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골 복순이> 자신이 만든 옷으로 천한 백성의 설움을 덮어주고자 했던 여인, 복순 그런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하염없이 손을 내미는 조선의 임금, 범 “전하께서는 언제나 저에게 평범한 사내이고 싶어 하시는군요.” 화용월태하고 명모에 총명하기까지 하나, 천민인 그녀 “이번에는 하지 마라, 다가오지 말라는 말.” 복순의 당찬 모습에 익애를 느끼며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은 범 끊임없이 다가오는 역경에 도전하며 진실과 공평으로 차츰 선한 목적을 달성해가는 복순은 인생이 역전하는 파란만장한 일을 겪으며 적지 않은 마음의 갈등을 겪게 되는데 과연, 두 사람은 신분을 넘나들고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에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본문 중에서-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궁은 조용했고, 대전과 내전을 지키는 상궁들은 졸음에 못 이겨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예복을 입은 복순은 거치대에 걸려 있는 대례복을 바라보았고, 창가에서 번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그것을 밝게 빛나도록 하였다. 그리고 마치 성혼(成婚)의 절차를 밟듯, 그녀는 구장복(九章服)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것은 범을 사랑하는 일이었고, 사랑하여 그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뼈에 묻는 일이었다. 이로써 그녀는 자신이 완전히 범의 여자가 되었음이라 여긴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죽어서도 임을 향한 사랑이 영원한 것이라고 믿었다. 동이 완전히 터, 햇발이 복순의 얼굴을 빛나도록 비추었고 그녀는 홀로 궁을 빠져나왔다. 곧이어 머리에 나풀거렸던 댕기가 풀려 떨어졌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천복순의 길을 걸어갔다.
다른 사람이 정해 주는 운명은 필요 없어요. 때는 외척이 힘을 틀어쥐어 간신배가 득실대는 혼란의 시대. 망나니에 팔푼이로 위장한 채 기회만 엿보던 왕세자, 이원의 귀에 언제부터인가 양반들이 하나둘씩 봉변을 당한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오늘 밤, 넌 이곳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제 손으로 꼭 정체를 밝히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그 검객을 추격하지만 이번에도 결국 놓치고 마는 이원. 그렇게 몇 달이 흐른 어느 봄날, 그는 잠행 도중 백목련처럼 화사한 한 여인을 마주하게 되는데……. “꺄악! 호, 호색한!” “뭐, 뭐라 했소? 호색한?” 이연에게 한눈에 반해 온 마음을 다 빼앗길 때까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바로, 피할 수 없는 제 운명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