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학원 국어 강사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재희. 갑작스러운 사고에서 간신히 목숨을 구한 이후부터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붙으라는 총각은 안 붙고 총각 귀신이 웬 말이야.” 귀신답지 않게 멀끔하고 잘생긴 얼굴, 그녀의 집에 무단 입주하고서도 까칠하기만 한 그. 어쩔 수 없이 보이지 않는 척 시작하게 된 그와의 동거. “너…… 나 보이지?” 결국 어설픈 연기는 들통이 나고 사실 수호신이었던 그는 재희와 점점 가까워진다. “너 그 인간 좋아해?” “뭐?” “좋아하는군.” 짝사랑하는 재희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신경이 쓰이는 건지. “그래도 앞으로 이거 하나는 절대 잊지 마.” “……뭘?” “너의 생에 내가 언제나 덧붙어 있다는 거.” 잃어버린 이름. 지워진 전생. 가려진 시간 속 그들의 인연. “그래서 네가 느끼고 들여다보는 세상이…… 그대로 나의 세상이 된다는 걸.” 그는 알아야 했다. 그의 생이 그녀를 지키면서 시작돼야 했던 이유를.
<천호 (天狐)> 권태로운 영생(永生)을 보내며 천호(千狐)가 되기만을 기다리던 구미호 호림. 인간과 여우의 조화를 담은 버려진 땅의 금서(禁書), 호인계서(狐人係書)가 열리고 그는 여우 구슬을 도둑맞는다. “날 도와주면 일엽초를 찾아다 주겠다.” 구슬을 훔쳐간 미랑을 뒤쫓던 중 만난 여인, 은한. 차갑게 닫힌 마음 사이로 그녀가 흘러들기 시작한다. “……호림.” 처음이었다. 인간에게 제 진짜 이름을 알려준 것은. “참…….” 잔인할 만큼 해사한 웃음이 그에게로 밀려든다. 그 위험천만한 것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다. “……좋은 이름입니다.” 호림은 가마득한 그 혼돈 속에서 생각했다. 지금껏 삼켜지는 건 그녀가 아니라 그였으리라고.
물안개가 피는 바다 마을, 해미리.짓무른 어린 날이 파도치는 이곳에서 운과 솔주는 처음처럼 다시 만났다.“전 대가 없는 친절만큼 불편한 게 없어요.”“그만하죠. 됐다는데.”“혹시 바라는 게 돈이 아니고 나랑 자는 거예요?”무미건조한 솔주의 일상에 운이 스며들며 변화가 시작된다.끝을 바라며 찾아온 곳인데 어째서, 그를 보면 살고 싶어지는지.“…후회할 텐데.”“곧 당신은 떠날 거니까?”솔주는 그가 더 밀려들지 못하게 눈을 감고 흘러가는 마음을 꼭 붙들었다.운의 말은 아주 달콤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것처럼.“그럼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되잖아.” “난 책임 못 져.”“지지 마. 어차피 남겨지는 건 나니까.”그가 말할 때마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듯 아슬했다. 내밀하게 감춰온 솔주의 속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뜨거운 숨이 뒤섞였다.끝을 알 수 없는 이 밤에 고스란히 잠길 차례였다.<키워드>현대물, 재회물, 첫사랑, 연하남, 조신남, 직진남, 다정남, 상처남, 짝사랑남, 순정남, 존댓말남, 우월녀, 무심녀, 냉정녀, 도도녀, 상처녀, 철벽녀, 직진녀, 단행본, 애잔물, 잔잔물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작품입니다.]
[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수정된 작품입니다.]10년 만이었다.내 인생을 지옥으로 만든 정제현이 선물처럼 내게 돌아왔다.“이연. 나 안 반가워?”잊을 수 없었던 미끈한 웃음이 내게로 선명하게 날아들었다.“난 반가워서 하마터면 입이라도 진하게 맞출 뻔했는데.”나는 끔찍이도 지우고 싶었던 내 열아홉을 등 뒤에 숨긴 채정제현과 나의 종말을 기다려보기로 했다.“너 같은 건 애초에 만나질 말았어야 해.”“그래.”고요히 답하는 목소리가 신물 나게 싫었다.“난 네가…… 너무 증오스러워.”나는 정제현에게 벌처럼 입을 맞췄다.두툼한 손이 내 머리를 감싸더니 혀가 거칠게 입안을 파고들었다.“왜. 이렇게 망가뜨려 주길 바란 거 아니었어?”“재수 없는 새끼.”수치도 잊은 채 서로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웠다.결국 나는 내 손으로 지옥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