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세공자 선우제검계집을 후리는 호색절, 도귀가 까무러칠 정도로 능수능란한 도박절, 귀신을 상대로 사기친다는사기절, 세가지 방면에 달통하면서도 삶과 죽음을 공깃돌처럼 가볍게 여기는 사나이. 천의 얼굴로 세상을 조롱하며 살지만...공공문주 해어화 차를 끓이는 여인. 다향처럼 은은하고 아름답지만 무궁한 지혜로 어지러운 세상을 헤쳐나간다. 천년비밀의 공공절학으로 하늘의 문을 열고 비밀의 화원을 경영하지만 사나이 마음 하나 얻는 데 모든 것을 바친다. 장안객 백희도어떤 일이라도 좋다. 댓가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해결해 주마!892건의 청부를 해결한 사나이. 그의 살인대상이 되었다면 차라리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드러눕는 것이 낫다. 지상최고의 추적술로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갈 테니까. 한 자루 철검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사나이.무영신투 현가빈마음만 먹는다면 황제의 팬티도 훔칠 수 있다!그림자 없는 인간인 양, 세상 곳곳 은밀한 곳을 안방 드나들 듯 하며 취미로 훔치는 사나이. 그가 훔친 보화를 쌓는다면 태산 높이는 될 테지만단 하나 훔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등용문> <맛보기> * 서막(序幕) 동림서원(東林書院)의 비극(悲劇) 폭설(暴雪)이 내렸다. 대륙은 온통 건곤일색(乾坤一色), 은세계(銀世界)로 화했다. 세모(歲暮)가 가까워질수록 강소인(江蘇人)들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다가오는 신년(新年)의 기대감과 저물어 가는 한 해의 아쉬움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강소성(江蘇省) 연운현(連雲縣)은 서쪽으로 서주(徐州), 남으로는 남경(南京)을 두고 있는 곳으로 아담한 규모의 마을이었다. 휘이이잉...... 한밤에 내리는 폭설로 인해 마을은 깊이깊이 가라앉는 듯 했다. 사람들은 창문을 꼭꼭 걸어닫고 따뜻하게 화로를 피운 방 안에 모여앉아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만력(萬歷) 이십구 년(十九年). 대명천하(大明天下)는 암담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정국(政局)은 날이 갈수록 혼란의 극을 치닫고 탐관오리와 환관들의 부패로 인해 민심은 흉흉할대로 흉흉해지고 있었다. 청렴한 학자(學者)들은 사화(士禍)에 연루되어 떼죽음하거나 세상을 한탄하며 초야(草野)에 묻히고 있었으며 기개있는 관리들은 분루를 삼키며 하나 둘 북경(北京)을 떠나고 있었다. 암담하기만한 그 시점에 뜻있는 문사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강소성 무석(無錫)에서 동림서원(東林書院)이 새로 세워졌다는 낭보(朗報)였다. 동림서원의 부활(復活)! 그것은 꺼져가던 학문의 불씨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썩어빠진 정사(政事)...... 환관의 부패...... 추악한 당쟁(黨爭)....... 뜻있는 문사들은 일제히 붓을 꺾고 초야에 묻혀 썩어빠진 세상에 대해 한탄만 하던 시대에 동림서원의 부활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침내 대의를 품은 문사들이 하나 둘 동림서원으로 모여들면서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예고하는 듯 했다. 한때 동림학파(東林學派)로 불리웠던 학자들이 동림서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학문을 열고 재기의 용트림을 하게 된 것은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는 기대를 만천하들에게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동림서원이 다시 열렸다는 소문이 중원천지에 퍼지면서 학자들의 감겼던 눈이 번쩍 뜨여졌으며, 처박아 두었던 고서(古書)를 다시 펼치는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우내제일학(宇內第一學) 천화빈(天華賓). 그는 당대 제일의 석학이었다. 그는 썩어빠진 정국에 회의를 품고 연운현으로 낙향한 사람이었다. 이후 그는 연운산(連雲山) 오죽거(烏竹居)에 은거하여 자신을 감추고 살았다. 동림서원의 열풍이 전중원을 휩쓸자 이 거유(巨儒)도 감았던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구주강호> <맛보기> * 제1장 상심인(傷心人) 쏴아아..... 철썩! 동해의 파도가 기암(奇岩)으로 이루어진 섬의 절벽을 때린다. 섬은 절해 상에 고고히 떠 있었다. 부근의 파도는 맑은 날에도 소용돌이를 치며 치솟아 올라 배의 접근을 불허하였으며, 설혹 어쩌다 섬으로 다가왔다 해도 주변에 빽빽이 솟아있는 암초(暗礁)에 부딪쳐 침몰하고 말았다. 숭녕도(嵩寧島). 동해상에 위치한 이 섬의 서쪽에 면한 절벽 위에 한 청년이 마치 석상인 양 우뚝 서서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그가 바라보고 있는 쪽은 가물거리는 수평선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 수평선 위로는 뭉게구름만이 이따금씩 환상적인 모양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구름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지금 그의 눈에는 흰 구름 너머의 대륙과 그곳의 아름다운 풍광이 꿈결처럼 어리고 있었다. 십팔만 리의 중원대륙이 그곳에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땅, 일세(一世)의 영명과 청운의 푸른 꿈이 먼지처럼 부스러진 곳이었다. "아아......!" 청년의 입에서 간장을 끊어내릴 듯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청년의 눈은 별빛같이 초롱하고 맑았으며, 오관은 바르고 뚜 렷했다. 주사(朱砂)를 칠한 듯이 붉은 입술은 한 송이의 꽃잎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얼굴은 누렇게 병색(病色)이 감돌고 있어 중병(重病)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더욱 기이한 것은 약관(弱冠)에 불과해 보이는 청년의 머리카락이 온통 은발(銀髮)이라는 사실이었다. 도통 검은 머리칼이라곤 한 올도 보이지 않는 은발의 청년,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청년은 중원대륙이 저 바다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무심한 파도의 물거품과 함께 모든 것이 끝장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청년의 입에서 나직한 싯구가 흘러 나왔다. 어젯 저녁 연못에서 꽃이 지는 꿈을 꾸었는데 봄이 반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구나. 양자강(楊子江) 물은 봄을 씻어가서 봄도 가려하고 강물에 비치는 저 달도 점점 기울어 가는데 비낀 달빛이 안개 속에 숨어들고 갈석에서 소상(瀟湘)까지 기나긴 나그네길 끝이 없구나. 이 달빛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지는 달이 내 마음을 흔들어 강 언덕 나무 숲에 차있네.. 당대(唐代)의 장약허(張若虛: 660-720년 사이의 대시인)가 지은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를 읊는 청년의 두 뺨 아래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정마협> <맛보기> * 제1장 만상집현각(萬像集賢閣)의 아이들 ①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춘우(春雨)는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고 있었다. 사월(四月)이었다. 풍광이 수려하기로 천하의 으뜸이라는 호남성(湖南省) 형양현(衡陽縣)의 도화무릉구(桃花武陵丘). 멀리서 병풍처럼 도화무릉구를 감싸고 있는 형산(衡山)은 은은한 물안개에 가려져 희미한 윤곽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화무릉구에 만개한 도화꽃들은 물방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연붉은 꽃잎을 축 늘어 뜨리고 있었다. "......." 도화목 아래 소년소녀가 서 있었다. 소년은 몹시 병약해 보였다. 누군가 부축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가냘픈 체구에 핏기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는 창백한 안색을 지니고 있었다. 십사오 세쯤 되어 보였으며 허약한 몸매에 홀쭉하니 큰 키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외형과 달리 소년의 얼굴은 무척이나 준수무비했다. 눈썹은 붓으로 그은 듯 진했으며 호수같이 깊고 투명한 두 눈에는 천하만상(天下萬象)의 진리를 담고 있는 듯 했다. 그런가하면 허약하기만한 소년의 전신에서는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소년은 백의(白衣)를 입고 있었다. 그의 모습과 백의는 절묘한 배합을 이루고 있어 군계일학(群鷄一鶴) 같은 느낌을 주었다. 소년은 핏기없는 입술을 다문 채 조용히 언덕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천상(天相), 이제 그만 들어가. 공기가 차가와." 소년의 옆에 서 있던 소녀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한없이 염려가 깃든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소년의 머리 위에 유지(油紙)로 만든 우산을 씌워주면서도 정작 그녀 자신은 비를 맞고 있었다. 일신에 연남빛 옷을 입은 소녀는 백의소년보다 한두 살쯤 더 들어보였다. 아미월 같은 눈썹과 한 쌍의 서늘한 봉목(鳳目)은 월중항아를 연상케 했다. "조금만 더. 이런 날 언덕 아래를 보면 기분이 가라앉는 걸 느껴. 하령(霞玲)은 이해할 수 있어?" 소년은 비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는 언덕 아래로 시선을 던진 채 그렇게 말했다. 하령이라 불리운 소녀는 소년의 옆 얼굴을 살며시 바라보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좋다면 나도 좋아. 하지만 이런 날 오래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단......." 그녀는 문득 입을 다물고 만다. 그 말에 소년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소녀는 교구를 가늘게 흔들었다. '아! 이 눈빛... 천상의 눈만 보면 어쩔 수가 없어.
<절검도> <맛보기> 제1장 · 왕옥산(王屋山)의 은사(隱士)들 ① 오늘도 그는 낙엽을 쓸고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낙엽과 함께 한 탓일까? 그는 점점 낙엽의 쓸쓸함을 닮아가는 것만 같다. 오늘도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했다. 다만 그의 치렁치렁한 흑발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가끔씩 드러나곤 하던 서늘한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 시월 초 닷새. 강호무림(江湖武林)은 무공을 자신의 생명보다도 중요시 여기는 곳이다. 또한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허리에 찬 한 자루의 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계였다. 정통 무림명문임을 자랑하는 구파일방(九派一 )이 무림천하를 군림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강호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또는 사문(師門)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도 검을 갈며 투혼(鬪魂)을 불사르고 있다. 때는 무력(武歷) 육백오십 년. 당금 무림은 양대산맥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첫번째 산맥은 바로 백화성(白花城)이다. 백화성은 지금으로부터 육십 년 전 구파일방이 중심이 되어 사마외도(邪魔外道)를 척결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였다. 백화성의 초대 성주는 만세지존협(萬歲至尊俠) 백선결(白仙潔)이었다. 백화성은 백선결이 초대성주를 맡은 이후 지금까지 줄곧 세습제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백씨일가를 능가할만한 무림명가가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백화성이 있는 한 무림은 태평성대를 유지했다. 그것은 구파일방이 백화성의 모태가 된 원인도 있겠지만, 그만큼 백화성의 조직과 힘이 강건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만사 건곤(乾坤)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던가? 밝은 태양의 세계 맞은 편에는 반드시 어두운 그림자의 세계가 있기 마련이다. - 철혈부(鐵血府). 철혈부는 정도무림인 백화성의 결속을 견제하기 위해 사도인들이 비슷한 시기에 세운 패도적인 조직이었다. 철혈부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은 무림을 재패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위인들이었다. 그런 패류의 강호인들이 세운 집단이 바로 철혈부였다. 초대 철혈부주로는 만마태존(萬魔太尊) 초몽양(楚夢陽)이 추대되었다. 그는 당시 녹림대종사(綠林大宗師)이기도 했다. 당금의 철혈부를 이끄는 것은 바로 초몽양의 직계 제자였다. 백화성(白花城)과 철혈부(鐵血府)! 바로 이 두 조직이 당금무림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서로 호시탐탐 헛점을 노리며 대결전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섣불리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자객도> 바람이 분다. 바람따라 꽃잎이 낙화한다. 영웅이여, 협사여....... 칼(刀)과 눈물(淚)과 피(血)로 점철된 야망이여 돌고 도는 것이 세월일진대 명멸하는 성좌(星座)와 같이 이름을 남기는 것이 그대 영웅의 뜻이련가? 사가(史家)는 붓으로 기록을 남기니 수많은 무공이 창안되고 중원에 강호무림계(江湖武林 界)라는 세계가 나타났다. 그대 또한 한 획을 긋기 위해 한 세상 무인(武人)으로 고검행(孤劍行)을 하리오. <맛보기> 서장 ① 선종(禪宗)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숭산 소림사에 들어와 면벽 9년으로 도를 깨우치고 중원에 선종불학을 전파한 것은 서기 520년 경의 일이다. 그 이후로 중원에 선종과 함께 도래하여 꽃피운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무공(武功)이다. 달마선사는 나약해진 육체로는 올바른 불도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여 승가의 제자들에게 한 권의 경서를 전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역근세수경(易筋洗髓經)이다. 그 이후 소림오권(少林五拳)이 생겨나고 대대로 소림사의 승려들은 불학과 무술을 아울러 익힘으로써 중원에 우후죽순처럼 무술이 탄생했다. 그들은 학문이 아닌 무도로써 세상을 밝게 하려는 의도를 지녔다. 그리고 독특한 사고와 행동양식을 가지고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무력(武歷)이란 용어가 생긴 것은 바로 이 무림세계의 기록을 위한 것이다. 무림원년(武林元年)을 보리달마가 소림에 들어온 해로 잡은 것은 따라서 아주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② 바람이 분다. 바람따라 꽃잎이 낙화한다. 영웅이여, 협사여....... 칼(刀)과 눈물(淚)과 피(血)로 점철된 야망이여 돌고 도는 것이 세월일진대 명멸하는 성좌(星座)와 같이 이름을 남기는 것이 그대 영웅의 뜻이련가? 사가(史家)는 붓으로 기록을 남기니 수많은 무공이 창안되고 중원에 강호무림계(江湖武林界)라는 세계가 나타났다. 그대 또한 한 획을 긋기 위해 한 세상 무인(武人)으로 고검행(孤劍行)을 하리오. ③ 무력(武歷) 470년. 당시의 무림은 그야말로 최번성기가 도래하고 있었다. 무림을 장악한 것은 소림사를 위시한 8파1방(八派一幇)과 4대세가(四大世家)였다. 이름하여 13대 명문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여 스스로 천하제일이라는 자만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파만이 정통이며, 13대 문파 이외의 문파는 사마외도(邪魔外道)로 몰아붙였다.
<혈륜공자> 『혈륜공자』에서는 마도(魔道)에 선 한 인물을 그렸다. 어째서 마도 쪽이냐 하면 주인공의 운명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정도 출신이었다면 정도를 수호하기 위한 일생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무협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항상 정도가 승리하는 소설을 읽게 된다. 여기서 어째서 마도가 존재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마도는 분명 나쁜 쪽이며 사악한 집단이다. 그런데 어째서 스스로 손가락질 받는 마도의 길을 평생 걷는지 의문이 남게 된다. 의외로 그 답은 간단할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도는 마도대로 자신의 길이 최선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아름답다. 길이 다르면 협상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영원한 평행선을 가는 것이 협상의 대안은 되지 못한다. 어차피 하나의 길만이 주어진다면 부딪치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혈륜공자』는 선렬한 혈세무림의 세계를 그린 대하소설이다. 5권의 분량이 말하듯 수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이 난비한다. 다소 어지러울 정도의 복선(伏線)이 깔려 있고 의외의 결말도 도출될 것이다. 참고로 무협소설로는 처음으로 본문에 주(註)를 달아 감상의 편리를 도모하고 동양문화의 편린을 엿볼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였음을 밝혀 둔다. <맛보기> 서 장 끝없이 돌고 도는 무림(武林)의 역사는 피의 수레바퀴(血輪)로도 비유된다. 밤 하늘의 숱한 성좌(星座)처럼 무림의 기인고수(奇人高手)와 초강문파(超强門派)들은 풍진에 파묻히며 명멸해 가는 것이다. 점점이 피로 얼룩진 대무림사(大武林史). 무림 역사상 가장 강한 문파는 어느 문파인가? 이런 질문은 사실 어리석은 질문일 수 있다. 명멸하는 대무림사에서 초강문파를 꼽는다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굳이 꼽아보자면 무림인들은 누구나 세 문파를 꼽을 것이다. - 기환궁(奇幻宮). - 금궁지부(禁宮之府). - 대마성(大魔城). 이 세 문파는 시대연월(時代年月)을 달리하여 나타났지만 한결같이 무림사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단연 이 삼파(三派)야말로 무림사상 가장 강한 문파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기환궁(奇幻宮). 일천 오백 년 전 무림사의 시작과 함께 나타났다가 온갖 신비 속에 파묻혀 사라져간 문파가 바로 기환궁이다.
<독보강호> [독보강호]는 일종의 코믹 무협소설이다. 또한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독보강호]는 정통류(正統類)가 아니라 기정류에 속한 작품으로 천편일률적인 주인공의 초지성(超知性),절세미남, 무공기연의 틀을 벗어나 파격적인 구성을 표방하고 있다. 주인공은 천치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으며 용모도 지극 히 평범한 인물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우직함과 바보 스러움은 무림의 위선을 벗기며 포복절도할 웃음과 풍 자를 보여줌으로써 독특한 스타일을 일궈낸다. 오늘날 현대인은 웃음을 잃고 산다. 첨예한 경제전쟁 과 능력지상주의로 인해 삭막한 환경 속에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본저가 하나의 청량제가 되 어 독자들께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맛보기> * 제1장 내 이름은 노팔룡(魯八龍) ① "으아- 아아아아- 아아악--!" 한 사나이가 미친듯이 질러대는 고함소리가 계곡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이곳은 황룡산(黃龍山)의 한 이름 없는 산곡. 이십여 세 가량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일신에는 낡디 낡은 베옷을 입고 있어 한눈에도 그가 초부(樵夫)나 한촌의 시골뜨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헌데 그는 지금 아무렇게나 잘라 만든 나무막대기 하나를 두 손으로 잡고 마구 휘두르며 산곡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그같은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아니, 저 놈이 또 미쳤네?" 산곡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하나의 동혈(洞穴)이 뚫려 있는 바, 지금 막 그 동굴 입구에서 초라한 노인이 눈을 비비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노인은 청년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급기야 노인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쉴 새 없이 고함을 질러대는 청년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 팔룡아! 제발 잠 좀 자자!" 팔룡(八龍)? 그것이 괴청년의 이름이었던가? 그러나 청년은 여전히 나무막대기를 휘두르며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연속 질러대고 있었다. 노인은 화를 벌컥 냈다. "이놈--! 이젠 사부의 말도 들리지 않는단 말이냐?" 청년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볼이 잔뜩 부어 오른채 한껏 불만스런 음성으로 툴툴거리는 것이었다. "사부님! 오늘만은 제발 제자를 가만 놔두십시오." "뭐. 뭐라고?" 노인이 기가 막혀 역 팔자(八字)의 빗자루 눈썹을 치키는데, "전 죽어도 오늘밤 안에 사부님이 전수해 주신 진우주 천상천하 유아독존검법(震宇宙 天上天下 唯我獨尊劍法)의 진수를 깨닫고야 말겠습니다!"
<천심기> 운명(運命)의 혹독한 반전! 황자(皇子)를 거부한 황자의 앞날에 풍운이 인다. 4인의 우정은 변방의 한 시진에서 낙루(落淚)와 함께 흩어졌다. 다시 만나는 날. 누가 우인(友人)의 심장에 검을 꽂을 것인가? 권력도 버리고 명예도 버리고 원한도 버린 한 사내의 텅 빈 가슴에 닿는 차디찬 칼날의 감촉!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이여! 하늘도 땅도 인간도 결국 하나로 귀일될 때 화두(話頭)의 해답이 풀리리라. <맛보기> * 제1장 네 명의 친구 ① 난주(蘭州)는 중원의 최북방에 있는 도시다. 동북으로는 만리장성(萬里長城)에 연해 있는 하란대산(賀蘭大山)이 펼쳐져 있고, 서북으로는 변방의 관문인 옥문관(玉門關)이 있는 요지이다. 또한 난주성은 병마(兵馬)들이 집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써 병사들이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유흥가를 헤매는 곳이기도 하며, 병점(兵店)과 마장(馬場)이 도처에 펼쳐져 있어 한눈에도 변방풍운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튼 고향을 떠나 있는 병사들의 애수를 달래주거나 사막을 여행하는 대상(隊商)들에게 위안을 주는 데에는 이만한 장소도 없다. 그만치 홍등가(紅燈街)가 발달해 있다는 얘기다. 도박장(賭博場)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본시 도박과 향락은 불가분의 연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투전판에 인생을 거는 자들이 몰려들어 난주성은 항시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그 밖에도 난주성의 특징을 들라면 또 있다. 이곳은 이르자면 다양한 인종들의 전시장이다. 무장한 병사들이 어깨를 으쓱대며 거리를 활보하는 중에 변방 각지에서 몰려든 대상들이 수시로 낙타를 몰고 오가는데, 저마다 피부색이 다른 그들 상인들로 인해 몹시 특이한 풍정을 이루는 곳이다. 덕분에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시장(市場)은 언제나 인파로 붐볐으며 홍등가에서는 기녀들의 끈끈한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울려나와 행인들을 유혹하곤 했다. 오후 무렵. 북문으로부터 인파 속에 떼밀려 한 소년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이는 이제 대략 십육, 칠 세쯤 되었을까? 일신에는 백의(白衣)를 걸치고 있었으나 말이 백의지, 때가 절어 있는 데다가 그나마 다 닳아빠져 그의 생활이 얼마나 궁핍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궁상맞은 몰골에 비해 어울리지 않게도 옆구리에 큼지막한 책보따리를 끼고 있었다. 질적(質的)인 면이야 어떻든 차림도 문사의에 문사건까지 갖추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그는 한 손에 두터운 고서(古書)를 든 채 남이야 어찌 보든 길을 가는 와중에도 줄곧 책에만 눈을 박고 있었다.
<천리무애> <맛보기> * 제1장 낙양(洛陽)의 사대명물(四大名物) ① 낙양(洛陽)을 모르는 이는 중원인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낙양이 한족의 영화(榮華)가 남긴 역사적인 유물로 가득 찬 고도이기 때문이다. 사통팔달(四通八達)된 도로를 위시하여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천 년을 이어 내려온 고도의 고색창연함과 번화한 정경은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서도 주왕묘(周王廟)는 대표적인 것으로 낙양성의 여경문(麗景門)을 나서면 바로 눈에 띈다. 낙양은 대황하(大黃河)에 인접하여 있으며 서쪽으로는 망산(邙山)이 우뚝 솟아 있었고 동으로는 그 유명한 숭산(嵩山)을 끼고 있어 지세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특히 성 남쪽을 끼고 황하로 흘러 들어가는 낙수(落水)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낙양을 더욱 빛나게 하는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낙양성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객점과 기원(妓院)은 물론이고 온갖 종류의 번화한 상가를 만나게 된다. 낙양은 하남(河南)의 대도로서 갖출 것은 빠짐없이 갖춘 곳인 셈이었다. 더욱이 낙양 중심가에는 금전옥루(金錢玉樓)의 대저택이 즐비했다. 물론 그 대택들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나 거부대상(巨富大商)들의 것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아무튼 낙양은 온갖 군상들이 어우러져 사는 중원의 대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볼거리가 있는 낙양에서도 명물(名物)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서슴없이 사대명물(四大名物)을 들먹이기 마련이다. 일문일원일부일사(一門一院一府一寺). 낙양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그 사대명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사대명물이 낙양인들의 자랑거리가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 사대명물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게 되면 하룻밤을 다 소비하고도 모자랄 것이고 열 단지의 죽엽청(竹葉淸:술 이름)을 비울 때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흥분을 하게 되는 것이 낙양인의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낙양인들이 이토록 자부심을 갖는 사대명물에 대한 서두를 꺼내려면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낙양성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한 책방.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책방이 낙양의 장하문(長夏門)을 들어서 중심가 초입에 나타나게 된다. 이곳은 만통서방(萬通書房)이라는 현판이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작게 걸려 있는 책방이다. 그러나 이곳은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규모가 꽤나 크다는데 놀라게 된다. 줄지어 있는 서가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엄청난 경전과 고서 따위가 글줄깨나 읽는다는 문사들까지도 기가 질리게 할 정도였다.
<천명> <천명(天命)>은 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나 무겁다고 생각했다.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고 운명이라고 생각했으며 어쩌면 체념할 뻔도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었다. 어쩌면 운명은 돌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결과는 과정에 의해 생성된다. 인생의 책장을 넘길 때, 다음 페이지에 무엇이 적혀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인간은 결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몇 장 뒤에 '좌절'이란 단어가 적혀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단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피나는 노력과 헌 신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 속의 폭군이나 위정자들은 자신의 최후를 몰랐 다. 만일 그들이 몇 페이지 뒤에 적혀있는 자신의 운 명을 미리 엿보았다면, 그래도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했을까? <맛보기> * 서장 ① 천지간에는 무한한 신비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것을 꼽으라면 그대는 과연 무엇을 꼽겠는가?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광대무변의 천하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어디 한 두 가지일 것이며, 특히 그 파란만장함이야 인간의 두뇌로 어찌 일일이 다 헤아리겠는가? 여기 당금 무림천하(武林天下)에서도 마찬가지, 가히 아홉 겹이라는 구중천(九重天) 만큼이나 신비무궁한 것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써 삼대신비지처(三大神秘之處)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혈사해(血死海). 장춘도(長春島). 불야성(不夜城). 먼저 이들의 연원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당시로 말하자면 무림이라는 세계가 채 정립되기도 전이다. 곳곳에서 낭인무사(浪人武士)들이 일어나 제각기 최강자가 되기 위해 십팔만리 대륙천하를 피로 물들이던 때이다. 따라서 그 때의 일은 오늘날에 와서는 하나의 전설이 되어 강호무림사(江湖武林史)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도 그 결과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대륙제일인(大陸第一人)이 누구였는지는 가려지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황산(黃山) 시진봉(始眞峯)이었다던가? 무려 삼 만에 달하는 낭인무사들이 장장 삼십 주야(晝夜)에 걸쳐 산하를 피로 적시는 대혈전을 벌였다고 하는데, 사상 유래가 없던 그 혈전은 기세에 비해 기이하게도 흐지부지 막을 내리고 말았다.
<천인혈무록> 천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난세(亂世)를 타고 난 희대의 영웅인가, 아니면 난세를 만든 고금절후의 간웅(奸雄)인가? 여기 천하를 뒤흔들게 할 무림계의 피비린내나는 음모 의 막이 하나 준비되고 있다. 중원천하를 정복한 왕조(王朝)를 따르는 자들과, 그것 을 뒤집으려는 충의인들이 어우러져 음모와 지략, 투 혼을 불사를 수밖에 없는 혈한의 막. 이제 그 막을 열어본다. <맛보기> * 삼막(三幕)의 장(章) 천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난세(亂世)를 타고 난 희대의 영웅인가, 아니면 난세를 만든 고금절후의 간웅(奸雄)인가? 여기 천하를 뒤흔들게 할 무림계의 피비린내나는 음모의 막이 하나 준비되고 있다. 중원천하를 정복한 왕조(王朝)를 따르는 자들과, 그것을 뒤집으려는 충의인들이 어우러져 음모와 지략, 투혼을 불사를 수밖에 없는 혈한의 막. 이제 그 막을 열어본다. * 제1막(一幕) 무인봉작방(武人封爵榜)의 장(章) 철목이(鐵穆耳). 이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다. 대원제국(大元帝國)이 중원에 군림한 이래 제이대의 황제인 대칸(大汗)이 된 인물이다. 그는 달리 티무르칸이라고도 불린다. 지금 그는 완성된 제국의 보좌(寶座) 위에 앉아 있다. 이 제국의 영화와 군림천하의 절대지력은 그의 선황이자 조부인 세조 쿠빌라이칸이 이룩한 것이다. 철목이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쿠빌라이칸이 제국을 일으켰을 때, 그는 몽고의 광활한 고원에서 끊임없는 대초원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가 존경하는 쿠빌라이칸이 죽은 이후, 그는 대장군(大將軍) 바얀의 옹위로 대원제국의 제이대 황제의 위에 올랐다. 그런 그의 머릿 속에는 온통 쿠빌라이칸의 이념과 용맹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몽고의 초원 부족을 최초로 통일한 징기스칸 이래로, 가장 용맹하고 지략이 넘치는 칸은 바로 몽고를 더욱 장성케 하고 마침내 중원을 정복하여 대원을 일으킨 세조 쿠빌라이다. 그래서 더욱 철목이는 황제가 된 이후에도 쿠빌라이에 대한 존경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대장군 바얀을 불렀다. 그리고 대원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바얀에게 한 가지 엄청난 대계를 지시했다. 그 날 이후, 철목이가 세운 대계로 인해 엄청난 피바람이 중원 전역은 물론 무림천하를 온통 뒤흔들게 할 줄이야! <바얀은 들으라. 짐이 칙령(勅令)을 내리노라. 그대는 짐을 대신하여 전 중원의 무림인들에게 무인봉작방(武人封爵榜)의 칙령을 전달하라, 또한 그에 따른 시행을 완벽하게 준비하도록.>
<천화신전> 신(神)이여! 그대가 진정 존재한다면 하늘의 위대한 이름과 대지의 성스러운 뜻으로 한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여 주소서. 내 그대의 영묘로운 힘 앞에 입맞추리니, 그대의 밝은 지혜로 이 아기의 미래를 열어 주소서. 여인은 지금 산고(産苦)를 치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되기 위한 그 몸부림은 일면 처연하면서도 숭고한 것이었다. 희랑(姬娘). 이런 이름을 가진 그녀는 무한한 고통 속에서도 눈부신 아름다움을 발산해내고 있었다. 휘장이 드리워진 밀실이었다. 넓은 침상에서 그녀는 온몸이 흠뻑 땀에 젖어 있었다. 백옥 같은 얼굴도 예외는 아니었다. 희고 고른 치아는 악다물려져 있었으며 초승달같이 수려한 아미에서는 연신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묻어날듯 고운 양 뺨도 역시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러나 희랑의 입에서는 내도록 신음 한번 새어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고통을 삼키고 있었다. 최소한 그녀는 잊지 않고 있었다. 지금의 이 순간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왔는지. 그러므로 그녀는 방정맞은 신음으로 이 경이롭고도 신비한 예식을 망가뜨리는 행위는 감히 저지를 수가 없었다. 일명 조노파라 불리우는 주름살 투성이의 늙은 산파가 곁에 있었다. 쭈글쭈글한 손에 의해 깨끗한 수건이 희랑의 입에 물려졌다. 그것은 물론 치아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조노파의 시선은 다시 희랑의 하체에 머물렀다. 불안과 초조가 깃든 그녀의 노안이 희랑의 상태를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쯧! 평소 워낙 허약하셔서.......' 노파는 못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희랑의 미끈한 두 다리는 비단천으로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동산만한 배가 이따금씩 꿈틀거렸다. 그럴 때마다 좌우로 벌려진 두 다리는 흡사 물결이 파동치듯 마구 떨리곤 했다. "하아!" 희랑의 축축한 동공이 일순 크게 확산되었다. 그녀는 숨이 넘어갈 듯 가슴을 들먹이며 양손으로 침상 모서리를 움켜 쥐었다. "흐으으......." 문득 악물린 입술 사이로 격렬한 숨결이 새어나왔다. 마침내 모태 깊은 곳으로부터 이전과는 또다른 통증이 느껴진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날카로운 송곳이 내부를 휘젓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한껏 뒤로 젖혀진 고개를 따라 긴 흑발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소담스런 젖가슴의 능선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굵은 핏발이 일어나 막바지에 이른 그녀의 고통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조노파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마님, 힘을 내십시오. 거의 다 되었습니다."
<야수곡(野獸哭)> 무엇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여인이 있다. 당금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가문의 일점혈육으로 출생,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총명함과 인세(人世)의 여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천상의 아름다움, 그리고 창공과 대해를 모두 끌어안을 만한 자애로운 품성을 지녔다. 어디 그 뿐이랴? 만인의 진심 어린 축복을 받으며 당대최강의 인물과 부부지연까지 맺은 바 있다. 실로 여인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연을 누렸고 여인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한 셈이었다. 다만 옥의 티라고나 할까? 한 사내의 여인이 된 지 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자식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그 여인의 흠이 될 수는 없었다. 차라리 세인들은 당연하게 여겼다. 여느 범상한 아낙들처럼 열 달 동안 배를 불리고 산고의 진통을 거쳐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자연의 섭리에서 그 여인만은 예외라고 입을 모았다. 세인들은 그 여인을 일컬어 성모(聖母)라 불렀다. 오욕칠정에 휩싸여 경거망동을 일삼는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존귀한 여신(女神)으로 떠받들었다. 급기야 그녀의 명성은 이미 성웅(聖雄)으로 세인의 추앙을 받던 남편의 위명을 뛰어넘기에 이르렀다. 세인들의 뇌리에 그녀는 인세에 현존하는 천상의 유일한 인간으로 깊이 각인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작은 쪽문 외에는 단 하나의 창(窓)도 없는 밀실(密室). 여인은 밀실 안에 서있었다. 우르릉... 쾅! 쏴아아......! 밖에서는 폭우가 뇌성벽력을 동반하여 쏟아지고 있었으나 밀실 안은 무덤 속 같은 적막으로 뒤덮여 있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여인의 숨소리만이 가늘게 이어질 뿐이었다. "......!" 여인은 자신의 숨소리가 흐트러지는 것을 자각한 순간 수치감으로 낯을 살짝 붉혔다. 하지만 모질게 작심하고 이 밀실 안으로 들어섰기에 여인은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홍촉 불빛 하나로 어둠을 밝히고 있는 이 밀실에 여인이 발을 넣은지 벌써 한 시진이 넘었다. 그런데 밀실의 주인은 그 시간 내내 등을 보인 채 침묵했고 여인은 사내의 차가운 등만 바라봐야만 했다. 밀실 중앙에는 작은 탁자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다. 그 탁자를 마주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내는 여인이 들어선 줄 번연히 알면서도 침묵만을 고수했다. 여인은 사내의 외면과 냉대를 고스란히 감내했다. 어느 순간 여인이 작은 몸짓을 보였다.
<역천록>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일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곳이라면 선계(仙界)가 아닐까? 고뇌도 슬픔도 없는 별유천지(別有天地)의 무릉도원(武陵桃源). 선녀들이 오색 구름을 타고 내려와 요지(瑤池)에서 목욕을 하고, 신 선들이 낙락장송(落落長松) 아래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한가로 이 바둑을 두는 곳....... 하지만 그런 곳이 정말 존재할까? 여기에 이르면 사람들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런 곳은 상상 속에서 나 존재할 뿐, 현실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일까? 그것은 단연 한 곳을 꼽을 것이다. 바로 황제(皇帝)가 살고 있는 자금 성(紫禁城)일 것이라고! 외양으로는 천만백성 위에 군림(君臨)하는 황제의 위엄을 나타내듯 웅장한 규모를 이루며, 안으로는 호화와 사치의 극을 이루는 고루거 각(高樓巨閣)들이 절묘한 배치를 이루고 있는 곳, 천하의 중심지인 자금성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예술품이 아닐까? 하나 그것은 통념(通念)일 뿐이다.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곳이 또 하나 있다. 그곳은 바로 한산장원(寒山壯園)이었다. 한산장원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누 가 살고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한산(寒山)에 위치하 고 있기에 한산장원이라 불리울 뿐이었다. 한산은 하북(河北) 항산(恒山)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나지막한 산 으로 웅장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항산과는 달리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산, 아니 구릉에 가까운 곳이었다. 한산 일대를 청원(淸苑)이라 불렀다. 청원은 반달형의 구릉지대에 형성되어 있는 작은 마을로 저녁이면 밥짓는 연기가 여기저기서 오르는 전형적인 촌락이었다. 사실 이곳은 산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한 언덕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곳에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진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원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산장원의 규모는 무척 컸다. 장원의 넓이는 한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담장은 허름한 듯하면서도 단단하게 석축(石築)으로 쌓아져 있었는데 한산을 따라 끝없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으며 담장을 둘러싸고 죽 림(竹林)이 우거져 있어 무척이나 탈속한 느낌을 주었다. 장원안의 전각들을 살펴보자.
<풍진만리> 무협(武俠)의 세계는 환상(幻想)의 세계다. 환상의 세계를 주유(周遊)하는 일은 늘 즐겁다. 특히 무협의 환상은 우리에게 친숙한 동양적(東洋的) 환상이기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영웅(英雄), 효웅(梟雄), 기인(奇人), 괴인(怪人), 절 세미녀(絶世美女)들이 어우러져 대륙(大陸) 십팔만리 를 비좁다고 벌이는 대풍운(大風雲)의 세계는 온통 신 비(神秘)로 감싸여 있다. 무공(武功)은 본래 육체무학에서 비롯되었으나 육체의 한계를 초월한 내공(內功)으로 발전되면서 갖가지 개 성적인 무학으로 꽃피우게 된다. 무협소설은 이러한 무학을 익힌 무림인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인간의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과 파 란만장한 인생역정(人生歷程)을 그들만의 세계인 강호 무림계를 통해 보여주는 환상소설의 하나인 것이다. 사랑도 있고, 원한(怨恨)도 있고, 야망(野望)이 있는 세계 - 강호(江湖)의 세계에 심취하다 보면 어느덧 우 울한 현실을 탈피하여 시공(時空)을 초월한 해방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본저(本著)는 코믹무협의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 다. 주인공 위지강은 전형적인 문사(文士) 출신으로 오로 지 우국충정(憂國忠情)과 인간애로 똘똘 뭉친 우직한 사나이다. 그의 앞에는 온갖 교활무비한 인간군상들이 피비린내 를 풍기며 나타난다. 거마효웅(巨魔梟雄)들, 요사(妖 邪)한 미녀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강호를 혈 세(血洗)하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울분을 토한다.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는 그에게서 우리는 돈키호테 를 연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일독(一讀)을 권한다.
<만무총록> 불세의 기인이 남긴 한 권의 무경(武經)! 만무총록(萬武總錄)을 익힌 자는 천하무예를 통달할 수 있다! 무림은 벌집 쑤신 듯 뒤집히는데……. 단지 무경을 익혔다는 사실만으로 무림공적(武林公敵)으로 몰려 남녀노유(男女老幼)를 불문하고 참살을 당하는 피의 회오리가 인다. 단지 은자 열 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한 권의 무경으로 인해 천하는 난세(亂世)에 빠지고……. 과연 정도(正道)는 무엇이고 사도(邪道)는 무엇인가? 무엇이 옮고 그른지 알 수 없는 무림의 진실을 찾아 방랑하는 한 사나이의 운명(運命)은 파란만장하기만 한데……. <맛보기> 천지가 온통 적막에 잠겼다. 어린 새들도 어미의 품에 잠들어 있는 시각, 황하(黃河) 를 면한 곳에 한 채의 장원(莊園)이 자리하고 있다. 장원은 거대한 규모였다. 그 누구의 침입도 불허할 듯 담장은 그 높이가 삼장(三 丈)이 넘었으며, 담장 너머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고루거각 (高樓巨閣)들이 즐비하게 치솟아 있었다. <사해문(四海門).> 장원의 대문에는 용사비등(龍蛇飛騰)한 필치로 새겨진 금 빛 편액이 걸려 있었다. 하나 뜻밖에도 대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 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큰 장원에 수비무사 한 명 없다니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문득 이 같은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숲이 꿈틀거렸다. 아니, 숲이 아니라 숲의 어둠과 완전히 동화되어 있는 암 영(暗影)들이었다. 암영들은 소리 없이 장원을 향해 다가왔다. 첫 번째 암영에 이어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급기야는 수백 명의 검은 그림자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하나같이 유령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로 미루어 그들 이 한결같이 대단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하지만 장원은 여전히 침묵에 잠긴 채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암영들은 마치 한 덩이 묵운(墨雲)처럼 장원의 담장을 뛰 어 넘었다. 슈아아악! 암영이 뛰어든 지 얼마 안되어 갑자기 날카로운 음향과 함께 밤하늘에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이내 그 불꽃은 호선을 그리며 하늘높이 치솟은 후 직강 하했다. 장원의 지붕에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불꽃이 확산되어 순 식간에 건물을 불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만천과해> 운명(運命)을 거부하지 마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 역천(逆天)의 꿈을 꾸는 자 유황지옥에 떨어지리라! 무림의 하늘이라는 무황가(武皇家)의 절대권위를 신봉하는 자만이 살아남으리라! - 충성을 맹세했고 역심(逆心)을 품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왜? 왜? 왜? - 적을 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의 역겨운 행위를 다시는 용납할 수 없다. 오직 땅으로만 향했던 검이 하늘을 향해 뽑혔을 때……. 사자후(獅子吼)는 기만(欺瞞)의 세상을 흔들어 놓으리라! <작가의 말> 노예제도(奴隸制度)는 인류의 발을 묶는 멍에였다. 동서를 막론 하고 봉건체제하에서의 노예제도는 특정 계급의 피와 눈물을 자아 내게 만들었다. 오늘날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공식적으로는 한 군데 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연 없을까? 새로운 지배계급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면서 자본계급이 새로운 귀족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가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상이 다. 그렇다면 가난한 자는 또 다른 노예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 는 것이 아닐까? 천민계급이 신분의 수직 상승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 다. 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한다. 반면 귀족계급은 그들의 반란을 틀어막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할 것이다. 이런 싸움은 인류가 생성된 이래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고 필자 는 생각한다. 무림계(武林界)에 이런 이분법(二分法)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천하무림을 태평성대로 이끌었던 무황(武皇)의 후예들과 그 밑에 서 충성을 맹세했던 가신(家臣)들의 이야기....... 해와 달이 바뀌듯 언젠가는 위치가 바뀌어야 할 수레바퀴 같은 인생유전 속에서 자신의 운명의 굴레를 벗어 던지기 위한 몸부림과 수호하기 위한 발악. 노예의 운명을 타고 태어나는 자는 없다. 제도와 규정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한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숙명적 단어다. 그것을 거부하는 자는 천체의 운행을 부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인류가 진보하는 존재가 된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오정(子午亭)에서 검궁인 배상
<기협만리> 석양(夕陽)이 지는 초저녁 무렵이었다. 어느 이름 모를 계곡의 너른 공터에는 대략 오백여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승려와 도사를 위시하여 각양각색의 인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나 모든 사람이 병기를 휴대했고 체격과 외모에서 강인한 분위기를 풍겨 무림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들 모두는 땅에 무릎을 꿇은 채 어느 한 곳을 보며 통곡하고 있었다. "크흐흑! 맹주님! 무림을 떠나시면 안 됩니다." "맹주님께서 떠나시면 중원무림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처지가 됩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맨 앞줄에서 삼 장쯤 떨어져 있는 커다란 고송이었다. 고송 아래에 한 인영이 등을 돌린 채 역광을 받으며 우뚝 서 있었다. 인영의 체구는 별로 크지 않았다. 십대 초반의 어린 소년 정도의 체격이었다. 하나 우뚝 선 채 고개를 들어 어두워지는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뒷모습은 실로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그 자세로 가만히 서서 군웅들의 통곡을 듣고 있었다. "맹주님! 재고하십시오. 맹주님께서 떠나시면 중원무림은 사패천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백발노승의 외침이었다. 노승은 바로 소림사(少林寺)의 방장인 청허대사(靑虛大師)였다. 청허대사는 세수 아흔에 달했고 무림의 원로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목놓아 외치고 있었다. "사패천의 힘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비록 맹주님께서 그들의 영수들을 고혼(孤魂)으로 만들었지만 그들은 계속하여 혈겁을 도모해 올 것입니다." 사패천(四覇天)이란 중원 변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무림세력이었다. 동영(東瀛)의 은밀종(隱密宗). 서장(西藏)의 반야밀궁(般若密宮). 남만(南蠻)의 축융탑(軸戎塔). 막북(漠北)의 광혼풍(光魂風). 바로 이 네 세력이 작년부터 중원무림을 공략해왔던 것이다. 그로 인해 중원의 무림계는 끊임없는 혈풍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청허대사 바로 우측에 있는 오순 가량의 초로인이 머리를 땅에 쿵! 들이받으며 외쳤다. "사패천은 이미 새로 영수가 추대되어 전열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더욱 광폭하게 나올 것입니다." 그는 바로 정파무림의 최강 세력인 건륭문(乾隆門)의 문주 단후상연(端候祥然)이었다. 단후상연의 말을 그의 바로 우측에 있는 초로인이 받았다. "그렇습니다. 지금 맹주님께서 무림을 떠나시는 것은 사패천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광무록> 거머쥐려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것을 잃게 되지만, 아무 것도 가지려 하지 않는 자는 저절로 얻게 된다. 이는 집착(執着)에 대한 정의다.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된 자는 욕망을 실현하기는커녕 가진 것마저 잃게 된다는 뜻이다. 세상에 대한 욕망이 어디 하나둘이겠는가? 권력, 부, 명예, 환락...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유혹들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신을 혼미케 한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에 포위되어 살고 있다. 그러니 어찌 어지럽지 아니한가! 그렇다고 수도승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21세기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눈부시게 돌아가는 문명(文明)의 변화에 눈만 지그시 감고 있으면 성불(成佛)한단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뭐든 '가지고 싶다' 는 것이 평범한 사람의 본심일 것이다. 화천세(華天世)는 망나니다. 불한당이며 욕쟁이며 색골(色骨)에 미친놈에 가까운 망종(亡種)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남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그 무엇도 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예(名譽)도, 권력도, 보물도 그는 헌신짝 보듯 한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 한 가지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부럽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 하고 싶은 일들을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화천세가 부럽다. 저 자는 그의 매력에 흠씬 빠졌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독자제현도 그를 좋아하리라 믿는다. 자오정에서 검궁인 배상첨무맹 와룡숙 제3기 숙생 모집! 피끓는 소년무사라면 누구나 생명을 내던지고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 곳. 자신을 가르친 노처녀 사부에게 당당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어린 용, 누가 그를 소악귀라고 부르는가. 풍운 만장의 무림천하를 종횡무진하는 미친 용의 일대기.
<구인회> 물고 물리는 생존(生存)의 처절한 현장........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9인의 아이들은 잔혹한 무림의 역사 속에 던져졌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살아있는 병기(兵器)로써의 역할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했다. 고해성(苦海城)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었나? 배신(背信)의 더러운 역사는 이것으로 끝나야 한다! 다시는 역겨운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맛보기> 누군가 물었다. "검호(劍狐)를 아시오?" "......." "음시음(吟詩音)을 아시오?" 두 번째 질문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로 그가 음시음이란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음양동자(陰陽童子)는? 아황(亞黃)은? 치독(痴毒)은? 탕미인(蕩美人)은? 그들 가운데 한 명도 생각나지 않 는단 말이오?" "......."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默默不答)이다. "그럼 만권서각(萬卷書閣)은? 무무(無無)는? 정말 아 무도 모른단 말이오?" 질문자의 음성에는 탄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럼 용대형(龍大兄)도 누군지 모르겠구려?" 역시 묵묵부답. "하면...... 구인회(九人會)는 아시오?" 처음으로 그가 입술을 열었다. 이번에는 무척이나 짜 증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모르오! 왜 자꾸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오?" 마치 오랜 시간에 걸쳐 고문이라도 당한 듯 그의 얼굴 은 보기 싫게 일그러져 있었다. 필히 알고 있어야 할 이름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이 이야기는 여기 서부터 시작된다.
<대륙만리> 풍진만리에 이은 두 번째 만리 시리즈!!! 썩어빠진 문사들은 군주의 눈과 귀를 막고 세상을 난세에 빠뜨린다. 마찬가지로 강호의 불한당들은 칼부림으로 밤낮을 지새며 세상을 혈란으로 몰아넣지 않던가! 과연 무엇이 정이고 무엇이 사인가? 대제국을 건설하겠다는 미명하에 조카를 내몰았던 황제의 야심과, 헛된 명예욕에 젖어 의인들을 사마외도로 몰아부쳤던 강호의 명문정파들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반기를 든 사내가 있다. 붓을 꺾고 검을 움켜쥔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선도 악도 아니다. 다만 선렬한 심장의 뜨거운 피가 시키는 그대로 문무의 양극 속에서 진정한 의인의 길을 걷겠다는 것 뿐이다. <맛보기> 제 1 장 [1] 고송가지에 걸린 편월(片月)이 여린 월광을 대지 위로 흩뿌리고 있었다. 창을 통해 은은한 달빛이 스며드는 방. 서탁을 사이에 두고 유호인(柳浩仁)은 부친과 마주하고 있었다. 서탁 위에 놓인 용촉의 불빛은 사위에서 밀려드는 어둠을 태우며 그들의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 고 있었다. 그로 인해 유호인의 희고 섬세한 얼굴은 신비롭게까지 보였다. 검고 진한 검미는 정갈한 이목구비에 어울려 조화를 보였고, 유달리 긴 속눈썹은 여인의 것 같 은 착각마저 주었다. 단아한 이목구비 위로 교차되는 명암은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호수에 황혼이 깔리는 것 같았 다. 특히 진한 눈썹 아래 한 쌍의 눈은 흑백의 대비가 너무나도 뚜렷했다. 백설(白雪)로 빚은 듯 새 하얀 흰자위는 고결한 성품을 느끼게 했고 어둠의 정기가 모인 듯한 까만 동자는 지혜의 빛으로 충만했다. 한 마디로 그의 눈빛은 영원히 변색될 것 같지 않은 맑고 순수한 빛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부친으로부터 건네 받은 서찰 역시 그의 손과 함께 떨리고 있었다. <유형 친전(親傳). 이런 글을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미처 몰랐었소. 유현질이 한사코 과거(科擧)에 응시하지 않겠다 니 실망이 너무 크오. 황제가 누가 되느냐는 어차피 황족(皇族)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겠소? 무릇 선비라면 악마가 황제라 해도 그 분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충언(忠言)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오.> "......." 유호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 우려했던 내용이 다음에 있을까봐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위선과 궤변이라며 혐오했던 내용을 읽었기 때문일까?
<철검무정> 도전(挑戰). 삶에 있어 정상을 향한 도전은 평생동안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한 번 꺾인 채 능멸과 좌절의 어두운 골짜기에 추락한 사람들도 있다. 패배를 결코 잊지 않는 자, 끝까지 좌절하지 않는 자, 부릅뜬 눈에 핏발을 곤두세운 채 내일을 다짐하는 자, 부러진 반검(半劍)을 갈고 또 갈며 재기(再起)를 다짐 하는 자만이 정상에 우뚝 설 수 있다. 오직 하나를 위하여. 단지 한 가지만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사람들을 보고 혹자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고 많은 노정(路程) 중 에 하필이면 광풍(狂風)이 휘몰아치는 험로를 택한 어 리석음에 손가락질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길을 택했느냐고 물어 본다면? 이 길 저 길 오락가락하며 최종적으로 당신이 택한 그 길은 과연 얼마나 위대한 길이었나? 저자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을 좋아한다. 어리석은 자가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산을 어찌 한 개인의 힘으로 옮기겠는가? 하지만 10년 을 하루같이 망태기에 흙을 퍼담아 나르는 동안 작은 언덕이 만들어지고, 동산이 만들어지고, 언젠가는 산 하나가 우뚝 서는. 후대에 기적(奇蹟)이라 불릴 일을 해낸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리 시대에 과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철검무정(鐵劍無情)은 도전하는 자들의 이야기다. 끝없이 무너지고, 좌절하고, 추락하면서도 결코 포기 하지 않는 사람들의 집념(執念)을 그리려 했다. 반검무적(半劍無敵)! 그의 전도를 빈다. (작가 서문 全文) <맛보기> 그는 철저했다. 그는 자신에게 더할 수 없는 완벽을 요구했다. 그것만 이 그가 철저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완벽을 유지하기 위해 늘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이 있다. 첫째가 냉정, 둘째도 냉정, 셋째도 냉정이었다. 하기에 그는 아직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사건도 없었다. 그것은 그가 모든 일을 객관적이며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음!" 여인의 비음이 만자창(卍字窓) 사이로 흘러 나왔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의 달콤한 비음이었다. 그의 손이 분홍빛 나삼을 들추자 뽀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손이 움직였다.
<건곤만리> ▣서장(序章) 무림사가 시작된 이래 어느 시대에도 최강자는 있었다. 그러나 감히 범접할 상대조차 없었던 미증유의 최고수(最高手)는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이백여 년 전의 전설적인 기인 건곤자(乾坤子). 그는 무(武)의 신(神)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문파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구름처럼 표표히 흘러 다니며 수많은 고수들을 단 일초에 제압하는 신위를 보였다. 정사양도를 대표하는 절정의 고수들도 그 앞에선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어느 날 그는 처음 무림에 등장했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건곤자가 자신의 절학을 담은 건곤검결(乾坤劍訣)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은 중원천지를 샅샅이 뒤졌다. 심산유곡(深山幽谷)은 물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奧地)에서 새외(塞外)에 이르기까지... 건곤검결을 찾으려는 발길로 뒤덮이고 말았다. 그러나 건곤검결은 바다에 빠진 돌멩이인 양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백 오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단우비(段宇秘). 홀연히 무림에 출현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기라성같은 고수를 굴복시켜 자신의 수하로 만들며 단숨에 천룡문(天龍門)이란 문파를 창건했다. 천룡문은 창설된 지 불과 수년 만에 중원대륙 십팔만리에 걸쳐 당대최강의 문파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단우비의 애검 낭흔(狼痕)은 무림 역사상 최고의 병기로 인정받았을 뿐더러, 천룡문은 유사이래 최강의 문파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하나 정작 단우비가 무림역사상 최강고수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것은 바로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건곤자의 전설 때문이었다. 기실 단우비는 당대의 최강자를 넘어 역사상 최고가 되고 싶은 자였다. 그는 건곤자의 후인을 찾아내 누가 최강자인지를 인증하려고 평생 동안 천룡문의 총력을 동원해 천하를 뒤졌다. 하나 그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결국 그는 범인(凡人)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한(恨)을 간직한 채 세수 구십을 넘긴 후 유명을 달리했다. 천룡문주의 지위는 그의 독자인 단우강에게 넘어갔다. 단우강(段宇强). 그는 나이 삼십에 부자지간의 실전연습에서 이미 부친을 제압하여 청출어람(靑出於藍)의 효성을 발휘한 바 있었다. 당시 이미 그의 무공은 부친의 수준을 넘어섰던 것이다. 단우강이 천룡문주가 된 지 십여 년 후에 무림에 유례없는 겁난이 발생했다. 변방에서 발흥한 일월천극교(日月天極敎)란 세력이 중원에 무자비한 혈풍을 몰고 온 것이다.
<등천제일룡> 천외천(天外天)의 전설(傳說) 전설(傳說). 천외천(天外天)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전설이었다. 무림이 열린 이래 흑백양도 간의 시시비비는 끊임없이 윤회하는 피의 수레바퀴였으니 하루도 피바람 잘 날이 없이 이어 내려져 왔다. 유구한 세월 속에서 천외천의 전설이 탄생했다. 천마종(天魔宗). 등천제일룡(騰天第一龍). 바로 그 두 존재가 그것이었다. 놀랍게도 두 존재는 한 번도 무림에 나타난 적이 없었으니... 실재한 인물이 아니라 언젠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豫言) 속에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천마종(天魔宗). 마도(魔道)에 속한 사람이라면 한시라도 그 이름을 잊은 적이 없다. 천마종이란 바로 마도의 절대자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언제고 천마종이 나타나리라! 그 날은 천하무림이 마도(魔道)의 지배를 받게 되리라! 그러한 전설이 마도인들 사이에 끊임없이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본래 마종(魔宗)은 십이류(十二流)로 분류되었다. 이른바 십이마류로 불리는 마도십이류란....... 마혼류(魔魂流), 마천류(魔天流), 마녀류(魔女流), 마불류(魔佛流), 마도류(魔道流), 마양류(魔陽流), 마음류(魔陰流), 마사류(魔邪流), 마검류(魔劍流), 마수류(魔水流), 마도류(魔刀流), 마장류(魔掌流)를 뜻하며 마종은 각각 십이마류의 수장(首長)을 말하는 것이었다. 십이마종(十二魔宗)은 한 시대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나 마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종이란 호칭을 받으려면 반드시 백도무림의 공적(公敵)이 되어야 하며 천 명 이상을 죽여야만 했다. 즉 마종(魔宗)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천마종의 존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천마종은 십이마류의 연수합격을 십초 이내에 격파할 수 있으며 십이마류를 종복처럼 부릴 수 있다. 천마종이 출현하면 백도무림은 종말을 맞이하고 마도천하만이 영세군림(永世君臨)하리라! 언제, 누구의 입에서 이런 전설이 전해졌는지 몰라도 마도인이라면 누구나 천마종의 전설을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천마종의 출현을 학수고대해 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또 하나의 전설이 강호에 전해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마도인들이 바라는 바와 정반대되는 전설이었다. 등천제일룡(騰天第一龍). 그의 존재 역시 한 번도 실재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도인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등천제일룡이 나타나 도탄에 빠져있는 난세무림을 평정하고 백도천하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이다.
<독행록> <맛보기> 제 1 장 심야의 불청객(不請客) 무림(武林).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패권(覇權)을 다투는 곳. 역사의 부침이 계속 되듯, 장강(長江)이 도도하게 흐르듯, 중원 십팔만리- 일명 강호(江湖)라 불리는 무림에는 수많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출현하고 영웅호걸이 등장하여 절세미녀들과 사랑을 나누고 일세를 풍미한다. 그러나 그들도 때가 되면 아득한 홍진(紅塵) 속으로 사라지니....... 이천 년 무림사에서 그들의 이름은 다만 전설처럼 남아서 전해질 뿐이다. 강호에는 영웅호걸이 있고 이들을 사랑한 여인들이 있다. 원(怨)이 있고 한(恨)이 있다. 또한 천군만마를 질타하는 영웅들의 패기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의(義)가 있으니 의를 행하는 이들을 일컬어 협객(俠客)이라 부른다. 때는 대명(大明) 신종(神宗) 이십 일 년 봄. 만력제(萬曆帝) 신종이 대명의 황제로 군림한 이래 명조는 나날이 쇠퇴해 가고 있었다. 황도(皇都) 북경에서 동쪽의 대해(大海)를 향해 도도히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있으니 이름하여 소계림(小桂林), 또는 거마하(拒馬河)로 부르는 백하(白河)였다.그 백하의 강둑. 휘리리리링! 한 청년이 바람에 옷자락을 표표히 날리며 서 있다. 용모가 수려한 청년이었다. 이마는 넓고 반듯하고 짙은 눈썹은 칼날처럼 곧게 뻗어 있었다. 오뚝한 콧날과 뚜렷한 인중, 굳게 다문 입술… 얼굴은 관옥같고 살결은 백옥을 연상케 하는 미공자였다. 그는 지금 대해처럼 도도히 흐르는 백하 건너로 바라다 보이는 북경의 자금성(紫禁城)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북경은 과거 요(遼)와 금(金)에서도 도읍으로 삼은 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당금의 인구는 이미 백만이 넘어 천하의 요회(要會)였다. 사방 팔십 리에 이르는 성 안은 고루거각과 호화로운 장원이 즐비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부(富)가 넘치고 있었다. 게다가 이국적인 문화와 풍속이 유행할 정도로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교역도 활발했다. "......." 지금 그가 바라보고 있는 자금성은 석양빛을 받아 장엄한 낙조가 지고 있었다. 청년은 석상인 양 움직이지 않고 무수한 깃발이 나부끼는 웅장한 성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쏴아아아....... 강바람이 무성한 갈대 숲을 흔들고 불어와 청년의 유삼(儒衫) 자락을 표표히 날렸다. 그러나 청년은 실의에 잠긴 눈빛으로 성벽 처처(處處)에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강 건너 자금성을 언제까지나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만겁무황전> 무협소설은 고전적인 정서에 바탕을 둔 픽션이다. 『만겁무황전』은 은(恩)과 원(怨)이라는 전형적인 주제를 다루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 은원이란 단어는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나 고래로 인간만큼 은원에 집착한 동물은 없을 것이다. 대장부는 은원이 분명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은원을 분명히 할 수 없는 경우가 때로는 존재할 것이다. 거기에서 인간은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서장(西藏)의 포달랍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꿈많은 소년의 일대기는 복수할 수 없는 대상을 상대로 복수검을 갈아야 하는데서 출발하게 된다. 인간의 탐욕(貪慾)이 소년의 꿈을 짓밟고 피눈물을 자아내게 했지만 그의 사랑은 결국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 정도 사도 등을 돌린 현실 앞에서 한 소년영웅이 외롭게 걸어가는 길은 오늘날 현대인의 불분명한 정의 감과 모호한 자기주관 앞에 하나의 좌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소림사>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천축으로부터 건너와 선종(禪宗)을 전파한 곳이 바로 소림사(少林寺)다. 그 후 소림사는 중원 무학(武學)의 태산북두로 군림하며 무수한 무술(武術)을 파생시켰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입담 좋은 사람들이 꾸며낸 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歷史)이기도 하다. 시대가 바뀌면서도 소림사에 대한 이야기는 무수히 많은 일화와 신화를 파생시켜 왔다. 오늘날 소림사는 아직도 중국에 건재하고 있으며 소림의 불승(佛僧)들은 체력 단련을 위해 비전(秘傳)으로 전해지는 무술을 수련하고 있다. 『대소림사』는 소림사가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무협소설이라면 빠짐없이 나오는 소림사의 무학은 너무 자주 등장함으로써 적지 않게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소림사를 가볍게 다룸으로써 여타의 무협소설이 정통성(正統性)을 잃어온 것도 하나의 누(累)가 되어 왔다. 본저에서는 소림사를 무학의 원류(源流)로 다루게 된다. 그러나 단순한 무예소설이라기보다는 대하소설의 표준이 되고자 했다. 본저의 테마는 두 사나이의 우정(友情)이다. 광대한 중원 무림계의 제패를 놓고 정(正)과 사(邪)의 양극을 걷는 절세기재들의 뜨거운 우정이 전편에 펼쳐지게 된다. <맛보기> * 풍운(風雲)의 서막(序幕) 두 소년(少年)이 있었다. 난세(亂世)의 풍진(風塵)을 안고 동시대에 태어난 인중용봉(人中龍鳳)의 두 절세기재. 그들은 만났다. 한 그루 천년고목(千年古木) 아래서. 어느 눈 내리던 날, 그들은 운명처럼 만났다. 천지가 온통 은백색으로 물들던 날 운명의 신이 점지한 양 그들은 만났다. 이것이 바로 무림(武林)의 하늘과 땅 사이에서 시작된 대풍운(大風雲)의 서막(序幕)이었다. 하란산(賀蘭山)의 한 아름다운 언덕 위. 그곳에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거대한 천년고목이 서 있었다. 하늘과 땅이 시작될 때부터 있었을지도 모를 고목은 세상을 내려다보며 의연하게 거대한 그늘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천년고목에 무병장수(無病長壽)와 행운(幸運)을 빌었다. 그 고목나무의 높이는 근 십 장(十丈) 여나 되었으며 그 둘레만 해도 장정 열 명이 팔을 두를 만큼 장대(長大)했으므로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 숭엄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고목나무의 한 귀퉁이에 언제 새겼는지 몰라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이는 희미한 글씨가 보였다. <하후성(夏侯星). 독고황(獨孤皇). 다시 만날 그날까지 변치 않을 우정(友情)을 위하여.>
<동사군도> 죽음의 섬 동사군도(東沙群島)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사건!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꿈꾸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천하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내려진 황실과 무림맹주의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하루아침에 하늘을 우러르고 살 수 없는 대역죄인이 된 자들과 그들이 치뤄야만 했던 지옥의 10년은 과연 누가 보상하는가? 가혹한 매질과 혹독한 억압,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의 악순환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하는 수인번호(囚人番號) 106,104, 440, 69호……. 과연 그들의 앞날은 어찌될 것인가? 동사군도를 지상낙원으로 만들려는 선남선녀들의 아름답고 눈물겨운 무림유랑기(武林流浪記)……. <맛보기> * 제1장 죽음의 땅 동사군도(東沙群島) ① 중원의 최남단인 광동성(廣東省) 조양(潮陽)에서 범선을 타고 꼬박 칠주야를 가면 망망대해에 표표히 떠 있는 섬들을 만날 수 있다. ― 동사군도(東沙群島). 크고 작은 다섯 개의 섬들이 고도(孤島)의 외로움을 의지하듯 모여 있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섬을 아는 자는 거의 없다. 험난한 풍랑과 싸우면서 굳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중앙의 섬이 가장 컸다. 섬 전체가 온통 짙은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다른 네 개의 작은 섬이 호위를 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아 청도(靑島)라 불리는 중앙의 섬에는 작은 포구(浦口)가 있으나, 그곳에 정박되어 있는 것은 한 척의 나룻배가 전부였다. 포구에서 섬 중앙으로 들어가면 몇 채의 건물이 나온다. 건물 뒤쪽은 삼면이 병풍처럼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산봉우리는 의외로 험준했다. 산기슭에는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으나 위로 오를수록 기암괴석(奇岩怪石)이 난립했다. 해안에는 백사장이 따가운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이따금 밀려오는 파도가 하얀 물거품을 뱉어내는 광경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청도 주변의 작은 섬들은 암도(岩島), 송도(松島), 초도(草島), 그리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는 고도(孤島)란 이름이 붙어있다. 이렇듯 아름다운 동사군도. 때묻지 않은 원시적인 풍경은 마치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연상케 했으나 실제로는 정반대였으니....... 사사도(死死島)! 동사군도의 다른 이름은 이처럼 죽음을 상징하는 사사도였던 것이다. ② 우기(雨期)가 끝났는지 천중(天中)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이 뜨거운 햇살을 동사군도에 쏟아붓고 있다. 연일 광란하던 파도도 지친 듯 정적을 되찾았다.
<등천비마록> 활 한번 잡아보지 못한 장군부의 소년 귀공자 백리장천은 어느날 명문공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활쏘기 시합을 벌이게 된다. 호승심으로 전설의 태리공을 잡은 그는 관중의 묘기를 보이면서 파란만장한 운명의 장을 연다. - 그럼 내가 장군의 아들이 아니었단 말이오? -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난... 무엇이었단 말이오? 새롭게 밝혀진 신세로 반전에 반전은 거듭되고! 마침내 무인의 길로 접어든 그의 앞에는 피의 선풍이 소용돌이친다. 초인의 길만이 그가 걸어야 할 길인가? 절색의 미녀들이 뿌리는 눈물과 교태 속에서 복수의 행진은 끝이 없는데......
<영웅호가행> 성도 이름도 없이 버려진 소년...... 동정심에 던진 동전 한 문으로 인해 일문이란 이름을 얻게 된 그의 앞에는 대황하보다 더 탁하고 거친 강호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넓고 어지럽구나. 천만 년을 변함없이 흐른 황하처럼 살고 싶어라. 복수도, 한도 대업도 부질없도다. 영웅호가행을 부르며 떠나리라. <맛보기> * 1장 강상혈겁(江上血劫) 대륙의 맥동인 양자강(楊子江=일명 通天河. 중국제일의 강). 그 강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선박들을 보면 언제나 짐과 사람을 가득 싣고 있다. 특히 포구(浦口)와 하관(下關)을 왕복하는 범선은 언제나 만원이다. 금릉이 황도의 기능을 잃고 북경성(北京城)으로 천도한지도 어언 일년여가 지났다. 그러나 비록 지난날의 영화는 잃었으되 산물이 풍부한 강남제일 대도(大都)로써의 면모는 아직도 여실히 남아 있었다. 포구에서 범선을 타면 하관에 닿고 거기서부터는 곧장 금릉성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도도히 흘러내리는 물살을 가로지르며 한 척의 범선이 강의 중심을 지나고 있었다. 배의 이물 쪽에서 아이의 천진하고 맑은 음성이 울린다. 그것은 파도소리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똑똑히 들렸다. "왕사부(王師父)님! 모두들 이 선물을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하하하... 설마 이렇게 많이 사 가지고 갈 줄은 짐작하지 못했을 걸요?" 한 소년이 이물에 매달린 채 잔뜩 들떠 있었다. 얼굴이 발그레한 미소년이었는데 나이는 대략 십사세쯤 되어 보였다. 눈이 크고 둥그스름하여 어찌 보면 계집아이를 연상케 할 정도로 예쁘장했으나 먹으로 그린 듯한 눈썹과 오똑한 콧날에서는 제법 기백도 엿보였다. 서동(書童)의 복장을 하고 있는 소년의 옆에는 역시 문사차림의 중년인이 출렁거리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쯤 감은 듯한 눈에 입술은 한 일자로 다물려 있었는데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갸름한 눈꼬리에는 세상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한 냉소적인 기운이 드리워져 있어 마치 오만한 낙방수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소년은 여전히 희희낙락이었다. "하하하... 지난번에 장병(張兵)은 붓이 낡아 글씨가 그 모양이었다고 투덜댔고, 희강(希江)은 또 뭐랬는지 아세요? 왕희지 서체를 연습하기에는 책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하하... 그 놈들은 좀체로 자신의 실력이 제게 뒤진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변명할 말이 없을 거예요. 우리가 이번에 구입해 가는 물품들을 보면......." 끊임없는 종알거림에 반해 문사는 계속하여 파도를 내려다볼 뿐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왕도> 무림에는 세 개의 하늘이 있어 각기 삼도를 이루리라. 마도, 패도, 왕도가 그것이다. 언젠가 삼도천이 동시대에 나타나리라! 그때가 되면 천하는 피에 젖고 물미은 대혈륜에 짓밟힐 것이다! 왕도란 무엇인가? 자신의 손금에 왕자(王字)를 칼로 새겼던 철혈의 무인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져야만 했던 무림의 비정진리... 다시 그의 뒤를 잇는 한 소년의 쓰라린 역정... 왕도를 움켜쥐어라! <맛보기> * 서막(序幕)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욕망(慾望)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욕망들.... 만일 그 욕망이 없다면 인간의 발전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욕망이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은가? 아니다. 욕망도 욕망 나름이다. 게다가 그칠 줄 모르고 만족할 줄 모르는 끝없는 탐욕으로 인해 어떤 인간들은 스스로를 망치는 줄도 모르고 지옥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림인(武林人)들은 어떠한가? 일반인들과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어떤 욕망을 품고 있을까? 아마도... 수많은 무림인들이 공통으로 품고 있는 욕망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뉘라서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들은 검날 위에 목숨을 걸고 사는 자들이다. 피비린내 나는 삶 속에서 때로는 명예를 위해, 또는 의리를 위해, 또는 복수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는 그들에게 공통적인 욕망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영세제일(永世第一)의 고수(高手)가 되리라......! 어쩌면 바로 그 찬란한 명예를 위해 수천 년의 무림혈사(武林血史)가 쓰여졌는지도 모르리라. 그렇다면 과연 역대무림에서 몇 명이나 천하제일인의 보좌에 올랐을까? 전 무림인들이 그토록 숙원하던 무적인의 자리에 오른 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무림왕(武林王) 백리후(百里侯). 감히 누가 함부로 그의 이름을 입 밖에 올리겠는가? 백리후는 고금을 통털어 가장 강한 무인으로 인구에 회자(膾炙)되어 온다. 그는 무림의 신(神)이요, 제왕(帝王)으로 군림해왔다. 그런 그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게 불멸의 단체를 세웠으니. <제왕천(帝王天)> 바로 하늘 아래 가장 위대하다는 무림의 집대성을 이룩했었다. 제왕천이야말로 무림개사 이래로 가장 강하며, 완벽한 힘의 상징이 되어 무림의 하늘로 군림해 왔다.
<십정천하> 병법이란 무엇인가? 곧 이기기 위한 계략에 다름 아니 다. 이긴다는 것. 그것은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야 죽건 말건, 아니 반드시 상대를 제거해야만 자신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의 동정은 그야말로 값싼 낭만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피가 흐른다. 전쟁을 일으킨 이들의 가슴에는 뜨거운 야망이 지펴졌다. 그것은 곧 정복자가 되기 위한 야망의 결과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거꾸러 뜨리기 위해 그들은 독아(毒牙)를 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열 개의 하늘을 나누어 가졌지만 그들은 만족할 줄 몰 랐다. 그 중의 한 명이 너무도 강했기에, 설사 열 하늘을 공평하게 나눈 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의 불안감이 한 명을 용납치 못했다. 음모가 진행되었다. 꿈에도 믿을 수 없는 음모 속에 한 명은 무너졌고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으 로 끝났을까? 아홉 하늘은 서로를 용인하며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십정천하(十鼎天下)>를 바친다. 열 하늘의 이야기 속에 오늘 날 적어도 한 부분을 차 지한 이들이 어찌하여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분 란(紛亂)를 자초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지, 작금의 세 태를 어느 정도 담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맛보기> * 서(序) 캄캄한 암흑 속이다. 지하인 것만은 확실하나 대체 몇백 장 아래까지 내려와 있는지는 짐작할 수도 없다. 이른바 삶과 죽음의 교차지점, 공기가 희박하여 도시 숨쉬기조차 불편하다. 이곳에 십 인(十人)의 소년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은 똑같은 조건 하에서 벌써 백일째 굶고 있었다. 이제 굶주림은 차라리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실로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혹독한 갈증이었다. 벽, 천정, 바닥이 모두 돌로 된 공간 속에는 물 한 방울 없었다. 벽을 긁고, 바닥을 할퀴고, 천정을 머리로 박아 보았으나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절망을 넘어선 허탈감....... 와중에 한 소년이 입을 열었다. "우우... 꼭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신음인지 절규인지 모를 음성에 다른 소년이 답했다. "우리는 강자가 된다. 강자가 되어 천하를 군림하게 된다면 지금의 고통쯤은 깨끗이 잊혀질 것이다." 앞서의 소년이 회의에 찬 음성으로 말을 받았다. "넌 아직도 버틸 여력이 남아있나 보구나.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참아야 한다......"
<무영탑> 그림자 없는 인간이 있다. 알아서는 아니 될 운명의 비밀! 천 개의 목각인형을 깎으며 기다린 세월은 쓰라린 인고의 나날이었다. 패자의 하늘로 영원히 숨어 버렸던 은자들의 한을 과연 풀 수 있을 것인가? - 넌 내 사랑이야. 널 위해서라면 날 죽일 수도 있다! 무혼(無魂) 처럼 살 수도 있지만…… - 잃어버린 그림자를 찾으리라! 추락한 용으로 살진 않겠다! 그가…… 일어섰다. <맛보기> 서막(序幕)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뿌리가 없는 자다. 들판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나는 잡초들에게도 뿌리가 있게 마련이거늘, 하물며 인간으로 태어나서 뿌리가 없다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그에게는 과거가 없다. 과거란 곧 그림자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밟고 서 있는 그림자가 자신의 것인지를 늘상 반문하곤 한다. 눈이 내린다. 잿빛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난분분 흩어지는 눈발은 대지를 온통 하얗게 뒤덮어 버린다. 그 아득한 설지(雪地)에서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돌아다본다. 없었다. 잃어버린, 아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그림자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설지 위에 흔적조차 비치지 않았다. 그림자가 사라진 땅에서 그는 붉은 통곡을 뿌린다. 당신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당신의 그림자를 훔쳐갈지도 모르니까! 그는 벌써 그림자를 취하기 위해 구중(九重)의 하늘을 뚫고 솟구치고 있지 않은가? 흔히 그를 일컬어 그림자 없는 인간이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스스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심지어 누구의 자식인지도 몰랐다. 무영(無影). 이것이 그의 이름이다. 인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전장(戰場)일는지도 모른다. 조심하라! 당신이 지기와 더불어 술잔을 나누거나 음풍농월(吟風弄月)하고 있을 때도 보이지 않는 칼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 북궁현리(北宮玄里). 그는 한마디로 야망의 화신체(化身 )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믿으며 타인에 대해서는 철저히 믿지 않는다. 그는 사랑조차 불신한다. 그에게 있어 사랑이란 자신의 야망의 달성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따름이다. 그런 그가 천하를 발 아래에 두려 하고 있다. 오만한 눈으로 천하를 굽어보며 그는 광오하게 말했다.
<무림전사> 검은 비, 현우(玄雨)......! 그가 온다. 죽어야 할 사람에겐 언제나 그가 방문한다. 염라대왕의 명부에 등재되면 어김없이 죽어야 하듯 현우가 오면 누구나 죽는다. 최고의 무벌살수인 그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다. - 잘 가게! 아름대운 삶을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나이.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오늘도 죽어야 할 자들을 향해 진혼가를 부른다. <맛보기> * 서장(序章) 1 전설이나 신화, 혹은 고사(古史) 등 인간사가 엮어지면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개중에는 더러 황당무계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사서(史書)에 기록이 될 정도로 사실적인 이야기도 다수 있다. 무맥혈책(武脈血冊). 기실 이런 이름의 책자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 대부분이 알지도 못한다. 그 책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읽혀져 왔으며 사본(寫本)도 없이 단권(單卷)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쨌든 무맥혈책을 펼쳐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 하늘아래 가장 강한 기운을 양(陽)이라 하며 가장 부드러운 기운을 음(陰)이라 한다. 그 둘은 서로 부딪치며 얽히고, 때로는 도와가며 우주만물(宇宙萬物)을 창조했다. 인간 중에서는 양기(陽氣)를 남자라 하며 음기(陰氣)를 여자라 일컫는다.> 대략 그와 같은 내용을 서두로 하는 무맥혈책에는 심상치 않은 예시(豫示)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장차의 무림뿐만 아니라 천하 억조창생의 안녕에 대한 우려의 표명이었다. <...... 본시 음과 양은 우주를 창조하신 대천신(大天神)의 양 팔이되, 그 둘은 상상을 절하는 무서운 힘을 지녔다. 즉 대천신의 의도에 의해 각각 그 기운을 나눈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 한 가지 염려스러운 바는 만에 하나라도 그 두 가지 기운을 동시에 타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다행히도 그러한 예는 이제까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지만 혹여 그런 경우가 있다면.......> 무맥혈책을 누가 저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기저에 깔린 의도도 알 수 없는 가운데 가정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 예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맥(脈)이 하나 있으니 그것을 일러 혈왕맥(血王脈)이라 한다. 대저 인간은 하나의 기운을 타고 나게 되어 있고 설혹 두 가지 기운을 함께 소지하고 있다 해도 힘의 배분상 어차피 하나의 힘을 위주로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천지간의 유일무이한 부류로서 혈왕맥을 타고 난 인간은 난세(亂世)를 평정할 대영웅(大英雄)이나 제왕(帝王)의 운명을 지니게 된다....>
<무림백서> 살아있는 무림의 사서(史書) 활사관인 구양중백이 남긴 강호혈사록(江湖血史錄)의 마지막 장은 미완성인 채 끝나고 있다. 천년의 마맥(魔脈)이 부활하고 악마지겁(惡魔之劫)이 도래한다는 무서운 예언은 과연 실현될 것인가? 구룡성궁을 열 수 있다는 구룡개천환비도(九龍開天幻秘圖)의 행방은……? 내게 죄가 있다면 백도무림을 위해 빛나는 청춘을 바친 것 뿐이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날 죽이려는 것이냐? 하늘이 노하고 땅이 저주하리라! 뇌정(雷霆)이 한 아이의 이마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뇌문(雷紋)을 남기노니, 기억하라! 더러운 백도인이여! <맛보기> * 서막(序幕) 강호혈사록(江湖血史錄) 영웅은 난세(亂世)를 부르고, 난세는 영웅을 탄생시킬지니 역사는 끊임없이 구르는 수레바퀴와도 같은 것이다. 어쨌든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고 또 흐른다. 난세의 영웅과 더불어 태풍의 시대를 창조하는 효웅들로 인해 역사의 수레바퀴는 오늘도 굴러간다. 건륭(乾隆) 십년. 무림사상 보기 드문 강호사가(江湖史家)가 나타나 희대의 사서인 강호혈사록(江湖血史錄)를 작성했으니 세인들은 그를 활사관인(活史官人) 구양중백(歐陽仲伯)이라 불렀다. 명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무림사상 처음으로 강호사서를 작성한 살아있는 사록이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강호혈사록에는 당대의 기라성 같은 무인들의 이야기와 강호흥망사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후인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지금부터 전개될 이야기는 그가 남긴 강호혈사록 제삼십구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강호에서 태어나 강호에서 늙은 한 노강호인(老江湖人). 그는 만년에 낙향하여 손자의 재롱을 유일한 낙으로 삼아 여생을 즐기고 있다. 서리처럼 흰 백발에 수염만 보아도 그의 나이가 지긋함을 알 수 있으리라. 어린 손자의 뛰노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눈가에는 세월의 흔적인 양 깊은 주름살이 새겨져 있다. 그의 모습은 여느 노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당당한 풍채나 유난히 빛나는 눈은 그가 젊었을 적에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지금은 손자의 재롱을 보며 너털웃음을 짓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 날도 손자 녀석이 무릎에 걸터앉아 재롱을 피우며 재촉했다. "할아버지 옛날 이야기 해주세요. 네? 빨리요." 손자는 그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졸라대었다. 노인은 아이의 행동이 마냥 귀여운 듯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허허, 녀석. 그렇지 않아"
<마정지로> 마(魔)란 무엇인가? 정(正)이란 무엇인가? 인생에는 두 가지 길밖에 없는가? 원치 않았던 삶의 행로에 접어든 청년문사의 앞에는 마의 길만이 펼쳐져 있다. 선택할 수 없는 인생항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였으니, 구대마류를 일통하여 마중지마가 된다면 다시는 마와 정을 분리하지 않게 되리라. <맛보기> * 제1장 북경의 밀사(密使) ① 금의위(錦衣衛). 이는 황제를 보필하며 황실의 안위를 책임지는 막강한 무벌(武閥)이다. 황제를 모시고 있는 만큼 그들의 권력은 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금의위는 과거의 양창제도(兩廠制度 - 동창, 서창으로 나뉘어 졌던 것을 말함)가 폐지되며 생겨난 새로운 세력이다. 양창제도가 서로간의 반목으로 인해 흔들리자 황실의 체통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이 양창제도를 폐지시켜 버렸다. 황실은 또한 새로운 제도 개선을 위해 신세력을 등장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금의위였다. 금의위는 황제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황실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일종의 첩보활동까지 겸하고 있다. 따라서 금의위의 눈에 거슬리게 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결코 무사할 수가 없었다. 이때문에 기라성 같은 고관대작이라 할지라도 금의위만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이러한 별칭이 붙여졌다. 북경의 무법자. 말 그대로 그들은 무법자들이었다. 비록 황실을 수호하기 위한 금의위였으나 그들은 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것은 황제 스스로가 그들에게 지나칠 정도의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산천초목을 떨게 한다는 금위부(錦衛府)의 살벌한 부중(府中). 그곳에는 시골에서 갓 올라온 듯한 허름한 문사의(文士衣) 차림의 청년이 어리숙하게 서 있었다. 청년의 나이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다. 십칠팔 세쯤 되었을까, 혹은 그보다 더 어릴지도 몰랐다. 청년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앳되어 보였다. 그가 지금 입고 있는 문사의는 마의(麻衣)로 된 것으로 말이 문사의지, 언뜻 보면 촌부의 옷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허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옷차림과 달리 꽤 준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붓으로 그은 듯한 눈썹과 그 아래 자리한 한 쌍의 서늘한 눈은 용의 눈과도 같았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만든다는 막강한 권력기관인 금위부다. 그런데 청년의 얼굴에는 순박한 표정이 떠올라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
<마인> <마인(魔人)>은 운명적으로 마도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나이의 일대기다. 하필이면 왜 마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다. 어차피 삶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으므로 밝은 쪽이 있으면 어두운 쪽도 있게 마련이다. 이 소설에서는 천륜(天倫), 인륜(人倫), 도덕(道德) 따위가 무시될 수도 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그에 반하는 가치관의 소중함을 위해 선택된 모티브인 것이다. 무협소설의 재미는 상상의 자유에 있다. 시공을 초월한 SF물에서 우리는 시대와 국경과 사상을 뛰어넘는 무한공간의 재미를 느끼듯이 무협소설도 마찬가지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도구(道具)의 선택일 뿐일 것이다. 무공(武功), 기예(技藝), 기진이보(奇珍異寶),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만나는 괴담(怪談)과 고사(故事)들....... 이러한 요소들이 파란만장하게 얽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 무협소설이다. <마인(魔人)>은 아주 단순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뿌리깊은 음모로 인한 강호계의 피바람도 알고 보면 하나로 귀일한다. 그것은 인세(人世)의 욕망이 불러일으킨 짜집기라는 것이다. <마인>의 주인공이 철저한 마(魔)의 길을 걸으며 시작되는 한 편의 소설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대조해 보는 것도 또다른 수확이 될는지도 모른다. <맛보기> * 제1장 무황성(武皇城)의 비밀(秘密) 세상의 온갖 생명들이 잠든 늦은 시각. 번쩍! 꽈르르... 릉! 섬광에 이어 천지를 가르는 듯한 벽력음이 진동함과 동시에 태산(泰山) 성인봉(聖忍峯) 위에 우뚝 서 있는 무황성(武皇城)은 거센 폭풍우에 휘말렸다. 폭우와 함께 떨어지는 뇌성벽력에 무황성의 웅장한 모습은 간간이 소름끼치는 푸른빛으로 드러나곤 했다. 이때였다. "응...애! 응...애!" 돌연 폭우를 뚫고 무황성의 후전(後殿)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힘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기쁨에 찬 여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 나왔어요! 우리들의 아기가......" 그것은 기쁨에 떨리는 한 부인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응...애 응...애... 캑!" 갑자기 어린아이의 울음이 그치더니 느닷없이 목이 터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아악! 다... 당신 미쳤어요? 아... 아기를 죽이다니! 아기를 죽이다니!" 이어 여인의 찢어지는 듯한 절규(絶叫)가 천둥소리를 뚫고 들리는 것이었다. "흐흐흐흑... 또 아기를 죽이다니... 다... 당신은 악마에요! 악마!" 여인은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만천화우> 천박한 한 소년이 있다. 성도 이름도 제대로 주어지지 못한 그가 각박한 삶을 살아가면서 배운 것도 없고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밥 먹듯 사기(詐欺)를 쳐야만 한다. 올바른 방법으로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그에게도 진실(眞實)은 있다. 우연히 만난 절세(絶世) 미녀에게 반해 난생처음으로 사랑이란 열병(熱病)을 앓게 되고……. 기라성 같은 무림계의 고수(高手), 거마효웅(巨魔梟 雄)들을 만나면서 그의 삶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 린다. 우연히 무림제일의 청년기재를 사칭(詐稱)하면서부터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 는데……. <맛보기> * 서장(序章) 태초의 혼돈에서 빛과 어둠이 분리되며 음양이 생성되었듯이 만물은 상생상극(相生相克)을 이룬다. 그런데 암흑 속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저주와 피, 공포의 응집체인 악령(惡靈)들이었다. 악령은 애초부터 하나가 아니었다. 열 십(十)이란 숫자는 암흑 속에서 태동했으며 그들을 십악(十惡)이라 일컬었다. 그들이 현신했을 때 천지는 온통 암흑에 휩싸여 버렸다. 이른바 요(妖), 마(魔), 살(煞), 잔(殘), 음(淫), 괴(怪), 귀(鬼), 혈(血), 사(邪), 독(毒), 그들로 인해 세상에는 종말이 다가왔다. 그들은 너무도 극악하여 광명계(光明界)에서는 전혀 손을 쓰지 못했고, 그 바람에 세상은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상생상극의 원리조차 초월한 그들의 힘은 내분(內紛)이 일어나 양상을 달리 하게 되었다. 십악이 각기 암흑의 종주(宗主)가 되기 위해 상호간에 충돌을 일으키더니 마침내 악마대전(惡魔大戰)을 벌였던 것이다. 유계(幽界)에서 벌어진 그 무시무시한 대전은 문자 그대로 지옥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십악 중 가장 강한 천마(天魔)가 나머지 구악(九惡)을 제압함으로써 대전은 막을 내렸다. 그 일을 기화로 하나의 전설이 이루어지게 된다. - 언제고 유계에 갇힌 구마혈정(九魔血鼎)이 열리리라! 아홉 개의 혈정이 열리는 날 천지를 지배하는 대악마(大惡魔)가 탄생하리니, 이는 천마의 후예가 막아야 한다. 천마일맥(天魔一脈)이 아니면 구마혈정의 봉인에는 손도 대지 말지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악마의 재현에 관한 예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아득한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설인지라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위인지는 알 길이 없다.
<기인총사> <맛보기> * 서막(序幕) 1 초인(超人)의 꿈, 다섯 개의 제왕신주(帝王神珠) 지극천단설(地極天檀說). 전설은 말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땅의 끝이 있으며, 그 땅의 끝에 하늘과 맞닿은 신단(神壇)이 있다고. 인간은 끊임없이 하늘에 가까이 오르려는 신념과 희망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하늘과 닮으려는 인간의 희망이요, 좀더 완전하게 자신의 완성을 추구하려는 인간들의 초인의식(超人意識)이 낳은 결과이다. 인간은 신(神)이 되려 했다. 그러기에 초인적(超人的)인 능력을 지니려 했으며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오며 그 야망과 간절한 염원은 하나의 신화를 탄생시 켰다. <...이 지상의 끝, 하늘과 맞닿은 곳에 천단(天壇)이 있으며, 천단 위에 다섯 개의 구슬이 오행(五行)의 방위로 박혀 있다. 그 다섯 신주(神珠)가 합쳐지면 하늘이 열리고, 초인이 되어 천계(天界)로 등천할 수 있다. 인간의 초인의지(超人意志)가 낳은 절정이요, 완성이도다. 그러나 어느 날 천제(天帝)의 노여움을 받아 천단에 뇌신(雷神)의 불칼이 내려쳐침으로 인해 등천오행제왕신주(登天五行帝王神珠))는 지계(地界)로 산개(散開)되도다. 오행제왕신주가 지계의 다섯 방향에 흩어지니 이로써 등천개벽(登天開闢)의 인간의 초인의지는 다섯 개로 갈라지도다. 언젠가 등천오행제왕신주가 다시 천단의 등천대(登天臺)에 합쳐지는 날, 다시 하늘이 열리고 그곳에서 천단의 비밀을 취한 자가 진정한 절대자가 되어 초인제왕으로 군림하리라.> 무림계에서는 지극천단(地極天壇)의 전설이 회자(膾炙)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 오고 있었다. 이 전설이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무림인이라면 초인이 되려는 야망과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끝없는 도전 속에서 살기 마련이다. 그 꿈마저 없다면 무림계는 존재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불을 당긴 것이 바로 지극천단설(地極天壇設)이며, 이 전설은 지금까지도 무공을 닦고 있는 수많은 무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 제왕(帝王)이 되리라! - 초인제왕(超人帝王)이 되어 하늘에 오르리라. 오늘도 무림인들은 지계의 다섯 방향으로 흩어져 있다는 등천오행제왕신주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다섯 개의 제왕신주(帝王神珠), 과연 다섯 명의 무신(武神)을 탄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단 한 명의 초인제왕(超人帝王)을 탄생시킬 것인가? 땅의 끝에 있다는 천단, 과연 그곳은 어디인가?
<광화사> <맛보기> * 서막 <고우(古友) 낙양성주(洛陽城主) 백도기(白道奇) 친전(親前).> 영종(英宗) 삼 년 구 월 하순의 맑고 푸르렀던 그 어느 날, 고도 낙양부중(洛陽府中)에 은밀한 경도를 통해 전달된 한 통의 밀서로 인해 천 수백 년 강호무림의 역사는 바야흐로 엄청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밀납으로 봉인된 밀서의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하늘 아래 인간이 있고 인간이 있으매 무릇 인도(人道)를 추구함은 당연지사, 학문을 익힌 자 학문으로 천하의 안녕을 도모하고 무를 익힌 자 무도로써 인세의 법도를 추구함이 당연하다 생각되네. 고우 백제(白弟). 우형은 아우와 달리 무를 택하여 일찌기 강호에 뛰어들었네. 다행히 운이 좋았던지 무가의 전설로 내려오는 천무구천환비도(天武九天幻秘圖) 한 장을 얻어 절정의 기학을 깨우쳐 강호상에 필적할 자 없는 고강한 무인이 될 수 있었네. 그 후 무림계를 주유하기 어언 이십여 년, 마침내 당금 백도무림(白道武林)의 성지인 검황부주(劍皇府主)로 추대되었네. 동시에 제 사대 검황이라는 명예스런 칭호도 받게 되었네. 우형은 전심전력을 투구하여 사심없이 부주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자부하네. 그 덕분에 무림계는 지난 십여 년 이래 지극히 평화로웠네. ......중략...... 그러나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무림계는 언젠가부터 사마외도(邪魔外道)의 악마적인 음모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었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구들이 검황부(劍皇府) 까지도 침투했음을 알게 되었다네. 우형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충격을 받았었네. 하지만 음모의 뿌리는 너무도 깊어 우형은 물론 당대무림의 어떤 자라 할지라도 일시에 제거하기는 불가능했네. ......중략...... 이제 곧 무림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겁난(劫亂)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 틀림없으리라 사료되네. 일단 마세가 준동하게 되면 무림천하는 혈풍에 잠길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네. 백제(白弟). 이 우형은 자네에게 귀동(鬼童)으로 불리워지는 아들이 있음을 익히 알고 있네. 그 아이는 머지않아 조정에 나가 대명(大明)을 위해 동량(棟梁)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네. 그러나 이 우형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 주겠는가? 그 아이를 내게 보내 주게. 무림계에는 그 아이가 필요하네. 현질과 같은 하늘이 내린 신재(神才)가 아니고서는 항차 무림을 휩쓸 대혈풍우(大血風雨)를 막을 길이 없다네. 무림계가 악마의 혈족(血足)에 짓밟힌다면 양민은 물론 대명조에까지 심각한 누를 끼쳐 난세천하가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네. 부탁이네. 현릉(賢凌) 조카를 내게 보내 주게. 이것은 우형으로서...>
"기라성 같은 무림의 고수들이 한낱 어린아이에게 농락 당하며 정신없이 허둥대는 모습은 참을 수 없는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무림(武林)이란 살벌하고도 엄숙한 세계를 주름잡던 전대고인들조차 망나니에 불과한 소년을 만나는 순간 이제껏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자부심이 여지없이 뭉개져 버린다. 그 순간 그들이 느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여 허구(虛構)에 가득 찬 인생의 모순이 아니었을까?월궁(月宮)의 항아(姮娥)를 비웃을 정도로 절색의 미녀들이 어이없이 무너져 내리며 소년의 품에서 교성을 내지를 때 과연 그녀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우문혁은 도대체가 타협(妥協)을 모르는 놈이다. 놈은 무림인들을 한낱 도적떼로 치부해 버린다. 그의 원대한 포부라는 것은 고작해야 무과(武科)에 급제하는 것이다.그의 목적은 장차 대장군이 되어 국경 수비대에서 오랑캐를 무찌르는 것이다. 과연 그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그가 과거를 보러 가는 길목마다 등장하는 절세미녀들과 강호의 풍운은 그를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자꾸만 밀어 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장군이 될 꿈만 그리고 있다.망나니 소년.갈수록 색마(色魔)가 되어 가는 소년.만나는 미녀마다 아내를 삼으면서도 영웅은 호색(好色)이라는 말을 둘러대며 끝없이 애정행각을 일삼는 그의 행로(行路)는 갈수록 점입가경이 된다.폭소무협(爆笑武俠) 한 편을 독자제현께 드린다.자오정(子午亭)에서검궁인 배상."
"마검파천황(魔劍破天荒).이것은 한 자루의 검이다. 그러나 이 검은 무림 이천 년 사에 존재했던 모든 신병이기(神兵異器)들을 총망라해 적어 놓은 만병천기보(萬兵天機譜)의 서열 제일위(第一位)에 올라 있는 천고(千古)의 신검(神劍)이다.또한 마검파천황(魔劍破天荒)은 무림사를 통틀어 가장 강(强)했던, 그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었던 한 기인(奇人)이 사용했던 검이기도 하다.인간이 있는 곳에서는 싸움이 그치지 않으며, 욕망(慾望)은 끝없이 부침(浮沈)하여 돌고 도는 수레바퀴처럼 혈사(血史)를 남기게 마련이다.마검파천황(魔劍破天荒)을 사용했던 기인(奇人)은 강(强)했다. 무림 사상 그 누구보다도.이천 년 전 무(武)의 영원한 조종(祖宗)이라던 무천제황(武天帝皇)보다도, 천 년 전 소림(少林)의 조사인 달마(達磨)보다도, 무당(武當)의 조사 장삼봉(張三峯)보다도, 오백 년 전 단 백일 만에 중원고수 일만 명을 죽이고 백 년 간이나 무림의 정기를 말살했던 마(魔)의 대조종 천추혈마(天樞血魔)보다도 강했다.무림 이천년사를 관류(貫流)하여 명멸하듯 사라져간 그 어떤 기인보다도 그는 강했다.그러나 그는 뼈에 사무치는 슬픔과 외로움을 지니고 있었다.왜? 무엇 때문에......"
"그러나 사나이.... 그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비둘기의 깃털을 쓰다듬고 있다. 각이 진 검은 흑사암 위에 걸터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대략 20여 세나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린 듯도 하였다. 하지만 오관이 지나치게 뚜렷한 탓인지 사나이의 음울하고 냉막해 보이는 얼굴에는 묘한 그늘이 드리워져 보인다. 이로 인해 사실 그는 실제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그는 지금 몹시 지친 듯 온 몸에 피곤의 기색이 역력하여 약관의 청년다운 활력이라곤 찾아볼 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眼)!눈만이 살아 펄떡이고 있었다. 실로 기이한 조화였다. 섬세한 선을 지녔으되 퇴폐적인 분위기의 얼굴. 이런 얼굴을 일컬어 세인들은 몹시 영준하며 매력적이라고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 발산되는 뜨거운 정신은 그가 가진 천부의 준미함과는 극히 괴리감을 갖게 하는 것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스산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사나이는 천천히 비둘기의 발목에 묶여져 있는 전서를 풀더니 꺼내 펼쳤다. 정황으로 미루어 실로 당연하고 단순한 동작이 아닐 수 없었다.그러나 그 순간, 그를 위시한 9인의 인물들은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꿈틀 변화를 보인다. 먼저 사나이의 안색이 엄숙해지는가 싶더니, 제각기 흑사암 주위에 걸터 앉거나 혹은 드러누워 있거나 혹은 서 있던 여덟 명의 사나이들이 모두 자세를 고쳐 잡은 것이다. 다만 내내 변함없는 것은 그들의 눈이 사나이에게서 조금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누가 알겠는가? 사나이가 공손히 받쳐 들어 읽고 있는 한 장의 전서에 그들 모두의 운명이 걸려 있는 것을!<금군대도독(禁軍大都督) 위경삼을 척살하라. 기간은 보름. 자료는 추후 전달하겠다.- 대주(隊主) >"
"괄창산(括倉山) 중턱에 있는 마골곡(魔骨谷)은 늘 안개에 뒤덮여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 계곡의 이름이 언제부터 마골곡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 그대로 마골곡은 마의 기운이 산자락을 뒤덮고 있어서인지 일 년 삼백예순닷세 중에 삼백예순날은 온통 자욱하고 눅눅한 운무가 산자락을 뒤덮고 있었다.온통 바위 투성이의 마골곡이 제 모습을 밝은 햇빛 아래 드러내는 것은 1년에 고작 서너 번으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때 마골곡은 이름 그대로 마귀의 뼈와도 같은, 온통 음침한 바위 투성이의 산봉우리를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놓는 것이다. 아무리 무덥고 화창한 날씨더라도 사람들은 마골곡 계곡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등허리에서 식은 땀을 주루룩 흘리고는 했다.무서움을 모르는, 지금까지 수십 명에 가까운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마골곡을 탐험하겠다고 떠나갔으나 육신을 이끌고 살아 돌아온 자는 한 명도 없었다.멋모르고 마골곡 계곡으로 접어 들었던 나그네들에 의해 세월의 흐름에 풍화되고 삭아내린 해골이 발견되곤 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흔적이었다.그러나 세상 온갖 풍파를 경험하고 헤쳐온 나그네라 할지라도 풍화된 해골과 함께 마골곡의 바위산을 한 번 쳐다 본다면 머리카락이 쭈빗 일어서는 듯한 공포심에 서둘러 발걸음을 돌리기가 일쑤였다. 사람들은 어느새 마골곡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기는커녕 멀리서 마골곡을 바라다보는 것조차 꺼려했다.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말을 빌리면 원래부터 마골곡이 바위투성이의 산은 아니라고 했다. 어느 핸가의 가을에 천지가 개벽할 만한 일이 생긴 것이 문제의 시초였다. 마골곡 주변에 15주야 동안 폭우가 쏟아져 내리더니 온갖 나무와 흙들이 씻긴 듯이 떠내려가 버린 것이다.이런 자연의 조화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다 주기에 충분했다. 그 이후로 세상의 종말에 대한 두려운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했고 인심은 더욱 흉흉해졌다."
예로부터 무림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서부터 공포스러운 이야 기, 또는 끔찍하고 엄청난 혈록(血錄)에 이르까지...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이야기만큼 무림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드물 것이다. 일생을 피로 점철된 생애(生涯)를 살아온 한 대마두 (大魔頭)와 천진무구한 어린 소년(少年)의 만남은 정 녕 북두칠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것보다 더 어려운 만 남이었다. 대마두와 한 소년의 만남,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벌어 지는 순수한 인간애과 갈등, 그리고 복수(復讐) 아닌 복수의 피무지개! 이야기는 저 북쪽의 한천강(恨天江)을 기점으로 전개 된다. <맛보기> 서장(序章) 예로부터 무림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서부터 공포스러운 이야기, 또는 끔찍하고 엄청난 혈록(血錄)에 이르까지.......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이야기만큼 무림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드물 것이다. 일생을 피로 점철된 생애(生涯)를 살아온 한 대마두(大魔頭)와 천진무구한 어린 소년(少年)의 만남은 정녕 북두칠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것보다 더 어려운 만남이었다.
<맛보기> * 서 장 - 일검(一劍)을 들어 창공을 꿰뚫었고, 일장(一掌)을 뻗어 대해(大海)를 갈랐다. 일갈노성에 천지(天地)는 뒤집히고, 한 번 걸음을 옮기매 만마가 무릎을 꿇었다. 삼산오악(三山五嶽)이 모두 내 손에 있으니, 무림 수천년사에 나를 능가할 자 그 누구냐? 백 년 전. 혈우성풍(血雨腥風)의 무림을 헤치며 한 명의 약관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천하를 굽어보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 앞으로 이십 년 안에 저 드넓은 중원천하는 나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능히 천 년(千年)을 가리라! 광언, 아니 망언(妄言)이었다. 천하인들은 그를 비웃고 멸시하는 한편 아무도 그의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가 꿈엔들 상상이나 했으랴? 그로부터 꼭 이십 년 후에 그 청년의 말은 적중하고 말았다. 청년이 무림을 휩쓸기 시작하자 그 힘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하고 공전절후한 대혼란을 야기시켰다. 천하의 기인이사(奇人異士)는 물론이거니와 막강한 전대의 고수(高手)들까지 청년의 일검(一劍)과 일장(一掌)에 추풍낙엽과 같이 날아가 버렸다. 아무도 그의 적수(敵手)가 되지 못하는 가운데 이십 년의 세월이 바람과
광풍사(狂風社).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 아득한 북방의 사막에서 일 대광풍이 불었다. 아니 그것은 혈풍(血風)이었다. 왜 냐하면 당시 대막 일대를 주름잡던 두 개의 단체, 즉 대막천궁(大漠天宮)과 사혼방(沙魂 )이 그로 인해 흔 적도 없이 멸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 작금에 이르기까지 대막은 침묵만이 지배 하는 마역(魔域)이 되고 말았다. 살아있는 것은 눈을 씻고 봐도 볼 수 없는 죽음의 사막이 되고 만 것이다. 아쉽게도 그 원인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세간에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만 결과가 너무도 끔찍한지라 그 사건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무림인들 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세인들은 당시의 혈풍을 일으킨 신비의 세력을 일컬어 광풍사(狂風社)라 불렀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광풍사 의 실체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과연... 공 포와 죽음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광풍사의 정체는 무 엇이길래......? <맛보기> * 서막(序幕) 광풍사(狂風社).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 아득한 북방의 사막에서 일대광풍이 불었다. 아니 그것은 혈풍(血風)이었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것이 인생이다. 삶이란 다양한 모습과 예기치 않은 변화를 내포한 채 수레바퀴처럼 굴러가게 된다. 오늘의 모습이 내일로 이어진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로 는 갑작스럽게 내리는 소나기처럼 예측할 수 없는 운 명의 굴레 속에서 부침하곤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천외기환전>은 학자 집안에서 자라난 한 소년이 생각 지도 않았던 무림계에 휩쓸리면서 일어나는 파란만장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례로 찾아온 무림의 괴인 들, 그들의 음모에 휘말린 그가 걷게 되는 인생은 학 자의 길이 아니라 무인(武人)의 길이었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카오스(CHAOS) 의 이론처럼 초기에는 일정한 궤도를 달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불확실한 혼돈으로 접어드는 것이 삶일지 도 모른다. 카오스를 설명할 때 흔히 나비이론을 들먹이곤 한다. 북경의 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며 날개짓을 하면, 지 구 반대 편 뉴욕에서 허리케인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이 카오스의 이론이다. 결국 이같은 법칙은 인과(因果)와도 같은 것이다. 원 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
군마천웅보의 첫장부터 차례로 적혀있는 이 아홉 명의 개세고수들! 그들의 무공은 능히 천하를 뒤집고도 남 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더 엄청난 사실 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 아홉 명이 출현한 시기였다. 하늘의 뜻이었던지 이들은 놀랍게도 모두 동시대(同時 代)에 출현한 것이다. 한 나라에 두 왕(王)이 설 수 없으며, 한 산(山)에 양호(兩虎)가 살 수 없는 법(法) 이다. 그렇다면 이들 아홉 명의 개세고수들이야말로 더욱 공존(共存)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과연 그들은 격돌했다. 그것은 파란만장한 일대 소용 돌이를 일으켰으며 천지간에 대혈풍(大血風)을 일으킨 고금미증유의 대사건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강호인의 상상을 절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날 이후, 오리무중(五 里霧中)에 싸인 구대마왕(九代魔王)이라고도 불리워졌 던 그들은 무림에 영원히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맛보기> * 서막(序幕) 음풍세우(陰風細雨). 음산한 바람과 함께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어둠침침하고 사위에는 질식할 것만 같은 적막이 가는 빗발 속에 음모(陰謀)처럼 뒤엉켜 있었다.
우르르릉-- 쾅--!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막(大漠)의 황원(荒原). 느닷없는 섬전비뢰(閃電飛雷) 아래 하나의 거성(巨星) 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하여 금룡성(金龍城)이다. 누군가 말했다. 하늘에 태양이 있고 중원(中原)에 천자 (天子)가 있다면 대막에는 금룡성이 있다고. 그만큼 금룡성의 존재는 대막에서 살아있는 신화이자 영원히 지지않는 태양으로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암흑 속에서 드러나 보인 금룡성은 그렇지가 못했다. 지난 날의 영화를 비웃기라도 하듯 찬란하던 웅자(雄姿)는 다 어디로 가고 믿을 수 없게도 폐허(廢 墟)로 화해 있는 것이었다. 중원무림의 역사가 이어져 내려온지도 어언 천수백년, 그 동안 대막의 하늘로 군림해 오던 금룡성은 철저히 붕괴되어 그 무참한 잔해(殘骸)만을 보여주고 있을 따 름이었다. 누가? 왜? 어찌하여 금룡성을 그토록 초토화에 이르 도록 궤멸시켜 버렸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무림 사(武林史)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이 있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적으리라. - 꽃은 십일을 붉지 못하고(花無十日紅), 권세는 십년 을 가지 못하나니(權不十年) 천하에 그 누가 유아독존 (唯我獨尊)을 말
<맛보기> * 서막 서막-- 이백 년 전. 강호무림(江湖武林)은 그야말로 사상 최악이라 말할 수 있는 혼란기에 처해 있었다. 정(正)과 사(邪)의 모든 문파가 자파의 이익과 안전에만 급급했다. 정도의 주춧돌이랄 수 있는 구파일방도 혈겁에 빠져드는 무림정세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사파는 날로 그 성세를 더해 갔다. 소위 이곡삼문오방(二谷三門五 ), 바로 이들 집단이 중원을 피로 물들여갔다. 그 밖에도 정사를 가릴 수 없는 수많은 군소방파들이 무림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강호전역에서 혈세분란을 일으켰다. 따라서 무림은 가히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단 하루도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때에 기변이 발생했다. 천지인왕패천지림(天地人王覇天之林). 이 같은 말이 혼란에 빠진 무림 전역에 나돌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시구(詩句)에서 연유된 말이었다. 천독난비잠혈하(天毒亂飛潛血河) 지검광무낙천성(地劍狂舞落天星) 인혼장하무림겁(人魂掌下武林劫) 제왕모계천하롱(帝王謀計天下弄) 천독(天毒)이 난비하니 세상은 혈하(血河)에 잠기리. 지검(地劍)은 미쳐 날뛰며 하늘의 별조
등격리(騰格里) 사막. 영겁의 형상을 보여주듯 사구의 구릉은 그 끝이 없었다. 또한 낮 에는 불같이 뜨겁게 달아오르나 밤에는 한풍이 분다. 누군가 이 사막을 사해리(死海里)라고 불렀다. 그것은 문자 그대 로 죽음의 땅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이 천형의 땅에도 초지(草地)가 있었다. 대평원을 이루는 그곳에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서장산(西藏産) 황마(黃馬)와 양 떼들이 방목되고 있다. 뚜-- 뚜우-- 뚜우-- 멀리서 고적(鼓笛)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방목하는 양떼를 모으는 신호로써 이곳의 풍치를 한껏 북돋우기도 한다. 딸랑... 딸랑....... 방울소리는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隊商)들의 행진을 알려주고 있 었다. 그들이 타고 가는 낙타의 목에서 울리는 소리다. 유목민의 집단인 몽고족들은 대개 족대(族隊)를 이루어 사막을 건 넌다. 이들은 양떼를 몰고 가는 무리들과 상업을 하는 대상,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낙타의 목에 걸린 채 울려대는 방울소리는 개 중 후자인 장삿꾼들의 상징이다. 딸랑... 딸랑... 딸랑....... 방울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드넓은 모래언덕 위에 일단의 대상이 나타났다. 인원은 약
<세상을 온통 녹여버릴 듯이 뜨거운 불줄기를 토해 내는 거대한 용(龍)의 입을 들어서면 만상(萬像)이 빛 을 잃어버리고, 천지(天地)가 혼돈하여 구천구백구십 구 번의 윤회(輪廻)를 거치게 된다. 그 윤회의 억겁 (億劫)을 지나 불의 못에 이르게 되면 세 개의 천문 (天門)을 만나게 되니... 이 문을 열어 비밀을 푸는 자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하리라.> 무허록에 나오는 기록을 해석하기 위해서 숱한 무림 인들이 정력을 기울여 보았지만 아쉽게도 당대에서는 아무도 그 비밀을 푼 자가 없었다. 그리고 백 년, 이백 년....... <맛보기> * 서막(序幕) 예로부터 강호에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왔다. 그것은 가부(可否)를 막론하고 무림인의 가슴을 끓게 하며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구에 회자(膾炙)되어 왔다. 그러나 숱한 전설들 중에서도 화룡지(火龍池)에 대한 전설 만큼 무림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드물다. 화룡지는 대략 오백 년 전 무허진인(無虛眞人)이란 도인이 남긴 무허록(無虛錄)에 그 첫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세상을 온통 녹여버릴 듯이 뜨거운 불줄기를 토해내는 거대한 용(
여기 설정된 용소군이란 인간은 황족으로 태어났으되 그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황가가 멸망한 후였다. 결국 그는 황족이면서도 아무런 혜택도 입지 못하고 보통 사람보다 훨씬 고통스런 삶을 보내게 된다. 그가 자신의 과거를 알았을 때는 너무나 큰짐을 인생의 무게에 보탤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과연,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그의 생애의 목표가 되어야만 하는가? 용소군은 해답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중원십팔만리를 유랑하며 그가 찾은 해답은 무엇이었던가? 결국 평화(平和)라는 답을 얻게 된다. 기라성같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 기남기녀(奇男奇女)들 속에서 그는 풍진을 헤쳐 나가며 자신의 길을 찾는데 성공한다. 현대인은 이런 대명제(大命題)를 안고 있지 않다는데서 점차 소인화(小人化)되가고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소설적 공간을 빌어 한 인물을 그려보았다. 소인이고 싶지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