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
이근영
평균평점
그만의 인형

전 그저 당신의 인형일 뿐이랍니다.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존재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제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영원히 당신 곁에서만 머물고 싶습니다....

고향사람들2 : 탁류 속을 가는 박교수

<고향사람들2 : 탁류 속을 가는 박교수>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박교수(영호)는, 한 대학의 경제학 교수 김성후와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 가면서 토론하다가, 김교수가 박의 작품이 정치성 없는 무가치의 것이라고 공격하는 것이 불쾌하여 먼저 나와 버렸다. 박은 윤의 집을 찾을 때마다 성큼 들어서는 일이 없다. 그는 돌층대를 오를 때부터 청태(靑苔)빛을 엷게 입은 석조 이층 양옥이 항상 바늘같이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고향사람들2 : 日曜日(일요일)

<고향사람들2 : 日曜日(일요일)> 현우(鉉雨)는 늦어도 아츰 일곱 시면 일어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건만 이날은 거의 아홉 시가 되어서야 이불을 걷었다. 역시 습관의 탓인지 안채 대청에 걸린 시계의 일곱 시를 치는 희미한 소리에 눈을 뜨기는 했었으나 잠이 설다는 것보다도 이불 바깥「세상」과는 자기가 아무 소용도 못 되는 것 같어 그대로 이불속에 묻혀 있고 싶었다.

고향사람들2 : 농우

<고향사람들2 : 농우> 보리밭에 거름을 모두 내고 난 서생원은 해가 큰라산 위에 간당 간당 매어달렸을 때에야 집으로 향하였다. 빈 오줌독을 지게로 걸머지고 소를 앞에 몰고 갔다. 길가에서 탐나는 풀을 발견할 때마다 소가 걸음을 멈추면, “이랴 쪼 쪼 쪼 쫏.” 하고 서생원은 어린애 볼기짝을 두드리듯이 손으로 잘칵 하고 두서너 번 아프지 않을 정도로 친다.

고향사람들2 : 과자상자

<고향사람들2 : 과자상자> 박일문(朴一文)으로서 우선 당장에 급한 것은 두 달 동안이나 밀린 집세 십육 원이었다. 거의 하루걸러 오정 때만 되면 대문 앞에 와서 왜장을 치고 있는 늙은 집금인의 꼬락서니가 하도 아니꼽고 동리 사람 보기에도 창피한 일이라 집세만은 태꺽 물어 주어야만 할 형편이었다.

고향사람들2 : 孤獰의辯

<고향사람들2 : 孤獰의辯> 침상(寢牀)에 누었노라면 그을린 천정이 가슴을 나려 누르는 듯이 보이고 앉었노라면 좁은 장방형(長方形)의 하늘이 나를 멀리하랴는 듯이 초연하게 보인다. 하늘이 나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하늘을 쳐다보려고 이러나 앉는다. 늑막염(肋膜炎)에는 눕는 것이 제일 좋다고 의사나 간호부가 가끔 당부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나 다소 무리한 것을 알면서 이러나 앉어 하늘을 보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위안이다.

고향사람들1 : 崔고집先生(최고집 선생)

<고향사람들1 : 崔고집先生(최고집 선생)> 최하원(崔夏遠)이란 본명은 벽돌폭 보다 더 넓은 문패에 쓰여 있을 뿐이고, 사람 입으로 불리우는 일은 거의 없다. 점잖이 행세하는 사람 중에서 같은 연배는 그를 설담(雪潭)이라고 아호로 부르고, 나이가 떨어지는 층에서는 설담선생이라고 받혀서 부른다. 그러나 늙은이로부터 어린애에 이르기까지 남녀 가릴 것 없이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으론 최고집선생이란 것이다.

고향사람들1 : 밤이 새거든

<고향사람들1 : 밤이 새거든> 권수는 기어이 출막(出幕)을 하고 말었다. 동료들이 한사코 말렸으나 듣지 않었다. 주인이 말리기까지 하는데 죽을지 살지 모르는 판에, 한데 죽음을 할 것이 무엇이냐고 말렸으나 종시 듣지 않었다. 이 동리에서는 누가 먼저 출막을 혔는지는 몰라도 오랜 옛날부터 출막이 한 습관처럼 되어 있다.

고향사람들1 당산제

<고향사람들1 당산제> 동리 뒤 북편에 있는 보금산은 봉우리가 셋으로 갈리어서 옛날부터 삼선봉이라는 별명이 내려왔지만 요새 와서는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도 모르게 선암봉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그것은 이산의 허리에서부터 봉우리까지가 거의 바위로 되어 있는 데서 나온 이름인데 삼선봉이라는 신선선(仙)자에 바위암(岩)자를 붙인 것이다.

고향사람들1 금송아지

<고향사람들1 금송아지> 「선히씨」 하고 남편이 부르는 것보다도 「장미부인」 하고 부르는 것이 마음에 당겼다. 어떤지 자기의 본명을 부르면 남편과의 사이가 범인하게 생각되지만「장미부인」하면 남편의 가슴에 안긴 것만치나 안옥한 맛을 느끼는 것이다.

고향사람들1 : 故鄕사람들

<고향사람들1 : 故鄕사람들> 겨울 내내 눈 한 닢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고, 강추위만 계속하다가, 며칠 전 눈이 한자 가량이나 쌓이게 되고 바로 비가 이틀 동안이나 주룩 주룩 퍼 부었다. 그러잖어도 병자년 흉년보다 더 지독한 해를 겪은 그들은, 눈만 뜨면 하늘을 바라보고 마음 졸이는 것이 그날그날의 일처럼 되었다. 이렇게 초조한 그들이 눈과 비를 흠뻑 받었으니 집마다 경사나 치른 듯이 웃음 결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