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였어. 미안.” 후회, 당황스러움,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한 눈빛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김찬의 눈빛은 너무도 담담했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할 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저는 실수 아닌데요.” 지나는 숨을 훅 들이쉬었다. 뚫어질 듯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른의 눈빛이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냥……, 감정에 휩쓸린 거야.” “아뇨. 전 아니에요.” “잠깐. 김찬. 너…….” 뭔가 정리를 해보려는 노력을 비웃듯이 그가 말을 끊었다. “나랑, 사귈래요?” 쇼팽을 사랑하고, 감성적인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윤지나. 신서 그룹의 후계자 김진웅과의 정략 결혼을 위해, 그의 남동생 김찬의 피아노 레슨을 핑계로 그룹 본가에 발을 들인다. 진웅은 한결같이 그녀에게 든든하고 자상하게 대해주지만, 지나는 어쩐지 여린 감성으로 쇼팽을 연주하는 그의 배다른 동생, 김찬에게 자꾸만 시선이 향하고…….
기다리면 언제가 한번 쯤은 제대로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그의 상황이 어떤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하지만,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지금 이순간 뼈저리게 깨달았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연주는 입술 한쪽을 치켜올렸다. 떨리는 손을 감추려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곤 거침없는 시선을 그의 눈동자에 고정시켰다. “착각?”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연주의 심장도 거세게 뛰었다. “우리, 오빠 동생은 못하지 않나요? 피도 안 섞였는데.”...연주는 속눈썹을 길게 드리우곤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취향은 이강준인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형편없이 떨렸지만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으나 들키고 싶지 않았다.강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 한참 동안이나 차가운 표정으로 연주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이 살벌해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지만 연주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 더 필요해요?”그녀의 당돌한 말에 강준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연주는 시니컬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후회하지마."그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