금방 정이 들 테니까 조심하세요.” 활짝 웃으며 앞일을 경고하는 경호 대상, 수영. 그녀가 선사하는 모든 처음에 점점 길들여져 견딜 수 없도록 갖고 싶다. 안고 싶다. 모습을 감춘 채 운명처럼 다시 시작된 인연. 상처로 얼룩진 과거가 수면 위에 떠오르고 서서히 드러나는 그날의 진실. “뭐가 이렇게 미치게 좋고 싫어 본 건, 처음이에요.” “나밖에 없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오랜 세월을 건너뛰어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천천히 새겨 나가는, 이토록 선명한 무늬.
“선배, 절 이용하시는 거죠.” “서형아, 우리 사귈래?” 달콤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가 거짓인 걸 알면서도 그에게 쏟아지는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 없던 열일곱, 첫사랑. 결국 산산이 부서진 짝사랑의 조각을 안고 뜻밖에 맞이한 그와의 세 번째 가을. “안녕하십니까. 정시훈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과거의 일을 모두 잊어버린 사람처럼 산뜻하게 웃으며 정중하게 인사하는 그 선배, 그 남자가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눈빛으로 다시 그녀에게 성큼 다가온다. “연락 주신다고 해서 기다렸어요. 기다리는 중이고요. 앞으로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제가 기다리지 말라고 하면요?” “서형 씨가 저한테 기다릴 기회를 다시 주실 때까지 노력할게요.” 이것이 정말 마지막 계절일까? 혹시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우리 사이의 모든 눈부신 가을, 함께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