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
정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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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어룽어룽

어째서일까, 제가 그 계집아이를 향해 웃는다. 채 열 살도 넘지 않아 뵈는 계집의 맑은 웃음소리에 절로 시선이 가고, 그 아이의 환히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원수 놈의 핏줄인데. 그의 아버지를 자진하게 만들고 어머니마저 껍데기만 이승에 남게 만든 원수 놈의 핏줄. 한데, 그 계집아이가 자라서 이제 혼인을 한다고? 자신은 대를 이은 참담함에 젖어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는데?! 묻어 두었던 복수에의 욕구가 맹렬하게 그를 덮쳤다.

하님

세자의 서녀인 현주에서 폐서인으로, 종국에는 관비로까지. 맑고 아름다운 옥을 뜻하는 ‘청근’이라는 귀한 이름을 얻고도 태생부터 고단하기만 한 인생이라. “이제야…… 아무도 남지 않았네요. ……다행입니다.” 종국에는 저마저 남김없이 모두 놓아 버리고자 할 적에 지극한 연심을 드러내며 그녀를 붙드는 이가 있으니. “절 가련히 생각하신다면…… 단 하루라도 저를 위해 살아 주시면 아니 되는 것입니까?!” 청근에게 한 자락 따스한 볕이 되길 소망하는 자, 현령 홍서익. 그에게 있어 그녀는 늘 감히 꿈꾸지 못할 저 하늘 높이 떠 있는 별이요, 지근에 자리한 그림자보다도 잡히지 않는 꿈이었다. 청근의 서글픈 사연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질 뿐이니 단 한 번의 마주침이 드리운 그리움은 더욱 깊기만 하여라. 함께하길 소망할수록 애달프고 슬픈 미련은 쌓여만 가고. 언제쯤 맘껏 불러 보려나, 그 단정하고 아름다운 현주 자가의 존함을. 누가 알세라 별칭만 마음속으로 애타게 부르짖을 뿐이니. ‘옥돌아, 옥돌아.’

낙혼

동그란 안경만큼이나 댕그란 눈은똑바로 뜨고 있어도 잔뜩 휘어져 웃음 지어도 시선을 붙잡아 맨다.열여덟이나 먹어 놓고도 수염 한 올 나지 않아서는짐 하나 제대로 들 기운은 없어도 입으로나마 열심히 나를 때도 그랬다.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작달막한 키에 왜소한 체구의 석동이란 놈에게 자꾸 시선이 간 건.있지만 없는 듯 그리 살아갔으나 그래도 부족했는지 왕은 아우인 제게 중인中人 신분의 여인과 낙혼하라 명했다.하지만 이미 석동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린 뒤였다.그 어여쁜 이를 놓치기는 싫으나 혼인을 아니할 수 없는 노릇이니,이제 어찌해야 한담?

호랑이 귀신, 창倀

<호랑이 귀신, 창倀> 중전 윤씨 이영. 불공을 드리러 산에 갔다 환궁하는 그녀의 뒤로 해괴한 것이 따라붙는다. 바로 호랑이를 부리는 귀신, 창倀. 마침 임금은 세 해가 넘도록 거들떠도 보지 않던 중전과 합궁을 해야 하는 지경에 처하고. 한데 막상 중궁전을 향해 나섰다가는 혼절한 후 깨고 보니 상황이 해괴하다. 자신이 벌써 중전과 합궁을 했다나? 자신은 도통 기억이 없는데 이놈, 저놈 모두 그렇다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것도 모자라 밤마다 중전을 찾는다니 이게 웬 고약한 노릇인지. 그러다 중전이 회임까지 했다 하니, 과연 그것이 용종인가, 뻐꾸기의 알인가? 이 괘씸한 노릇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중전을 없애든 뻐꾸기 알을 없애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