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베란다에 느닷없이 나타났던 거대한 구렁이. 정신을 추스리고 단순한 호의로 삼각김밥을 줬다. 산으로 돌아가는 길도 알려주고. 그런데 다음날 나타난 잘생긴 남자. 대뜸 자기가 어제 그 구렁이란다.“어제 제가 본 그... 구렁이가 그쪽이에요? 진짜로?”해주는 물어보면서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일까. 아니, 따지고 보면 어제 그렇게 큰 구렁이가 나타난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얘기다. 어젯밤에 느꼈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놀라야 할지 모를 기분’이 또 들었다.“네. 정확히 말하면 구렁이는 아닙니다.”그는 그냥 파충류 구렁이도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당함이 넘쳤다.“이무기입니다.”그렇게 집으로 날아든 남자. 현대 서울, 승천해 용이 되려는 이무기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여자의 기묘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이연유 장편소설 『그들의 기묘한 이야기』
혼자 조용히 마음을 감추고 시간을 보낸 여자, 최연아. 다 잊은 줄, 지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지만 끝까지 묻어둘거다. 깨질지 모르는 불완전한 관계는 싫다. 나름 똑똑하게 군다고 자부했던 남자, 김재우. 알고 보니 이렇게 멍청할 수가 없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기에. 치마 주머니에는 낮에 재우가 준 초콜릿 몇 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초콜릿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좋아한다고 고백하면서 준 것도 아니었고, 예쁘게 포장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른 날에도 줄 수 있는 평범한 초콜릿 몇 개. 이렇게 함께 집에 가는 것도, 재우가 사탕들을 들어주는 것도 모두 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도 모른다. 나조차도 외면하는 내 비밀은. “떡볶이는 오빠가 사줄게.” “오빠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 “우리 동생 키 크려면 잘 먹어야지.” “나 키 평균 이상이거든?” “나보다 작으면 작은거야.” 주먹을 쥐자 재우가 환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빨리 했다. 깜깜한 밤이 다 밝게 보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 얼굴을 보는 게 좋다. 아마 그래서 난 말 못할 것 같다. 어렴풋이 느꼈지만 모른 척 외면했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