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에서 온 한 여인으로 인해잔학했던 혈귀가 사람의 감정을 알아간다.기쁨. 슬픔. 아픔. 미움. 분노. 그리고 욕심과 외로움…….그리움의 이유가 되는 일곱 가지 마음.언젠가 이 모든 것을 배우게 되면,그땐 혼자만의 고독이 아닌 지독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겠지.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막사로 고개를 돌렸다.검휘의 그림자가 다가오자, 순간 긴장한 서연은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살짝 열어젖힌 장폭사이로 찬바람 한 가닥이 들어와 서연의 뺨을 쓸었다.서늘한 바람 냄새와 함께 코앞까지 다가선 그의 한기가 느껴졌다.너로 인해 마음 하나를 배웠다.낮게 내리깔린 목소리가 무겁게 들려왔지만 서연은 침묵했다.외로움…….너무나 아프게 들리는 그 목소리에 서연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말았다.검게 빛나는 검휘의 눈동자가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담았다.그것을 배워 깨달은 것이 있지.누군가로 인한 외로움은 혼자만의 고독보다 잔인하다는 것을…….
한성대학병원 수술실을 주름잡던 책임 간호사 한미사와 GS닥터 장지혁 교수가 푸른 재활병원에서 다시 만났다. 담당 환자들을 죽 돌아본 지혁이 마침내 일을 끝내고 미사 쪽으로 다가왔다. 그때까지 바쁘게 환자차트를 기록하던 미사가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이트 근무자한테 핫덱 추가로 넣으라고 인계해주시고.” “네.” 지혁이 닥터 컨설팅지에 글씨를 써나가며 말했다. 오더 작성을 끝낸 그가 볼펜을 내려놓으며 미사를 쳐다보았다. 미사가 오더지를 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내일 GS 오더 데이인 건 알죠?” “네. 알고 있습니다.” “오전에 CBC 하는 거 잊지 말고 꼭 인계해주시고.” “네.” “투데이 미드나이트. 12시. 기다립니다?” “네. 네?” 그가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했다. 기계적으로 대답하던 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혁을 쳐다보았다.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알고 갑니다.” 지혁이 오더지를 그녀 손에 살포시 쥐어준 뒤 빙긋 웃으며 ICU를 나갔다. 미사가 무안한 듯 얼굴을 붉혔다. 이렇게 밥 한번 먹자고 한 것도 벌써 세 번째였다. 그는 정말 오늘 약속장소에 나오길 기대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