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지 못할, 지워서는 안 될 죄를 저질렀다.평생 속죄조차 사치라 여기며, 그저 숨이 붙어 있기에 살아가던 와중... 별안간 타인의 몸에서 눈을 떴다.남편의 사랑을 구걸하며 독을 여섯 번이나 삼킨 여자란다. 세실리아 린튼 백작 부인.그녀의 유서나 다름 없는 일기를 통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더는 남편을 사랑하고 싶지 않아...!존재만으로 타인을 저주하는 기구한 생.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여 설렘 따위는 없지만,적어도 내게 몸을 떠넘기고 떠난 여자의 마지막 소원 쯤은 들어줘야 마땅하겠지."세실리아, 앞으로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릴 일은 없을 거예요."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조차도 스스로를 원치 않게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그러니 내가 세실리아가 된 이상 그녀의 소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다름 없을 터였는데.나와 비슷한 남자, 리카르도 바스티안과의 만남으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장미 한 송이. 이엘라가 저주받은 영주와 결혼하는 대신 그녀의 아버지가 얻은 대가였다. 고작 작은 장미 한 송이에 저주받은 영주와 결혼하게 되었지만 이엘라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다 죽어 가는 늙은이의 유산만 생각하면 그깟 결혼,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럼 도착할 동안 사별 후 내가 받게 될 유산이 얼마나 될지 논의해 볼까?” 긴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쓸어 올리는 이엘라는, 마치 길들지 않은 야생 동물 같았다. 맹세 의식도 전에 배우자의 죽음을 입에 올리는 이엘라를 보며 영주 대리인은 조용히 쑤셔오는 위장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 * *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남겨진 발렌틴. 그의 오래된 성처럼 조용히 잊혀지던 그는 오랜시간이 흘러서야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진실된 사랑. 결혼식 날, 아주 잠깐이었지만 발렌틴은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한 저주가 술렁이는 것을 느꼈다. “내게 첫눈에 반해 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