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진
김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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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보이

“옛날에 마법에 홀린 소년이 살았습니다……”어느 날 내 안에 들어온 신비로운 남자, 온희이 짧고 마법 같은 사랑은 진짜일까 거짓일까고품격 로맨스 소설 시리즈 로망컬렉션의 4번째 작품, 『네이처 보이』 출간『선량한 시민』으로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김서진의 『네이처 보이』가 나무옆의자 &lsq...

환 제국사

김서진의 판타지 장편 소설 <환 제국사>, 제 1 권. 마족? 마신? 놀고 있네! 그럼 과거로 돌려보내줘봐! 시원하게 한번 뒤집어 줄테니까! 과거의 미묘한 비틀림…. 운명의 마신과 여신과의 계약! 당신이 책을 드는 그 순간부터 정확히 19년 후 우리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꾸리지도 모른다. 찬란한 혼을 가진 민족! 광대한 제국의 모습으로….

화적우

1930년대 말 경성. 사랑하던 연인 기형이 자살한 지 1년 후. 수희의 눈앞에 거짓말처럼 기형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나타난다. 친일파의 거두 이영우 남작의 외아들 성준. 수희는 밀정이 되어 성준의 집으로 들어가지만 성준과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마는데...... 어두운 복도가 미로처럼 얽혀있는 대저택, 그곳에 수십 년 동안 걸려있는 초상화 <화적우>. 그 그림 뒤에 감추어져 있는 슬프고 무서운 비밀과 음모, 그리고 연쇄살인의 덫.

끈

한 여배우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오컬트 미스터리 스릴러.    십대 시절을 함께 보낸 주영, 미령, 현우는 우정과 사랑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  십육 년 후, 한 여배우의 죽음을 계기로 검사와 경찰, 그리고 목격자가 되어 세 사람이 재회하는 순간.  과거의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이들을 묶고 있던 끈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선량한 시민

<선량한 시민> “인간이란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존재야.” 단조롭고 조용한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선량한 그녀. 완전 범죄는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치밀한 인과관계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어느 날 아침 평범한 40대 가정주부인 이은주가 경찰에 체포된다. 혐의는 뜻밖에도 살인 용의자. 며칠 전 60대 남자가 만취해 동네 개천에 빠져 죽은 채로 발견됐을 때 경찰은 실족사로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은주가 그를 살해하는 현장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난 것. 경찰에 끌려간 은주는 피해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며 완강히 저항하고, 도무지 범행 동기를 찾아낼 수 없었던 경찰은 어쩔 수 없이 은주를 풀어준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시아버지 집에 들어가 살고 있는 은주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남겨진 돈으로 식당을 차리고 엇나가는 아들을 위해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시아버지는 구순의 나이에도 임플란트 시술까지 받아가며 삶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고, 은주는 꿈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막막하다. 고교 동창 모임을 마치고 우울하게 집으로 돌아가던 은주는 개천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그의 등을 떠밀어버린다. 며칠 뒤 그 남자의 죽음이 실족사로 처리되자 은주는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살인의 기억을 애써 지우고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려다 경찰서에 용의자로 잡혀가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일단 풀려났지만 목격자의 출현은 은주를 불안하게 만든다. 목격자는 경찰서에서 풀려난 은주에게 전화를 걸어 그 남자를 왜 죽였는지 알려달라고 한다. 은주는 전화번호를 추적해 목격자가 이용한 공중전화의 위치를 알아내고 그의 정체까지 알아낸다. 그리고 목격자는 사라져야 한다고 단호히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진짜 목격자는 따로 있다. 바로 논술 강사를 하면서 소설가를 꿈꾸는 윤창수로, 그는 삶이란 인과나 논리가 아니라 우연과 충동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소재를 찾아 거리를 배회하던 창수는 평범해 보이는 40대 주부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광경을 보고 드디어 자신이 찾아다니던 이야기를 찾았다는 생각에 강렬한 흥분을 느낀다. 자신이 목격한 사건이 실족사로 결론 나자 창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경찰에 제보하고, 은주가 풀려나자 그녀의 집으로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그녀의 일상을 관찰하는 등 주변을 맴돈다. 이후 사건은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으로 누구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은주와 주변 인물들을 몰아간다. [추천사]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관습을 철저하게 깨고 있다. 소설의 첫 장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가르쳐주고, 심지어 진범은 잡힌다는 추리소설 특유의 깔끔한 결말마저도 거부한다. 독자들은 이 소설에서 치밀한 스토리와 연속되는 반전,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이 주는 충격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책을 덮으면서 ‘과연 이성적 인간을 표방하는 우리가 현실의 인과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갖게 될 것이다. _강희진(소설가) 『선량한 시민』은 평범한 여성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연쇄 살인 행각과 이 연쇄 살인이 폐쇄적 마을에서 하나의 ‘놀이’로 희화화되는 과정을 정밀하게 파고든 추리소설이다. 반전을 거듭하다 결국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_세계문학상 심사위원단(이순원, 신승철, 정은영, 구경미, 김도언, 정이현, 김미월, 김석진) [책 속에서] ‘지금 등을 확 떠밀어버리면 저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 갑자기 배 속이 꿈틀했다. 왜 그런 충동이 들었는지는 그때도, 그 이후에도 알 수 없었지만, 그 충동은 너무나 강렬한 것이어서 은주는 갑자기 오금이 저려오면서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입안까지 바짝 말랐다. 은주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48쪽) 공포보다 은주를 더욱 사로잡았던 것은 놀라움이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놀라움. 그것이 어떤 뿌듯함이나 자랑스러움은 결코 아니었지만 분명 공포도 아니었다. 죄책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형태의 놀라움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스스로에게 살인자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53쪽) 어쩌면 그렇게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정치한 인과관계에 의해 사건이 일어나고 마무리되는지 창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인생에는 복선도 플롯도 없다. 성격은 충동에 의해 무너지고, 기억은 소망에 의해 왜곡된다. 인생은 무질서한데 왜 소설 속 이야기는 그토록 질서 정연해야만 하는가. (76쪽) 현실의 범행은 너무나 우연적으로 이루어지고, 범인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과학 선생 사건만 해도 그랬다. 창수는 지금도 가끔 과학 선생의 꿈을 꾸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77쪽) 동기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창수는 의심스러웠다.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고, 엄청난 일에는 그만큼 엄청나고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때로 절박한 심정이 되곤 하지만, 그 절박함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이유가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그것을 동기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93쪽) 생각해보니 정말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어떻게 저 목격자를 처치했겠는가. 동시에 이렇게 쉽게, 그것도 두 번이나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 이어 경찰이 다시 찾아온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관통하며 지나갔다. (120쪽)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의 껍질 아래 비인간적인 공격성과 철저한 이중성,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무심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창수는 거의 전율을 느꼈다. 그 전율은 기막히게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충격과도 유사했다. 평범한 말만 골라 하면 할수록 은주는 더 신비롭게 보였고, 은주 앞에서 자신은 너무나 평범한 인간인 듯한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133쪽) “그건 왜 물으세요? 제가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서 모함했을까 봐서요?” “그런 이유라도 있어야 말이 되죠.” “형사님, 형사님은 세상 모든 일이 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세상 모든 일이 내 관심사는 아니죠. 나는 범행에 대해 말이 되는 해답을 찾을 뿐입니다.” “그럼 이은주가 범인이 아닌 게 맞잖아요. 도무지 말이 안 되니까.” (157쪽)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단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은주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왜 가공의 연쇄 살인범이 현실로 나타났는지, 자신은 왜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였는지, 사람을 죽이고도 왜 아무렇지도 않은지 이해하려 하지 말자. 단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뿐이다. (195쪽)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가 파괴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다시 복원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엄청난 일은 사소한 일상의 분노로 인해 촉발될 수 있다. “우리는 왜 사소한 일에만 분노하는가”라는 질문은 어리석다. 인간은 본래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15쪽)

2월 30일생

<2월 30일생> 나에게 가장 큰 잘못이 있다면 지난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25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장소에서 죽은 두 여자 60년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한 집안의 비밀과 욕망의 얼굴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가 김서진의 두 번째 장편소설 『선량한 시민』으로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가 김서진의 두 번째 장편소설 『2월 30일생』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평범한 여성이 아무 이유 없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과,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을 마치 놀이처럼 즐기는 사람들을 통해 현 세태와 왜곡된 인간 심리를 서늘하게 그려낸 소설『선량한 시민』은 치밀한 스토리와 연속되는 반전,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로 독자를 사로잡았으며 이는 다음 작품에 대한 높은 기대로 이어졌다. 작가는 자신의 관심사와 역량을 더 힘껏 밀어붙여 또 하나의 추리소설 『2월 30일생』을 내놓았다. 2월 30일, 존재할 수 없는 날에 태어난 한 여자의 죽음을 통해 60년 전 현대사의 비극과 한 집안의 어두운 비밀을 집요하게 파고든 역작이다. 이 소설은 또한 소설NEW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소설NEW는 뉴웨이브(new wave) 문학을 지향하는 나무옆의자의 새로운 소설 시리즈로,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간소설(middlebrow fiction)을 의미한다. [추천사] ‘2월 30일’은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날 태어난 사람이 있다. 『2월 30일생』은 우리가 가진 ‘기억’이 과연 실재한 것에 대한 기억인지, 혹 우리가 잘못된 기억을 진짜인 양 믿고 있는 건 아닌지를, 섬뜩하게 물어온다. 후미진 천변에서 살해된 여자가 나의 연인이었고, 그 범인이 ‘나’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섬뜩함은 공포 이상의 것이다. 존재할 수 없는 시간에 태어난 한 여자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에 드리워진 어두운 개인사적 그늘을 집요하게 파고든 『2월 30일생』은 추리소설의 문학적·미학적 성취라 할 만하다._하창수(소설가) 2월 30일생,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날에 태어난 여인. ‘현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그녀를 사랑했고, 잃었다. 그리고 뒤늦게 그녀가 누구인지, 과거를 파고든다. 현재가 두려워하는 것은 언제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였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과거, 우리들의 처참한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알게 된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과거를 지워버리려는 헛된 시도라는 것을. 『2월 30일생』은 한 여인의 죽음을 통해, 그 이전의 숱한 죽음들을 통해 지워졌던 개인의 역사를 복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뒤틀린 사랑까지도 복원한다. 슬프지만 긍정적이고, 유일한 개인의 구원을 찾아내는 힘 있는 소설이다._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책 속에서] 나는 그제야 내가 용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혜린이 어느 부랑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재수 없게 내가 연루된 것임을 경찰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결백의 근거는 빈약했다. 그것은, 나는 살인을 한 적이 없다는, 더욱이 혜린을 죽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믿음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었다. 그 믿음은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경찰도 내 주장의 빈약한 근거를 눈치채고 있었다. 대길은 자신이 뿌리까지 비천한 존재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설령 대길이 이 전쟁 통에 살아남아 어떤 출세를 거듭하더라도 자신은 윤조와 같아질 수 없고, 윤조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불길이 옥석을 다 태워버린다면, 다 태워 재만 남게 된다면 그에게도 희망이 있었다. 그렇게 세상이 뒤집힌다면 그도 이 비천함에서 뒤집혀 완전히 다른 좌표에 처박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이조가 필요했다. 혜린이 무엇을 알아내려고 했든, 실제로 무엇을 알았든 간에 혜린의 죽음은 할아버지와 얽혀 있었다. 할아버지, 만리, 혜린, 그리고 나. 주요 인물 중 두 명의 여자가 같은 장소에서 죽었다. 한 명은 나의 연인이었고, 또 다른 여자 만리는 아마 할아버지의 연인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이성으로 주체할 수 없는 일탈의 욕구가 있다면 차라리 나는 할아버지처럼 당당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대를 거듭할수록 외양은 더욱 모범적이 돼가고, 욕망은 그에 비례해서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어둠의 가장 깊은 곳에 혜린이 차가운 죽음으로 누워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죽음이 내 손으로 저질러진 것이 아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네 할아버진 환갑이었지만 청년 같았어. 정말 욕심이 많은 양반이었지. 나도 욕심이 많지만 네 할아버지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 뭐든 탐을 냈고 탐나는 것은 다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양반이었어. 그런데 그게 네 할아버지의 매력이었어. 네 할아버지는 사실 J시 같은 좁은 곳에 살기에는 아까운 분이셨지. 본인도 그걸 알았어. 가끔 술을 먹으면 내가 고작 이런 데서 땅이나 사 모으려고 그 전쟁 통에서 살아 남은 게 아니라고 말했지. 이 이야기의 처음은 박대길이다. 혜린은 만리를 뒤쫓았고, 만리는 박대길을 뒤쫓았다. 박대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의문이다. 그가 전쟁 통에 죽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 정말로 나의 고모할머니 이조와 달아났는지, 이조가 죽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알 길이 전혀 없다. 만약 박대길이 살아 있다면? 만리가 만났던 또 다른 남자가 박대길이라면?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계속 할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을 전염시키고, 충족시키고, 버려진 후에조차 끝없이 갈망하고 집착하게 만드는. 정작 스스로는 당신의 욕망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얼굴. 나는 그 얼굴이 혐오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항상 매혹당했고, 그 얼굴을 평생 의지해왔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유난히 불안하고 무서움이 많았던 나의 어린 시절, 그때도 내가 믿고 찾은 것은 항상 할아버지의 품속이었다. 나는 마치 신기한 부적을 보는 사람처럼 급여 서류에 적힌 혜린의 생일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2월 30일생. 존재하지 않는 날짜. 결코 올 수 없는 내일. 혜린의 존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 사진을 당신이 보면 어떻게 될까? 당신이 우연히 그 사진을 보게 된다면, 그 사진과 함께 내 엄마, 만리의 의문스러운 죽음이 당신한테 알려진다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서커스를 보던, 언덕 위의 큰 집에 사는 소년은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어쩌면 가망 없는 사법적 처리보다 그것이 더 통렬한 복수가 아닐까, 나는 상상했지. 성기지만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하늘의 그물 같은 것을 내가 믿었는지도 모르지. 순진하게도. 어리석게도. 나에게 가장 큰 잘못이 있다면, 지난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를 대신해 변명해줄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다. 내 잘못이다.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나는 내가 왔던 곳과 나를 이 세상으로 오게 만든 것에 대해 알았어야 했다. 저 먼 우주의 별들처럼 몰랐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