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켓에서 3년째 잠입 임무를 수행 중인 비밀 조직 ‘블랙 슈트’ 소속, 강도하. “남의 얼굴은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실장님, 진짜 너무 잘생기신 거 아니에요?” 허물없이 다가오던 유미의 모습은 그가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들과 닮아 있었다. ─요새 너답지 않게 둔하구나. 여자라도 생긴 게냐. “여자 같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잃을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는 슬픔과 두려움은 도하를 나약하게 만듦과 동시에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당신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고!” “저한테 대체 왜 이러시는데요?”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면, 믿을 겁니까?” 뜬구름처럼 허망한 기대에 불과했었던, 선택된 자들에게만 허락된 줄 알았던 사랑이라는 행운……. “무사히 살아남으면요. 그때는 우리한테도 미래란 게 있는 건가요?”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당신이 살아만 있어 준다면.”
목을 죄어 오는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던 그때, 숨을 쉴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준 건 세상에서 너 하나였다. “꼬마야, 여기 이쁜이 슈퍼가 어디니?” “한글 모릅니꺼?” 꼬마라는 말에 인상을 쓰던 너. 선생님, 하면서 웃어 주던 너. 좋아한다고 낮게 속삭이던 너. “가끔씩 꿈을 꿔.” 듣지 못했는지, 해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행복했었어. 정말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어쩌면 그래서 꿈을 꾸나 봐. 행복해지고 싶어서.” “…….”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면. 그러면 안 될까.” 해준이 고개를 들고 재희의 꿈꾸는 표정과 마주했다. “미쳤어요?” 유럽에서 러브콜을 받는 축구 스타 이해준, 헌터스 구단의 대표 이사 약혼녀 김재희. 서로 다른 이름의 옷을 입고 마주했을 때, 멈춰 있던 시곗바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