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알았던 진실이 오늘은 모두 거짓이 된다! 사이비종교가 말하는 종말론의 실체를 파헤친다.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와 전쟁으로 인해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지구인들은 종말에 대비해서 돔을 많이 만들었다. 그곳의 생활은 전기조차 할당을 받아 사용해야 할 만큼 여락 했고 문명은 점점 퇴보해 갔다. 돔 밖의 세상은 어둠뿐이며, 돔 안으로 채 들어서지 못한 이들은 크롬 생활을 한다. 크롬들은 돔 밖에서 돔 안의 인간들을 납치해가며, 그들을 먹고 산다고 했다. '리'는 살아남은 자들이 있는 돔 안에서 태어나 돔 밖의 세상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중 옆집 소녀 '주노'에게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혼돈에 빠지게 되는데…….
<소현> <추천평> 첫줄부터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럴 수도 있구나! 문장과 문장이 방심을 용납하지 않았다. 한국어가 이토록 정밀하다면 도대체 번역은 어찌 가능할 것인가, 차라리 걱정이 될 정도로. 김인숙은 그렇게 능멸의 서사를 냉정하게 복원해냈다. 완전히 굴복한 자의 처지에서. 먼저 읽었다고 무엇을 덧붙일 것인가. 볼모로 잡혀간 세자는 아득한 세월이 지나 아비인 임금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울거라, 네 몸에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 이게 김인숙의 ‘조선’이다. - 김남일(소설가) “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이 작은 나라의 비루함이 아니었다”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 김인숙의 2010년 신작 『소현』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돌아왔으나 귀국 두 달 만에 사망한 비운의 세자, 소현 세자의 마지막 2년의 이야기! 생생한 스토리텔링과 섬세한 묘사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 김인숙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리하리라. 그리되기를 위하여 내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명의 역사 속 인물, 소현 세자! 그는 조선을 사랑했지만 조선은 그를 버렸다! 이제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한다! - 비운의 세자 소현의 운명을 통해 대 격변 시대의 정점을 그린 소설 『소현』 병자호란의 패전으로 참담함의 정점에 놓인 조선. 패전국의 세자인 소현은 대국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고독과 죽음의 불안 속에서 8년여의 세월을 보낸다. 김인숙의 소설 『소현』은 청나라가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중국 대륙을 제패하던 시점, 소현 세자가 볼모 생활을 마치고 환국하던 1644년 전후를 담고 있다. 청이 승리하면 환국할 수 있지만 조선의 굴욕은 끝나지 않는다는 모순된 운명에 놓인 소현. 그는 결국 조선을 친 적국 청나라의 승전을 목격하고 환국한다. 언젠가는 조선이 진실로 강해리라는 절실한 꿈을 가슴에 품은 채. 그러나 그의 모국인 조선은 소현을 끝내 품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기고 자존을 빼앗기고 자식을 빼앗겨 통한의 눈물을 삼켰던 왕(인조)과 신하들에게 장성한(더구나 청나라 왕족들의 신임을 얻은) 소현은 왕위를 위협하는 적일 뿐이었다. 『소현』은 끝내 왕이 되지 못한 채 꿈처럼 사라진 비운의 세자 소현이 처해 있던 현실과 그의 내면에 깊게 드리워져 있던 비애를 통해, 조선이 가장 위태롭고 혼란스러웠던 시기의 이야기를 장대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 정복자들의 전쟁이 남긴 조선의 상흔을 생생하게 담은 작품 정복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건 비단 소현 세자만이 아니다. 소현 세자를 보위하기 위해 함께 볼모로 끌려간 소현의 아우 봉림 대군과 좌의정 심기원의 아들 심석경, 청의 황제에게 바쳐졌다가 대학사의 둘째부인으로 되바쳐진 회은군의 딸 흔과 그녀의 종인 무녀 막금, 청나라 군인들에게 어머니와 누이가 능욕과 도륙을 당한 역관이자 상인 만상, 그리고 소현에게 조선의 미래를 기대하는 무수한 백성들…… 어느 하나 거대한 권력 투쟁의 칼날에 베이고 찢기지 않은 이가 없다. 요컨대 『소현』은 왕의 아들인 소현 세자를 비롯, 양반과 중인과 천민의 운명이 당시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서로들 어떻게 맞물리고 펼쳐지는지 전체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이다. 이 모든 인물들의 통한과 두려움, 좌절, 욕망, 갈등은 당시 거대한 권력 투쟁에 도륙 당한 조선의 얼굴 그 자체인 것이다. -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엮어낸 고밀도 팩션 작가 김인숙은 소현 세자의 볼모 생활과 환국, 좌의정 심기원과 회은군을 중심으로 한 역모 사건, 명과 청의 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실과 소현 세자, 봉림 대군, 심기원, 심석경 등의 실존 인물 사이로 흔, 막금, 만상의 이야기를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엮어 이 소설을 완성해냈다. 소현과 심석경을 비롯한 실존 인물들은 마치 작가가 역사서에 기록된 차가운 텍스트로부터 그들을 꺼내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은 듯 생생하고, 작가의 상상에 의해 탄생된 인물들은 실제로 그때 그곳에 존재했던 이들처럼 당시 혼란했던 상황의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당시의 역사가 단지 기록이 아닌 풍부한 서사로서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 여자의 자서전> 1983년 등단 이래 꾸준히 문제작을 발표해온 김인숙(金仁淑)의 5년 만의 신작소설집. 20년이 넘는 작품활동을 통해 시대적 고민과 내면적 성찰이 오롯이 결합하는 드문 예를 보여준 바 있는 김인숙은 이 책에서 한 세대의 열정과 환멸을 개인의 꿈과 좌절에 겹쳐놓으며, 사랑과 꿈이 사라진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문체로 묻는다. 최근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을 수상하며 한층 깊어진 김인숙 소설의 변모를 만날 수 있다. 1980년대에 이십대를 보낸 여성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한 「그 여자의 자서전」 「숨은 샘」 「바다와 나비」, 현실에서 낙오하고 실연의 상처로 방황하는 남자을 내세운 「감옥의 뜰」 「밤의 고속도로」, 경제적 곤란 등으로 삶의 위기에 놓인 주변부 여성을 그린「모텔 알프스」 「빨간 풍선」 등의 작품들은 슬픔과 환멸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발견하는 인물을 생생한 스토리텔링과 섬세한 묘사로 그려냈다.
<안녕, 엘레나> 1983년 스무살의 나이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80년대에 이십대를 보낸 이들의 고민과 방황, 90년대를 대표하는 후일담 문학, 결혼을 둘러싼 여성문제와 가족문제, 그리고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까지 다양한 작품세계와 주제의식의 확장으로 우리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져온 작가 김인숙의 신작 소설집 『안녕, 엘레나』가 출간되었다. 발표 당시부터 호평을 받았던 빼어난 단편 7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에서는 영혼과 육신에 말이 되지 못한 아픔과 상처를 지닌 존재들이 살아가는 기형적인 삶을 한층 웅숭깊은 연민과 성찰로 보듬는 작가의 시선이 눈에 띈다. “피에 젖은 상실과 그것을 넘어가려는 고요한 긍정 사이에 김인숙의 소설이 그리는 초월적 꿈이 있다”(박범신)는 평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김인숙 소설의 미학과 주제의식을 한 쾌에 묶어내는 유효적절한 평이다.
<미칠 수 있겠니>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김인숙의 2011년 신작 장편소설 한 여자의 미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의 만난 진실, 그 후에 만나게 되는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소설은 사랑에 관한 진정성뿐만 아니라, 지진 해일과 같은 거대한 자연재해를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극한 상황에 대한 섬세하고 절절한 묘사와 슬픔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애절하고 절실하게 담아낸 이 소설은, 미칠 것 같은 상황을 맞대면하면서도 그것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야만 하는 것이 인생임을 보여준다. 책은 지진 해일처럼 무너지고 다 쓰러져서 없어지는 이야기가 아닌, 무너지고 난 후 삶에 대해 더 깊어지는 애정과 새로운 사랑에 관한 진실된 이야기다. 『미칠 수 있겠니』는 드라이버 이야나와 친구 만, 만의 외국인 의붓엄마,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진과 가구 디자이너인 진의 남편 유진, 섬에서 만난 써번트 여자아이와 춤을 잘 추는 남자아이 등등 인물 각각의 사연들이 7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과 현재 일어난 지진 해일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하나둘씩 퍼즐처럼 맞춰진다. 소설 속의 주인공 진은 살인사건을 겪고 나서도 죽지 못하고, 오랜 시간 동안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묵묵히 참아내며 유진을 찾아 매번 섬으로 온다. 7년 전 사건을 통해 잃어버리고 싶었던 그러나 잊을 수 없었던 기억을, 힐러의 치료를 통해 찾게 된다. 그녀만이 정확히 알고 있는 사건에 대한 기억을. 약혼자 수니와 헤어진 이야나는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었던, 그냥 사는 게 너무 귀찮았던 그는, 쓰나미를 겪고 삶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된다.
<벚꽃의 우주>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열세 번째 책 출간! ■ 이 책에 대하여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열세 번째 소설선, 『벚꽃의 우주』가 출간되었다. 2018년 7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는 이번 소설은 2014년 발표한 『모든 빛깔들의 밤』 이후 5년 만에 출간되는 김인숙의 신작 장편이다.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김일성이 사망하고, 지존파의 살인이 자행되었던 1994년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로 회자되는 해이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다시 견고하게 지켜내고자 했던 『벚꽃의 우주』 미라의 이야기는 바로 그 해, 1994년으로부터 시작된다. 낚시터 근처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던 미라에게 엄마의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근처 천문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엄마의 애인을 미라는 ‘천문대’라고 불렀다. 엄마의 결혼식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았던 어느 날, 셋이 함께 처음으로 나선 나들이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미라는 엄마를 잃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철저히 혼자인 채 외로이 살아가던 미라는 성인이 된 이후 민혁을 만나 안정된 미래를 꿈꾸지만 프러포즈를 받으리라 짐작한 그날, 프러포즈 대신 민혁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고백을 듣게 된다. 재개발을 앞둔 뒤숭숭한 동네, 어느 빈집에서 본드를 불던 무리 중 하나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죽은 친구를 암매장했고, 그 무리 중 하나가 바로 민혁이었다. 미라는 고민 끝에, 그 사실을 묻고 민혁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아들 수온을 낳고 평범한 삶을 이어가던 미라에게 ‘공폐가 합동 정리 및 지원’에 관한 통보서가 날아든다. 엄마가 미라에게 남긴 집의 정리를 위해 오랜만에 옛집을 방문한 미라는 집 마당에서 엄마의 애인이었던 ‘천문대’를 만난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죽게 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무력하게 살던 천문대가, 홀로 남겨진 그 집을 꽃밭으로 가꾸고 있었던 것이다. 미라는 그날 이후 그 폐가 자리에 펜션을 짓기로 마음먹는다. 시골로 내려온 미라는 ‘천문대’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미라펜션’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94년, 민혁과 함께 친구의 죽음을 묻고 살아온 정명주를 손님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연이어 그 펜션에서 의문의 사고사가 일어난다. 그 사고들의 중심에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자신의 우주를 지키고자 한 미라가 있었다. 엄마를 잃고 고독과 증오 속에서 성장한 미라는 누구보다도 안정적인 ‘집’을 갖길 원했다. 성인이 된 그녀는, 친척들과 동네사람들로부터 필사적으로 지켜낸 엄마의 집에 그녀의 방과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아이가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녀의 집을 만든다. 미라펜션은 미라네 ‘집’의 다른 이름이었다. “멈춰버린 성장과 가속페달을 밟아버린 성장이 동시에 존재”하던 미라는 엄마가 아직 살아 있는 세계와 엄마라는 거대한 우주가 통째로 소멸된 쓸쓸한 세계에서 살았던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기 원했다. 그런 연유로 그 우주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매번 선택을 해야만 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어려울 것도 없고, 세 번째부터는 껌이다.” “다시 산다고 해도 나는 수온이를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을 거니까요. 그러려면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다시 민혁이라는 남자를 사랑해야 하잖아요. 또 미친 듯이, 또 온 마음으로, 내 운명을 다 바쳐서 사랑해야 하는 거잖아요. 사랑이란 건, 그런 거잖아요.” 본인의 결단이 죄악으로 귀결될 걸 알면서도 선택에 선택을 거듭하는 미라. 불안과 공포 속에 위악적인 인간들의 외로움이 그들만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선택하는 비애를 그린 소설이다.
<모든 빛깔들의 밤> 심연을 겨냥하는 시선,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 언제나 삶의 중심으로 걸어들어가는 김인숙 신작 장편소설 1983년 스무 살이던 해에 문단에 나왔다. 그로부터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소설가로 살아온 삶.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그간 받아온 굵직한 문학상들을 모두 나열하자면 한 줄로는 모자랄 성싶다. 그러나 오히려 이쯤 되면, 그런 소설가로서의 삶의 이력이 대단하다기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계절이 지나가면서 남기고 가는 낙엽이나 빗줄기처럼. 그저 한결같이 이야기를 써온 삶 자체가 놀라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소설을 써왔고 그것으로 무슨 상을 수상했다는, 그런 문장들은 모두 지우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 펴내는 책 제목 하나만 써놓고 싶다, “모든 빛깔들의 밤”. 연재 당시(2012년 문학동네 카페에 ‘마침내 모든 빛깔을 밤이 당겨갈 때’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이 소설은 심연을 겨냥하는 시선과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으로 언제나 삶의 중심으로 걸어들어가는 작가의 경향을 그 어떤 때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연한 사고, 필연적인 만남 상실을 둘러싼 비극과 미스터리 기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 안에는 희중의 아내 조안과 그들의 어린아이가 타고 있었다. 조안은 기차에서 아이를 살리고자 창밖으로 던졌으나, 바로 그 판단 때문에 아이가 죽고 그녀 혼자만 살아남는다. 희중은 소중한 존재를 모두 잃을 뻔했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살아 돌아왔기에 묵묵히 그녀를 돌본다. 조안은 사고의 충격과 상실의 슬픔으로 심인성 기억상실증에 빠지고 자신이 아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잊는다. 이제 극심한 비통함은 오로지 희중의 몫으로 남는다. 기차가 전복될 때, 그 근처를 지나던 사내가 있었다. 백주는 거구인 자신을 비웃는 건달들을 건드렸다가 그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도망을 치던 중이었다. 쫓고 쫓기던 그들은 갑자기 들려온 폭발음에 일제히 멈춰 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백주는 방안을 가득 채운 귀신들을 본다. 사고 현장에서 도망치던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 이곳까지 따라온 귀신들을. 아픔은 전혀 희미해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한 아파트의 417호와 517호에 거주하게 된다. 서로가 그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517호의 백주는 아랫집에서 끈질기게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참지 못하고 항의한다. 417호의 희중은 발끈한다. 집에는 언제나 수면제에 취해 잠든 조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애 있잖습니까?” 하는 백주의 말에 “애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말았기 때문에, 그 대답이 아직 잃어버리지 못한 아이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불행에 드리워진 과거까지 모두 견딜 수 있는가. 누나 걱정에 자꾸 집으로 찾아오는 조안의 남동생 상윤. 생각은 짧고, 그러니 주먹이 앞선다. 그는 선로에 누워 자살을 기도한 남자가 일하던 회사의 사장을 찾아가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바로 그 때문에 조카가 죽었다고 믿는 것이다. 상윤은 무작정 사장의 집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남자를 두들겨팬다. 그러나 그는 사장도, 그 동네 주민도 아니었다. 희중은 상윤의 단순함을 견딜 수 없다. “그래. 그 트럭회사 사장이란 놈은 용역비를 못 받은 게 반년째라더라. 왜 그런지는 알아? 환경단체에서 공사를 막고 있거든. 그건 또 왜 그런지 아니? 근처에 철새 도래지가 있거든. 넌 뉴스도 안 봐? 네가 굳이 양아치들 풀어서 알아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얘긴 다 뉴스에 나온 거거든!” “그래서 뭐, 철새 책임이라는 거야?” “관두자. 네 머리가 새대가리보다 못하다는 걸 내가 깜빡했다!” (……) “아무도 잘못이 없는데 다 죽었어? 겨우 한다는 말이 새새끼들 잘못이라고? 나도 이렇게 참을 수가 없는데, 형은 아빠였잖아! 씨발!” 희중은 원인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한다고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인이란 버튼처럼 사건과 단순하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어쩌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의 체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 어쩐지 이상한 구석이 있다. 희중은 사고의 원인, 아니 그보다는 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 지금 여기에 있다고 여기지 않는 듯하다. 이야기는 이십삼 년 전, 실족사로 위장된 아버지의 자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순간의 불행에 드리워진 아주 길고 긴 그림자. 희중은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재미를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부친을 자살로 이끈 것이다. 그러니까, 인과관계가 불투명하게 처리된 이야기들을 연결하면 이렇게 될까. 이십삼 년 전, 한 소녀가 살해당한다. 어린 희중은 그날 아버지의 우산살 사이로 흘러내리는 핏물을 보았다고, 아버지의 바지주머니 안에서 여자아이의 머리핀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저 친구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그 소문으로 교사였던 아버지가 자살한다. 희중은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아니 무엇보다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던 어느 날, 기차 전복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로 희중의 아이가 죽는다.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이십삼 년 전 저지른 죄에 대한 뒤늦은 벌일까. 밤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반짝이는 기쁨, 투명한 슬픔, 어른거리는 죄책감…… 그 모든 빛깔들의 밤. 전작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사, 2010)에는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져서 배가 볼록한 여자를 칼로 찌르려는 장면이 있다. 살해하려는 순간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고 곧이어 출처와 경위가 불분명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이 피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어쩌면 이 소설을 이끌고 가는 중요한 동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진’과 ‘살인’을 겹쳐놓기, 즉 자연사( ?zv)와 인간사( ?v)를 겹쳐놓기.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비슷한 모티프를 보여준다. 정부, 용역 업체, 철새 등 그 어떤 것의 책임도 아닌, 따라서 자연사라고 봐도 무방할 이 사고에 작가는 인간사를 포개놓는다. 슬픔과 고통에 희중이 점점 제정신을 잃어가는 사이, 숨겨진 그의 과거와 죄책감이 풀려나온다. 기차사고는 정말 이십삼 년 전 그의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연사와 인간사를 겹쳐놓으면서 작가가 하려는 말은 무엇일까. 밤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우리의 이 검은 밤은 어떤 것들로 소용돌이치고 있는가. 금세 사라질 것 같은 반짝거리는 환희, 너무도 자명하여 투명한 슬픔, 아슴푸레하지만 끊임없이 아른거리는 죄책감…… 이 모든 빛깔들이 한곳으로 흘러가서는 밤이 된다고, 그러니까 그 밤을 우리는 까맣다 여기며, 모르는 체 살아가는 것은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에는 ‘작가의 말’이 없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부려놓고 또 무슨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겠냐는 뜻일까. 이 년 전 연재를 시작하며 작가가 독자에게 건넸던 말들을 불러와본다. 이 소설의 인물들처럼 긴 그림자를 저마다의 꽁무니에 매달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문장들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연재가 끝날 때 ‘내 최초의 독자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라고 쓰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가 세상의 밝은 곳만 골라 디디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서입니다. 그러나 사는 게 다 그렇지 못하니, 혹시 상심하는 날이 있으면, 혹시 뜻밖에 상처받는 일이 있으면, 이렇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무서워도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고. 그럴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하라고. _‘연재를 시작하며’ 중에서
<작은곰자리> "‘바람만 불어와도 설레던 그때의 풋풋함’ ‘가랑비에 젖은 옷의 무게는 무거웠다, 사랑처럼.’ ‘추억을 자극하는 김인숙 작가의 청춘 소설’ 그때 그 시절의 사랑은 누구보다 간절했고 뜨거웠으며, 서툴고 어색했으며, 시리도록 아팠다. 이 첫사랑의 감정을 눈에 보이는 듯이 묘사한 〈작은곰자리〉는 그때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청소년과 일상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그리고 아련한 시절을 표현하는 작가의 시선까지 더해져 ‘세월이 많이도 흘렀네.’라는 생각까지 스친다. 스토리를 한 글자 한 글자 읽다 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우리도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