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영
서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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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

<독살> 다정한 왕자여, 너의 물들지 않은 미덕의 세월들은 아직 세상의 속임수에 조각나지 않았구나. 아니면 너는 사람의 겉모습 말고는 사람을 구별을 할 수 없구나, 그가 알고 있는 신은 좀처럼 아니, 결코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는단다. 네가 원하는 그런 숙부들은 위험하였지. 전하는 그들의 사탕발린 말에 정성을 쏟았지만 그들의 심장에서 독만 보지 못하였느니라.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이 이야기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잇고 끊는 독이 주인공입니다. -본문 중에서- “비상은 많이 먹으면 죽기야 하지만 토하고 피똥을 싸고, 피오줌을 싸서 말라서 죽지. 조금씩 자주 먹으면, 혹은 중독 병증이 오래되면 얼굴이며 몸이 마르고 사지가 마비가 되고 저리거나, 경련을 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멀쩡하다 갑자기 죽는 법은 내가 보지를 못했네. 혹 죽자고 덤벼 순수한 비상가루로만 한 사발 삼킨다면 모를까.” “그렇습니까? 그래도 혹 짚이는 것이라도 있다면요?” “당장 생각나는 건, 노란다발 버섯 정도? 하지만 지금이 가을도 아니고 말린 거라면 구할 수 있으려나.” 고면은 다시 몇 장을 읽어 보던 눈썹을 찌푸렸다. 무언가 퍼뜩 떠오른 게 있었다. “마전자라는 게 있는데 이게 사람 고약한 맹독이지. 여송과라는 것도 있어. 이건 1전(3그램)만 먹어도 그 자리에서 죽네만.” 마전자는 남두도 들었다. 먹으면 갑자기 얼굴이 파래지고 숨을 못 쉬고 조금만 건드려도 활처럼 등 쪽으로 휘며 고통으로 소리를 지른다고 하였다. 눈은 돌아가고 얼굴에는 경련으로 부들거리다가 정신은 멀쩡한 채로 반 시각도 못 되어 금방 숨이 끊어진다고 하였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좋은 게 좋은 거지> 처음엔 질펀한 희극이나 써보자 놀린 글이었습니다. 쓰다 보니 어느 결에 이것 뮤지컬처럼, 마당극처럼 신명나도 좋겠구나 그렇게 이어갔습니다. 엎어지면 웃고, 어쩔 줄 몰라 하면 무릎을 치고 울며 매달리면 그것참 고소하다, 역사 팩션 밑그림에 로맨스 추리물에 희극이 더해지게요. 하지만 또 다 써놓고 보니, 처음 뜻은 간데없고 로맨스는 묻히고 추리극은 제 숨도 턱도 차 헉헉대네요. 꽉 짜인 이음새는 보이지 않고 구멍만 숭숭합니다. 그래도 좋으면 다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옷고름에 만드는 건 올도 있지만 엮여 들어가는 공간도 있어야 너울너울 춤사위 따라 춤을 추지요. -본문 중에서- 붉은 비단으로 아래를 꾸민 금침이 어지럽게 있었고 머리맡에는 작은 떡 접시와 물이 있었으나 물 잔은 엎질러져 방 안에 널브러져 있었고 등잔걸이도 엎어졌으나 불이 금방 꺼진 모양으로 불로 번지지는 않은 듯하더라는 말을 전하였다. 한쪽에는 비자나무로 된 바둑판이 있었고 그 모서리에 핏자국이 있어 보았더니 뒤통수에 난 상처와 일치하였는데 그 상처가 그렇게 크지 않았으며 피가 거의 나지 않고 머리카락에 숨어서 찾는 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과연 그 말대로 상처가 크지 않았다. 시체는 괴이하게 오른쪽으로 비틀고 목을 감싸 쥐고 한 팔은 배를 감싸 쥐고 눈을 부릅뜬 채 동쪽으로 난 들창 아래 문갑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쪽 발의 버섯은 벗겨졌고 한쪽 발은 신은 채였으며 저고리 고름은 뜯어져 배를 감싸 쥔 손에 쥐어져 있었다. 옷고름을 만져 보던 순무어사 어른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 옷고름을 만져 보고 속저고리의 감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리고는 곧 침모를 불러들이라고 명을 내리고 시반이 아래로 몰리고 강직이 풀려가는 시체의 여기저기를 살펴보기를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