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원나잇한 남자랑 친구 하는 미친 여자도 있니?” 그야말로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장장 10년을 사랑한 그와 하룻밤을 보낸 뒤, 나는 그에게 마침내 절교를 선언했다. 그런데……. “우리 영화 남자주인공, 차승준 씨야.” 불가피하게 자꾸만 그와 다시 엮인다. “친구?” 내게 언제나 유순하고 다정하던 그는. “X 까라 그래.” 왜인지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 “…왜. 넌, 아직도 나랑 친구가 하고 싶어?”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됐는데도? 라는 회의적인 사족이 생략된 질문. 내 말을 들은 그의 입가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아니.” “그럼…… 흡!” 무슨 생각이냐고 말을 이으려던 순간, 나는 종알대던 입술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이 별안간 코앞으로 다가온 탓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허리에 팔을 감은 그가 날 끌어당긴 거지만. “…생각 중이야. 널 어떻게 할지.” 한껏 예민해진 귓가로 어딘가 축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널 몰랐듯이, 너도 날 몰라.” “…….” “그래서, 이제부터 알려주려고.”
“좋아해요, 오빠.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법적으로 남남. 피 한 방울 안 섞인 의붓오빠, 권태형.그는 재인에게 첫사랑, 그러나 이루어지지 못할 짝사랑이었다.“그딴 계집애, 내 동생 아니야.”“…….”“길 잃은 강아지한테도 밥은 줄 수 있어. 측은지심으로. 나도 그런 인간일 뿐이야.”겉으로는 퍽 다정했던 의붓오빠의 진짜 속내를 우연히 듣게 된 그날 이후.재인은 제 얄궂은 사랑을 접기로 결심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결국 다른 남자와의 정략결혼을 앞두고, 그녀는 잠들어 있는 오빠를 상대로 충동적인 고백을 하게 되는데…….“……가지 마.”그간 의붓여동생 따윈 거들떠 보지도 않는 줄 알았던 남자가.별안간 제게 애원했다.“재인아…….”“오, 오빠…….”이윽고 재인은 일순에 감전당한 것처럼 굳어 버렸다.부지불식간에 호흡을 빼앗겨 버린 탓이었다.섬광처럼 몸을 일으켜, 그녀의 입술을 남김없이 집어삼킨 남자에게.*“우리……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어쩌다 그와 이렇게 되었을까.얼굴을 굳힌 그는 낮게 욕지거리를 삼켰다.“어떤 새끼가 그래? 이러면 안 된다고.”“…….”“되고 안 되고는 내가 정해. 넌 얌전히 따라오기만 하면 돼.”그가 천천히 재인에게로 걸어왔다.“오빠.”“누가 네 오빠야.”“…….”“그딴 개 같은 소리도 집어치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