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진
현아진
평균평점
아이 아빠는 처음이에요

“그쪽한테 책임지라고 할까 봐 겁나요? 그쪽 같은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 아이가 절대로 모르게 할 거야.” 기억에도 없는 하룻밤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생겼다. 지우라는 협박도 통하지 않는 스물네 살의 아이 엄마는 좋은 아빠가 될 게 아니면 책임질 생각도 말라고 한다. 난 좋은 부모를 가져본 적도 없고, 아빠는 처음인데……. 그게 가능할까? “내가 언제 같이 살면서 애를 책임지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다 필요 없다고요. 왜 내 아이가 당신 호적에 들어가고 당신 성을 따라야 하는데요?” “기껏 생각 바꿔서 미혼모 딱지 떼어주고 애도 내 자식으로 인정해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쪽은 생각을 바꾼 게 아니라 변덕을 부리고 있는 거죠. 나는 내 인생을 걸고 이 아이를 지키기로 했어요. 당신 인정 같은 거 없어도 나랑 아이,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요.” ▶ 작가 소개 현아진 건강하고 느린 삶을 지향. 겨울과 여행, 바다 속 동물을 사랑한다.

나를 주워 가세요

[단독선공개]지헌이 바라는 베이비시터 구인 조건은 단 하나였다.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줍는 정도면 돼.”그렇게 지헌에게 온 베이비시터는아이와 모녀처럼 닮은 박율아였다.“낯이 익은데. 나 본 적 없습니까?”그의 물음에 율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듣기 거북한데.”뭐, 첫 만남을 잊었어도 괜찮았다. 박율아를 다시 본 순간부터 그는,더 이상 짐승 새끼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표지 일러스트 : 하지

부부의 온도

“그쪽도 제정신은 아닌가 봐.” 태성그룹은 유난히 손이 귀했다.  형의 죽음으로 새 후계자가 된 차우건은 종마 역할을 거부했다. 하지만 핏줄에 집착하는 조모는 기어이 손자의 청첩장부터 찍어내고야 말았다.   “저는 이 결혼을 무르고 싶지 않아요.”   JM식품의 차녀 윤희서는 숱한 경고에도 불행을 자처했다. 반드시 불행해야 한다면 차라리 좋아하는 남자 곁이기를 바랐다. 사생아라는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만이라도……. “내 우선순위는 아이보다 윤희서, 너야.” 뙤약볕 아래서 처음 만났던 부부의 온도는 빠르게 달아올랐다.

우아한 복종

“그러게 왜 엉뚱한 곳을 헤매고 다녀.” 어떻게든 멀어지기 위해 그의 청혼까지 거절했으나 결국 제자리였다. “뭐든 할게요. 오빠만 살려주시면 정말 뭐든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오빠가 살인누명을 썼다. 죽어도 빌붙지 말자 했던 오래된 다짐은 산산조각난 지 오래였다. “다른 방법을 써 봐.” 축축해진 손가락이 여원의 둥근 턱 밑을 받쳤다. 엄지가 턱 중앙을 슬며시 누르며 부들거리는 입술을 벌렸다. “내가 너에게만은 유하게 굴잖아.” 뱀의 아가리가 먹이의 크기에 맞게 벌어지듯, 딱 그만큼의 틈이 생겼다.

오만한 애착

“평생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나 봅니다.” 애초에 이루어지지 않을 끝을 알고 있었다. 일강그룹의 후계자와 그의 조모를 돌보던 요양보호사의 관계는 짧고 찬란했다. “임신 사실을 감추게 할 만큼 쓰레기 짓을 한 기억은 없는데.” 웃는 낯으로 영아의 배를 바라보는 무건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날카로웠다. “처음부터 혼자 낳아 키우자고 결정했었어요. 정말이에요.” 무건은 얼얼한 뺨을 간질거리는 영아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  “못 믿겠습니다.” 느릿하게 귓불을 문지르던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파고들어 뒤통수를 감쌌다. “친부를 눈앞에 두고도 문란한 변명이나 지어낸 여자를…….” 영아를 데리러 온 그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믿겠습니까.”

소꿉놀이 중입니다

“유괴범 주제에 인사성은 바르네요.” 겨울 바닷가를 등지고 나타난 기헌은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는 집채만 한 힘을 갖춘 그에게 소혜는 애원했다. “아무것도 안 바라요. 예온이 키우는 것만, 딱 그거 하나만요.” “키워 놓기만 하고 생색내지 않겠다고.” 그러나 기헌은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법적 보호자도 아닌 네가 뭘 할 수 있냐는 듯이. “그걸 덥석 믿어 줄 만큼 내가 순진하질 못해요.” 하지만 찰나의 변덕은 두 사람의 관계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었고, 그저 부모 잃은 조카를 위해 제시한 3개월짜리 이별 준비 기간은, “임소혜 씨는 ‘네’ 하고 대답만 잘하세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결혼이라는 소꿉놀이로 바뀌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