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청
적청
평균평점 2.75
함정에 빠진 범

“당신 배반한 새끼가 아직도 그리워?” “….” “정말로 사람 미치게 할 생각 아니라면!” 우철은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욱하는 심정에 소리쳤지만 그를 빤히 바라보는 은성의 눈빛에 가슴이 더 얼얼했다.  둘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줄기 소리만 방안을 채웠다. 은성이 피로한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우철 씨.” “….” “내가 불쌍해요?” “….” “아니면 나 좋아해요?” 우철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두둑 뼈마디가 산산이 조각날 듯한 강한 압력에 손등 위로 힘줄이 퍼렇게 일어섰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가?” 은성은 그에게 눈길을 한번 주었다가 방바닥에 쏟아진 알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철은 그녀가 당장 약을 집어 먹을까 봐 두려웠다.  주먹을 펴고 손을 펼쳐 알약들을 홱 치웠다.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듯한 손짓에 알약들은 장롱 밑으로 데굴데굴 들어갔다. “우리, 잘래요?” 믿을 수 없는 말이 은성의 입에서 나왔다.  우철은 쇠망치로 한 대 얻어터진 표정을 지었다.

깊은 탐욕
2.75 (2)

첫사랑이고 아내였던 여자를 잃었다. 여자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집념은 탐욕보다 깊었다.“오랜만이야.”머릿속이 암전된 사람처럼 혜원은 그저 남자를 망연히 쳐다보았다. 목석처럼 앉아 있는 혜원을 직시하는 석원의 눈빛은 서늘했다.석원이 마주 앉자 괜스레 주먹이 힘이 들어간 혜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눈이 마주쳤다.혜원의 입술에서 간헐적으로 떨리는 호흡이 터져 나왔다.“네가 왜…… 여기 있어?”“내 집이니까.”“뭐?”“여기 누구 만나러 왔어?”“백명 작가님.”“그게 나라고.”혜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석원은 마른 웃음을 흘렸다. 미치도록 원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털끝도 닿지 못한 욕망이 남자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느리게 움직였다.“일어나서 나갈 생각 않는 게 좋을 거야.”“…….”“들어오는 문은 있어도, 나가는 문은 없거든.”두려움이 짙게 서린 혜원은 그대로 동상처럼 굳어 버렸다. <[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

속절없이
2.75 (2)

돌았지. 내가.너 없이 살 수 있다고 자만하다니.버렸으니, 다시 주워 가라고.그 자리, 그곳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잖아.“날 버리고 아이를 선택한 건, 다경이야.”그리고 3년이 훌쩍 흘렀다.전봇대처럼 키가 큰 어른. 며칠 전 엄마가 보여준 사진과 똑같이 생겼다.“……아빠?”초롱초롱한 까만 눈동자가 자신만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당황한 기색이 엿보인 승현이 미간을 좁혔다.까무러칠 듯이 놀라 다경이 급히 승현에게 다가섰다. 승현이 그녀를 보며 픽 웃었다.“안녕, 공다경.”<[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

계약위반

“책임져요.”“누굴?”“당연히 저죠.”친구들은 애인과 밤을 보내고 여행도 떠난다는데.12월 춥디추운 겨울밤을 소진은 홀로 보내기엔 왠지 억울했다.연애도 하지 못한 건 다 일 중독자인 도강훈 탓이다.그러니 책임져야지.***자자고 매달려 놓고 발뺌하네?“금요일 밤 계약. 내가 이소진 씨 협박한 것도 아니고. 원만한 합의로 작성했는데도?”“변호사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저 그때 만취라 심신미약 상태였어요. 그러므로 그 계약은 무효…….”“억울하면 소송 걸든가.”“도강훈!”“반말했으니까, 계약 완료.”책임져달라니, 책임져야지.<[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