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있는 시절> 나는 본래 이름이 없었다. 천애 고아. 부잣집의 천한 종놈. 그래서 버렸다, 내 나라를. 당장 한 끼가 절박한 현실 앞에 애국은 남의 나라 얘기였다. 드디어 얻게 된 이름 야마다 쇼이치. 새 이름을 얻음과 동시에 시작된 삶은 이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사람들의 가시 돋친 말과 싸늘한 시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안락함.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내가 일본인입니까?” “…….” “내가 그럼 조선인입니까?” 세상이 뒤집어졌다. 맑고 곧은 눈동자에 마음의 창이 덜컹거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곳이 바로 내 나라예요.” 더욱 심해지는 울렁임과 소음. 그녀의 안에 가득 들어찬 그것을 만져 보기 위해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경계선 쪽으로 걸음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