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혼자를 잃은 채 성치 않은 몸으로 강나라에서 쫓겨난 황서후. 겨우 도착한 백화국에서 이어진 인연은 그녀의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궁중 암투에 휘말렸는데……. ‘내가 진소륜을 음해하게 두진 않아!’ 스스로 왕세자자리에 물러나야했던 진소륜. 모든 것을 내 줄 듯 굴던 그 남자. 그 온기만이 그녀가 가진 전부인데 그것조차 빼앗아 가야겠다면. 그 남자를 건드린다면 이번만큼은 이 강산을 통째로 부셔버릴 것이다. 모계혈통으로 내려온다는 어떤 저주 같은 예언이 서후를 또다시 핏빛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겼다. [미리보기] “잘 지내고 있겠습니다. 용맹하게 다녀오소서.” “그러마. 널 위해서 반드시 승리의 깃발을 가져오마.” 기쁜 말이었다. 그런데 기쁘지가 않다. 피 흘리며 죽어 갈 수많은 병사들과 그들을 지키기 위해 선봉에 서 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겨울처럼 몸에 한기가 돌았다. 무섭다. 두려웠다. 서후는 그런 기분을 들키고 싶지 않아 무작정 소륜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갑옷을 입어 거대해진 그의 허리를 양팔로 꽉 끌어안고 냉기가 묻어나는 갑옷 위에 얼굴을 묻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애절한 한마디만 하였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퉁! 소륜의 심장이 떨어져 내렸다. 두둥! 소륜의 심장이 아주 작게 꿈틀댔다. 쿵쾅! 소륜의 심장이 뛰었다. 쿵쾅쾅쾅! 소륜의 심장은 이제 제 본분을 잃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한마디 말에 소륜은 기뻐서 어지럼증을 느껴야만 했다. 비로소 그녀가 마음을 준 것 같아서 가슴에 있던 심장이 목구멍으로 귓구멍으로 머릿속으로 마구 돌아다니면서 그를 기쁨에 젖어들게 하였다. 이제야 그녀가 마음을 열어 준 것 같아 뛸 듯이 기뻤다. 목이 메어 왔지만 꼭 들려줄 말이 있었다. 소륜은 감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기다려라. 내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무사히 돌아오겠다 약속했다. 반드시 돌아올 터이니 자신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녀가 있는 이곳으로 반드시 돌아올 것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오려면 빨리 떠나야만 했다. 소륜은 어깨를 떠는 서후를 품에서 떼어 내고 그녀의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끔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고는 다정하게 속삭여 주었다. “아름다운 꽃이 있는 이곳으로 내 반드시 돌아오마. 이제부터 여기는 미화궁이다. 나의 미화가 있는 이곳이 이젠 내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노인 요양원 의사 나비. 다국적 제약회사 빈센트의 사장 차서진. 밀림에서 당한 사고로 원주민 부족의 의사인 엄마를 잃고, 한국으로 돌아와 친척들의 냉대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 끝에 의사가 된 나비. 나비의 병원에 자원 봉사자로 온 빈센트의 사장 차서진. 잘생긴 외모에, 시선이 가는 그…… 어느 밤, 걸려온 알 수 없는 전화에 이끌리듯 목소리 주인을 찾아간 나비는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차서진을 발견하는데…… ‘진.’ 잡힐 듯 잡히지 않은 감각이 이름인 듯한 글자를 불러냈다. 입안으로 ‘진’이라는 글자를 굴려 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을 들었다. 나비는 방금 전 자신이 느낀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와 같이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해서 고장 난 감정이 불러낸 착각 같았다. 울음이 터질 듯 울먹해진 그녀를 그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자신의 얼굴에 박혀 있자 콧날이 시큰거렸다.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배시시 피워 낸 미소를 입꼬리에 매단 나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든 이 기분을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나는. 사장님이 좋아요. 사장님은 나 좋아해요?” “좋아해.”
[유독 햇빛 알레르기가 심한 그녀는 조부의 명령에 의해 골자가 들어가는 어느 시골 농장 감독관으로 파견 나간다.그곳에는 기억 속에서 까맣게 지워버린 남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오늘도 오햇살은 지루하고 따분한 삶을 살아 내고 있었다.스무 살만 돼라. 스무 살만 되자. 스무 살만 되면. 그날 그녀는 자신을 아는 모든 이들로부터 완벽하게 도망칠 계획이었다.우연히 차정우의 시린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억지로 하루를 살아가는 자신과 닮은 듯한 혼자이기에 처절하게 상처 입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너라면 내 삶이 즐거워지겠어?”오햇살은 혼자였던 자신의 삶에 차정우를 넣어 버렸다. 스무 살만 되면, 이 학교만 졸업하면, 저 애를 데리고 맘껏 원하던 삶을 살아가리라 꿈꾸던 때…….원치 않던 일로 차정우를 잃어버린 햇살은 이후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채워나가다가 봉화골이라는 어느 시골 농장 감독관으로 파견을 나가게 된다.“너니?”그곳에 짧은 추억 속에서조차 쫓아냈던 차정우가 있었다.<[본 도서는 15세이용가에 맞게 수정&재편집된 도서입니다]>
병원장이자 병원의 주인이 아버지라고 해서 딸인 그녀가 당연히 물려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그녀는 노력으로 달려와 이제 막 레지던트 1년 차가 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저 지금 해고당해서 쫓겨나는 중이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뭘 살 형편이 안 됩니다. 그럼.”쌀쌀맞게 전화를 끊어버린 서현은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상자를 들고 주차장을 향해 낑낑대며 걸음을 옮겼다.아버지가 재산을 전부 빼돌린 후 가족을 버린 탓에 엄마는 빈털터리가 되었고, 딸인 그녀는 하루아침에 백수로 전락했다. 그런 와중에 자꾸만 귀찮게 하는 이 남자의 정체는 대체 뭘까?-오늘 자로 오성 병원에서 해고되신 거 압니다. 또한, 식당 자리를 알아보고 다니시는 어머니를 위해 따님께서 은행에 대출한도를 문의해 본 것도 알고 있습니다.이 남자 뭐지? 소름이 돋은 그녀가 휴대폰을 고쳐 들었다.-길게 끌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김서현 씨께 우리 온리원어브로 와주실 것을 제안 드립니다.앞뒤 설명 죄다 잘라먹고 대뜸 오라고?의문의 사내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은 그녀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가족 여행 중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잃게 된 소년, 김도빈.어른들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 고모들에게 키워진 그는사람을, 특히 여자를 믿지 않게 되었다.이후, 작은 고모님을 피해 도피성 유학을 떠난 도빈.그러던 어느 날 작은 고모님으로부터후원하고 있는 보육원에서 지내는 한 여자애를 보내겠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더불어 특별히 잘 보살펴주라는 말과 아니, 명령과 함께.어찌하면 저 서린이라는 여자애를 쫓아버릴 수 있을까?그가 가진 악랄함을 총동원해 여자애를 구박해도,서린은 찰거머리처럼 버티면서 보육원 오빠들하고 싸워도 지지 않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그렇게 잠자는 시간 빼고는 마주치기만 하면 싸우던 도빈과 서린.이젠 없으면 허전하고 심심한 마음에 눈에 안 보이면 찾아가서 시비를 걸만큼 함께 사는 일에 익숙해져 간다.하지만 이서린은 어느 날 한마디 말도 없이 한국으로 가버린다.비로소 그에게 그토록 바라던 평화가 찾아왔다.그런데 심장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춥고 엄청 심심한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시간이 흘러 성장한 김도빈은 한국에 계시는 작은 고모님으로부터 제안 하나를 받게 된다.그는 인생 처음으로 심각한 고민에 휩싸이게 되는데….스스로 혼자이길 원했던 이곳에 남을까?아니면 그 여자애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갈까?
태어났다, 사냥꾼의 딸로. 자랐다, 눈물 콧물 쏙 빼가면서. 도망쳤다, 나를 품어줄 세상 속으로. 어머니가 사약을 받았을 때 그녀는 겨우 5살이었다. 무작정 길을 떠난 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무섭고 고단했지만 지금은 그래야만 한다. 어머니와 약속했으니까. 연화는 시뻘겋게 살점이 드러난 것처럼 붉은 흙으로 뒤덮인 조 상궁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조 상궁, 있지, 나는, 조 상궁의 당부대로 살겠다, 살아남겠다, 그런 약속 같은 건 안 할 거야.” 다시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참으려고 하는데, 참고 싶은데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따라 어깨도 가슴도 같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그렇게 살아갈게. 그러니 이젠…… 쉬는 걸 허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