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하나
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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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각 객주 이영

출입이 금지된 산, 가둬진 황제의 씨앗. 천하를 다스려도 사람 입은 봉할 수 없어, 숨겨진 황자에 대한 얘기는 암암리에 퍼졌다. “……내게 왜 온정을 베풀었습니까.” “왜 손을 내밀었습니까.” “홀로 괜찮던 내게 왜…… 다가왔습니까.” 그에게 허락된 세상은 작았다. 외로웠던 남자 소운과, 모든 것을 혼자 짊어져야 했던 여자, 청호각 객주 이영. “너를 속여 이용하려 했고 해서…… 너를 살렸다. 네가 필요해서.” 휘몰아치는 타인의 탐욕 속에 휩쓸리면서도, 이영은 차마 소운의 손을 놓지 못했다. “소인이 주국의 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손을 다잡기 위해서 그녀가 아슬아슬한 줄 위에 올라탔다. 제궐 위로 별이 비추니 흉의 조짐이라. 사귀같이 번뜩이며 성신(星辰)을 노려보는 용의 천안(天眼)을 보라. 이 어찌 한 나라 임금의 눈이라 할 수 있는가. 제 아무리 천자라 해도 성좌를 깨뜨릴 수 없는 법이거늘. “부황께선 뿌리신대로 거두시게 될 겁니다.” “네 생을 손에 쥔 자가 누구이냐.” “소자가 사는 것은 소자의 뜻이옵니다.” 그늘 아래 숨어 있던 황자가 별 아래로 나왔으니, 잃어버린 자신의 성을 되찾을 것이며. 박탈당한 자리를 다시 되찾을 것이다. “당신만 있으면 괜찮아. 그러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이 모든 맹목은 오로지 연모하는 자를 위하여. 이영을 위하여.

영원을 거니는 봄

<영원을 거니는 봄> 생전 내지 않던 용기를 끌어 모을 때가 있다. 조각조각 떨어진 마음을 쓸어 담아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찰나의 시간. 회상해 보건데 내게는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다. 한발, 생(生)을 뒤흔들 시작으로 걸어간 걸음. 그리고 나는 당신을 만났다. 달이 뜨길 수만 번, 눈이 내리길 수천 번, 홀로 잠들기를 하염없이. 어둠 밖으로 한 걸음, 영원한 봄 그대를 향해.

나의 윤아

<나의 윤아> 선조, 고요한 바람이 부는 황량한 황궁에 황자가 돌아왔다. “황위를 원한 적 없사옵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저를 윤아, 하고 불러 주던 목소리.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게 손을 내밀어 준 한 사람. “제게 한 걸음만, 다가와 주세요.” 황좌에 오르고 싶은 당신께 나는 전부를 바칠 수 있었다. 하늘을 갈기갈기 찢어 내어 드릴 수 있었다. 당신이 나를 떠났을 때도 내겐 여전히 당신뿐이었다. “가장 슬프고 비참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폐하께서 저를 차게 보실 때도, 가시 돋친 말에 찔렸을 때도 아닙니다. 제가 폐하의 앞에서 영원히 을일 것을 깨달았을 때. 냉정한 말에도 잠깐 스친 눈길에 무너지는 내가, 의미 없는 다정함에 흔들리는 이 마음이, 미워하려 그만두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되지 않는 걸 깨달은 그 결국에…… 누이의 앞에서 영원히 을일 것을 알았어.” * 시린 바람이 부는 황궁의 중심엔 반아가 있었다. “더는 다가오지 마십시오.” 참혹한 기억을 끌어안고 처절한 걸음을 내딛으며 하늘을 갈망했다. 그 고통을 버티게 한 것은 한 사람이었다. 황자로 태어나 결국 내 앞을 가로막게 될 한 사람. “네가 돌아오길 바랐다. 네가 돌아오지 않길…… 빌었어.” 끝없이 주변을 서성이며 다가오려는 너를 밀어내야 했다. 말간 눈에 슬픔이 차올라 애타게 손을 뻗는 너를 스쳐 가야 했다. 연정을 말하며 무너지는 너를, 잡고 싶었다. ‘네가 내겐, 봄이었다. 시린 바람만 부는 황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계절이었다. 너를 다시 만난 후로 황궁엔 잊었던 비단 꽃이 피었다. 노을이 쏟아져 내렸다. 윤아. 내 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아. 나의 윤아.’

천제

남천을 다스리는 천제 적연.메마른 물길 속 모든 게 잠겨 버린 그를 뒤흔들 한 사람, 가려.광활한 천계, 차갑고 삭막하기만 한 천제궁에 바람이 불었다.“천제에게 가려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생.무엇도 간절하지 않은 삶.나를 보고 웃어주는 존재는 당신이 유일했다.‘제 모든 걸 결정하고 휘둘러도 좋습니다. ...

겨울이 내리는 산

<겨울이 내리는 산> 혜호국에서도 가장 높고 험준한 설산, 담룡산에 들어간 이들 중 살아 돌아온 자는 없었다. 그러나 진협부의 가주가 되기 위해 여희는 기꺼이 그 땅에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어떤 인연을 만날지도 모른 채. “손이 닿길 수없이 바랐습니다. 하여 눈물을 닦아 주고 곁에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의 연(緣)이라 했다. “어떤 것이든 감당할 수 있습니다. 괴롭고 지친 것들은 전부 제가 하겠으니······. 저를······ 놓지만 마세요.” 내 모든 생애에 늘 함께했다는 사람. 그런데도 이토록 낯설기만 한 사람. “저는 여전히 사헌을 믿을 수도, 원망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드러나는 진실 속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은 돌이킬 길이 없고. “부디 다치지만 마세요. 그거면······ 그거면 됩니다.” 눈 내린 설산 위로 애달픔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