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바람을 몰고 다니는 아이라지만 난 바람이 좋아. 난폭한 바람이건, 차가운 바람이건.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바람이라도 그 존재에 두 볼을 비비고 안길 틈이 보인다는 게 난 너무 좋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홀로 시골에 농사를 짓는 부친이 어렵게 쥐어준 2백만 원. 그 돈을 건네주시며 우리 딸은 하고 싶은 거 살라고, 나처럼 평생 땅만 파면서 고생하지 말고 서울 가서 자리 잡으라던 말씀을 하며 눈시울이 붉어지시던 늙으신 아빠. “아저씨가 뭔데 남의 병원비를 내고 그래요? 저 거지 아니거든요? 저도 그 정도 돈쯤은 있다고요!”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채 성난 아기 고양이처럼 힘겹게 몸을 도사리며 화를 내는 여자. 잘해주고 싶은데 늘 그렇게 그녀는 호진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 필사적인 모습에 화가 났다. “그럼 갚으면 되잖아. 갚아. 오늘 당장 갚으라고!” 쇳소리가 섞인 음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게 내 현실이라면 피하지 않을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시작할 거야.’ 바람과 비를 몰고 온 아이라고 해도 난 바람 속에 살거야. *본 작품은 12/03일 부터 대여 서비스가 중단되고 구매 전용으로 변경될 예정입니다. 이용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