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슬
다슬
평균평점
아스라이, 흩어지리

“나를 죽여 주시오.” 주변으로 들리던 소음이 단절되고, 이 공간에 오롯이 두 사람만 있는 듯했다. “내 어머니께서는 나를 낳으시고, 한 번 안아 보지도 못하신 채 돌아가셨다.” “…….” “이렇듯 간절히 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거늘 네 어찌 죽음을 재촉하느냐. 내 감히 너의 고달픔을 모두 알지는 못할 것이나 죽어 없어지는 것보다는 살아서 힘든 것이 나을 것이다.” 따듯하고 다정한 강준의 목소리가 다시금 모진 바람에 홀로 놓인 자영을 위로하며 감싸주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자영은 말을 잇지 못하고, 허공에 들고 있던 은장도를 힘주어 잡았다. 이윽고 강준은 자신에게 죽여 달라 내민 은장도를 집어 들어 들더니 가져가 버렸다. “이것 네게 중한 것이더냐?” 침묵, 그것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너와 내 인연이 한낱 스치고 지는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은장도를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살아 보거라.” “…….” “그때까지 내가 소중히 지니고 다니마.”그리고 그가 내민 것은, 죽은 어머니가 남긴 모란꽃 자수가 깃든 손수건이었다. 모란꽃이 생글생글 금방이라도 나비가 날아와 앉을 것 같은 자태였다. 선뜻 받아들지 못하였으나 다음으로 남긴 그의 말에 마음이 동하고 말았다.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 몹시 아끼던 공주의 죽음 후 폭군이 되어버린 왕 탓에 나라는 점차 어려워지고, 왕을 밀어내려 반정을 계획했던 자영의 아버지는 역모죄를 쓰고 숙청당한다. 아버지의 사망 후, 한순간에 양반에서 노비가 된 자영은 삶을 포기하려 한다. 모질게 마음을 먹고 은장도를 든 순간, 낯선 남자가 나타나 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와의 만남 이후, 자영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는데…….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 《아스라이, 흩어지리》

궁궐에 흩날리는 꽃눈

<궁궐에 흩날리는 꽃눈> 새로이 떠오른 태양, 그 옆을 지킬 중전 자리를 뽑기 위한 간택이 내려진다. 세자 시절부터 오직 한 여인만을 위한 연정을 품어온 이 수는 선왕시절부터 충신이었던 윤현서를 독대하고 말을 건넸다. “영상의 여식을 중전으로 간택(揀擇)할 것입니다.” 이 한 마디에 비극의 서막(序幕)이 열리고 있었다. 왕이 원한 여인은 이미 혼인할 사내가 있는 터. “중전과 오누이의 정을 나눴다던 교리란 자 말이오. 그 자를 과인이 시기해야 하오?” -열꽃으로 피어오른 연정을 서툴게 표현하여 그르친 왕, 이수- “대궐서 소인이 말라 죽는 꼴을 기어이 보시고 말 것이옵니다.” -거센 소용돌이 앞에 제물이 되어 피로 물든 중전, 윤재희- “제가 올라가지 못한다면, 마마를 이곳으로 끌어 내릴 것입니다. 하여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옵니다.” -이루지 못한 열망에 눈이 멀어버린 교리, 박준서- “어디에 계시든, 무엇을 하시든, 항상 그 곳에 제가 있을 것이고, 나리께서 계실 것입니다.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족하옵니다.” -기생의 금기를 어기고 나락으로 빠진, 하련-

선악과의 유혹

내게, 세상에 다시없을 착한 남자가 나타났다.“나, 몸 팔아요.” “나랑 진짜 연애 안 할 거예요?” “한국말 못 알아들어요?” “내가 살인 저지르고 오면 받아줄래요? 그럴래요?” 결의 입에서 나온 말에 수연의 마른 입술이 다물어졌다. 결의 따듯하고, 커다란 두 손이 수연...

나의 꽃, 왕비

“그대만은 과인을 평범한 사내로 봐 주길 원하오.” 역의 마음속에서 무자비한 욕망이 끓어올랐다. 그대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르겠지. 눈앞의 정연은 얼굴을 붉힌 채 무방비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대가 처음 감나무에서 떨어져 내 품에 안기던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 “은애하오. 나의 꽃, 왕비.” 그와 보내는 초야에 잔뜩 긴장하며 눈을 피하던 정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맞닿은 시선과 흘러나오는 숨소리에서 상대의 긴장이 느껴졌다. 역이 한 발자국 더 다가가자 두 사람의 입술이 금방이라도 맞닿을 듯 가까워졌다. “정연아…….” 그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 주었다.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그의 부름으로 특별해지는 것 같았다. 《나의 꽃, 왕비》

궁녀, 왕을 품다

어느 날 잠행 도중 3년 전 죽은 아내를 마주했다. “살려 주세요.” 피투성이 몰골로 옷깃에 매달리는 죽은 아내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죽은 아내의 환각에서 깨어나 낯선 여인, 혜수를 마주한다.  스치듯 헤어지고, 다시 찾으려 돌아갔으나 혜수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1년 후, 시간을 돌아 두 사람은 왕과 나인의 신분으로 재회하게 된다. 서로를 향한 강한 이끌림에 연모의 정에 눈을 뜬 원과 혜수는 애틋했다. 꽃잎처럼 눈처럼 흩날리는 푸른 잎사귀가 두 사람을 에워쌌다. “좋은 날 꽃가마를 보내마.” “…….” “그것을 타고, 내게 오거라.” “…….” “내 너를 신부로 맞이할 것이다.” 다정한 입술이 이마에 닿고, 코끝에 닿고 눈에 닿았다. “어명, 받들겠나이다.” 나붓이 그의 입술을 받아 든 혜수가 미소를 지었다.

후궁, 왕을 적시다

홍씨 가문은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인어를 죽이고, 저주를 받게 된다. “네놈 가문에 태어나는 계집아이는 모두 인어가 될 것이다.”콧방귀 뀌며 무시했던 저주가, 늘그막에 겨우 얻은 딸에게 날아들었다.산모는 충격으로 죽고, 아이는 100일을 넘기지 못하고 열병으로 죽었다.300년 후.유일하게 인어로 태어나 마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홍도아!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인어인 나더러, 후궁 간택에 참여하란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날이 밝으면 후회하실 일은 하지 마십쇼.”“후회? 내가 뭘 할 줄 알고.”“이것부터 놔주십쇼.”그는 어느새 도아의 팔목을 꽉 잡고 있었다. “싫은데.”“취기를 빌려 희롱을 하시렵니까?”“내 후궁인데 그러면 안 되오?”“전하.”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취기에 흥청거리는 강을 쏘아보며 차갑게 그를 불렀다.“하고 싶은데.”위험을 감지한 도아가 잡힌 손을 풀고 도망가려 하자 강은 힘을 썼다.잡고 있던 손목을 품으로 잡아끌어 도아의 입술을 단숨에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