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책임져.” 태준은 그 말과 함께 다연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왔고, 그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책임진다고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 그건 술김에…….” “술김에 사람 마음 다 흔들어 놓고, 술 깼으니 나 몰라라 한다고?” 태준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다시 그녀를 향해 한 발자국 걸어왔다. 그와의 거리를 두기 위해 한 발자국 물러선 다연의 등 뒤로 딱딱한 문이 느껴졌다. “그건 안 되겠는데?” 묘하게 색정적인 표정과 함께 ‘똑딱’하고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원나잇으로 시작된 관계. 하지만 그저 그런 시시한 만남으로 치부하기에는 태준은 너무 깊숙하게 파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감추고 있는 13년 전의 비밀. 제 어깨에도 닿지 않는 쥐방울만 한 게 옆에 들러붙어 재잘대는 소리가 어찌나 정답게 들리는지, 태준은 그녀를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제 심장을 통째로 주고 싶은 심정인데, 결혼해 달라며 호기롭게 프러포즈하는 다연의 모습에 태준은 두 손 두 발 모두 들어버렸다. 오늘부터 난…… 네 거다. 그러니까 찜쪄먹든 삶아 먹든 튀겨 먹든 네 마음대로…… 나를 요리해줘. 태준은 그렇게 마음먹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네 거라고. 너만이 날 요리할 수 있다고.
아내 면접을 보던 제윤에게 잘 못 배달되어 온 여자, 민해인. "돈은 달에 한 번 주시나요, 아니면 일시불로 주시나요?" 하, 이것봐라. 보통이 아니네. 제윤은 스폰서를 만나러 온 해인에게 묘하게 끌린다.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아내 면접을 보러 온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합격을 말한 건, 그녀가 이 방을 나가면 스폰서를 만나러 갈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원래 한제윤은 다른 놈 손 타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3년 동안 결혼을 유지하는 조건입니다. 그 후에는 이혼을 해도 좋고." "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보시나요? 전 여배우예요. 여배우한테 이혼은 치명적이고요." "스폰보다는 덜 치명적이지 않나?" "!" "어려울 것 없습니다. 스폰서만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윤은 그녀를 회유했다. 당신의 스폰서가 되어 주겠다고.
결혼 두 달 전. 지원은 약혼자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날 밤, 어쩌다 만난 태조와 즉흥적으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다신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두 사람은 만나게 되고. 태조는 그날 밤 호텔에 두고 간 돈 30만 원이 혹시 화대냐고 물어온다. 지원은 그 돈은 화대가 아닌 순수한 세탁비라고 말한다. 그런 지원에게 태조는 세탁소 쿠폰을 내밀며 말한다. “근데 셔츠 한 장에 세탁비가 삼만 원이던데.” “말씀하신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라.” 태조는 모르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길고 매끈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쓱쓱 매만졌다. “나머지 이 돈.” 세탁비로 쓰고 남은 돈은 27만 원. “이 돈이 화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시죠.” “네?” “이 돈이 화대가 아닌 세탁비라는 걸, 증명해 보란 말입니다.” 지원이 미간을 찌푸리자, 태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긴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인 그는 곧 지원 앞에 섰다. 지원의 시선이 말끔하게 다림질된 셔츠 위에 닿았고, 태조는 그런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말아쥐었다. 태조의 손에 이끌려 시선이 올라가자, 달큼한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내 셔츠, 더 더럽혀 보란 얘깁니다.” “……!” “그럼 당신 말, 믿어 줄 테니까.”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됐다. 카페에서 커피를 살 때마다 쿠폰을 찍듯,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세탁소 쿠폰에 도장을 찍었다. 하나둘 쿠폰의 빈칸이 사라지고, 어느새 마지막 하나의 빈칸만 남았다. 어쩌다 만난 남자였다. 어쩌다 대화를 나눴고, 어쩌다 술을 마셨고, 또 어쩌다 호텔까지 갔다. 어쩌다 만난 남자와 이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제 하나의 빈칸만이 남았는데, 지원은 그와 만나기 싫었다. 마지막 빈칸에 도장을 찍고 나면 더는 그와 만날 일이 없을 테니까. 지원은 쿠폰의 하나 남은 빈칸을 보며 깨닫는다. 어쩌다 만난 그 남자를 어쩌다 사랑까지 하게 되었다고.
약혼자의 외도를 목격한 지원은 어쩌다 만난 태조와 즉흥적으로 하룻밤을 보낸다. 자신이 더럽힌 셔츠의 세탁비로 30만 원을 두고 호텔을 빠져나오는데.“화대입니까?”다시 만난 남자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아뇨. 세탁비예요.”“근데 셔츠 한 장에 세탁비가 삼만 원이던데.”“말씀하신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라.”태조는 모르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길고 매끈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쓱쓱 매만졌다.“나머지 이 돈.”세탁비로 쓰고 남은 돈은 27만 원.“이 돈이 화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시죠.”“네?”“이 돈이 화대가 아닌 세탁비라는 걸, 증명해 보란 말입니다.”지원이 미간을 찌푸리자, 태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긴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인 그는 곧 지원 앞에 섰다.지원의 시선이 말끔하게 다림질된 셔츠 위에 닿았고, 태조는 그런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말아쥐었다.태조의 손에 이끌려 시선이 올라가자, 달큼한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 흘러들었다.“내 셔츠, 더 더럽혀 보란 얘깁니다.”“……!”“그럼 당신 말, 믿어 줄 테니까.”
“어제는 아버지랑 붙어먹고 오늘은 아들 밑에 깔리는 건 보통 멘탈로는 힘들겠지.” 아버지의 정부를 떼어놓기 위해 일부러 접근했다. 아버지의 비서를 빼앗아 옆에 앉히고,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시선을 뺏어 나를 향하게 했다. “회장님과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그런 사이가 아니다? 그럼 증명해봐.” “어떻게 하면 믿을 건데요?” “키스.” “?” “아니다. 내 밑에서 울어봐. 그럼 믿어줄 테니까.” “전무님!” “아버지랑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라며? 그럼 못할 것도 없지 않나?” “미친. 악마 같은 새끼.” 제혁은 영랑의 말에 기꺼이 동의했다. 자신의 행동이 악마와 다를 게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혁은 영랑을 갈망한다. 그러니 기꺼이 악마가 되어줄 용의가 있다. 널 갖기 위해 악마가 되는 것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