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탕! 1307년,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때 아닌 총성이 들려왔다. “빨리 가!” “안 돼요. 갈 수 없어요.” 남편 다니엘의 손을 꼭 붙잡은 에일린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그 마음과 달리 다니엘은 그녀를 밀어내기에 바빴다. 어찌 보면 집 안에서 그녀를 내쫓는 것도 같았다. 너무나 매정하게 몰아붙이는 그의 눈동자에 선 핏발이 더욱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였다. 쾅쾅! <문 열어!>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가겠다!>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다니엘이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지금 서 있는 곳은 집 안에 비밀스럽게 만들어져 있는 지하공간이었다. 지상의 문 밖에서는 거센 두드림과 함께 거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문을 부술 기세였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다시금 바라보는 다니엘의 눈빛에 돌이킬 수 없는 굳은 다짐이 배어 있어 에일린의 심장은 무섭게 쿵쾅거렸다. 딸깍. 기어코 다니엘의 손에 쥐어져 있던 권총이 장전되었다. “여, 여보…….” 그가 총을 겨누었다. 에일린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 남편 다니엘의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방법 밖에는 없는 걸까.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와 함께라면 그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저 문이 열리면 우리 모두 죽게 되오.” “난 상관 없어요!” “에일린!” “난 상관 없다고요. 차라리 지금 여기서 당신과……!” 에일린은 막무가내였다. 다니엘은 침착하고 냉정한 어조로 그녀의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 아이는 어떻게 하지?” 흔들리는 다니엘의 눈빛에 에일린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자신의 배를 감싸 쥐었다. 아직 그 형체는 온전히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그녀의 뱃속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이 아인…….” “난 그대를 죽게 할 수 없소. 그리고 이 아이 역시. ” “…….” “나도 꼭 살아서 돌아가겠소.” “…….” “나의 천사, 당신을 사랑하니까.” 가쁜 숨소리와 함께 마지막 그 말이 나직이 울려 퍼졌다.
<열꽃> 1. 앞표지. 한 때 지독한 열꽃이 피었다 생각하시고, 모두 잊으시옵소서. 잠시 단꿈을 꾸었다 생각하십시오. 소인은 평생 두 번 다시 없을 행복한 꿈을 꿨다 생각하겠습니다. 2. 뒤표지 설아, 잠시 스치는 바람에서도 너의 향기가 느껴지는구나.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마치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열꽃은 지났으나, 그 열꽃이 남기고 간 흔적이 너무나도 깊게 남아 있구나. 이 흔적이 모두 사라 없어질 때까지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본문 발췌글 긴긴 밤 지새워 만난 내 님인데 그것이 꿈이었는가 보오 내 님이 하늘이시라 하는데 그래서 꿈이었는가 보오 달콤하고 쓰라린 내 사랑이 이제는 다가설 수 없다 하니 이내 가슴 새까맣게 타들어도 어찌 돌아보아 달라 말이나 건넬까 그저 멀리서나마 나의 하늘께서 만수무강하시기를 비옵는 수밖에
“……뭐어? 푸웁. 크하하하.”그의 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경민이 미친 듯이 배꼽잡고 웃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휘겸은 몹시 괴로워하는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정작 이야기를 듣는 입장의 그는 그 말이 우스워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겨? 이게 웃겨? 나는 심각하다고. 이거 의사가 막 환자 비웃어도 되는거야?”“푸흡. 아, 미안미안.”급기야 휘겸은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대꾸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웃음이 조금 멈춘 경민이 마음을 다독이며 그를 진정시켰다. “어떡하지?”“흐음, 그러니까……. 네가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이거지?”“남자가 아닌 거 같다니깐?”“…….”“남자긴 남잔데, 남자로 안 느껴져. 여자 같아!”“자식, 왜 이렇게 횡설수설이야. 그러니까 네가 보고 심장이 쿵덕쿵덕 뛰는 사람이 남자라는 거야, 여자라는 거야.”“아 그러니까 남잔데, 여자 같다니깐?”휘겸은 도저히 지금 자신의 심정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해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그의 말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건 경민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이 게이라는거야?”“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그럼 뭔데.”“남자.”“여자 같다며.”“응.”“남자고, 여자 같긴 한데, 게이는 아니라고?”“응!”그제야 뭔가 좀 정리가 되어가자 휘겸이 부러져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넌?”“나, 뭐?”“넌 게이야, 아니야?”“미쳤어? 난 완전한 스트레이트라고! 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