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월> 5년 전, 아직 어렸던 사내를 만났다. 야만족의 왕. 전쟁의 패자(敗者). 쏟아졌던 야유와 조소 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이 불쌍해 자비를 베풀었다. 그것이 배신이 되어 돌아오고, 그녀는 사내의 땅으로 끌려갔다. 피. 연기. 비명. 불길. 새하얀 달마저 물들이는 듯한 붉음. 그것이 그녀에게 남은 사랑했던 고향의 마지막 기억. 그렇기에 은효은은 사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주겠다 했다. 이용하고 싶다면 마음껏 이용해도 좋다고 했다.” 5년 전, 아직 어렸던 여자를 만났다. 여제국 황제의 누이. 결코 손에 닿을 수 없는 꽃.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그 여자가. 그 여자만이. “그럼에도 가야 한다면 부디 날 먼저 죽이고 가.”
10년 전 사고로 오빠를 잃은 혜안10년 전 사고로 친구를 잃은 태강그녀의 생일 날, 셋은 행복한 한때를 보내려고 했었다.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고와 불행은 그 행복을 앗아가 버렸다.그 후로 10년, 곁에서 지켜보며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그들. 하지만 그렇기에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이룰 수는 없었다. ‘나 그 아이 하나 지키겠다고 이 악물었어. 처음엔 차만 봐도 겁이 나서 숨고 싶고, 죽을 만큼 아파도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그럴 수 없잖아. 혜안이 지켜 주려면 다 해야 하는 것들이니까.’ ‘나 사실 잘 몰랐었어.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건지, 아님 단순히 의지하는 건지, 할머니 말마따나 가족으로 생각하는 건지……. 다 아니면 남자로 사랑하는 건지 말이야. 그런데 사랑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아. 내가 오빠를 사랑하게 되면 오빠한테 너무 미안해지니까.’ 너무나 소중해서 서로를 사랑해서는 안 되는 그와 그녀. 너무나 사랑해서 서로에게 진심을 내보일 수 없는 그와 그녀.그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로맨스, <그대의 혜안>
“유학 가려고…….”“뭐? 유학?”“어. 그러니까 위자료 좀 줘. 필요해.”“싫어. 가지 마. 너 외국이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 겁도 없이.”“어디 가는지 듣지도 않고 위험하대.”“무조건 안 돼. 가지 마.”“여기는? 오빠 말대로 나 밖에도 못 나가. 유학이라도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적어도 지금보다 좀 나아지기는 하겠지.”“너는?”“뭐?”“너는 어떨 것 같냐고……. 괜찮아질 것 같아?”“조금은 나아질 것 같아.”“그럼 다녀와. 위자료 많이 줄 테니까 다녀와. 그 대신 자고 가.”매스컴과 기업, 대중의 관심으로 얼룩진 결혼 생활이었다.그들은 상처 받을까 봐 두려워 더 열심히 사랑하지 않았다.후회만 남아버린 두 남녀, 과거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전직 아나운서 출신으로 당당한 커리어우먼인 새록은 남부러울 것이 없는 여자다. 그녀만을 바라보는 과분한 남자 찬결과 딸 바보 아빠까지. 행복에만 둘러싸여 있던 탓일까. 갑작스럽게 닥친 비극에 그녀는 자꾸만 뒤를 돌아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남자 찬결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녀를 지키려 하는데…….사랑이 두려운 여자와 그녀밖에 모르는 남자의 애틋한 로맨스!《다시 사랑할까요》
<재능의 불시착> 직장이라는 우주를 아직 비행 중인 사람들에게, ‘일하는 이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보내는 가장 적당한 위로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시리즈로 10만 직장인들의 지지를 받은 박소연 작가의 첫 번째 직장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집 『재능의 불시착』이 출간됐다. 국무총리상을 수상할 정도로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왔던 저자가 일 잘하는 노하우를 담은 전작들과는 완연히 결을 달리한 첫 소설집에는 ‘일 잘하는’ 이들이 아닌 ‘일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직장인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느꼈을 야릇한 소외감, 비릿한 자괴감, 소박한 연대감 앞에서 짓게 되는 미묘한 표정들을 리얼리티 넘치는 상황을 통해 그려내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 책은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묘한 퇴사 절차를 밟는 막내 사원의 사연(「막내가 사라졌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나섰다가 이상과 현실의 아찔한 거리감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가슴 뛰는 일을 찾습니다」), 악의 없이 무능한 직장 내 ‘빌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전설의 앤드류 선배」), 취미라 해야 할지 특기라 해야 할지 이름 붙이기조차 애매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재능의 불시착」),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종종 우리를 구원해주었던 소소한 영웅들(「언성 히어로즈」) 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