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김도연
평균평점
헤븐 블레스 뎀 (Heaven bless them)

저에게 유혹당했나요?20년 동안 소화당에서 유폐된 채 어머니, 소의 정씨와 함께 살아온 미아. 그녀는 왕후의 명에 의해 러시아 인 사업가, 이안의 옆에 누워 밤을 보낸다. 강제로 함께했지만 침실을 나서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그가 미아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어느 날, 다시 그녀를 찾아온 왕후는 러시아 인을 신랑으로 맞도록 종용한다. 그녀는 왕후를 기쁘...

화촉동방

<화촉동방> 가난 때문에 족보를 팔아 천민의 아내가 된 그녀. 조부가 정2품까지 지낸 양반가문인 인영의 집안은 음해 세력의 모함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멸문하게 된다. 결국 진실이 밝혀져 신분은 복권되지만, 끔찍한 가난은 여전했기에 그녀는 자신에게 접근해 온 한 부자를 만나 혼인을 약속한다. 그리고 얼마 후, 혼인 상대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이건이라는 천민 출신의 거부와 마주친 그녀.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의문을 느낀 것도 잠시, 이내 그로부터 뜻밖의 혼인 제의를 받게 된 인영은 그가 제시한 큰 금액에 흔들려 돈과 족보를 위한 혼례를 올리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첫날밤을 맞게 되는데…. ▶잠깐 맛보기 인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의 뒤틀린 미소가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족보에 팔려온 여자를 품평하는 듯 이러 저리 훑어보는 이건의 눈에 인영은 마치 발가벗겨진 채 이건의 처분을 기다리는 물건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당신 옷을 벗겨 주기를 기다리는 거요?」 이건의 말에 인영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인영은 이를 무시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건의 시선과 마주치자 인영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숨이 가빠졌다. 마치 먹이를 앞에 놓고 툭툭 건드리며 때를 기다리는 맹수를 보는 것 같았다. 압도적인 그 분위기에 긴장으로 입술이 경련하자, 인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수고를 하실 필요가 있으시겠습니까?」 상당히 도전적인 말이었다. 이건은 한쪽 눈썹을 치떴다. 그녀는 마치 새색시의 내숭을 포기한 듯 보였다. 지아비에게 신부의 옷을 벗기는 특권 따윈 주고 싶지 않다는 것 같았다. 이건은 씁쓸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영을 곁에 두고 싶다 생각했을 때 이런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바랐던 건 새색시의 수줍은 미소뿐이었다. 이건은 아내의 옷을 한 올 한 올 벗기는 그런 은밀함, 그런 친밀함을 원했다. 하지만 인영은 이건의 바람을 들어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저 여자에게서 자신이 자꾸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은 실망을 하고 있었다. 그 실망이 거듭될수록 인영에 대한 미움도 한 톨씩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꾸 고개를 드는 이 미련의 정체는…. 「그럼 벗으시오」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대

잃어버린 마음의 빈자리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때…….단 하나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약혼자에게 배신당한 시은은 괴로운 마음을 접기 위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둔산에 내려온다. 상처 입은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준혁.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결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만이 가득한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그대가 나를 부를 때

‘지희…’ 간절한 그 이름.지울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안고 킬러로 살아가는 여자, 케이. 복수만을 꿈꾸는 그녀의 차가운 가슴에 한 남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10년 전 가슴속에서 죽어버린 〈지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준 단 하나의 사랑. 그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암살 대상 게릭, 이들의 운명은 어디로….*...

Heaven bless them(이름 없는 꽃)

저에게 유혹당했나요?20년 동안 소화당에서 유폐된 채 어머니, 소의 정씨와 함께 살아온 미아. 그녀는 왕후의 명에 의해 러시아 인 사업가, 이안의 옆에 누워 밤을 보낸다. 강제로 함께했지만 침실을 나서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그가 미아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어느 날, 다시 그녀를 찾아온 왕후는 러시아 인을 신랑으로 맞도록 종용한다. 그녀는 왕후를 기쁘게 하는 것만이 자신과 어머니가 살 길이라 생각하고 결국, 혼례를 거부하는 그에게 자신의 신랑이 되어 주길 부탁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하는데…….▶잠깐 맛보기“당신은 조선의 옹주요. 부러울 것이 하나 없는 지위지. 그런데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단 말이오?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어요?”미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두려움 없는 삶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말하고 싶지 않다면…… 좋소, 그럼.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왕후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뭐요? 말해 보시오. 어쩌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승빈을 유혹할 거예요.”허락을 받는 것인지, 통보를 하는 것인지 미아가 단숨에 말을 했다.“뭐……? 당신이, 당신이…… 뭐, 뭐를 하겠다고?”이안은 진짜로 제대로 듣지 못한 사람처럼 다시 물었다.“그, 그 질문은…… 제, 제가…… 못할 거라는 뜻인가요?”미아는 너무나 무안하고 부끄러워 말까지 더듬었다. 이안이 겨우 충격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의자에 몸을 기대어 마치 평가를 하듯 미아를 훑어보았다. 그 바람에 미아의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거기다 비웃는 것 같은 입가의 웃음이 신경에 거슬렸다. 미아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남자를 유혹하는 것은 모든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당신은 여자가 아니라 옹주이지 않소. 기대가 되는군.”

Heaven bless them

20년 동안 소화당에서 유폐된 채 어머니, 소의 정씨와 함께 살아온 미아. 그녀는 왕후의 명에 의해 러시아 인 사업가, 이안의 옆에 누워 밤을 보낸다. 강제로 함께했지만 침실을 나서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그가 미아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어느 날, 다시 그녀를 찾아온 왕후는 러시아 인을 신랑으로 맞도록 종용한다. 그녀는 왕후를 기쁘게 하는 것만이 자신과 어머니가 살 길이라 생각하고 결국, 혼례를 거부하는 그에게 자신의 신랑이 되어 주길 부탁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하는데…….

아흔아홉

<아흔아홉> 한국의 대표 작가들로 시작된 소설락小說樂 시리즈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장을 마련해온'소설향'을 잇는 새로운 한국 소설 시리즈이다. 중견 작가의 웅숭깊은 신작에서 신진 작가의 재기발랄한 달작達作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들로 영상 매체의 화려하고 극적인 서사를 뛰어넘는 매혹적인 이야기의 힘과 진한 감동이 담겨 있으며 독자들에게는'소설 읽는 즐거움'을, 한국 문단에는'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아내가 사라졌다. 그는 텅 빈 집에서 아내를 기다리지만 아내는 소식이 없다. 그는 강릉에 살면서 서울로 강의를 다니는 중년의 시간강사이다. 그는 오래된 밀애 상대인 Y를 아내 모르게 만나왔다. 아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걸까. 그는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다니기도 하고 친구 P와 아내의 친구와 아내의 친구의 친구 J와 어울리기도 한다. 그리고 Y와 함께 강릉 단오제의 관노가면극과 굿판과 야경을 본다. 하지만 Y는 강릉의 어디를 가나 그의 아내가 함께 있는 것 같다. 다음 해 봄, 눈이 녹기 시작한 삼월에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는 말없이 일주일 내내 잠만 자다가 일어난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내가 Y와 함께 대관령으로 소풍을 가자고 한다. 아내와 Y와 그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아흔아홉 굽이를 함께 걷는다. 그는 두 여자를 바라보고 세 사람이 걸어온 고갯길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가지 않은 길도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았다. 심지어 눈물 없는 울음소리도 내 놓을 수 없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영영 고개를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소풍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아흔아홉』중에서 ◆ 김유정과 이효석을 잇는'강원도 작가'김도연 대관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흔아홉』 출간 비애를 감싸안는 특유의 정서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두 세계의 경계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위치를 단단하게 다져온 김도연 작가의『아흔아홉』이 주원규의 『광신자들』에 이어 소설락 시리즈의 두 번째 주자로 선보인다.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과 제6회 허균문학상 수상으로 문학성을 검증받아온 김도연은 「동백꽃」「봄봄」의 김유정,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을 잇는 ‘강원도 작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강원도 작가답게 그는 강원도와 대관령이라는 서사적 공간 안에 길에 대한 상념과 삶에 대한 성찰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려 오고 있다. 또한 꿈과 현실, 현실과 환상, 환상과 꿈이 겹쳐지는 곳에서 낯선 의미들을 생성해내고, 그 위에 모순된 인간 심리와 행태를 담아내는 특유의 몽환적 미학을 완성해 간다. 허균문학상 수상작이자 동명 영화의 원작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서처럼, 그의 새 소설『아흔아홉』에서도 길을 따라 흘러 다니며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묘한 풍경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김도연이 특유의 환상적 붓질로 그려낸, 김도연의 특색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아흔아홉』속에는 크나큰 어깨로 영(嶺)을 넘는 인생들의 마음을 떠받치는 대관령의 숨결이 느껴진다. ◆ 바람 자루, 삶을 감싸안는 환몽과 현실의 혼효 소설 『아흔아홉』은 내딛는 발걸음을 쫓으며 흘러가는 로드무비적 특성과 환상, 꿈, 현실이 얽힌 대관령의 풍경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그 풍경 속에 혼곤히 젖어들다 보면 우리는 중년의 시간강사인 ‘그’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아내가 떠난 텅 빈 집을 홀로 지키고, 아내를 찾아다니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고, 밀애 상대인 Y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사건들은 그러나 현실과 꿈, 환상이 중첩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며, 또 다른 비현실적인 사건들과 연결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라니가 불쑥 나타나 아내가 사라진 사실을 이야기하고, Y와 함께 있는 중에 관노 가면극의 시시딱딱이들이 나타나고, 친구와 여자들과 어울리는 중에 다른 시간대의 사건들이 얽혀 이어진다. 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비현실적 공간과 서사를 통해 작가는 꿈으로서 실체를, 비현실의 상황으로서 현실의 진실을 드러내며 인생을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경계를 지운다. 이와 같이 작가는 소설 속에서 삶과 사랑과 증오와 용서가 정형화되지 않음을 바람 자루로 보여 준다. “자루 속으로 수시로 드나드는 게 바람”이듯이 바람이 들어갔다가도 구멍으로 빠지는 바람 자루는 차오르는 듯해 보이는 것들도 언젠가는 다시 꺼져 버리게 마련이며, 동시에 어느 때고 다시 차오를 수 있음을 함께 말하고 있다. 소설 『아흔아홉』의 세 남녀의 관계도 이와 같아서 바람 자루에 바람이 차오르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무상하고 무의한 것이다. ◆ 사랑과 욕정이 풍화되고, 질투도 미움도 희석된 세 사람의 소풍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를 사랑한 것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린 남자는 쓸쓸한 겨울 오대산을 오르고, 강릉 단오제의 가면극과 굿판을 구경하고, 산비탈 고속도로에서 모래바람 때문에 차올랐다가 쪼그라드는 바람 자루를 본다. 오래된 밀애 상대 Y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 법도 한데, Y도 나도 어디를 가나 아내와 함께 있는 것 같다. 다음 해 봄, 눈이 녹기 시작한 삼월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온 아내는 며칠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대관령으로 소풍을 가자고 한다. 『그냥 셋이 함께 봄날 대관령 길을 걷고 싶네요. 소풍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는 아내와 애인과 함께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길을 오르니 새 길이 보인다. 그가 Y를 만나고 집으로 달려오던 길이다. 아내가 그를 떠나 건너가던 길이다. 그러나 이제 셋이서 느리게 새 길을 걷는다. 영을 넘는 바람에 사랑도 욕정도 풍화되고, 질투도 미움도 어설픈 용서도 희석된다. 아내와 Y는 마치 자매 같다. 팽팽한 활을 켜는 듯한 관계 속의 긴장감은 무의해진다.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가. 미워하는 대상과 미움을 받는 대상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소설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미움도 증오도 사랑도 덧없어지고 그저 셋이서 대관령 길을 오르는 것 자체를 관조하는 것이 이 책의 독법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곧 우리가 삶을 읽는 독법과도 상통할 것이다. ◆ 아흔아홉 굽이, 끝나지 않은 삶의 상징 김도연은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고, 그의 소설 속 배경으로도 강원도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단순히 익숙한 공간이기에 배경으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에 밴 삶에 대한 감각이 상징적 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대관령은 예부터 고개가 험해 구십구곡(九十九曲), 즉 아흔아홉 굽이로 불렸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자 태백산맥의 관문으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는 아내와 애인과 함께 그러한 대관령 옛길로 소풍을 떠난다. 멀고 험한 아흔아홉 굽이 산길과 소풍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 무거움과 가벼움을, 아픔과 즐거움을, 환멸과 환희를 절묘하게 대비시키며 대관령의 옛길과 신도로를 나란히 놓는다. 거북의 시간과 토끼의 시간. 그는 신도로를 통해 아내에게서 Y에게로, Y에게서 아내에게로 달렸다. 그러나 그 토끼의 시간은 일시에 무너지고, 이제 옛길을 통해 거북의 시간을 보내며 무너진 관계를 마음을 믿음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갯길을 거의 다 올라오고 나서야 깨닫는다. 눈물도 울음소리도 낼 수 없는 자신이 영영, 고개를 넘을 수 없을 것만 같다는 걸, 소풍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어쩌면 그에게만 그러할까. 우리도,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백에 다다르지 못하는 아흔아홉 굽이를 그렇게 오르고 있다.

마지막 정육점

<마지막 정육점> “어차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것들뿐인 것 같아. 어떤 기억이 부르면, 가고 싶지 않아도 그 자리에 달려가야 하는 거잖아.” 우리가 사는 이곳은 어쩌면, 세상의 끝 정육점. 갈고리에서 풀려난 두 육신이 조각난 시간들 속을 유영한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그토록 확연하게 구별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삶과 죽음이 만나면 한쪽은 침묵하고 한쪽은 통곡을 불러온다는 사실도 처음인 것처럼 선연했다. 삶과 죽음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아예 기가 막혀 말도 못 꺼낸다는 점도 처음 알았다. 지금껏 옥자에게 다른 사람의 죽음은 그렇게 멀리 있었다. 그런데 그 죽음 속에 자신이 있었고 또다른 이들의 죽음을 자신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_본문 중에서 허균문학작가상, 무영문학상, 강원문화예술상 수상 작가 김도연 누추한 삶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는 폭설 같은 글쓰기 유폐된 개인과 그 고독이 빚어내는 길 잃은 꿈으로 삶의 지리멸렬함에 균열을 내왔던 작가 김도연의 다섯번째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그는 “‘꿈같은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 같은 꿈’”을 드러내는 것이 그의 환상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평(이경재, 문학평론가)을 들은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 독특함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변주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그가 택한 공간은 오대산 월정사와 사하촌의 정육점이다. 그의 ‘현실 같은 꿈’에서 인간세상이란 배 가른 돼지들을 갈고리에 널어놓은 정육점과 같다. 결혼식 다음날 교통사고를 당한 신혼부부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쫓고 쫓기며 벌어지는 뒤죽박죽 신혼여행 결혼식 다음날 교통사고를 당한 도식과 옥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약 반세기에 걸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십일 일간의 환상적인 신혼여행을 한다. 그들은 부모가 살았던 한국전쟁 이후의 혼란스러운 풍경과 어린 시절 풍문으로 들었던 역사의 비극적 현장을 생생히 체험하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의 시공간에 떠밀려 다닌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제대로 죽지 못하고 여기에 있는지, 왜 이런 장면들을 보고 있는지, 우리는 과연 무얼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것은 곧 작가가 독자인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종횡무진하며 현실을 치유하는 꿈, 그 낮은 곳에 자리한 사랑이라는 영원한 신화! 영혼 상태인 도식과 옥자는 여행 도중 만난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행동하며 사건에 참여할 수 있는 때도 있는가 하면, 눈앞에 벌어지는 끔찍한 고문 장면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바라만 보기도 한다. 작가 김도연은 80년대 말, 토요일의 디스코텍과 군부독재시절 대공분실을 한데 겹쳐놓으며, 평화로워 보이는 지금-여기의 삶이 비극에 울퉁불퉁 덧칠한 눈가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통찰을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죽음과 그에 맞서는 강렬한 동물적인 호기심, 그 분출하는 생명력이 도식과 옥자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성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지며 무게감 있는 서사의 한 축과 절묘한 짝패를 이룬다. 죽었으나 죽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떠돌며 여행하는 도식과 옥자 부부,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제대로 된 죽음을 살아야 한다는 역설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한바탕 뿌듯한 꿈을 꾼 듯한 해방감을 주는 소설. 절 아래에서 오래 살았다. 절은 신비로운 공간이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절간을 기웃거렸다. 어떨 때는 미궁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기도 했다. 절의 일주문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어두운 수챗구멍으로 졸졸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적이 더 많았다. 햇볕 쨍쨍한 어느 날 술에 취한 나는 절간의 돌계단에 앉아 오고가는 스님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왜 부모형제가 있는 집을 떠나 멀고먼 이 산골짜기로 들어와 머리를 밀고 잿빛 승복을 입은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왜 탑을 돌고, 종을 치고, 법당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는 것일까. 무엇을 찾으려고…… ‘작가의 말’ 중에서

십오야월

<십오야월> 난분분 난분분, 눈발 휘날리는 보름밤의 꿈 그는 강원도 첩첩산중 외딴 시골에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여태 노총각인 그의 집은 외양간도 닭장도 텅 비어 있고, 잡종 사냥개만이 유일한 그의 벗이다(「십오야월」). 그는 노모를 도와 민박집을 꾸려나가거나(「이제 그는 시인을 믿지 않는다」) 고라니로부터 소중한 당근밭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도망치다가 멈춰 뒤돌아보는 버릇이 있다」). 혹은 면소재지의 작은 도서관을 근거지로 삼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향노루 연구에, 아니 문학에 몰두해 있다(「흰 등대에 갇히다」). 그러나 거의 유일한 혈육인 노모는 먹고사는 일 외에 그의 욕망과 열망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답답한 현실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감행한 그에게, 노모는 야밤에 불쑥 전화를 걸어 텔레비전 리모컨 사용법을 물어온다(「출가」). 어쩔 것인가. 그는 다만 늙은 사냥개를 앞에 앉혀놓고 자신이 쓴 시를 절실하게 읽어줄 도리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그는 환몽에 빠져들어 있다.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의 기억이 불쑥 달려들고, 고라니와 산양과 멧돼지와 늙은 사냥개가 능청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뿐인가, 할아버지 할머니 조상님 귀신들까지 나타나 한판 떠들썩한 난장을 벌인다. 현실과 환상이 서로 섞여들며 서로의 경계를 무화시킨다. 그는 해수욕을 갔던 것 같기도 하고 도서관 옥상으로 올라갔던 것 같기도 하다. 금강산 계곡에서 나무꾼을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려면 어떨까. 그의 누추한 삶이 현실이고 그의 욕망과 열망이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욕망과 열망이 현실이면 그의 누추한 삶은 오히려 꿈이 아닐까. 그것도 아무려면 어떨까. 이쯤이면 다만, 이리저리 휘날리는 삶의 누추와 열망과 환몽 따위만이 달빛에 선연할 뿐이다. 누추하고 곤궁한 삶을 감싸안는 환몽과 능청의 소설 김도연의 소설에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를 분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꿈과 현실을 능란하게 교직해나가는 그 특유의 상상력과 소설 작법은 이미 첫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익히 보아온 바이지만, 『십오야월』은 그보다 한층 분방하면서도 손쉽게 현실의 장에서 이탈하지 않는 무게감과 함께 자조와 비애의 정서를 감싸안는 능청과 익살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런 점은 이 소설집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골 농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몇몇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중편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는 알코올 중독자가 돼 사북으로 돌아온 전직 광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펼치는 ‘사북 해방 작전’은 우울하면서도 시종 어딘가 유쾌한 기운을 잃지 않는다. 해설을 쓴 평론가 김경수는 “인간과 동물, 그리고 그 밖의 자연의 이질적인 선택항들을 하나의 통사로 엮어내는 김도연 특유의 서술법”이 “이미 이효석에게서 그 효용이 한껏 발휘된 바 있는 독특한 문체”라고 평하며, 이어 “인물들의 순박성과 그로 인해 발휘되는 순간순간적인 희화적 응전, 그리고 그런 것들로부터 종합되는 피카로적 성격이란 측면에서 김유정의 세계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적잖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그런 “특별한 문학적 자양” 덕분에 김도연은 “동시대 작가들 사이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자신만의 자리를 안전하게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의 문장들이 눈이 되어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온전히 독자들의 일이다. 울분(鬱憤)과 미혹(迷惑)을 비추는 십오야월의 달빛 강원도 첩첩산중 진부 땅에 사는 소설가 김도연이 소설집 뒤표지에 실을 헌사를 부탁하며 이메일을 보냈다. “이곳은 눈이 많이 와서 그저 화로(火爐) 껴안고 매일 술이나 마십니다. 대충 써주세요. 귀찮은 부탁 드려서 마음이 얼어붙은 눈밭입니다. 소주 한 병 부어야 할 듯합니다.” 다음날 소설을 보낸 뒤 그가 휴대전화로 전송한 문자 메시지를 나는 아직도 저장하고 있다. “소설 보냈습니다. 술 마시러 갑니다.” 여러 날이 지나서야 나는 수도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오피스텔 15층 창가에 앉아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맞은편 오피스텔을 바라보며 그의 소설을 읽었다. 언뜻 봄인 듯하였으나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천지간이 엄동으로, 강원도 산골짝을 휘돌아치던 칼바람에 쓸려온 싸락눈은 오피스텔 15층까지 쌓였다. 차고 불투명한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나는 오래도록 울분(鬱憤)과 미혹(迷惑)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심상대(소설가) 그의 소설은 화려하지 않고 기발하지 않고 유려하지 않다. 낯선 것도 아니다. 파격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새로움이란 망령에 들떠 있지도 않다. 누추하다. 이 누추함을 묵묵히 바라보는 시선이 있으니 그것은 눈에 쌓인 첩첩산이거나 이승의 흉중과는 상관없이 그저 비추기만 할 뿐인 십오야월의 달빛이다. 담배연기가 그 달빛을 아주 잠시 차단하기는 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누추함은 자신의 삶에 연막을 치거나 음모를 꾸밀 여력이 없다. 누추함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삶의 의의를 찾아야 하는 소설쓰기는 말의 게걸스러움과 탐욕스러움이 난무하는 시장판에서 흥행에 대한 기대 없이 현재를 견디는 방식이다. 첫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후 김도연 소설은 한 발짝도 아닌 반보 정도의 행보―차라리 제자리 뛰기라고 해야 할―를 겨우 진전시키고 있다.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비애를 감싸안는 특유의 정서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두 세계의 경계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위치를 단단하게 다져온 소설가 김도연이 세번째 소설집을 선보인다. 2006년과 2008년 각각 이효석문학상 추천우수작으로 선정된 「꾸꾸루꾸꾸 빨로마」와 「북대」를 비롯하여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생의 고통과 누추함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되 능청스럽게 눙치는 작가의 솜씨는 이번 소설집에서 또한 빛을 발한다. 익숙한 세상의 풍경을 한순간에 전복시켜버리는 폭설처럼 그의 소설은 모든 것의 경계를 지우며 한바탕 꿈과 같은 삶의 진경을 우리들 눈앞에 펼쳐보일 것이다.

누에의난

<누에의난> 어느 날 사랑하는 가족들이 누에가 되었다! 기억 꿈 현재를 오가며 펼쳐놓는 슬프고도 따스한 가족 이야기 『누에의 난』. 중앙신인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무영문학상, 강원문화예술인상을 수상하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소설가 김도연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이전의 작품들에서 삶의 구슬픔과 애잔함, 인간성의 모순 등을 그려왔던 작가는 『누에의 난』에 가족의 사랑과 따스함을 오롯이 담았다. 누에를 키우다가 누에가 되어버린 가족. 애벌레가 고치를 짓고 나방이 될 때까지…… 주인공은 누에를 키우며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닥쳐온 불행에 대한 상처를 대면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누에가 만들어내는 실처럼 길고 길게 이어진다. 5컷의 삽화가 책에 상상력을 더한다.

우리말 되찾기 프로젝트 웹툰 물음표

<우리말 되찾기 프로젝트 웹툰 물음표> 무심코 잘못 써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또 국어라는 것이 하나의 지식으로 여겨지면서 어법이 현학의 도구로 전락, 언중이 아닌 일부 계층이 국어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말과 글은 언중을 위한 것입니다. 언중이 쓰기 편해야, 그리고 의미 전달이 명료해야 바람직한 국어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의 원래 주인인 언중이 소외된 채 어법을 위한 어법, 순화를 위한 순화, 현학을 위한 지적질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지식 체계로서의 복잡한 어법이 아니라 언중의 의사소통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의 어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언어 현실을 무시한 쓸데없는 국어 관련 현학질을 꼬집어 보겠습니다. 이제 우리말을 되찾을 때입니다. TIP. 우리말에 관한 흔한 오해, 오류 및 논쟁거리 등, 각종 국어 관련 이슈에 에피소드를 덧붙여 쉽게 풀어낸 6컷 웹툰. 각 회차 뒤에는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샤론의 장미 1권

<샤론의 장미 1권> <샤론의 장미>는 무궁화꽃의 영어말이다. 무궁화 꽃은 단군시대부터 '환화'라고 불리며, 태양과 같이 밝은 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환인이 세운 배달국의 꽃이었으며,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꽃으로,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같은 자리에서 피어나 번식하는 무궁화 꽃은 먼저 핀 꽃이 떨어지면 새로운 꽃이 피어나고, 꽃과 꽃이 끝없이 이어지는 꽃으로 강건함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데, 무궁화 꽃의 영문 표기는 “Rose of Sharon”으로 우리말로 직역을 하면 “샤론의 장미”이다. 여기서 샤론(SHARON)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해변에 있는 샤론평야라고 불리는 비옥한 땅이름을 뜻하기도 하며, 샤론평야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평화스러운 대지라는 뜻의 표현이기도 하고, 성경에서 “샤론의 장미”라 불리는 무궁화 꽃은 “구세주의 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국화이고 구세주의 꽃이라 불리는 무궁화 꽃을 <샤론의 장미>라고 말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에서 보여 주고자 하는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고, 그렇게 우리들 마음 속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민족의 염원 통일을 무궁화 꽃이 갖고 있는 강건함과 순수한 아름다움 속에 담아 남쪽의 아버지와 북쪽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여자주인공이 전투살인병기 <샤론의 장미>가 되어 우주과학기술의 최고산업이라 할 수 있는 인공위성 개발에 대한 한민족 두국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운명적인 삶을 우리 현대사 속에 담아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만들었다.

산토끼 사냥

<산토끼 사냥> 대관령 눈과 바람의 작가 김도연이 고독한 청소년의 마음을 보듬다! 너는 결코 틀리지 않아 현실에서 튕겨 나가고 싶고, 이성에 눈이 가는 건 내 생애 첫 고독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결코 나의 반항과 감정 그리고 호기심은 틀린 것이 아니다. 청소년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고독이다. 처음으로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줄 뿐 아니라, 보다 객관적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생애 첫 번째 기회이고, 감정의 홍수 속에 있어도 모두 성장의 양분으로 흡수 할 수 있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청소년은 불안정하고 슬프고 가슴 아프다고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 청소년 자신이 그것이 틀린 것 일까 봐, 이러면 안 되는 것 일까 봐 불안해하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진표는 알고 있다. 그것이 고독 때문이라는 것을. 대관령 눈과 바람의 작가 김도연은 어른도 청소년도 모르고 지나쳤던 그 시기의 시리도록 푸르른 청춘의 이유에 대해 눈처럼 하얗지만 포근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눈부심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