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양반집 딸 윤아는 과분한 조건의 남자와 혼인을 하게 된다. 예상보다 일찍 신행길에 오른 부부는 도중에 산적을 만나 고생 끝에 한양 본가에 도착하지만, 윤아는 남편의 가족들에게 첫 만남부터 ‘남편 잡아먹는 년’이라는 말을 들으며 시집살이를 시작하게 되는데……. *** 윤아. 어여쁘고 어여쁜 아이라며 조부가 지어 준 이름이었다. “이름에는 간절한 바람과 아끼는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지. 당신을 아주 어여뻐하셨나 보오.” 하지만 할아버지. 이제 저는 할아버지가 어여삐 여기시던 윤아가 아니에요. 시부모를 공경하지도, 남편을 사랑하지도, 자식을 귀애하지도 못하는 “어째서 나를 사랑하지 않소? 당신은 나를 사랑했잖아. 그런데 왜, 이제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내게는 당신뿐이라 했잖소. 이런 나를 받아 주겠다고 했잖소. 초례청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와 합환주를 나누고 내 아내가 되기로 맹세했잖소!” 못나고 못난 여자만이 남았어요.
매 순간 약속했다. 어떻게든 다시 고국으로, 부모님이 기다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긍지도 양심도 정의도 뭣도 다 팔아서라도. 모든 것을 다 내주고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이용해서라도 반드시. 반드시. 맹세한 날로부터 8년, 넬리아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조아려 신분 높은 주인의 마음에 드는 것. 그러니 그녀가 ‘소년’을 구한 건 철저히 계산적인 이유에서였다. “네게 은혜를 입었다. 그래서 너를 파이베타 가문으로 보내려 해.” 노예의 굴레를 벗을 수 있다면 넬리아는 무엇이든 기꺼이 할 수 있었고, “내 이름은 바레타 루이 칼리스바란. 라슈타의 황태자로서 약속한다.” 그녀의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파이베타의 수장, 에윈은 처음부터 아주 이상한 주인이었다. 노예 따위의 방에 들어오면서 노크하고 허락을 구하는 남자. 노예에게 고개를 들고 생각을 하라 요구하는 주인. “원래 이름은 무어냐?” 가축에게 붙이듯 멋대로 지은 이름도, 물건을 세는 번호도 아니었다. “다른 주인이 준 이름을, 내가 계속 불러야 하나?” “……율리. 여율리입니다.” 오래도록 잃어버린 이름을 순식간에 되찾아 온 남자가, 자꾸만 그녀를 보며 웃었다. 평생의 소망을 위해 살아온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 노예와 주인의 동상이몽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