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
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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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

자신의 두 발로 대지 위에 섰고, 불끈 쥔 주먹으로 하늘을 겨냥한다. 검술도 마법도 재능이 없지만 그렇기에 강해질 수 있었던 존재. 순백색 멸망의 시간 아래, 죽어버린 마음을 품곤 소년은 그렇게 걸었다. 강문의 판타지 장편 소설 『빙하기』 제 1권.

개 같은 그 녀석

모든 걸 쏟아낸 서준이 그녀의 어깨에 젖은 이마를 기대었다. 한층 가까워진 사이에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전해져왔다. 호흡이 진정되기까지 잠깐의 시간이 그렇게 고요하게 지나갔다.“……한 번도, 정말 한 번도 내 생각 한 적 없어요?”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서준이 물었을 때, 지오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가려는 대답을 막으려 입술을 짓씹어야했다.말하고 싶었다.너를 떠나보낸 뒤, 단 하루도 너를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하지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너를 망가뜨린 내가 너를 그리워할 자격이 있을까…….결국 대답 대신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손을 감싸 쥐는 것뿐이었다. 사이사이로 들어가 빈틈없이 깍지를 끼고, 그것을 끌어당겨 커다랗게 흉이 남은 손등에 떨리는 입술을 묻으면서.번번이 이 손에 상처를 남긴 것도, 그의 날개를 꺾어 다시는 꿈꾸지 못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녀였다.언젠가 이 손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던 때를 회상하며, 지오는 되돌려줄 수 없는 감정과 함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질끈 삼켜내었다.“당신이 그 남자 옆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걸 확인한 이상 이제 내가 있을 곳은 여기예요.당신이 밀어내도, 또 날 버려도 소용없어.”경직된 얼굴이 자칫 지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까 봐, 서준은 애써 장난스러운 웃음을 그려 넣었다.“당신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한이 있어도. 날 두 번은 못 버리게 할 거야.”맹목적이고 사나운 맹수의 본능을 그 웃음 아래 애써 감춘 채로.<[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