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의 서녀인 현주에서 폐서인으로, 종국에는 관비로까지. 맑고 아름다운 옥을 뜻하는 ‘청근’이라는 귀한 이름을 얻고도 태생부터 고단하기만 한 인생이라. “이제야…… 아무도 남지 않았네요. ……다행입니다.” 종국에는 저마저 남김없이 모두 놓아 버리고자 할 적에 지극한 연심을 드러내며 그녀를 붙드는 이가 있으니. “절 가련히 생각하신다면…… 단 하루라도 저를 위해 살아 주시면 아니 되는 것입니까?!” 청근에게 한 자락 따스한 볕이 되길 소망하는 자, 현령 홍서익. 그에게 있어 그녀는 늘 감히 꿈꾸지 못할 저 하늘 높이 떠 있는 별이요, 지근에 자리한 그림자보다도 잡히지 않는 꿈이었다. 청근의 서글픈 사연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질 뿐이니 단 한 번의 마주침이 드리운 그리움은 더욱 깊기만 하여라. 함께하길 소망할수록 애달프고 슬픈 미련은 쌓여만 가고. 언제쯤 맘껏 불러 보려나, 그 단정하고 아름다운 현주 자가의 존함을. 누가 알세라 별칭만 마음속으로 애타게 부르짖을 뿐이니. ‘옥돌아, 옥돌아.’
동그란 안경만큼이나 댕그란 눈은똑바로 뜨고 있어도 잔뜩 휘어져 웃음 지어도 시선을 붙잡아 맨다.열여덟이나 먹어 놓고도 수염 한 올 나지 않아서는짐 하나 제대로 들 기운은 없어도 입으로나마 열심히 나를 때도 그랬다.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작달막한 키에 왜소한 체구의 석동이란 놈에게 자꾸 시선이 간 건.있지만 없는 듯 그리 살아갔으나 그래도 부족했는지 왕은 아우인 제게 중인中人 신분의 여인과 낙혼하라 명했다.하지만 이미 석동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린 뒤였다.그 어여쁜 이를 놓치기는 싫으나 혼인을 아니할 수 없는 노릇이니,이제 어찌해야 한담?
<호랑이 귀신, 창倀> 중전 윤씨 이영. 불공을 드리러 산에 갔다 환궁하는 그녀의 뒤로 해괴한 것이 따라붙는다. 바로 호랑이를 부리는 귀신, 창倀. 마침 임금은 세 해가 넘도록 거들떠도 보지 않던 중전과 합궁을 해야 하는 지경에 처하고. 한데 막상 중궁전을 향해 나섰다가는 혼절한 후 깨고 보니 상황이 해괴하다. 자신이 벌써 중전과 합궁을 했다나? 자신은 도통 기억이 없는데 이놈, 저놈 모두 그렇다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것도 모자라 밤마다 중전을 찾는다니 이게 웬 고약한 노릇인지. 그러다 중전이 회임까지 했다 하니, 과연 그것이 용종인가, 뻐꾸기의 알인가? 이 괘씸한 노릇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중전을 없애든 뻐꾸기 알을 없애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