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 “그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니, 집의 자네가 살피고 보고하게.” “명 받들겠습니다.” 임금의 밀명을 받은 사헌부 집의, 이은겸. 공무를 수행하던 중, 느티나무 아래에서 자루에 담겨 버려진 여인을 발견한다. “어쩌다가…….” “부끄럽지만 집에서 저를 이곳에 버렸습니다.” 죽은 사람이 되어 돌아온 공녀, 권아린. 고생 끝에 돌아온 고향땅은 그녀를 반기지 않았다. “저는 타미르입니다. 반촌의 세책방으로 가려고 합니다.” 아린은 정체를 숨기고 은겸의 도움으로 반촌으로 향하게 되는데……. “오늘은 총명한 역관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한어 통변을 해 주십시오.” 한편, 조공 무역의 비리를 파헤치던 은겸은 한어가 유창한 아린에게 도움을 청하고, 아린은 그를 돕고자 기꺼이 위험을 자처한다. 약한 왕권. 이를 수호하려는 자와 전복하려는 자. 거대한 힘의 대결 속에 나라와 가문을 위해 희생당한 아린은 과연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붉은 실> 월하, 영원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무료한 일이다. 반복된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던 찰나 가녀린 여인 하나가 삶속으로 허락도 없이 밀고 들어 왔다. 아라,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 스스로 천신제의 제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린 것은 괴물이 아닌 천제의 아들, 월하였다. 둘에게 주어진 시간은 100일, 그는 그녀와 영원을 꿈꾸고 그녀는 그와의 기억이 소멸하기를 소망한다. 그는 그녀를 위해 손가락을 베어 내고 그녀는 그런 그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흥정을 한다. 100일의 시간동안 함께 잣는 인연의 붉은 실. 그 붉은 실이 두 사람의 손가락에도 매일 수 있을까. 드디어 월하와 아라의 심장이 같은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본문 중에서- “월하 님께 연모는 무엇인가요?” “너와 몸의 경계조차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저 처음부터 한 몸인 듯 그렇게 경계 없이 살고 싶은 마음. 네가 나인 듯이, 내가 너인 듯이…….” 아라가 얼굴을 등에 묻었다. 작은 경계조차 두고 싶지 않다는 월하에게 나는 죽음으로 기억되어야 할까, 아니면 기억을 지우고 떠나버린 배신으로 기억되어야 할까. “너에게 난 무엇이냐?” 월하가 물었다. “모든 것입니다. 하늘이고, 땅이고, 별님이고, 햇님이고, 달님이고, 바람이고, 호흡이고…… 그 무엇 하나라도 빠지면 살 수 없는 저의 세상이자 전부입니다.”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매월 보름이면 은행나무 가지에 걸리는 만월을 두고 맹세할까요?” “안 된다. 달은 날마다 조금씩 변한다. 가득차면 곧 이지러진다.” “그럼 용소의 물을 걸고 맹세할까요?” “그도 안 된다. 가뭄과 우기에 높낮이가 달라진다. 어디에도 맹세하지 마라. 그냥 그렇게 서로의 마음에 녹아서 스며들면 되는 거다.” 월하 님이 깊은 산 계곡의 시냇물이라면 저는 그 시냇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나뭇잎이라도 되고 싶습니다. 그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저의 처지가 원망스럽습니다.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들을 마음속에 새겨 넣으며 아라는 지금 이순간이 너무 소중해 월하의 뺨에 자신의 뺨을 가져다 대었다.
“어떡하든 스스로 살아남아라. 그러려면 너 자신 외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나주감영의 관비로 이송되던 날,송연은 들짐승이 우글거리는 갈대숲으로 자신을 던져 넣었다.최선이었지만 최악이었다.꺼져가던 숨이 유배 살이 중이던 낙화장인 허대감에 의해 다시 붙었다.수발을 자처하며 인두화를 배웠다.첩실과 결탁해 모녀를 관비로 팔아버린 아비에 대한 복수심이 마음 판에 인두화로 깊게 새겨지고,그렇게, 절치부심하며 한양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린다.역관 륜,과거급제를 하고도 부친에 대한 반항으로 역관의 길을 선택했다.까칠하고 안목이 높은 그에게 조선제일 낙화장인 허대감의 그림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절대 팔지 않는 그림 한 점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호위무사를 자처했다.그런데… 혹이 붙었다. 여인인지 사내인지 생김조차 미묘한 풋밤을 닮은 도령이 그의 심기를 자꾸만 자극한다.허대감의 유배도 풀리고 륜의 마음에 걸렸던 빗장도 슬그머니 풀리던 그날,송연의 마음에 새겨진 핏빛 낙화가 개화를 시작했다.어느새 한양이 코앞이었다.이 동행, 정말 괜찮은 것일까….
유복자 도하 성년식이 있던 날, 갑자기 어머니가 사라졌다. 처음 본 노인에게 운명을 맡긴 채 왕궁을 향해 부는 바람 위로 주저 없이 자신을 올려놓았다.오른손 팔목에 감은 댕기의 주인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옥좌는 반드시 그의 것이어야만 했다. 천군 해수 소도의 천군으로 사는 삶은 무료하고 답답하다. 도성의 진정한 주인을 꿈꾸는 그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온다. 이미 마음에 담아버린 여인도 옥좌도 놓치고 싶지 않다. 마한공주 상아 패전국 공주의 신분이지만 열혈장사꾼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위험한 거래에 뛰어든 그녀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훼방꾼이 나타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의 손목에 자신의 댕기가 묶여 있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목숨처럼 자신을 은애하는 도하의 마음을 알아버렸기에…… 하늘이 내린 신탁을 숨기고 욕망에게 자신의 운명을 넘겨주었다. 신탁은 누구를 옥좌의 주인으로 선택했을까. 미래를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의 폭주가 백제의 운명을 뒤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