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솔
백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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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하는 게 나빠?

술이 웬수지.나만큼은 술을 아무리 먹어도 그런 사고는 안 칠 거라고 생각했는데.눈떠 보니 벗은 몸, 그리고 내 옆에는 2년지기 친구가 있었다.그렇게, 2년 친구와의 인연을 끝냈…아니, 끝냈다고 생각했다.“근데 이게 나빠?”“뭐?”“너도 좋다고 했었잖아.”“내가 언제!”“그랬었어. 하고 난 뒤에 충분히 만족했다고, 정말 좋았다고 했었어.”청량하다고 생각했던 놈의 웃음이,이제는 승냥이처럼 교활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한때 친구였던 놈이,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명체가 되어 버렸다.야해. 위험해. 미친 거야. 어떻게 친구랑 이럴 수 있어?아무리 잘생기고, 아무리 모델 기럭지에, 아무리 나한테 잘해 준다고 해도……근데,대체 얼마나 좋았기에 내가 그런 말을 한 거야?“원한다면… 전부 다 알려 줄 수도 있어.”“…….”“네가 날 어떻게 만지고… 어떤 말을 했었는지. 전부 다….”호기심에서 욕망으로, 그러면 친구에서 파트너로?그러면 그다음은?《친구랑 하는 게 나빠?》

전장에 핀 꽃

학도병 엘론, ‘군인다움’보다 어제 내 곁에서 웃던 동료의 죽음이 주는 공포와 상실을 먼저 알아 버렸다. 공격과 폭격 가운데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깨어난 곳은 적군의 막사 안.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대위, 리카르트. 이자일지도 몰랐다. 동료를 죽인 살인자가. 경계하는 엘론, 하지만 리카르트는 포로인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말동무를 해 주거나 이따금 초콜릿까지 건넨다.  그 동정이 의아하면서도 안심해 버렸다.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죽고 죽여야 하는 관계였는데도. 그리고 어느 날. “포로 처분 명령이 내려왔다.” 과연 그들의 서사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미리 보기] “이건 충고하는 건데, 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몸을 던지지 마라. 너 같은 어린애들은 뇌가 깨끗해서 사상이니 하는 것에 쉽게 물들어. 전쟁이 아니었다면 한창 영웅 서사시나 읽으면서 칼 휘두르는 상상이나 할 때니까. 윗놈들이 지껄이는 이상을 위해서 총을 들어 봤자.” 리카르트는 말을 잇기 전에 잠시 뜸을 들였다.  “개죽음일 뿐이니까.” 엘론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리카르트의 말이 틀린 것 같진 않았지만,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이 시큰거리는 것도 같고, 눈앞이 흐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리카르트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내뿜고 있는 연기처럼, 그 또한 한순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이 자리에 자신만을 남겨 둔 채.  그건 싫어. “그런 게… 어딨어!” “꼬마?” “당신이라고 죽어도 되는 건 아니잖아. 아무리 빵을 위해 총을 들었어도… 그래도 목숨은 소중한 거야.” 리카르트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그는 강해 보이는 어른이지만, 처음 총을 들 때는 프레드만큼 어렸다고 했다. 아무리 각오를 했다지만 눈앞에서 범람하는 죽음에 동요하지 않았을 리 없다.  리카르트는 사람이니까. 그에게도 목숨은 하나였다.  엘론은 그 점에서 속이 상했다.  왜 이 남자는 모든 걸 달관한 것처럼 구는지. 나보고는 목숨을 소중히 하라면서, 왜 제 목숨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는지.

아벨과 카인

질투에 미쳐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죄책감과 함께 자신을 쫓는 이들에게서 도망치던 카인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죗값을 받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먼 발치에서 동생을 보기 위해 고향집을 찾아간 카인은 우연히 아벨과 마주하게 된다. 아벨은 갑자기 나타난 카인을 보고 놀라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다만, 상냥하게 카인을 맞아 줄 따름이다. 카인은 그러한 아벨의 태도에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차츰 그 호의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문뜩문뜩 보이는 동생의 태도에 카인은 이상함을 느낀다. 결국 카인은 아벨을 몰래 조사하게 되는데……. ***   “…형님?” 태양처럼 찬란하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더 미웠던 황금빛 눈 한 쌍이 자신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아벨.” 내내 속으로만 부르던 이름이 밖으로 나왔다. 카인은 말을 더듬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창피함, 모멸감, 민망함 따위의 감정이 줄을 지어 찾아왔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꼬리를 단 것은, 두려움이었다. 뭐라고 할까? 어딜 뻔뻔하게 들어왔냐고 인상을 쓰며 욕을 뱉진 않을까? 자신의 인생을 망칠 뻔했다며 저주를 퍼붓진 않을까? 그것도 아니면, 예전의 죄를 물어 자신에게 복수를 하려 하지는 않을까? 아벨이 가장 예리하고 지독한 악행을 자신에게 행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거라고 카인은 생각했다. 자신을 해한 자를 제단에 올리려 펄펄 뛰는 자들은 이 세상에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그러나 아벨이 건넨 건 평이한 인사말이었다. “카인 형님이시군요.” 목소리 또한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과 달랐다. 카랑카랑하던 미성은 낮은 울림을 머금은 남자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벨의 목 가운데서 오르내리는 목젖 또한 카인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도와드릴까요?” 아벨이 손을 내밀었다. 카인은 뜬금없이 친절을 베푸는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어 그의 희멀건 얼굴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괜… 괜찮다.” 가까스로 도움을 거절한 카인은 무릎을 털고 일어섰다. 그가 허리를 일자로 폈을 때도 아벨의 눈높이는 여전히 카인보다 위에 있었다. 카인은 알게 모르게 아벨이 위압적이라고 생각했다. 카인을 내려다보는 시선 그대로, 아벨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