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김주영
평균평점 4.50
여우와 둔갑설계도

나는 아흔아홉 개의 삶을 산 구미호다. 유미의 남자친구로 둔갑해서 지내던 어느 날, 유미가 사고로 죽는다. 혼자 남은 유미의 여동생 나해가 걱정되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인간이 되는 삶을 위해 둔갑설계도를 완성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래서 그 삶을 끝내고 새로운 내가 된다. 그런데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서 예기치 않게 나는 너무 잘 생긴 남자 중학생으로 둔갑이 ...

이카, 루즈

남친에게 차이고, 회사에서 잘리고, 친구에게 바람까지 맞고 처량한 기분으로 혼자 영화관에 들어간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나서 자신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달라고 호통치는 한 소녀를 만난 이카는 어이를 상실한다. 게다가 소녀는 자신이 남해 용궁의 공주라나? 그런데 이 이상한 만남이 이카의 일상을 바꾼다. 사실은 내가 다른 세계에서 유명한 해결사라고? 부모님 대신...

완벽한 생존

“가해자의 고통은 유한한데  왜 피해자의 고통은 무한할까요.” 세기말에 벌어진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 그 후 사라진 공범과 한 아이 피해자에겐 끝나지 않은 20년을 건너 서서히 밝혀지는 ‘그날 그 사건’의 전말 진실은 잭나이프처럼 날카롭게 튀어나와 일상을 가른다!

그의 이름은 나호라 한다

시대를 특정할 수 없는 우주에서, 죽는 순간 다시 살아난 나호. 원치 않은 불사의 생명을 갖게 된다. 동반자 페오와 함께 죽음의 의뢰를 해결하며 생명의 끝이 올 때까지 광선검을 들고 밤거리를 나선다.

객주 1
4.5 (1)

<객주 1> 다시 서는 장날, 다시 열리는 보부상 길……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 그 재미와 감동 고스란히 다시 찾아온 김주영 장편소설 [객주] 김주영 작가의 대표작이자 한국 역사사회소설의 한 획을 그으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장편대하소설 [객주]가 문학동네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독자들을 찾는다. 이번 [객주]의 개정판 출간은 마지막 10권의 연재와 더불어 순차적으로 시작되어, 연재 종료와 동시에 총 10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이번에 1차분으로 출간된 [객주] 1, 2, 3권은 제1부 외장(外場). 그리고 이후 한 달 간격으로 제2부 경상(京商) 세 권과 제3부 상도(商盜) 세 권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총 1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던 [객주]는 1984년 아홉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바 있다. 그러나 김주영 작가는 거기서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지 않았고, 스스로 완간이라 말하지도 않았다. 주인공 천봉삼을 원래의 구상대로 죽음으로 이끌지 못하고 산 채로 이야기가 끝났던 것도, 후에 더 마무리 짓고자 한 이야기가 남아 있어서였다. 그러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4년 전 경북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의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보부상 길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진짜 객주를 끝맺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울진 죽변항에서 내륙 봉화까지 소금을 실어나르는 길인 이 십이령 고개가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30여 년 만에 드디어 [객주] 10권이 씌어질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 한국문학사에 남을 만한 뜻깊은 연재에 맞춰 기존의 [객주]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옷을 바꿔 입었다. 1878년부터 1885년까지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조선후기의 시대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낸 소설 [객주]는 정의감, 의협심이 강한 보부상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한 보부상들의 유랑을 따라가며, 경상도 일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근대 상업자본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있다. 피지배자인 백성의 입장에서 근대 역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대하소설의 새로운 전기를 만든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객주는 금융업, 유통업, 창고보관업 및 물류업을 하던 장소이자 그런 행위를 하는 상인을 말한다.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에서는 도가, 접소, 도방이라고도 불렀고, 객주의 성격에 따라 물산객주, 해물객주, 젓갈객주 등으로 불렀다. 상도덕에 대한 규율이 강해서, 매점매석과 강매, 보따리 장사를 하는 여인네를 범하는 일이 엄중히 다스려졌다. 보부상은 보자기 보(褓)자와 짊어진다는 부(負)자가 합쳐진 것으로, 신체가 건장하고, 지름길을 많이 알며, 기억력이 좋고 셈이 밝은 사람들이 종사했다. 정보 수집에도 능해 어떤 물건이 달리고 넘쳐나는지 파악해 물건을 공급했기 때문에 물가를 조절하는 일종의 중앙은행 같은 역할도 맡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흥선대원군은 보부청을 만들어 보부상 조직을 장악하려고 했고, 동학농민운동 때는 보부상들이 정부 편에서 토벌에 가담했다. 1898년 독립협회를 와해시킨 황국협회는 보부상들이 중심이 된 단체였다. 김주영의 [객주]는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조선 후기 혼란한 개화기 상황에서 보부상의 생활풍속과 이들의 경제활동, 정치적 이해관계를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5년간의 사료 수집, 3년에 걸친 장터 순례, 2백여 명의 취재로 완성된 한국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객주]의 개정판은 오랫동안 기다린 시간만큼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며, 처음 만나는 젊은 독자들에게는 재미와 의미가 모두 충족되는 잘 짜인 역사사회소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객주] 1 줄거리 -숙초행로(宿草行露)- 천봉삼, 최돌이(최가), 조성준, 깍정이 두 명까지 총 다섯 명은 새재를 넘는다. 조성준은 최가와 일행이 되어 중노미와 사통하여 떠난 계집을 찾아나선다. 고사리에서 계집을 찾은 조성준은 계집의 발을 작두로 내려치고, 중노미 송만치의 부샅을 자른다. 조성준은 깍정이들과 하직할 작정으로 엽전 백 냥을 내놓으나 깍정이들과 시비가 붙는다. 봉삼이 끼어들지만 깍정이의 공격에 세 사람 모두 쓰러진다. 가까스로 눈을 뜨니 전대고 괴나리봇짐이고 깍정이 두 놈의 행적이 묘연하다. 조성준과 최가는 봉삼을 들쳐 업고 문경길로 접어들어 주막에서 몸을 추스린다. 조성준은 상주로 떠난다. 최가는 주모(매월)가 잠든 부엌방에 기어들어가 술상을 봐오게 한 후, 수작을 부려 일을 치른다. 그때 매월이를 찾아온 장한이 있었으니, 바로 송만치였다. 송만치는 최가를 죽기 무릅쓰고 뒤따르니 최가는 그를 벗어나 고모산성 동쪽 기슭까지 당도하였다. 최가는 조성준의 행방을 좇아 황석배의 집을 찾는다. 최가는 황석배의 객줏집 봉놋방에서 꼬박 이틀을 지새우지만 조성준은 나타나지 않는다. 최가는 황석배의 집 밖에서 서성이던 방물장수에게서 방물고리를 훔쳐 줄행랑을 친다. 사흘만에 최가는 주막으로 돌아온다. 매월은 돌아온 최가에게 접근해 동침한다. 다음날 매월이 방물고리와 함께 사라진 걸 알게 된 최가는, 수교와 사령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얘기하지만 되려 화근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다. 방물고리를 훔친 매월은 마음에 두고 있던 봉삼과 방터골까지 간다. 봉삼은 희자(선돌)가 펼치는 판을 지켜보게 되고 그들은 일행이 되어 예천에 간다. 그 객점 봉놋방에는 석가란 자가 봉삼을 알아본다. 석가는 봉삼과 선돌이 잠들자 매월을 불러낸다. 매월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봉삼과 선돌은 석가를 매타작한다. 주막을 하직한 세 사람은 한 주막의 도부꾼에게 최가의 안부를 듣는다. 봉삼은 최가에게 가 보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지만 일단 안동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때 나타난 석가는 선처를 구하고 그들과 동행한다. 봉삼은 매월과 동침한다. 봉삼은 선돌에게 최가와 조성준을 찾으러 다녀온다고 말한다. 그사이 석가는 매월이를 욕보이려다 양물을 잘린다. 선돌과 매월은 남문 어름에 이르고 떡전 각설이패에서 최가를 발견해 황급히 빠져나간다. 선돌이는 전도가에 들러 차인을 만나고 나온다. 선돌은 매월이 최가에게 시달리는 것을 발견하고 최가는 선돌의 발치에 엎드려 사과한다. 매월은 봉삼을 찾으러 병문으로 나가지만 그를 찾지 못하고 방터거리까지 간다. 선돌은 전도가의 차인꾼을 만나 물대를 지불한다. 선돌이는 그곳에 나타난 장한 셋에 봉변을 당하고 자신이 거래한 물화가 장물임을 알게 된다. 전계장 조순득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용없어 선돌과 차인은 곳간에 갇힌다. 봉삼은 최돌이의 종적을 수소문하다 매월이와 중화를 먹었던 주막에 들러 최가를 물으니, 늙은 주모가 화를 낸다. 그저께 최가가 주모와 내침하고, 평생 해로하기로 약조하고 도망친 것이다. 봉삼은 최가를 대신해 사죄한다. 주막을 나선 봉삼은 떡전 좌판 앞에서 매월을 발견한다. 봉삼은 매월을 떼내려는 속셈으로 주막으로 돌아가 최가의 행방이 안동이 아닌 상주라고 거짓말한 뒤 도망간다. 이튿날 이송천나루에서 봉삼은 최가와 재회한다. 최가는 봉삼에게 선돌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다. 조순득의 전도가를 찾은 봉삼은 계집아이와 함께 대문을 나서는 여인을 뒤따른다. 봉삼은 이튿날 전도가 초입의 팥죽집에 들어가 그 여인이 남편을 잃고 집으로 돌아온 조순득의 딸이며, 곧 서울 화주 첩실로 들어갈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봉삼은 여인을 업어 오자는 계략을 최가에게 털어놓는다. 최가는 탐탁지 않지만 함께하게 된다. 최가는 계집아이를 전도가 인근에 날라다놓고 조가놈을 찾아가 여인과 동패를 바꾸자고 할 작정이었다. 봉삼과 최가는 미리 짜놓은 계획대로 여인과 계집아이를 덮친다. 봉삼은 여인을 짊어지고 팥죽집 할미의 집으로 들어선다. 여인은 봉삼에게 첩실로 들어앉는 것보다 홀애비 아내 되는 것이 낫다고 고백한다. 여인은 자신의 몸을 거두지 않으면 자진하겠다고 한다. 봉삼은 여인을 안아버린다. 여인과 이틀 뒤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방을 나선 봉삼은 전도가 앞에서 기다리지만 최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봉삼이 직접 조순득과 대면하고 전대와 포목짐, 동패를 내놓으라 한다. 조순득은 뜻에 따른다. 풀려난 선돌은 몸을 가눌 형편이 아니다. 전도가를 나서 봉삼과 선돌은 동문거리에 다다르지만 주막에도 최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틀을 꼬박 선돌의 구완에 정신없던 봉삼은 조순득의 여식과 약조한 날이 밝자 이송천나루로 향한다. 신석주의 일행이 나타난다. 행차의 가마 안에 여인이 있는 게 분명하나 만날 도리가 없다. 봉삼은 행객들을 따라 배에 오르고 가마 안에 들릴 큰 소리로 행로를 묻는다. 봉삼은 배에서 비틀거리며 걷다 가마 부근에서 넘어지는 체하며 한 손을 잽싸게 가마로 디민다. 여인의 손바닥이 헝겊 조각에 똘똘 만 무엇을 쥐여준다. 신석주는 나루를 떠나고 봉삼은 주막으로 돌아온다. 선돌에게 봉삼은 속내를 털어놓는다. 사오일 후에 먼달나루로 소금배가 오는데, 그들이 찾는 게 포목이나 담배라는 것이다. 소금배는 썩 앞당겨 이튿날 밤중에 와닿는다. 봉삼과 선돌은 먼달나루로 나가 늙은 뱃놈에게 흥정을 붙이다 서로 시비가 붙는다. 구경꾼이 몰려들고 그 중에 있던 석가가 선돌이를 대신해 도사공을 손본다. 그들은 도사공을 술국집으로 불러내 달랜 후 다시 흥정한다. 소금섬을 건네받아 동문거리 주막으로 건너온 그들은 발행할 채비를 차린다. 세 사람은 산골의 향시들을 거쳐가기로 작정한다. 각산 어름에 묵고 있을 최가를 만날 요량이었다. 가랫골주막에서 쉬던 중 선돌은 봉삼에게 잿길로 올라가는 행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지만 괴이하게도 내려오는 행객은 보이지 않는다며 오늘은 여기 묵고 다음날 발행하자고 말한다. 이튿날 새벽, 세 사람은 가릿재를 오른다. 고갯목에서 적변당한 십수 명의 행객을 발견한다. 세 사람은 대강 수습을 끝내고 관가에 사람을 보낸다. 진보 장판에 닿아 최가를 찾으나 보았다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봉삼의 예상과는 달리 최가는 안동 마전내 부근에서 월이라는 계집아이와 초례를 치렀다. 최가와 월이 역시 진보 땅으로 넘어가 각산 역말 부근 주막을 샅샅이 뒤지며 수소문하나 봉삼 일행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이튿날로 그들은 남각산 황장재 아래 주막에서 봉삼 일행을 기다린다. 이레가 지나 봉삼의 일행과 상봉한 최가는 성례를 치러 달라고 소원한다. 최가와 월이는 주막에 차려진 신방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봉삼은 월이에게 산호비녀를 준다. 산호비녀는 월이의 상전이자 봉삼과 정분을 나눈 조순덕의 여식이 증표로 준 귀물이었다.

야정 1

<야정 1> 고향을 버리고 제 나라를 떠나 압록강을 건너고 장백산을 넘어,만주 벌판 그 이역의 황무지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했던 한말의 유민들의 산 역사를 그리고 있는 대하역사소설.작가는,고통스러웠던 시대에 우직하면서도 강인하게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비참한 이력들을 유장한 문체로 되살려 낸다.

똥친 막대기

<똥친 막대기> ‘길 위의 작가’ 김주영이 처음으로 써낸 그림소설! 버림받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바치는 아름다운 생명의 기록! 측간에 버려진 나무 막대기가 한 그루의 나무로 뿌리내리기까지! 그 찬란한 여정을 담은 《똥친 막대기》는 우리 사회의 버림받고 잊힌 존재에 주목해 온 거장 김주영이 처음으로 써낸 동화 같은 그림소설이다. 늘 물과 양분을 넉넉히 주던 백양나무의 곁가지로 태어난 ‘나’의 생애는 눈부신 사월 어느 날 농부의 손에 꺾이면서 송두리째 뒤바뀐다. 든든한 어미나무의 곁을 떠나, 짝사랑하던 소녀 재희를 때리는 회초리가 되었다가 측간에 버려진 똥친 막대기가 되기도 하고, 재희를 지키는 방패막이가 되었다가 개구리 잡는 낚싯대도 되는 다채로운 모험 끝에 나는 나무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때로는 두려움에 떨고 절망하면서도 끝까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막대기. 작지만 위대한 막대기의 꿈을 이야기하는 노작가의 목소리가 천진하고도 애틋하다.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강산이 그림을 맡아 아기자기한 모험 이야기를 더욱 따스하게 그려냈다. 어리고 작은 막대기가 한 그루의 나무로 뿌리내리기까지 버림받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바치는 아름다운 생명의 기록! 《객주》를 통해 ‘길 위의 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활빈도》《화척》 등의 대하소설로 한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우리 시대의 거장 김주영.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탁월하게 재현해내는 작가로 잘 알려진 그가 처음으로 동화 같은 그림소설《똥친 막대기》를 선보였다. 섬세하고도 토속적인 김주영의 입말과 따스함이 돋보이는 강산의 그림으로 펼쳐내는 어린 막대기의 작지만 위대한 모험 이야기! 우리 시대의 거장 김주영, 작은 막대기의 모험을 쓰다! 늘 물과 양분을 넉넉히 주던 백양나무의 곁가지로 태어난 ‘나’의 평화로운 삶은 눈부신 사월 어느 날 농부의 손에 꺾이면서 송두리째 뒤바뀐다. 든든한 어미나무의 곁을 떠나, 짝사랑하던 소녀 재희를 때리는 회초리가 되었다가 측간에 버려져 오물을 부수는 똥친 막대기가 되기도 하고, 재희를 지키는 방패막이가 되었다가 개구리 잡는 낚싯대도 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파란만장한 모험에 휩쓸리는 ‘나’는 결국 나무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섬세하고 투명한 김주영의 글은 어린 막대기의 귀엽고도 애처로운 모험 이야기에서 빛을 발했다. 온통 이상하고 신기한 것투성이인 인간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는 막대기의 시선은 우리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입말과 어울려 천진하고도 엉뚱한 웃음을 자아낸다. 거센 소용돌이에 온통 운명을 내맡긴 채 자신의 소명을 설 곳을 찾고 소명을 받아들이는 작은 막대기의 겸허함은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코끝 시린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노작가와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의 만남, 언젠가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그리운 그곳을 오롯이 그려내다 《똥친 막대기》에는 뚜렷한 시간적 ․ 공간적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봄으로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농촌 마을’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장 아련한 기억을 건드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적인 글은 언제라도 좋고 어디라도 좋을 것 같은 그리움 그 자체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고향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낸 글과 그림은, 노작가와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하루를 마치고 발을 씻는 소녀의 옆모습과 찰랑이는 귀밑머리의 애잔함, 동네 꼬마들이 몰려왔다가 ‘똥친 막대기’ 공격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달아날 때 골목을 가득 채우는 함성과 웃음들, 농부가 소를 몰고 논둑을 걸어갈 때의 한가로움……. 농촌과 친숙하지 않은 도시인들에게도 가슴 아릿한 그리움을 전하는 풍경들은 스타일리시한 화풍으로 잘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강산의 그림이다. 소녀를 짝사랑해 늘 가까이 가기를 원했지만 그녀의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가 되어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고, 측간에 두고 오물을 부수는 똥친 막대기가 되어 자신이 바라는 꿈과 바랄 수 없는 꿈에 대해 말하는 막대기. 그러면서도 끝까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막대기의 아기자기한 모험을 애틋하게 써내려간 작가는 우리 사회의 버림받고 잊힌 존재에 주목해 온 김주영이다. 그는 《똥친 막대기》를 시작으로, 세상의 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소설 연작을 계획하고 있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생명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상실과 회복……. 잊고 있었던 가치들을 일깨우는 《똥친 막대기》는 꿈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전하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달나라 도둑

<달나라 도둑> 꿈을 일구는 청소년에게, 꿈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아이보다 더 천진한 시선의 작가 김주영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 행복한 판타지! ‘길 위의 작가’로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생명력에 주목해온 김주영의 인생에 관한 통찰과 지혜, 익살과 그리움을 담은 《달나라 도둑》이 도서출판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김주영 상상우화집>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는 ‘길, 소년과 소녀, 이야기, 인생, 꿈’ 등 김주영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루어온 다섯 가지 화두가 62가지의 이야기로 다채롭게 그려져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언제나 배고팠고 어딘가 아팠으며 무엇이든 꼴지였던 어린 시절의 김주영에게 이 책을 바친다 _김주영 작가 김주영은 권두의 헌사를 통해 스스로에게 《달나라 도둑》을 헌정했다. 사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유난히 좌절이 많았기에 꿈 또한 원대하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뿐이었다고 한다. 일흔의 작가 김주영이 ‘그 시절 감히 가질 수 없었던 무지갯빛 꿈을 담아’ 쓴 《달나라 도둑》에는 아이보다 더 천진한 시선으로 바라본 다양한 인생의 모습들이 그만의 둥글고 따스한 언어로 그려져 있다. 번잡한 집단생활을 떠나 조용한 삶을 꿈꾸었지만 소통이 단절된 채 폭삭 주저앉아버린 장미와 늑대(장미와 늑대), 병석에 누워 오직 바다를 꿈꾸다 한 마리 돌고래가 되어버린 소년(바다가 보내준 선물), 아름다움을 사랑해 정원과 집을 온통 꽃밭으로 장식하다 결국 ‘꽃감옥’에 갇혀버린 한 가족(사랑하던 꽃에 갇히다), 평생 매질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으며 죽어서는 너무 질긴 쇠고기가 되어버린 소(일만 하고 욕만 먹은 내 인생), 달나라에 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막상 달 표면에 도착하자 자신이 그리던 달의 모습이 아님을 깨닫고 절망하는 남자(은하철도 2090)……. 엉뚱하고 익살스러우며 한없이 그립다가도 가슴 한편을 찡하게 하는 62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어떤 이의 꿈은 이루어지고 어떤 이의 꿈은 무참히 짓밟히며 어떤 이들은 꿈을 이루었지만 행복하지 못하다. 인생을 통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해학과 지혜가 무릎을 치게 만드는 한편, 끝내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은 마음에 잔잔한 파문으로 남는다. 길, 인생, 소년과 소녀, 꿈, 이야기… 다섯 가지 화두로 읽는 김주영의 작품 세계 ‘천재성보다는 근면성으로 문학을 했다’고 밝힌 바 있는 김주영의 치열한 작가정신이 상상력과 만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우화의 형식을 취해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우리 삶의 참모습과 해학을 담고 있는 《달나라 도둑》이 더욱 반가운 까닭은 김주영의 작품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길: 우리가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곳. 인생: 목적지 없는 길, 걷는다는 행위만으로도 거룩해질 수 있는. 소년과 소녀: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내 어린 날. 꿈: 마음껏 가져보지 못한 황홀, 내 꿈은 늘 상처투성이였기에. 이야기: 그럼에도 나는 다른 세상을 그린다. 이 책의 테마가 되는 ‘길, 인생, 소년과 소녀, 꿈, 이야기’ 등 다섯 가지 소재에 대해 작가 김주영이 자신만의 언어로 내린 정의이다. 작가가 각별한 애정을 갖고 《객주》, 《멸치》, 《똥친 막대기》 와 같은 전작에서 다루어온 위의 소재들이 《달나라 도둑》만의 우화적 기법으로 묘사되는 과정을 비교해보는 것도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을 주로 동물이나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며, 유머와 풍자를 담은 짧은 길이의 글을 ‘우화’라 부른다. 옛 선지자들은 우화를 지어 지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으며 예수 또한 우화를 즐겨 인용했다고 한다. 호흡이 짧고 읽기도 쉽지만 그만큼 작가의 역량과 인생에 대한 오랜 탐구를 요구하는 글이 바로 우화인 것이다. 거기에 김주영만의 말맛과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 완성한 62개의 이야기에는 우화적 지혜와 행복의 메시지,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진함이 넘친다. 노작가의 상상력과 지혜가 바야흐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열 번째 세계

<열 번째 세계> "제 2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 가작 수상작인 이 책은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신화적 서술을 통해 판타지로 풀어냈다. 100년 동안 세계를 평화롭게 다스리던 여왕 키에르의 실종 이후, 갑자기 세상에 찾아든 10년간의 혼란을 무대로 하고 있다. 혼란의 와중에 여왕과 함께 사라진 여동생을 찾아 무작정 여행길에 뛰어든 한 청년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부활와 소멸을 반복했던 한 남자의 기이한 여정을 통해 인류의 창조 전설과 인류의 불변성을 우화적으로 표현한다. <추천평> 삶과 죽음이라는 고전적인 신화적 모티브를 알레로리적인 방식으로 적절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서영채 (문학 평론가)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생성과 파멸, 삶과 우주적 결합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영도 (소설가) 글쓰기의 열정과 기술을 지녔다. 젊은 환상 소설 작가의 정진을 기대한다. -복거일 (소설가)"

아들의 겨울

<아들의 겨울> 이 시대 최고의 재담꾼이 풀어내는 구성지고 유쾌한 풍자소설 밑바닥 삶의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토속적 유머 김주영의 단편들을 성공적인 풍자소설로 살아 있게 하는 데에는 그의 진한 입담과 함께 희화화, 과장, 대비 등의 수법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작가가 표방하는 가치 체계를 그대로 드러낼 수 없을 때 풍자는 부정적인 현실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풍자의 본질은 ‘웃음이 가지는 공격성’에 있는 것이다. 김주영의 단편소설에서도 이러한 ‘웃음이 가지는 공격성’은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광덕산 딱새 죽이기

<광덕산 딱새 죽이기> 열 권에 달하는 대하소설 『객주』로 온 국민을 울고 웃게 한 이 시대의 거장 김주영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2017년 출간한 『뜻밖의 생』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로, 작품활동 오십 해의 관록과 여든 해가 넘는 삶의 경험을 가진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성찰적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타고난 강골인 김주영 작가는 여전히 힘있는 필치로 선 굵은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전통을 지키며 자연과 함께 삶을 일궈나가는 한 마을에 문명과 자본이 밀어닥치며 일어나는 갈등을 다룬 『광덕산 딱새 죽이기』는, 입체적인 인물들과 해학이 깃든 문장들로 자본에 의해 무너져가는 인간성을 핍진하게 그려내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뜻밖의 생

<뜻밖의 생> 한 사람의 일생을 유년부터 노년의 시간까지 그려낸 『뜻밖의 生』은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노장만이 쓸 수 있는 삶의 혜안이 담긴 소설이다. 삶의 예측 불허함, 행복의 본질, 세계에 내재된 아이러니를 천부적인 이야기꾼 김주영답게 강렬한 서사로 풀어냈다. 작가는 한 인간이 생을 살아내며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과 희극을 동시에 펼쳐 보인다. 그러면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도,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도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통해 삶의 본질과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잘 가요 엄마

<잘 가요 엄마> 김주영 등단 만 41년, 마침내 써내려간 그 이름, ‘엄마’ ‘엄마’만큼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부르게 되는, 항상 부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부르지 못한 것만 같은 그 이름, 엄마. 『잘 가요 엄마』는, 일흔셋, 노년에 접어든 작가 김주영이 등단 41년 만에 처음 부르는 사모곡이자, 그 내밀한 고백이다.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생애에서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 외에 내가 고향을 떠나 터득했다고 자부했었던 사랑, 맹세, 배려, 겸손과 같은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 들은 속임수와 허물을 은폐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였다. 이 소설은 그처럼 진부했었던 어머니에 대한 섬세한 기록이다. _‘작가의 말’ 중에서 “몰라, 난. 누나보다 엄마가 싫어.”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아라리 난장』 『멸치』, 그리고 2010년 발표한 『빈집』까지, 등단 41년, 일흔셋의 나이, 천부적인 이야기꾼 김주영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작가생활 동안 그 걸음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긴 시간, 한 번도 그 이름을 올린 적은 없다. ‘엄마’. 작가는,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 수밖에 없는 그 이름을, 비로소 소리내어 부른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우리 시대 모든 어머니들이 살아낸 모성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길고긴 산고를 겪고, 제 젖을 물리고, 제 살을 떼어주며 우리를 키워낸 어머니. 그 촌스럽고 어리석고 못난 이름,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다. 미련하고 바보 같은 엄마의 이야기는, 그래서, 대가 김주영의 단련된 손끝에서 더욱 미련하고 촌스럽게, 그래서 더욱 아프게 그려진다. “잘 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 새벽, 불길한 예감의 전화벨소리.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아우의 전화다. ‘나’는 시큰둥하게 전화를 끊고 평소와 다르지 않게 회사로 향한다. 이튿날 새벽에야 고향에 도착한 나는 짐짓 성의 없는 태도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다. 아흔네 살의 노구는 바싹 말라 있었다. 잘 때를 제외하곤 평생 누운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어머니였다. 그들은 (……) 어머니 시신을 염습대로 옮겼다. 나는 난생처음 누워 있는 어머니와 만났다. 그때까지 잠자리가 아닌 이상 누워 있는 어머니와 대면한 적은 없었다. 나에게 어머니는 그처럼 언제 어디서나 서 있는 사람이었다._본문에서 그 안쓰러움 몸뚱이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염해지고 이내 불태워진다. 아우와 함께 “한줌의 먼지”가 된 어머니를 뿌린 곳은 내 유년의 슬픈 추억이 담긴 장소. 어릴 적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려가면서, 줄곧 뻣뻣하게 어머니를 대해온 ‘나’도 자꾸만 마음이 무너져온다. 나는 어느새 생각하기 자체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혼자였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그는 ‘나’와 엄마를 버려두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늘 어려운 형편이었던 우리 집은 엄마가 막일을 하며 품삯을 받아 근근이 생활했다.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외삼촌 내외도 커다란 짐이었다. 그나마 외삼촌의 딸 애숙이 누나가 말동무를 해주며 어린 ‘나’를 돌봐주었다. 엄마가 일을 다니던 권씨 댁의 모자란 아들 정태와도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엄마가 재혼을 했다. 새아버지가 두렵고 싫었던 ‘나’는 자꾸만 밖으로 돌았다. 의지하던 애숙이 누나마저도 정태와의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 엄마와 짜고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나’에게는 이제 아무도 없다. 어린 ‘나’의 눈에, 나를 잘 키워내기 위해 애쓰는 엄마의 모습은 오히려 구차해 보일 뿐이다. 결국, ‘나’는 애숙이 누나처럼 엄마를 떠나기 위해 멀리 가출을 감행한다…… 아무렇게나 떠나셨지만 아무렇게나 떠나보낼 수 없는 어머니 소설은 엄마의 죽음을 배다른 아우에게서 전해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결국 제 발로 고향을 떠나 떠돌이로 살게 만든 엄마에 대한 원망을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한 ‘나’는, 엄마의 장례에 관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며 회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엄마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이 ‘나’로 하여금 자꾸만 흔들리게 만든다. 비록 육신은 한줌 뼛가루가 되어 흩어졌지만 당신의 마음까지 흩어져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 오히려 시나브로 다가와 아련히 스민 당신. 아무렇게나 떠난 엄마지만, 결국 ‘나’는 엄마를 아무렇게나 떠나보내지 못한다. 장례를 치르고 아우와 함께 돌아온 ‘나’는 엄마가 쓰던 싸구려 비닐가방 속에서 한 번도 쓰지 않은 립스틱을 발견한다. 아우의 손이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 하나를 집어올렸다. 그것은 놀랍게도 립스틱이었다. 아우가 뚜껑을 열고 립스틱을 위로 밀어올렸다. 빨간색 립스틱이 흡사 어머니의 영혼인 것처럼 앙증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아우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어머니 립스틱 바른 모습 본 적 있어?” “본 적 없어요.” (……) 어머니가 그걸 써봤든 못 써봤든 몇십 년 동안 핸드백에 립스틱을 넣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어머니 역시 여자였구나, 싶은 연민이 뒤통수를 쳤다._본문에서 어려운 살림을 챙기며 자식을 돌보느라 엄마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그 무엇, 그러나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소중히 간직해왔던 그 무엇, 엄마가 엄마임을 당연하게만 여겼던 자식들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바로 그 무엇. 엄마도 결국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아픈 이야기는 이렇게 끝없이 이어진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무언가 어렴풋이 내 시선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먼지였다. 내 심장을 덮고 있던 미세한 먼지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안치실 냉동 캐비닛에 갇혀 있었으므로 성에가 하얗게 끼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주잔을 들이켜며 눈물을 훔치던 아우의 얼굴이 어둠 속 멀리로 흩어지는 먼지 사이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둠이 깔리는 차창 밖으로 산기슭에 기대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 지나갔다. 완만한 언덕을 기어오르는 사래 긴 보리밭이, 동구 앞 들머리를 푸른 잎으로 가득 채운 느티나무가, 바람에 떨고 있는 상수리나무가, 허리 굽은 소나무와 쥐똥나무 울타리가, 냇가의 논둑에 홀로 서 있는 백양나무가,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산골 아이들의 모습이 풍경처럼 스쳐갔다._본문에서

홍어

<홍어> 1993년 12월, 한국문학의 새로운 플랫폼이고자 문을 열었던 문학동네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을 발간, 그 첫 스무 권을 선보인다. 문학의 위기, 문학의 죽음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문학의 황금기는 언제나 과거에 존재한다. 시간의 주름을 펼치고 그 속에서 불멸의 성좌를 찾아내야 한다. 과거를 지금-여기로 호출하지 않고서는 현재에 대한 의미부여, 미래에 대한 상상은 불가능하다. 미래 전망은 기억을 예언으로 승화하는 일이다. 과거를 재발견, 재정의하지 않고서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없다.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전집을 새로 엮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은 지난 20년간 문학동네를 통해 독자와 만나온 한국문학의 빛나는 성취를 우선적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앞으로 세대와 장르 등 범위를 확대하면서 21세기 한국문학의 정전을 완성하고, 한국문학의 특수성을 세계문학의 보편성과 접목시키는 매개 역할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005 김주영 장편소설 홍어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제5권은 우리 시대 대표적인 이야기꾼 김주영의 장편소설 『홍어』(1998)로, 주로 선이 굵고 역사성이 짙은 작품을 통해 당대 민초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가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997년 『작가세계』에 발표되었을 당시 문단으로부터 본격소설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찬사를 받았다. 폭설로 고립된 산골 마을에서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열세 살의 소년을 화자로 내세운 이 작품은 시적 상징과 서정적 묘사를 통해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작가가 이순(耳順)에 다다라 인생을 반추하듯 써내려간 『홍어』는 열세 살 소년 세영의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다. 세영은 유부녀와 통정(通情)한 뒤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삯바느질꾼인 젊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했던 홍어를 부엌 문설주에 매달아두지만 아버지에게선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홍어는 먼지와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말라갈 뿐이다. 세영은 정초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오리연을 날리며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비상(飛上)하는 몽상에 빠져든다.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여자가 아버지가 바깥에서 낳은 아이를 등에 업고 나타나고 어머니는 이를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이며 말없이 아이를 거둔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온 이튿날 어머니는 아침 눈밭에 발자국만을 남긴 채 사라져버린다.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며 사는 큰 새”인 홍어, 가오리연의 날개 등과 같이 비상하는 이미지들과 떠남과 머묾의 상징들이 정교하게 짜여 깊이와 무게를 더하는 이 소설에 대해 작가는 “아랫목에 앉아 인생을 반추하고 싶은, 아주 조용한 소설”이라 말한 바 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과 오지 않는 이를 조용히 기다리는 모자(母子)의 삶이 고요히 하지만 가슴속 깊이 다가오는 작품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김주영의 소설 『홍어』에 홍어는 없다. 소설의 시작과 더불어 홍어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없어진 홍어도 본래 살아 있는 홍어가 아니라 “언제나 부엌 문설주에 너부죽하게 꿰어 매달려 연기와 그을음을 뒤집어쓰고 있던” 말린 홍어, 즉 부재하는 아버지의 ‘별명’에 불과하다. 그것은 메마른 상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마른 홍어를 살아나게 하는 가슴속의 생명력이다. (…) 거기에는 한겨울의 씀바귀가 파릇파릇하게 살아나고, 지느러미를 파상으로 움직이며 유유히 소택지를 헤엄치고 싶은 홍어의 꿈, 하늘 높이 날고 싶은 가오리연의 꿈이 요동친다. _김화영(문학평론가, 불문학자) 김주영의 소설세계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어떤 모습을 재현하는 사실주의적 세계이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시대가 과거의 어느 시대인지 밝혀주고 그가 살고 있는 장소가 어느 곳인지 설정해줌으로써 독자는 역사의 어느 시대를 역사 이상으로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 그 안에서의 삶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양상과 의미가 오늘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질문하고 깨닫게 된다. _김치수(문학평론가, 불문학자)

빈집

<빈집> “내 안에 터질 듯이 더부룩한 탐욕이 있다. 그것이 나를 천성적인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장편소설 『빈집』은 부권 부재의 상황 속에서 어머니에게도 온전히 사랑받지 못했던 한 여자아이의 성장사를 그리고 있다. 작가 김주영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견딤의 미학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며 한 가족의 적막한 이야기를 전한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김주영 작가의 대표적인 자전적 성장소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가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다시 출간되었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1987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연재를 시작하였다. 이듬해 가을호까지 다섯 차례에 나누어 실린 이 작품은 연재를 마치고 그해 곧 민음사에서 출간이 되었다. 이후 문이당으로 판권을 옮겨와 많은 부분 수정을 거쳐 2001년에 『거울 속 여행』이라고 제목을 바꾸어 개정판을 내기도 하였으며, 2003년에 다시 원래의 제목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로 되돌아왔다. 바로 이 해인 2003년에는 당시 MBC의 인기 프로그램 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에서 선정이 되어 전 국민적으로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이름 없는 목소리

<이름 없는 목소리> 김주영 작가의 오싹하면서도 강렬한 SF 기억을 잃은 여성, 주란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미스테리 스릴러. 보조해마를 통해 기억을 컨트롤하는 기억센터와 거리의 부랑자-빌리지들이 엮인 거대한 음모가 미로처럼 펼쳐진다.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다음 전개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궁금증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흔한 남자들의 기적

<흔한 남자들의 기적> 한국 작가 21인과 중국 작가 12인이 쓴 100편의 환상적인 이야기들 정세랑, 김보영, 배명훈, 김이환 등 한국 장르소설의 대표 작가들을 배출해온 환상문학웹진 ‘거울’과 아작이 만드는 전자책 총서!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 이상, <거울> 중에서 2003년부터 한국 장르문학을 지켜온 환상문학웹진 거울, 지난 18년간 거울이 아니었던들 한국 장르문학의 역사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암울했을 것이다. 18년 거울 역사를 돌아보는 88편의 작품과 한중교류를 통해 만나는 당대 최고의 중국 작가들이 선보이는 중국 SF의 진수 111편! 이 모두를 하나의 세트로 만나보자.

파국

<파국> 한국 작가 21인과 중국 작가 12인이 쓴 100편의 환상적인 이야기들 정세랑, 김보영, 배명훈, 김이환 등 한국 장르소설의 대표 작가들을 배출해온 환상문학웹진 ‘거울’과 아작이 만드는 전자책 총서!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 이상, <거울> 중에서 2003년부터 한국 장르문학을 지켜온 환상문학웹진 거울, 지난 18년간 거울이 아니었던들 한국 장르문학의 역사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암울했을 것이다. 18년 거울 역사를 돌아보는 88편의 작품과 한중교류를 통해 만나는 당대 최고의 중국 작가들이 선보이는 중국 SF의 진수 100편! 이 모두를 하나의 세트로 만나보자.

인간의 이름으로!

<인간의 이름으로!> 한국 작가 21인과 중국 작가 12인이 쓴 100편의 환상적인 이야기들 정세랑, 김보영, 배명훈, 김이환 등 한국 장르소설의 대표 작가들을 배출해온 환상문학웹진 ‘거울’과 아작이 만드는 전자책 총서!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 이상, <거울> 중에서 2003년부터 한국 장르문학을 지켜온 환상문학웹진 거울, 지난 18년간 거울이 아니었던들 한국 장르문학의 역사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암울했을 것이다. 18년 거울 역사를 돌아보는 88편의 작품과 한중교류를 통해 만나는 당대 최고의 중국 작가들이 선보이는 중국 SF의 진수 81편! 이 모두를 하나의 세트로 만나보자.

이 밤의 끝은 아마도

<이 밤의 끝은 아마도> 삶의 종막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구원도 마찬가지다. 진짜 자신, 나의 갈망을 찾아가는 길이야말로 환상문학이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가 아닌가. 잠깐 멈춰서 그것을 한 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에 후회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자. 남이 골라주진 않았지만 남이 손가락질하지 않는 옷을 입고, 남이 골라주진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음식을 먹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을 자지 않는 것 뿐. 그 사이에서 나는 없어져버렸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친 게 아니라, 샛길이 없는 삶이다. 온우주 단편선 열세번째 작품집에 잠시 머물러, 보지 못했던 샛길을 다시 짚어보길 권한다. 의자에도 앉아보고, 돌멩이도 들여다보고, 별도 개도 천사도. 그러면서 나도. 이 단편집의 주제는 숙명처럼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만날 때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래서 각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만남이 있다. 천사, 개, 마녀, 요정, 스타, 재능, 포스트잇이 붙은 사람, 나를 잊은 사람, 옛사랑, 늪,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는 나와 만나기도 하고 아무것도 만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다. 만남은 밋밋한 삶을 마법처럼 바꿔놓는다.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기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이 열리기도 한다. -작가의 말 中

시간 망명자

<시간 망명자>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미래세계. 그곳에서 시작되는 시간이동 스릴러의 백미! 실패한 밀정이었던 사내에게 내려진 마지막 미션, 끝내지 못한 작전이 미래에서 다시 시작된다! 시간여행담이야 요즘 대중에게는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익숙한 소재가 되었다. 김주영의 신작 장편 스릴러 소설 『시간 망명자』 또한 시간이동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작품은 과거가 아닌 미래로의 이동, 그리고 개인이 아닌 대규모 집단이주를 다룬다. 자연출산이 불가능해진 시대, 인구를 충당하기 위해 다른 나라가 아니라 다른 시간대, 죽기 직전의 주민들을 미래로 대거 이주시키는 사회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끝내지 못한 작전이 미래에서 다시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 밀정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지한은 상해 거리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순간, 어떤 남자에게 오늘 자신이 죽는다는 경고를 들었던 걸 떠올린다. 결국 죽음과 함께 미래에서 깨어난 지한은 이 세계가 생명연장이 가능하며 인공지능과 초첨단 방범 시스템으로 잘 관리되는 사회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절대 일어날 리 없는 살인사건, 그것도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지한은 누군가 자신을 과거에서 미래세계로 데려왔음을 알게 되고, 그와 관련되어 있는 연쇄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사건 속으로 파고든다. 과거와 미래의 충돌, 첨예한 갈등! 시간이동은 보통 어떤 사건에 대한 아쉬움, 회한에서 시작된다. 『시간 망명자』 또한 연쇄살인이라는 사건 뒤에 숨겨진 어떤 비밀을 해결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안타까움 혹은 바람이 시작점이다. 빅브라더처럼 시스템으로 잘 관리되는 사회에서 절대 일어날 리 없는 사건이 일어나고, 시간난민자들 사이에 과거와 연결된 다양한 갈등이 싹트는 것은 완벽하다 생각되던 사회 어딘가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미래사회 그 누구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거기엔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한계시간까지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외부세계에서 온 누군가가 끌어들인다. 이렇게 스릴러의 조건은 완성된다. 모든 장르코드를 활용한 깔끔한 전개! 『시간 망명자』는 시간이동이라는 SF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미래세계를 리얼하게 구축하고, 연쇄살인사건을 쫓는 과거의 밀정이라는 인물상을 통해 스릴러의 재미를 보여준다. 작가 김주영은 오랫동안 다양한 장르소설을 써왔던 경험을 이 소설 속에 진득이 녹여냈다. 즉, ‘다양한 장르 코드를 시원스럽게 다 활용하면서도 그 전체를 난삽하지 않게 다루고, 다양한 인간군상과 설정이 어우러져 하나로 수렴되는 깔끔한 전개’를 선보인다. 이것은 한국 장르소설에서 흔치 않은 경험이고, 또한 장르소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작가 김보영의 표현대로라면 ‘가뭄에 단비 같은 한국 SF 장편이기도 하며, 흔치 않은 하드보일드 SF 스릴러 소설’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많은 독자들이 출간하기도 전에 2017년 한국 장르소설의 서두를 열 작품으로 『시간 망명자』를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미래세계. 그곳에서 시작되는 시간이동 스릴러의 백미! “이 해괴한 세상에서도 봄 타령을 했다면, 죽일 놈이 많다는 뜻이지.” 모든 것은, 한 남자가 찾아온 순간 시작되었다! 1937년 상해 거리. 여기 인력거를 끄는 한 사내가 있다. 한때 항일투쟁에 한 몸 바쳤던 남자. 그러나 암살작전의 실패를 예감하고 친구의 연인을 속여 상해로 함께 도망친 남자. 상해에서는 암살자로 살았으나 손가락을 잃고 비루한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남자. 갑자기 사라진 친구의 연인을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니는 남자. 그런 남자, 강지한에게 어느 날 묘한 배지를 단 사내가 찾아와 자신은 미래에서 왔으며, 그가 곧 죽을 거라는 기기묘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번이 마지막 방문입니다. 이번에 실패하면 영영 선생을 미래로 데려갈 기회가 없어요. 그러니 선생은 나를 믿어야만 합니다.” 당연히 지한은 사내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내는 계속 지한 앞에 나타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선생은 시간이민대상자입니다.”, “선생, 저는 적이 아닙니다.” 누가 짐승이고 사람인지,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시대, 혼돈의 거리에서 사내의 말은 계속 부정된다. 그러나 사내가 예언한대로 1937년 오월 초닷새, 지한은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음에 이른다. 누가 미래로 불렀는가? 왜 나를 불렀는가? 끝내지 못한 작전이 미래에서 다시 시작된다! 김주영의 신작 소설 『시간 망명자』는 1937년 상해에서 긴 시간이 지난 미래세계로 시간이동된 인력거꾼, 강지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때 밀정이었던 강지한이 시간이동된 미래세계는 대학살이라 불리는 참상을 겪어 인류는 고작 30퍼센트만이 살아남았고, 심각한 출산율 저하와 인공출산 금지까지 더해지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든 상태다. 결국 원 인류 보존을 위해 과거 인간을 데려오는 시간이민 정책이 추진되었다. 그 탓에 과거에 뿌리를 둔 정치, 종교, 인종 등으로 인한 갈등이 시작되었고, 최근에는 천리안과 인공지능 등 시스템으로 철저하게 관리되는 이곳에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사건까지 벌어진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시간이민을 신청했음을 알게 된 지한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가 날 불렀는가? 왜 날 불렀는가? 한때 밀정이었던 자신을 이 세계로 부른 것은 분명 어떤 연유가 있음을 감지한 지한은 자신의 담당이 된 치엔과 함께 연쇄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사건을 파고드는데……. 과거와 미래의 충돌, 첨예한 갈등! 치명적인 시간이동 스릴러의 백미! 시간이동은 어떤 사건에 대한 아쉬움, 회한에서 시작된다. 김주영의 『시간 망명자』 또한 연쇄살인이라는 사건 뒤에 숨겨진 어떤 비밀을 해결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안타까움 혹은 바람에서 시작된다. 미래세계는 생명연장이 가능하며 인공지능과 초첨단 방범 시스템으로 잘 관리되는 사회다. 그런 곳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살인사건, 그것도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다. 거기에 난민들, 정확히는 시간난민자들이 이민을 옴으로써 과거와 연결된 다양한 갈등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완벽하다 생각했던 사회 어딘가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기에 외부세계에서 온 누군가가 끌어들인다. 게다가 거기엔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한계시간까지 정해져 있다. 이렇게 스릴러의 조건은 완성된다. 도발적 서두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음모까지! 모든 장르코드를 활용한 깔끔한 전개! 『시간 망명자』는 시간이동이라는 SF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미래세계를 리얼하게 구축하고, 연쇄살인사건을 쫓는 과거의 밀정이라는 인물상을 통해 스릴러의 재미를 보여준다. 작가 김주영은 오랫동안 다양한 장르소설을 써왔던 경험을 이 소설 속에 진득이 녹여냈다. 즉, ‘다양한 장르 코드를 시원스럽게 다 활용하면서도 그 전체를 난삽하지 않게 다루고, 다양한 인간군상과 설정이 어우러져 하나로 수렴되는 깔끔한 전개’를 선보인다. 이것은 한국 장르소설에서 흔치 않은 경험이고, 또한 장르소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작가 김보영의 표현대로라면 ‘가뭄에 단비 같은 한국 SF 장편이기도 하며, 흔치 않은 하드보일드 SF 스릴러 소설’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많은 독자들이 출간하기도 전에 2017년 한국 장르소설의 서두를 열 작품으로 『시간 망명자』를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 줄거리 1937년, 누가 사람이고 짐승인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해 거리. 그곳에서 지한은 인력거꾼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한때 밀정으로 항일운동에 투신했던 그는 암살 작전의 실패를 예감하고 동지의 연인인 수향을 속여 상해로 도망쳐왔다. 그러나 뒤늦게 거짓을 알게 된 수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한은 상해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그녀의 행방을 뒤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앞에 낯선 배지를 단 사내가 나타난다. 사내는 지한이 ‘시간 이민 대상자’이며, 벌써 몇 번의 실패 끝에 마지막 시간 이민 기회만이 남아있다는 묘한 소리를 들려주고는 그의 눈앞에서 권총 자살을 하고 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