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지켜주겠다, 아껴주겠다 그런 얘기는 못한다. 궁으로 돌아갔을 때 상황이 좋지 못하면 난 아마 널 다시 외면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난 네가 필요하다. 그러니 가지 말고 나와 있어주면…… 안 되겠느냐? 원 간섭기, 차고 담대한 성품의 고려 세자 장은 아비의 충신인 조인규의 딸 소연과 심상치 않은 첫 만남을 갖는다. 그는 원나라 공주만을 연모해야 하는 숙명 앞에 자신의 비가 된 그녀를 차갑게 외면하지만, 어지러운 정치 상황 속에 운명은 전혀 생각도 못한 방향으로 그를 이끄는데……. 그가 소연을 원하고 있다. 폭풍보다도 더 거세고 혼란스러운 열정으로 가득 찬 눈이 오로지 그녀만 보고 있다. 소연은 감격에 못 이겨 환하게 웃으며 그를 불렀다. “저하!”
<운라무곡> 1. 앞표지 “당신, 도둑이군요. 감히 취산장의 취화를 훔치다니요!” 그림자는 소녀의 지적에 조용히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사막의 혼령에게 계시를 받고 취산장에 숨어들 때부터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림자는 소녀의 지적을 받기 전까지 자신의 손에 무엇이 들려져 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하, 그래. 난 도둑이야.” “하지만 취화는 훔쳐도 소용없어요. 여길 벗어나는 순간 시들어 버릴 테니까요.” “알아, 하지만 그래도 꼭 한 번 훔쳐 보고 싶었단다. 비록 잠시 잠깐밖에 가질 수 없어도 꼭 한 번 내 손에 쥐어보고 싶었어.” 그림자의 음성에는 깊은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소녀의 눈빛이 조용히 흔들렸다. 소녀는 그림자가 제지할 틈도 없이 손을 들어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취화를 어루만졌다. “그토록 원하는 것이라면 가져가세요. 주인께는 제가 꺾었다 말씀드릴 테니까요.” 뜻밖의 제안에 그림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웃음에서조차 쓸쓸함이 묻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를 바라보던 소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본 그림자는 다시 한 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소녀의 손이 그의 얼굴을 향해 움직이자 그림자는 본능적으로 밀어냈다. 불안했다. 지금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순간순간 넋을 잃는데, 소녀의 손길이 닿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니, 난 잠시나마 가졌던 것으로 됐어. 이 꽃은 너에게 줄게. 받아주겠니?” 2. 뒷표지 “그러니까 그 말은… 할 수 없다 끝없이 되뇔 만큼 내게 끌리고 있다는 뜻이오?” “저하…….” “내게 마음이 기울고 있다 그런 뜻이냔 말이오.” “아니, 아닙니다. 아니에요!” 가연은 다급한 음성으로 외쳤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말에서 진심을 간파한 칼란은 그녀의 부정에 속지 않았다. “더는 자신을 속이지 마시오!” 칼란은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이 가득한 눈으로 가연을 바라보았다. 지독할 정도로 진심만이 담긴 눈이다. 연정으로 한껏 뜨거워진 눈이 자신을 바라보자 가연은 울고 싶어졌다. “공녀!” 칼란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가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짙은 유혹이 담긴 손이다. 이 손을 잡으면, 잡고 그의 품에 안기면 이제 두 번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운 것들을 하나도 보지 못하게 되겠지. ‘헌데 왜 난 이 손을 잡고 싶은 거지?’ 발췌글 “후회하오?” “저하!” 갑자기 들려온 굵직한 음성에 놀란 가연은 칼란을 바라보았다.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자고 있던 그가 어느 순간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뜨겁게 느껴지는 눈이 도전적으로 부딪쳐왔다. “후회하냐고 물었소.” 칼란의 눈과 표정은 차가워 보였다. 하지만 쉽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가연의 눈에 희미하게 떨리는 사내의 손이 들어왔다. 놀란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차갑다 생각했던 눈이, 얼굴이, 사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또다시 그녀가 자신을 거부할까 봐, 한순간의 꿈처럼 이 모든 것이 끝나 버릴까 봐,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숨죽이고 있었다. 눈물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낀 가연은 이성적인 무언가가 떠오르기 전에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그를 품에 안았다. “후회하지 않아요.” “공녀?” “이상하지요? 후회해야 마땅한데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뜻밖의 대답에 놀란 칼란은 가연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진심인지 확인하려는 듯 그녀의 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진심… 이오?” “네, 진심이에요.” 가연의 눈에는 한 점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가연을 응시하던 칼란의 눈빛이 천천히 환해졌다.
※ 이 책은 연리지, 운라무곡, 왈가닥 납치소동, 연약- 붉은 낙인을 새기다와 연작입니다. “이제 이 계집은 내 것이다. 어찌하든 내 마음이지.” 흑야의 음성은 나른했다. 다시 한 번 화연의 목덜미를 쑥 빨아들여 화인을 남긴 그는 순식간에 다시 저만치 달아났다. 신전 하녀에서 일약 연국의 공주이자 신전의 후계가 된 화연은 사고뭉치에 특이한 성품의 말괄량이로 보다 못한 백룡에 의해 천계로 끌려가 훈련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백룡의 천적인 흑룡의 눈에 띄어 납치되고 급기야 천계의 음모에 휘말리게 되는데……. “차라리 죽여 버릴까?” 소리 내어 말할 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입으로 내뱉고 나니 섬뜩하다기보다는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생명력을 얻어 생기는 이로움보다 그녀로 인해 느끼는 이 감정들이 더 위험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곤히 잠들어 있는 화연에게 다가갔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가녀린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화연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 달빛이 가득 내려앉았다. 매서운 냉기가 가득한 그의 얼굴은 흡사 악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책은 운라무곡, 왈가닥 납치소동, 연약- 붉은 낙인을 새기다, 용의 신부와 연작입니다.연리지(連理枝) “청을 들어주었으니 네 맹세를 받아야겠다마는, 짐은 계집한테 사내들에게 받는 것과 같은 충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허니 다른 방법으로 짐에게 충성하여라!”연국 최고 권력자 평왕의 양녀인 사린은 남장을 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거칠 것 없는 말괄랑이. 그녀는 우연히 변복한 황제의 눈에 들게 되고 사린을 사내라 믿은 그는 신하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조정에 엮이기 싫은 사린은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다. 그러나 얼마못가 장터에 평왕이 그녀를 황제의 후궁으로 보내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격분한 사린은 황제를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지으려 하는데…….“사린, 만약에……. 짐이 아니라 하면, 아무 증거도 대지 못하고 그저 아니라 하면 그대는 그 말을 믿을 것이오?”무조건 믿을 수 있냐는 그의 물음. 사린은 순간 아찔했다. ‘다들 미쳤다고 하겠지. 나도 예전 같으면 그리 말했을 게야. 하지만 이분이 아니라 한다면 난…… 믿고 싶어.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폐하라면, 이분의 말이라면 난……. 난!’“아!”사린은 조금 전까지 그를 의심하며 칼을 겨누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대신 그 순간 그를 절대적으로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닫고 경악했다. 그녀가 절대 피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은근히 열망했던 감정. 그것이 하필 지금, 원수일지도 몰라 경계해야 할 사내를 향해 모습을 드러내다니.
진하의 놀란 눈을 여빈은 대담하게 마주 보았다. 하지만 두 눈 가득히 자리한 두려움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녀의 눈이 긴장을 머금고 마구 흔들렸다. 당장이라도 그를 피해 어디론가 눈길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뻔뻔하게 그녀를 노려보던 영주의 눈빛이 떠오른 여빈은 죽을힘을 다해 버텨 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사랑을 믿지 않는 차가운 남자 진하와 버거운 생활 속에서도 밝고 씩씩한 여자 여빈. 그들은 우연히 만나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사이에 자리한 지독한 악연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는데……
“애인 있습니까?”“네?”“없으면, 아니 있어도 나랑 만납시다.” 갑작스런 말에 연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직설적이고 자신만만했다. 연서는 간신히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저었다.“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강문혁 사장님께 원하는 건 인터뷰뿐이에요.”“난 기자 지연서가 아니라 여자 지연서에 더 관심이 갑니다만?”약혼자의 배신으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연서에게 날아든 삼류잡지의 은밀한 제안, 1년 전 그녀가 인터뷰를 따냈던 사업가 강문혁의 사생활을 캐내라! 미리 계약금을 가져가 버린 친구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문혁을 찾아간 연서는 얼떨결에 그의 집에 머물며 인터뷰를 하게 된다. 연서는 문혁을 속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떠올리며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만 그와 마주할수록 도발과 유혹에 흔들리며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데……
“죽어도 대장군의 첩이 되는 일은 없을 테니 다시는 묻지 마세요.” 이수의 꿈은 특별할 게 없었다. 비록 남장을 하고 거리의 왈패 소매치기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동생과 함께 먹을 고기 한 조각만 있어도 행복했다. 그러나 그런 이수의 앞에 인생 최대의 위기가 도래했다. 담양국 최고의 영웅 소룡 대장군 이도하(李導嘏). 곱상한 사내 아이들을 주워 모은다는 풍문이 있는 그의 침실에 남장을 한 채로 강제로 밀어 넣어진 것이다. 그와 엮이며 여러 사건에 휘말린 이수는 어떻게든 달아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오히려 멀어지기는커녕 여인의 모습을 한 채 도하의 손아귀에 걸리고 만다. “네가 살수건 아니건, 네게 그 면사가 있건 없건 다 상관없다. 어차피 넌 이 밤이 다 가기도 전에 네가 가진 마지막 하나까지 전부 다 내게 내어주게 될 테니까.” 본의 아니게 여인으로도 도하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이수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자 한다. 그러나 도하의 어머니가 그녀가 계집임을 단박에 알아 볼 줄이야. “처음이구나. 대장군이 사내가 아니라 계집아일 데려오다니 말이야.” 그녀는 막무가내로 도하의 방에 이수를 처넣으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널 대장군의 측실로 들여야겠다.”
“난 정부 같은 건 안 해요. 그러니 내가 당신 곁에 있길 원한다면…… 정식으로 혼인해요, 우리.” 추영은 소환국 명문가 왕씨 가문의 며느리로 온화한 성품에 단정한 외모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 빼면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했던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고, 친구라 믿었던 염선과 남편의 불륜이 드러나며 큰 충격에 빠지고, 설상가상 염선이 적국 출신으로 밝혀지며 가문이 위기에 빠지자 추영은 가문의 희생양이 되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간신히 가문의 추격으로부터 도망치던 추영은 한 사내의 마차 안으로 뛰어들게 되는데, 곧 그 마차의 주인이 무뢰배나 다름없는 소락 상단의 단주 서휘임을 알게 되고 경악한다. 어느 귀족가의 사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우아하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가졌지만 동시에 예절이라고는 모르는 대담하고 경박한 사내. 그런데 그 사내가 추영을 원한다. “그대가 내 정부가 되는 건 어떻습니까?” 정부라니. 그러나 망설임도 잠시, 추영은 곧 왕씨 가문을 향한 치솟는 복수심에 사로잡히고, 결국 정식 혼인을 요구하며 사내의 손을 잡는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 경박한 사내가 사실은 황월국의 황자였을 줄은. 자신이 조건으로 내건 혼인이 족쇄가 되어 그녀를 속박할 줄은.
은애하던 이, 화람의 혼인을 막기 위해 사대부 여식임에도 담을 넘은 여진. 화람이 친우인 강과 함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영의정 댁 담을 감히 넘었다. 그러나. “도련님, 소녀 옆집 좌의정 대감의 여식 우여진입니다. 소녀, 도련님을 연모합니다. 공주 자가(自家)와 혼인하지 마셔요. 공주 자가 말고 소녀와 혼인해주셔요!” 침묵이 흘렀다. “정말 나와 혼인하길 원하느냐?” 예상했던 나긋하고 다정한 음성이 아닌 딱딱하고 건조한,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여진은 불길한 예감에 몸서리치며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가, 강이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어찌!” “여긴 내 방이다. 내 방에 내가 있는 게 그리도 놀랄 일이더냐?” 순간 여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일이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일 수가. “혼인이라, 뭐 나쁘지 않지. 날이 밝는 즉시 아버님께 말씀드려 혼담을 진행시키마.” 웃음기 없는 얼굴이 흡사 저승사자 같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진은 몰랐다. 강이 생각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위험한 사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