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최인호
평균평점
운휘경 주유기

운휘상이 익혔던 군자파월도, 심월검류, 황금탕마창을 비롯하여 혈마창도 익혔으며 또한 천지이검이라 되어 있는 검법 중 천검만을 따로 빼서 익혔다. 게다가 마교주만이 익힌다는 천마심법과 천마도법도 익히고 말았다. 과연 마도제일의 천재라 불렸던 운휘상의 후손다웠다. 이 모든 무공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익힌 운휘경이 하산했다!...

상도 1

<개정판 | 상도 1> 21세기 첫 밀리언셀러 등극! 출간 7개월 만에 100만 부 돌파! 총 누적 판매 400만 부 돌파 기념 개정판 출간! 일개 점원에서 동양 최고의 거상이 된,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무역왕 임상옥 그가 펼치는 인간의 길, 상업의 길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출간 7개월 만에 100만 부 돌파! 총 누적 판매부수 400만 부 기록! 대기업 총수들이 가장 많이 꼽은 우리 시대 필독서! 등 화려한 수식어와 찬사 속에 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던 최인호의 장편소설 《상도》의 개정판을 출간한다. 줄거리 기평그룹의 총수 김기섭 회장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은 후 그의 지갑에서 나온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이란 문장의 출처를 밝혀달라는 회사 측의 요청에 나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조선 중기의 무역왕 임상옥(林尙沃)임을 알아낸다. 임상옥은 의주 태생으로 스무 살 무렵 중국 연경에 들어가 처음으로 큰돈을 벌었으나 이 돈으로 유곽에 팔려온 장미령을 사서 자유의 몸을 만들어주고 자신은 공금을 유용한 죄로 상계에서 파문을 당한다. 할 수 없이 승려가 된 임상옥은 고관대작의 첩이 된 장미령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환속하여 재기하기 시작한다. 하산할 무렵 석숭 스님이 내려준 세 가지 비결, 즉 '죽을 사(死)' 자와 '솥 정(鼎)' 자와 '계영배(戒盈盃)'의 술잔을 통해 임상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첫 번째로는 베이징 상인들의 인삼불매동맹을 스스로 인삼을 태우는 방법으로 물리칠 수 있었으며, 두 번째는 풍운아 홍경래의 유혹을 '솥 정(鼎)' 자의 비의를 타파함으로써 그 혁명의 와중에도 온전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득 채우면 다 없어져 버리고 오직 팔 할쯤 채워야만 온전한 '계영배'의 비의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이야말로 최고의 상도(商道)임을 깨달은 임상옥은 사랑하는 여인 송이를 떠나보내고 스스로 물러나 은둔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닭 한 마리를 솔개가 채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의 명운이 다하였음을 직감한 임상옥은 자신에게 빚진 상인들을 모두 불러 일일이 빚을 탕감해주는 한편 오히려 금덩어리까지 들려 보낸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개성상인 박종일이 그 이유를 따져 묻자 임상옥은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빚이란 것도 물에 불과한 것.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받을 빚이요, 갚을 빚이라 하겠는가. 또한 빚을 탕감하고 상인들에게 금덩어리를 들려 보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상인으로서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물건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에 불과한 일이다." 박종일은 임상옥의 명령으로 한양에 있는 봉은사로 출장을 떠난다. 그곳에서 추사 김정희를 만나 임상옥이 보낸 산삼을 전하고 추사로부터 〈상업지도〉란 그림을 받아오게 된다. 한편 임상옥이 사랑하는 여인 송이는 천주교인이 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대세를 주며 천주학을 전파하다가 포졸들에게 붙잡혀 황새바위에서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인 석투살로 처형당한다. 그 이후 임상옥도 건강이 급속도로 쇠약해지고 박종일에게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끝으로 나는 김기섭 회장의 호를 딴 〈여수기념관〉의 개관식에 참석, 추사가 임상옥을 위해 쓴 발문의 내용을 천천히 훈독한다. 그리고 지난 일 년 동안 우연치 않게 뛰어들어 임상옥의 생애를 추적해오고 있던 일련의 작업이 추사의 발문으로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는다. 임상옥(林尙沃)은 누구인가 1779(정조 3년)~1855(철종 6년). 조선 후기의 무역상인. 본관은 전주. 자는 경약(景若), 호는 가포(稼圃). 아버지는 중국 연경(燕京)에 내왕하던 상인인 임봉핵이다. 그가 태어난 의주는 조선 후기 대중국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는 1796년(정조 20년)부터 상계에 투신했다. 그가 국제무역의 거상(巨商)으로 성공하기까지는 중앙권력의 뒷받침도 크게 작용했다. 1810년(순조 10년) 이조판서 박종경(朴宗慶)의 권력을 배경삼아 의주상인 5명과 함께 최초로 국경지방에서 인삼무역 독점권을 획득했다. 1811년 홍경래(洪景來)가 주도한 평안도농민항쟁이 일어났을 때 서북지역의 많은 상인들은 홍경래의 봉기군에 참여했으나, 그는 중앙권력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관군을 지원하는 의병(義兵)에 참여하여 방수장(防守將)이 되었다. 이는 그가 당시 홍경래의 봉기군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권신 박종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이미 특권상인으로 성장하여 홍경래군을 지원한 다른 상인들과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상업적인 수완은 중국 상인들이 따르지 못할 만큼 탁월했다. 1821년 변무사(辨誣使)의 수행원으로 청에 갔을 때, 베이징상인들이 불매동맹을 펼쳐 인삼 값을 낮추려 했을 때 이에 그는 가지고 간 인삼을 불태우겠다고 위협하여 원가의 10배로 팔았다. 그는 이러한 무역활동으로 인삼 무역의 개척자로 평가받았다. 변무사의 수행원으로 연경에 다녀온 뒤 오위장(五衛將)과 전라감영의 중군(中軍)으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832년 왕의 특지(特旨)로 곽산군수가 되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834년 의주부 일대에 큰 수재가 나자 사재(私財)를 털어 수재민 구제에 앞장섰다. 이 공으로 이듬해인 1835년(헌종 1년) 귀성부사(龜城府使)에 발탁되었으나 비변사의 논척을 받자 사퇴했다. 이후 삼봉산(三峰山) 아래 지은 거옥(巨屋)에 거주하며 재산을 풀어 빈민을 구제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시와 술로 여생을 보냈다. 시를 잘 지었으며, 일생 동안에 지은 시를 추려서 〈적중일기(寂中日記)〉라고 했다. 저서로는 《가포집》이 있다. 학봉사(鶴峰嗣)에 배향되었다. ―한국브리태니커 사전에서 발췌

별들의 고향 1

<별들의 고향 1 > 40년 만에 우리 곁에 돌아온 ‘별들의 고향’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문학의 시작 「별들의 고향」 재출간! 최인호의 인간적 체취 담은 2013년 ‘작가의 말’ 수록 1970년대 감수성의 혁명을 몰고 온 한국문학의 축복 ‘별들의 고향’이 돌아왔다 독서 인구의 주류를 이루는 젊은 층들은 ‘별들의 고향’의 이름을 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소설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월을 초월하여 스물여섯 살의 나이였던 젊은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불과 같은 정열로 써내려갔던 그 열망만은 감히 읽고 느껴지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말에서 최인호에게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타이틀을 선사한 작품 40년 만에 ‘별들의 고향’이 돌아왔다. 최인호에게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타이틀을 선사한 작품, 문학을 넘어 우리나라 문화계 전체의 지형도를 바꾼 한국문학의 축복이라는 평가를 받는 ‘별들의 고향’은 최인호의 첫 장편데뷔작이자 최인호 문학의 정수가 담긴 대표작이다. 거장 최인호의 문학 여정에 별처럼 빛나는 이정표로 남아 있는 ‘별들의 고향’, 그 푸르고 깊은 감성이 오늘의 독자와 다시 만난다. 40년 만에 우리 곁에 돌아온 ‘별들의 고향’ 최인호의 인간적 체취 담은 2013년 ‘작가의 말’ 수록 4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별들의 고향’에는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최인호의 인간적 체취가 진하게 묻어나는 ‘작가의 말’이 실려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 패기만만한 스무 살의 최인호, 그 문학적 열정과 신출내기 소설가의 좌충우돌 일화들이 빼곡하다. 연재를 앞두고 작가가 구상했던 ‘별들의 고향’ 줄거리와 당대의 문학계와 출판계의 이모저모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도 함께 실려 있다. 소설가 최인호 ‘별들의 고향'서 잠들다 조선일보 68세 청년 ‘별들의 고향'으로 떠나다 동아일보 ‘별들의 고향'을 쓴 최인호, 그 자신이 별이었다. 이근배 (시인) 2013년 9월 25일,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최인호는 1970년대 한국문학에 혜성처럼 나타나 50년간의 작가 활동을 통해 특유의 세련된 문체와 감수성으로 비단 문학의 영역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사회 문화 저변에 너르고 깊은 변화를 몰고 온 우리시대의 거장이다.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벽구멍으로'가 신춘문예에 당선, 작가의 길로 들어선 최인호는 이후 ‘별들의 고향’ ‘겨울 나그네’ '고래 사냥' ‘상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여러 작품이 영화로도 만들어져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통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7,80년대, 암울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처받던 청춘들의 감성을 대변하던 그의 목소리는 ‘감수성의 혁명’, 한국 문화의 새로운 물길을 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그 최인호 신화의 첫 출발을 알린 작품이 바로 ‘별들의 고향’이다. 스물여섯 최연소 신문연재, 한국문화의 지형도를 바꾼 ‘별들의 고향’ 스물여섯 최연소 나이로 《조선일보》에 소설 ‘별들의 고향’ 연재 1972년, 새파랗게 젊은 최인호는 《조선일보》에 소설 ‘별들의 고향’을 연재하는 파격적인 행운을 거머쥔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최연소 신문연재 소설가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연재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경아’는 단숨에 당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갑자기 전국의 술집 여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경아로 바꾸는 유행이 일기 시작했으며 남자들은 경아가 불쌍하다며 저녁마다 술을 마셨다. 우리의 ‘누이’이자 ‘연인’이 된 경아를 너무 불쌍하게 만들지 말라고 작가에게 협박을 할 정도였다. 1년간의 연재 뒤 1973년 두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별들의 고향’은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 한국문학 최초의 밀리언셀러 ‘별들의 고향’ 또한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46만 관객을 동원하며 우리나라 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썼다. ‘별들의 고향’이 몰고 온 문화적,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연재 종료 뒤 신문마다 앞 다투어 ‘별들의 고향’에 대한 사설이 실렸고 대중문학, 새롭게 대두하는 청년문화에 대한 활발한 조명이 이루어졌다.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로 하여금 ‘별들의 고향’에 열광하게 했는가.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그 아득한 순수의 이름, ‘경아’ 70년대의 낭만과 순수의 상징, ‘경아’ 소설의 주인공 경아는 평범한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무역회사의 경리사원으로 취직한다. 첫 연애에서 남자로부터 버림받고 나이 차이가 많은 상처한 남자와 결혼했다가 실패한 뒤 경아는 술집 호스티스로 전락한다. 경아는 우연히 만난 미술대학의 시간 강사와 잠깐 동거를 하게 되지만 이마저 깨지고 방황하다가 눈 덮인 들판에서 수면제를 삼키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운명처럼 여러 남자를 거치게 되는 경아라는 여자를 통해 1970년대의 여성상과 성 풍속도를 그려낸다. 또한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팽배해진 물신주의와 군사독재로 대변되는 경직된 사회의 폭력성, 주변부로 밀려난 소외된 인간군상의 헐벗은 삶과 허무의식이 고스란히 한 시대의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경아는 7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과 상처를 제 몸으로 받아 안아 참혹하게 상처 입고 파멸해 가는 순수의 상징이며, 70년대라는 컴컴한 밤하늘에 외로이 떨며 빛나는 별이었다. 사람들은 서서히 파멸해 가는 경아의 삶을 안타까이 좇으면서 그로부터 저마다의 상처와 슬픔을, 또한 욕망과 폭력의 현실 너머 순수가 살아 숨 쉬는 별들의 고향을 꿈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경아를 죽인 건 우리 자신이며, 경아의 상처는 우리 모두의 상처임을 자각하게 된다. ‘작가의 말’에서 소개한 중앙일보에 실린 사설의 한 대목은 이러한 특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별들의 고향’은 어떤 유형의 인간들에게 대입시켜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데서 다른 작품이 가질 수 없는 독특한 포용력을 지니는 것 김주연 (문학평론가) “《별들의 고향》의 작가 자신은 이 소설을 성인 동화라고 못 박아 말하고 있지만 《별들의 고향》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다루면서 그것을 마치 환상을 다루는 것처럼 처리한 데서 독자들을 설명할 수 없는 곳으로 이끌고 가는 장점이 있다. 김주연 씨 등 문학평론가들은 이 소설이 어떤 유형의 인간들에게 대입시켜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데서 다른 작품이 가질 수 없는 독특한 포용력을 지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별들의 고향》에 갈채를 보내는 오늘의 젊은 세대는 전투적인 참여파나 퇴폐적인 반문화의 신도라기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소시민적 세대라 할 수 있다...” 최인호 문학의 시원(始原), 별들의 고향 최인호 문학의 시작과 끝, 별들의 고향 최인호의 문장은 마력적이다. 김승옥 이후 감수성의 혁명을 이끌며 한국문학의 차세대 기수로 각광받았던 최인호의 문장은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하고 날카롭다. 그의 문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흡인력과 자유롭고 반항적인 청년의 감성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별들의 고향’은 이러한 최인호 특유의 날카롭고 신선한 감수성이 가장 순도 높게 발현된 최인호 문학의 시원(始原)이며, 이후 그의 문학이 걸어간 인간주의 문학의 거대한 흐름이 시작된 원류(原流)라 할 수 있다. 70년대의 생생한 복원 ‘별들의 고향’은 현대 도시인의 숨어 있는 감성의 현을 탁월하게 짚어낸다. 팽팽한 속도감과 관능적인 분위기, 생동하는 문체와 탁월한 구성, 반항적인 청년의 감성, 그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 70년대 그 자체를 이룬다. 별들의 고향은 독자들에게 70년대의 생생한 풍경을 간접체험하게 한다.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본격적인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던 시기. 억압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 헐벗음과 풍요로움이, 활기와 무기력이 묘하게 공존하던 시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상처받고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 그리하여 ‘별들의 고향’은 “미래에의 전망이 결여된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1970년대 대중의 감수성과 최인호 문학의 감수성이 일치된 상태(문흥술)”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현대인의 슬픈 풍경화 그러나 ‘별들의 고향’이 가진 매력이 단지 70년대의 시대성에 국한된다고는 볼 수 없다. ‘별들의 고향’이 가진 문제의식은 보다 근원적인 삶의 문제에 닿아 있다. 최인호는 경아를 통해 현대인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결핍의 문제에 천착한다. 경아는 한순간도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여자다. 그녀는 남자들의 품속에서 영원한 별들의 고향에 닿기를 꿈꾼다. 사랑을 갈구하는 경아의 몸짓은 삶의 덧없음,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생의 허무를 잊기 위한 덧없는 몸부림이다. 경아를 파멸로 이끈 남자들 역시 고독과 삶의 허무에 먹혀 버린 존재들이다. 그들은 경아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경아를 통해 잠깐의 충족을 맛보지만, 이내 삶의 허무가 심연의 아가리처럼 자신 앞에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 역시 경아를 통해 그들만의 ‘별들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병든 욕망의 순례자에 불과한 것이다. 깊고 푸른 도시의 밤을 불안스럽게 떠도는 미성년의 영혼들. 최인호는 ‘별들의 고향’을 통해서 삶의 근원적인 유한성과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덧없는 욕망의 몸부림을 그려낸다. 우리는 그의 문장을 통해서 70년대를 호흡하고, 경아의 크고 맑은 눈망울 속에서 인간의 슬픈 풍경화를 바라본다. ‘별들의 고향’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우리는 그 황량하고 쓸쓸한, 또한 낭만적이고 순수했던 70년대의 내면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우리의 마음속에 아득한 별빛으로 와 박히는 것을 느끼게 되리라.

타인의 방

<타인의 방> 현대인의 절망적 현실을 직시하는 최인호의 초기 중ㆍ단편선 1972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타인의 방」등 대표작 10편 수록 최인호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해서, 매력적이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냉정한 분석을 방해하고 독자들의 감수성에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현란한 원색의 매력으로 충만해 있다. 그는 현대 도시인의 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성감대를 찾아내고 그것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데 실로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과장된 수사, 팽팽한 속도감, 관능적인 분위기, 생동하는 문체, 흥미 만점의 구성, 우상 파괴적인 제스처―어느 하나도 오늘날의 대중에게 어필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의 문학이 다수의 일반 독자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가장 애호 받는 인기 품목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보아도 당연한 일이다.

할(喝)

<할(喝)>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선승들의 이야기 전 매스컴과 독자들의 격찬을 받으며 15년간 150만 부를 돌파한 스테디셀러 『길 없는 길』을 통해 불교의 요체를 드러냈던 최인호는 경허 선사 열반 100주년이었던 2012년, 경허 선사와 그의 세 수법제자들과 맺었던 인연의 고리를 다시 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3년, 『길 없는 길』에서 경허와 세 수법제자의 이야기만 따로 뽑아 재구성해 세상에 내놓는다. 길 없는 길을 걸었던 위대한 선승들의 이야기, 장편소설 『할』이다. 또한 책 말미에 부록, 경허, 수월, 혜월, 만공의 흔적들을 다큐 형식으로 사진으로 담아놓음으로써 보다 입체적인 선승들의 소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선 말기 국운이 스러져가던 시대에 때로는 사자후와 같은 일갈로, 때로는 오묘한 이치를 담은 설법으로, 또 때로는 경악할 경지의 파행과 기행으로 세속의 부조리를 꾸짖던 경허 선사. 그는 꺼져가는 불법의 불씨를 되살려 낸 우리나라 근대 불교의 선구이자 위대한 자유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수법제자인 ‘세 개의 달’ 수월, 혜월, 만공은 우리나라 근대 불교 중흥을 이끈 찬란한 불법의 꽃봉오리다. 최인호의 『할』은 이들 위대한 자유인들의 여러 일화와 법문을 좇아 길 없는 길의 여정을 떠난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영원한 사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종교소설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최인호’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백제와 가야, 조선을 넘나들던 작가의 상상력은 다시 현대로 돌아와, 뒤틀리고 붕괴된 일상 속에 내몰린 주인공 K의 ‘영원한 사흘’이 상징하는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인 혼돈의 시공간을 창조해냈다. 작가는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실재(實在)에 배신을 당한 K가 또 다른 실재를 찾아 방황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현대인이 맺은 수많은 ‘관계의 고리’의 부조리함을 묘파한다. 최인호, 시들지 않는 문학의 숲으로 다시 출발점에 서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암이 내게 선물한 단거리 주법의 처녀작이다. 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이후의 ‘제2기의 문학’에서 ‘제3기의 문학’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창세기를 향해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_<작가의 말>에서 때때로 삶은 잠시 머물다 가라 한다 ; 최인호의 투병과 문학적 회귀 2010년 새해 벽두에 우리 문학계는 한 가지 우울한 소식을 접했다. 2006년 장편역사소설 『제4의 제국』 이후 소식이 뜸했던 소설가 최인호가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워낙 왕성한 필력을 자랑해온 그였기에 4년 여의 침묵으로 그동안 갖가지 소문이 무성하던 중에 날아든 이 소식은, 1975년부터 34년 6개월 동안 이어져온 연재소설 『가족』의 연재를 중단한다는 갑작스러운 그의 선언과 함께 사태의 심각성을 부추겼다. 최인호의 투병은 우리 문학계로서도 큰 손실이었지만, 한 작가의 문학적 완성에 있어서도 엄청난 좌절과 고통을 안겼다. 1985년 『잃어버린 왕국』을 시작으로 역사와 종교를 다룬 장편소설에 치중해왔던 그가 『제4의 제국』 이후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과 단편으로 복귀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중에 찾아온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8세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한 최인호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한 이래 근대와 현대, 농업과 공업의 시대적·사회적 경계에서 표류하는 도시인들의 왜곡된 삶을 도시적 감성이 담긴 필체로 그려낸 대한민국 현대소설의 대표적인 기수였다. 하지만 1985년 『잃어버린 왕국』 이후, 2006년 『제4의 제국』까지 최인호 문학의 절대적인 비중은 역사와 종교를 다루는 장편ㆍ대하소설이 차지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20년 넘게 대하소설에 천착하는 동안에도 현대소설이라는 본령을 잊지 않았던 듯, 작가는 2002년에 출간된 중단편전집의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과거에 쓴 중단편을 새삼스럽게 읽어보는 동안 나는 문득 작가로서의 남은 인생을 또다시 숨 한 번 쉬지 않고 단숨에 백 미터를 달려가는 치열한 스프린터로 살아가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대하소설 집필을 마라톤의 주법에 비유했던 작가는 초기에 보여주었던 팽팽한 긴장감이 담긴 현대소설과 단편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2005년 『유림』을 출간하면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다시는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덜컥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와 그의 육신과 문학적 이상을 가로막고 말았다. 이후 최인호는 잠행에 들어갔다. 극히 가까운 지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의 근황을 알 길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듯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지만, 그의 실질적인 창작 여정은 거기에서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투병 중에도 숨 고르기를 잊지 않았다. 아니, 그의 병이 그를 다시 현대소설로 복귀하게 만들었다. 2006년 『제4의 제국』 이후 5년 만에 새롭게 펴낸 신작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의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그는 일상이 탈 없이 흘러갔다면 요원한 일이었을 그 ‘숨 고르기’가 오히려 병으로 인해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암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최인호를 위해 쓴, 최인호 최초의 전작 현대소설 ; 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갖는 의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1. 현대소설로의 복귀 첫 번째 의미는 이 작품이 작가가 자신의 본령으로 여겼던 현대소설로 회귀하는 신호탄이라는 사실이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초기 중단편을 중심으로 전개했던 현대소설과 역사, 종교를 다룬 장편ㆍ대하소설을 지나 소설가 최인호의 ‘제3기의 문학시대’가 열리는 시발점이 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장편의 분량과 형식을 취하면서도 간결한 구조와 압축된 문제의식으로 인해 단숨에 읽히는 ‘단편의 콘텐츠’를 취하고 있다. 2. 최인호 문학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두 번째 의미는 작가 자신이 이 소설 「작가의 말」에 밝힌 것을 직접 읽는 것으로 선명하게 와 닿을 것이다. 문단에 데뷔한 이래 50년 동안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수십 편의 장편소설과 대하소설을 집필하였다. 그 모든 소설은 외부의 청탁에 의해 쓴 신문이나 잡지의 연재소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누군가의 청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독자를 의식해서 쓴 작품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독자를 위해 쓴 수제품인 것이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특히 최인호와 같은 인기 작가의 작품은 발표할 지면이 미리 확보된 상태에서 집필에 들어간다. 그러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병과 싸우며 잠행했던 시기에 뇌우와 같은 순발력으로 두 달 만에 써낸 최인호 문학 최초의 비연재작이자 신작인 전작장편소설이다. 유실된 기억 속의 진실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모험과 추적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줄거리 토요일 아침, 시계의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K는 휴일 아침에 왜 자신이 알람을 맞추어놓았는지 의문을 갖는다. 어딘지 모르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상의 흐름을 느끼던 K는 지난밤의 발기 불능, 평소와는 다른 아내의 태도, 지금까지 써온 스킨의 브랜드가 달라진 것 등을 확인하면서 ‘조작’의 기미를 눈치챈다. 타인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낯설기만 한 미세한 변화에서 익숙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삶에 엄격한 평소의 K답지 않게 간밤 정신과 전문의인 친구와 가진 술자리에서의 기억이 어느 시점부터 끊긴 것과 휴대폰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면서 혼란은 가중된다. 처제의 결혼식이 있는 그날, K는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지난밤 술자리에서 끊겨버린 기억과 자신의 행적을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K는 계속해서 역할을 바꾸며 등장하는 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시공간적으로 전혀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지난밤 자신의 행적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발을 딛고 선 현실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가족을 만나보라는 정신과 전문의 친구의 조언을 따라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누이를 찾은 K는, 누이와 자신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특히 몇 년 전 자신이 누이에게 돈을 부탁하면서 보냈다는 편지의 필적은 분명 자신의 것임에도 K에게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K는 조작과 속임수의 실체가, 사실은 뒤틀리고 어긋난 일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 모든 의혹을 풀기 위해서 그는 몇 년 전 누이에게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던 ‘나’를 만나러 가는데……. 뒤틀리고 붕괴된 현실의 틈새에서 발견한 진실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조금 깊이 들여다보기 이 작품은 특이한 구조와 그로테스크한 작중인물의 설정, 환상주의와 사실주의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만큼이나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때문에 빠르게 읽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1. ‘역할’로 점철된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을 그리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K는 사실 조작된 것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주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 2. 일상과의 이별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소설가 김연수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독법의 열쇠를, 작가가 1972년에 발표한 단편 「타인의 방」에서 찾고 있다. 김연수는 「타인의 방」을 두고 쓴 문학평론가 남진우의 “그는 타자가 기획한 무대에 등장한 어릿광대이며 속임수에 빠진 가련한 희생자에 불과하다”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K가 처한 상황 역시 왜곡되고 뒤틀리면서 일상의 공간이 비일상의 공간, 연극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의 틈을 통해서다. K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지진의 균열이 일어날 때와 일치한다. 디디고 선 땅이 물렁해지는 이 의심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심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건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리라. (…) 현실은 언제든 그처럼 붕괴될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거대한 별사(別辭)인 동시에 어떤 붕괴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 _<발문>, 김연수(소설가) 그리고 이 작품 후반부에서 K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지난 이틀 동안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인사를 한다. 이 ‘거대한 작별의 장면’을 두고 김연수는 현실이 붕괴된 뒤 K 자신과 함께 사라질 현실의 꼭두각시들과 작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힌다. 3. 현실의 균열 속에서 진실과 구원의 희망을 발견하다 이 책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작가가 성경 「탈출기」의 내용을 장치해놓은 것 역시 이 작품을 해석하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이르는 “나는 곧 나다”라는 말은 이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K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K1’과 합체되는 장면과 연결되고 있다. K는 주말 이틀 동안의 카오스와 붕괴를 겪은 뒤 맞는 월요일 아침에 자신이 맡아온 배역의 캐릭터를 완전히 변화시키면서 ‘온전한 나’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것은 구체적인 세상과 현실과 일상에 오염되기 전, 창조주의 계획으로만 존재하던 ‘나’의 신성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수없이 많은 ‘나’들이 만든 세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나’를 구원하는 희망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든,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최근 작가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논해야 할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이다. 소설 속 주인공 K는 사흘 동안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사건을 통해 변신한다. 세상의 잣대로는 비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K의 결말은, 결말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 역시 어떤 이별을 통해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 속으로 추가> “내가 내 안에 들어 있는 여성성을 발견한 것은 40대 중반 이후였네. 어느 날 낯선 골목을 지나다가 빨랫줄에 걸린 여자의 속옷을 보고 그것을 훔쳤지. 그리고 한번 입어보았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 일찍이 그리스의 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말하였다네. 태초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이며 여자인 세 가지 성性이 있었다고. 남자는 해이며, 여자는 땅, 남자이며 여자는 달이었지. 남자이자 여자인 제3의 인간은 점점 교만해져서 제우스의 눈에 거슬릴 정도가 되었어. 그러자 제우스는 제3의 인간을 둘로 갈라놓았고 그렇게 둘로 떨어진 인간은 서로 반쪽을 찾아 방황하게 되었네. 남자이자 여자인 제3의 인물이야 말로 인간의 원형이며, 미래에 있어서도 가장 진화된 호모루덴스라고 할 수 있지. 남자이자 여자인 제3의 인간이 늘어난다면 성범죄나 성차별, 사회적 부조리 등은 자동적으로 해결될 걸세. 그리고 가정은 보다 자유롭고 일종의 성의 해방구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해하지는 말게. 나는 양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는 더더욱 아니네. 어디까지나 여장에서만 성적인 흥분을 느끼고 여장을 할 때만 변신하는 것뿐이야. 이것은 오로지 심리적 안정 때문이지. 우리를 동성애자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낀다네. 나는 얼마든지 남편이 아내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여자가 남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성은 얼마든지 공산共産화할 수 있으며, 가정은 소유욕이나 질투심이 없는 지상의 낙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네.” (본문 중에서) JS는 K의 발에 입을 대었다. JS는 익사 직전의 사람을 물 밖으로 끌어내 인공호흡을 하는 구조대원처럼 보였다. JS는 더러운 K의 발목을 자신의 입으로 빨기 시작하였다.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처럼 K의 발목에 흡착된 입의 에너지는 강력하였다. K는 당황하였다. 즉각적이고 저돌적인 JS의 접문接吻에 당황한 K는 몸을 빼기 위해서 주춤거렸다. 이러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JS가 억압하듯 말하였다. “독소를 빼내지 않으면 광견병에 걸릴지도 몰라. 그대로 있어.” 그러한 행위가 K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이며 아직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는 ‘ 지난번의 그 미안함 ’을 상쇄할 수 있는 보상 행위인 듯 JS는 헌신적인 자세로 K의 상처 부위를 빨았다. JS의 입술은 공격해야 할 상처 부위에 밀착되었다. 혀는 그 상처 부위를 집요하게 핥고 있었다. 그 행위에 열중하고 있어서 JS의 엉덩이가 K의 휴대폰에 저장된 포르노의 영상처럼 클로즈업되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누이의 포즈가 마치 펠라치오의 오랄섹스 체위처럼 보였다. (본문 중에서) 생명의 나무. 세일러문으로 변신한 소녀가 지키려는 지구를 살리는 유일한 생명의 나무.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창조신이 만든 선악과가 아닐까. 성경에는 창조신이 자신이 만든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돌보게 한 후,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마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가 아담에게 열매를 따줌으로써 원죄原罪가 생겨났으며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파라다이스에서 추방당한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창조신의 말대로 인간은 먼지로 돌아가게 된다. 생명의 나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 살리려는 지구 위에서 죽어가는 생명의 나무. 그것은 창조신이 만든 그 생명의 나무가 아닐까. “생명의 나무를 살리는 세일러문의 노래를 불러드릴깜.” 세일러문은 마법의 봉으로 K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하였다. K가 그래 달라고 응낙도 하지 않았는데, 세일러문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본묹 중에서) “우연은 어차피 있는 법이니까.” 레인저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자, 다시 가위, 바위, 보.” K2는 이번에도 가위를 냈다. 레인저 역시 가위였다. 레인저가 악몽에서 깨어나려는 듯 신음 소리를 냈다. “속도를 올리기로 하지. 가위, 바위, 보.” K2는 주먹을 냈다. 레인저도 주먹이었다. “삼세번은 있을 수 있어. 젠장 할, 닥치는 대로 해보자고. 자, 시작해 이 새끼야. 가위, 바위, 보.” K2는 가위를 냈다. 레인저도 가위를 냈다. 다시 보를 냈다. 레인저도 보를 냈다. 생각할 겨를도 없는 무차별의 내기였다. K2가 주먹을 내면 레인저도 주먹을 냈다. 어김도 없고, 착오도 없었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내기였다. 어차피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이었으므로. 파이가 소수점 아래 어느 자리에서도 끝나지 않고 3.14159265358979…… 무한하게 계속되는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무한급수이자 초월수다. 최근에 슈퍼컴퓨터를 4백 시간 가동시켜 파이의 값을 1조 2천 4백억 자리까지 계산해도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두 사람은 가르려야 가를 수 없는 이위일체二位一體인 것이다. 그제야 레인저는 가위바위보로는 K2에게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손바닥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본문 중에서) “나쁜 새끼, 더러운 새끼, 너 같은 놈은 맞아 죽어도 싸. 잘못했지, 잘못했지, 잘못했지, 이 새끼야. 대답을 해. 잘못했지, 잘못했지.” 아내의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잘못했지, 라는 말은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라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아내의 교성임을 K는 느꼈다. K 또한 한낮부터 끓어오르던 용암이 드디어 분출할 만한 엷은 지층을 발견한 것처럼 그곳을 향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잘못했지, 잘못했지. 아아, 잘못했지.” “잘. 못. 했. 어.” K의 몸에 들어 있던 긴장된 총탄이 마침내 방아쇠에 의해 발사되었다. K의 아내 역시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일부러 줄을 끊어버린 연처럼 알 수 없는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물물교환은 성공리에 끝났으며 K와 레인저의 아내 혹은 아파트의 아내는 동시에 부부로서 확인 도장을 찍고, 성공리에 부부로서 재계약을 마친 후,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난 낮에 P교수 아니, 올렝카가 말하였던 잃어버린 K의 반쪽과 아내의 반쪽이 서로 합쳐져 하나의 원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인은 남자의 갈비뼈로 환원되어 시원의 진흙인간으로 돌아갔다. (본문 중에서) 어두운 터널 속에서 지하철의 전조등 불빛이 탈옥수를 향해 집중된 교도소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뿜어져 나왔다. K는 이제 재빨리 대피하지 못하면 지하철에 깔려 죽을 것임을 간파하였다. “안 돼. 제발 빨리.” “하얀 장미의 기사님.”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 말하였다. “절 버리고 가세요. 어서요.” K는 세일러문의 손을 놓고 탈출할 수 없었다. K는 시뮬레이션 연극의 엔드 마크가 다가올 때임을 깨달았다. K는 더욱더 강하게 세일러문의 손을 쥐었다. 기진하여 더 이상 체력이 없던 손에 갑자기 강한 힘이 더해졌다. K는 자신의 손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 K의 손에 누군가의 손이 합체되었다. K는 그 손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K1, 바로 레인저의 손이었다. 레인저는 K2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두 사람은 마침내 하나의 ‘ 나’ 로 합체하였다. (본문 중에서)

처세술개론

<처세술개론> 서사의 힘으로 도시인의 불안을 치유해온 최인호 문학의 향연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벽구멍으로」가 입선,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견습환자」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예지가 돋보이는 뛰어난 단편과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장편을 끊임없이 선보이며 천재적 작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최인호의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 『처세술개론』이 도서출판 푸르메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초, 발랄하고 청신한 감수성과 능란한 화법으로 ‘70년대 작가군의 선두주자’라는 평을 받은 최인호는 ‘도시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청년문화의 대변자’로 꼽히며 주목받았다. 이번 선집에는 산업화 이후 나타난 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을 포착해 그만의 화법으로 풀어놓은 초기 단편들을 비롯하여 환상적 리얼리즘, 역사에 기초한 작품들까지, 최인호의 문학 인생을 아우르는 엄선된 작품들이 실려 있다. 문학평론가 남진우는 ‘능란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로지르며 상호 이질적인 세계를 종횡으로 탐사하는 유목민적 기질의 소유자’라며 최인호를 평했다. 현대 사회를 냉철하게 분석하거나 환상적 동화풍의 기법을 시도하고 때로는 대중적 멜로마저도 거뜬히 소화해내는 그의 문학적 내공은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다양한 문학적 모색을 통해 그의 펜이 궁극적으로 가닿는 곳은 결국 소외되고 상처받은 대중을 서사의 힘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묵직한 사명감이다. 이번 작품집『처세술개론』에 수록된 단편들 역시 동시대에 불안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그윽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시선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다. 고통의 심연으로 내려가 삶의 진면목을 발견하고자 한 점, 이점이야말로 최인호 문학의 근원 정서라고 보아도 큰 잘못은 없을 터이다. 다시 말해 최인호의 소설은 ‘웃음’으로 상징될 삶의 진정성이 거세된 인간과 현실에 웃음을 되돌려주고자 한 문학적 치유 의지의 소산이다. 그것은 때로는 희비극적으로, 때로는 비극적으로, 때로는 냉소적이면서도 위악적으로 전개된다. 더불어 아프면서 치유의 지평을 모색하는 과정은 곧 웃음의 상실과 회복 과정 내지 자기동일성의 상실과 회복의 과정과 긴밀하게 호응된다. _우찬제(문학평론가) 시류의 정곡을 찌르는 예리함으로 시대와 대중의 요구에 모두 부합하는 뛰어난 작품들을 탄생시키며 ‘천재적 작가’의 칭호를 얻은 최인호의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처세술개론』은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갱신하며 소설의 깊이를 추구해온 최인호의 40여 년의 문학적 도정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도시적 감각으로 무장한 현대 문학의 총아 최인호는 그의 작품 속에서 대도시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작가다운 면모를 보인다. 서울내기로서 시대적 흐름의 최전선에서 세상과 대면하여, 변화하는 현실을 읽어내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다른 작가들이 넘보지 못하는 그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도시적인 풍광뿐 아니라 그 안에서 파생되는 각양각색의 삶의 방식을 문학적 소재로 변용하는 데 능숙한 솜씨를 발휘했다. 문학평론가 남진우는 최인호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도시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기민한 감각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작가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며 작동하는 일관된 지향점은 바로 당대의 현실 저변을 관류하고 있는 모더니티에 대한 민감한 인식과 그런 사회적 현상이 야기한 풍속과 심리의 변화에 대한 날렵한 포착이다. (……) 현대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해 누구보다 발빠른 접근과 수용을 보여주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와 상반되는, 근대 이전의 원시적이고 심층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_남진우(문학평론가) 산업화 이후의 시대적 상황에서 발현된 문제들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그 안에서 타자화되어 좌절한 군상의 모습을 능란한 화법으로 옮겨놓은 작업은 최인호의 문학적 성과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한곳에 고여 머무르지 않는 천부적인 이야기꾼 최인호의 문학 세계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의 작품은 장편과 중?단편에 이르기까지 그 양만 따지더라도 막대하며, 그가 작품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나 주제들 또한 실로 다양하다. 최인호는 “작곡가들이 평생을 통해 세레나데와 심포니와 실내악, 협주곡, 오페라 등 다양한 음악을 작곡하듯이” 작가도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작가가 “장편소설이든 대하소설이든 중편 혹은 희곡이나 시나리오 그 무엇이든 한곳에만 매달리는 것은 자유로운 작가정신에 스스로 자물쇠를 잠그는 구속행위”라고 말한다. 그의 이 같은 말처럼 최인호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창작했고, 각각에서 뛰어난 성취를 얻어내며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명실상부한 지위를 확고히 다졌다. ♠ 수록작 소개 「견습환자」의 주인공 ‘나’는 습성 늑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로, 별다른 욕망을 발견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반복되는 병원 생활을 “금붕어 같은 생활”로 인지하고 권태를 느낀다. 그는 문득 의사나 간호사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문제로 인식한다. 그는 그들을 웃겨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기 위해 활보를 시작한다. 거짓으로 자신의 증상을 말해 회진하는 의사들을 속이기도 하고, 젊은 의사에게 농담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그들은 결코 웃지 않는다. 그는 퇴원하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그들을 웃기기 위한 모험을 준비한다. 「2와 1/2」의 주인공은 작은 출판사에 다니는 직원이다. 무심코 장티푸스 예방주사를 맞은 어느 토요일, 주사를 맞은 팔에서 예상 밖의 통증을 느낀 그는 회사를 조퇴하고 거리를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같은 집에 사는 어리고 색정적인 술집 여급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그 술집 여급이 시체로 발견되자 그 집에 사는 남성들이 용의자로 경찰에 연행되어 취조를 받는다. 그는 점점 더 심해지는 팔의 통증을 온몸으로 앓으며 자신을 심문하는 경찰들에게 성의껏 대답을 하고 나온다. 그와 주인집 둘째아들과 의대생은 마지막 용의선상에 올랐고, 주인집 둘째아들과 의대생은 경찰서에서 도망칠 궁리를 한다. 「타인의 방」의 주인공은 하루 앞당겨 출장에서 돌아와 막 집 앞에 도착했다. 자신의 귀가를 알리며 시끄러운 초인종을 계속 눌러보지만 집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주인공은 할 수 없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들고 직접 현관을 열어 집안으로 들어온다. 집에는 아내가 남겨놓은 쪽지뿐 아무도 없고, 주인공은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집안의 모든 사물들은 남겨진 그를 향해 일제히 반란을 일으킨다. 면도기는 숫제 그의 얼굴을 두어 군데 베기까지 한다. 그 와중에도 그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휘파람도 불지만 사물들의 반란은 점점 더 심해진다. 「처세술개론」은 일찍이 사진결혼으로 하와이로 떠났던 할머니가 자식도 없는 상태에서 큰 재산을 가지고 귀국하는 것에서 본격화된다. 주인공 소년의 어머니와 일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소년의 이모는 미래의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할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며 경쟁한다. 어른들의 경쟁을 구체화하는 존재가 바로 소년과 소년의 이종사촌 소녀이다. 주인공 소년은 노래를 잘 부르고 교리문답을 잘하는 순수한 아이지만, 이모의 딸인 소녀는 나이답지 않은 행동과 말투가 예사롭지 않은 처세술의 달인이다. 할머니 앞에서 눈물과 웃음을 적절히 보이며 할머니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하던 소녀는 할머니가 잠든 사이 소년을 위기에 빠뜨린다. 「깊고 푸른 밤」은 주인공 ‘그’와 그의 후배인 ‘준호’가 동행하여 자동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여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포자기적 울분으로 가득했던 그는 도망치는 심정으로 미국행에 올랐고, 대중가수였던 준호는 대마초 사건으로 사회적 매장을 당한 이후 가족마저 내버려둔 채 미국으로 건너왔다. 둘은 간밤에 신세를 진 집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들은 길을 찾을 수 없다. 지금껏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진 1번 도로를 지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달려온 길은 246번 도로였다. 길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고, 그는 1번 도로는 영원히 만날 수 없으면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도 실재하지 않는 도시라며 울부짖는다.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은 《이상한 사람들》 연작의 일환으로, 평생 자신의 집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던 작은 노마의 이야기다. 주인공 작은 노마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물난리로 어머니를 잃고 걸인 아버지 노마 아래에서 자란다. 동냥질한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살던 부자는 집이 없었고, 노마는 길에서 작은 노마는 나무 위에서 잠을 잔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버지마저 잃은 작은 노마는, 이때부터 자신의 집을 갖는 꿈을 꾼다. 50년의 동냥질 끝에 간신히 자신의 몸을 뉘일 만한 집을 마련했으나, 곧 추방당하고 만다. 「몽유도원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도미설화>를 재구성한 소설이다. 백제 21대 개로왕 여경은 꿈속에서 만난 천상의 여인을 잊지 못하고, 그 여인을 현실 세계에서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경이 발견한 천상의 여인은 바로 도미의 아내 아랑이었다. 그녀를 취하기 위해 여경은 도미를 내칠 계략을 구미고, 여경의 덫에 걸려든 도미는 끝내 소경이 되어 작은 배에 실려 강물에 떠내려간다. 꼼짝없이 여경에게 넘어가게 된 아랑은 강가에 나와 울면서 목욕을 하는데, 도미를 실어 보낸 그 배가 빈 채로 강을 거슬러 와 아랑 앞에 멈추어 선다. 아랑은 그 배에 올라 떠나고 배는 아랑을 도미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준다. 아랑과 도미는 재회하고, 둘은 고구려로 도망친다

지구인 1

<지구인 1> 최인호 장편소설 『지구인』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왔다. 이 소설은 1978년부터 1984년까지 7년 동안 『문학사상』에 연재했던 작품으로, 특히 교도소에서 가장 많이 읽힌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은 연재 도중 정보기관의 압력으로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의 아픔을 그린 내용이 대폭 삭제될 수밖에 없었고, 연재가 중단된 1980년 삼엄한 시대상황 속에서 뒷부분을 생략한 채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연재가 마무리된 1984년에는 중앙일보사에서 세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삭제된 부분을 복원할 수는 없었고, 1988년 개정판을 내면서 일부 보충할 수 있었다. 작가는 옛 작품에 다시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했다가 이번에 드디어 결정본이라 할 수 있는 개정판을 내었다. 월남전을 다녀온 윤중사와 윤중사의 여동생 윤혜옥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종세 이야기를 완벽하게 복원하고 보완했다. 중요한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하고 복원했다 하더라도, 이미 20년 전에 씌어진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 소설은 20년 전의 소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시대'의 소설이라고 강조한다. 우선 사회의 가공할 폭력과 그 폭력이 강요하는 운명을 거스를 길 없는 초라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젊은 작가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를 선도하고 있고, 비루하기 그지없는 하류 인생, 즉 김형중의 지적대로 '파르마코스'(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디오니소스 축제 때 집단적으로 살해당했던 밑바닥 사람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경향과 일치한다.

견습환자

<견습환자> 1993년 12월, 한국문학의 새로운 플랫폼이고자 문을 열었던 문학동네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을 발간, 그 첫 스무 권을 선보인다. 문학의 위기, 문학의 죽음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문학의 황금기는 언제나 과거에 존재한다. 시간의 주름을 펼치고 그 속에서 불멸의 성좌를 찾아내야 한다. 과거를 지금-여기로 호출하지 않고서는 현재에 대한 의미부여, 미래에 대한 상상은 불가능하다. 미래 전망은 기억을 예언으로 승화하는 일이다. 과거를 재발견, 재정의하지 않고서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없다.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전집을 새로 엮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은 지난 20년간 문학동네를 통해 독자와 만나온 한국문학의 빛나는 성취를 우선적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앞으로 세대와 장르 등 범위를 확대하면서 21세기 한국문학의 정전을 완성하고, 한국문학의 특수성을 세계문학의 보편성과 접목시키는 매개 역할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006 최인호 대표중단편선 견습환자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제6권은 최인호 대표중단편선 『견습환자』. 최인호는 산업화 시기 한국의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일상적이고 심리적인 변화에 누구보다 예민했던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사회가 야기하는 병리적 강박, 인간소외와 물신화(物神化) 현상, 합리성의 외피 밑에 숨어 있는 원시적이고 파괴적인 욕망의 분출과 같은 민감한 증세에 대해 탁월한 접근을 보여준다. 『견습환자』는 그가 누린 대중적 인기 탓에 종종 간과되곤 하지만 한국적 모더니티의 탐구를 여실하게 증명하는 작품들을 모아냄으로써 그의 문학사적 가치를 다시 한번 충실하게 조명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취지에 따라 「견습환자」(1967), 「2와 1/2」(1967), 「술꾼」(1970), 「타인의 방」(1971), 「처세술개론」(1971), 「황진이1」(1972), 「전람회의 그림1」(1972),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1976), 「위대한 유산」(1982), 「달콤한 인생」(2001), 「깊고 푸른 밤」(1982) 총 열한 편의 작품들을 묶었다. 『견습환자』를 통해 우리는 1970년대의 한국사회가 한국문학사에서 이례적일 정도로 어둡고 절망적이었음을 알게 된다. 최인호의 작품들은 권력이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권력의 바깥과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일찌감치 선취해 보여주고 있다. 최인호는 개발 독재가 생명 정치의 또다른 이름임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명민한 작가였던 것이다. 그의 선구적인 세계 인식은 197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거둔 뜻깊은 성과물로서 향후 우리 문학의 중요한 전범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최인호의 작가적 영감의 근원엔 현대 대도시의 덧없는 일상과 부조리한 삶의 양태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 속에서 단독으로, 그 자체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숱한 시대와 지역에 걸쳐 되풀이되어온 원형적 요소의 현재적 발현이라는 형태로 드러나 있다. 무의식의 심층에 대한 고고학이 현대의 도시적 삶에 대한 고현학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작가의 작품 속에서 은유와 상징은 계속 교환되면서 현실과 판타지, 일상과 전설을 오간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지난 연대 우리 사회에 전면화된 모더니티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한 한 정신의 관찰인 동시에 그런 현실의 변화를 넘어선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상상적 고투의 산물이기도 하다. _남진우(시인, 문학평론가,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채로, 한국문학에 아주 많은 유산들을 남기고 갔다. 작가들에게는 훌륭한 문체와 수많은 인물들과 참조해야 할 많은 주제들을 남겼고, 문학사가들에게는 수많은 스캔들과 다시 배치해야 할 정전들을 남겼으며, 비평가들에게는 다시, 혹은 새롭게 해명해야 할 많은 난제들을 남겼다. 게다가 독자들에게는 많은 읽을거리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중문화계 인사들에게마저 엄청난 양의 문화 콘텐츠를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모든 문제적인 작가들이 다 그렇듯이, 그 또한 생물학적 나이와 무관하게 너무 일찍, 요절한 작가다. _김형중(문학평론가, 조선대 국문과 교수)

황진이

<황진이> 최인호의 소설은 197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거둔 뜻깊은 성과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모더니티의 유동과 예측 불가능성의 형상화라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향후 우리 문학의 중요한 전범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현대사회가 야기하는 병리적 강박이나 각종 매체들이 일상 영역을 잠식해오며 전파하는 환각적 이미지의 포착, 타자와의 정서적 단절과 무관심, 합리성의 외피 밑에 숨어 있는 원시적 파괴적 욕망과 정념의 분출 같은 우리 시대의 민감한 증세에 대해 그의 소설은 선진적이면서 발랄한 접근을 보여준다. 모더니티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우리 시대에 그의 소설은 거듭 다시 파고들어가 채굴해야 할 풍부한 광맥을 은닉하고 있다.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 최인호의 소설은 197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거둔 뜻깊은 성과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모더니티의 유동과 예측 불가능성의 형상화라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향후 우리 문학의 중요한 전범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현대사회가 야기하는 병리적 강박이나 각종 매체들이 일상 영역을 잠식해오며 전파하는 환각적 이미지의 포착, 타자와의 정서적 단절과 무관심, 합리성의 외피 밑에 숨어 있는 원시적 파괴적 욕망과 정념의 분출 같은 우리 시대의 민감한 증세에 대해 그의 소설은 선진적이면서 발랄한 접근을 보여준다. 모더니티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우리 시대에 그의 소설은 거듭 다시 파고들어가 채굴해야 할 풍부한 광맥을 은닉하고 있다.

돌의 초상

<돌의 초상> 최인호의 소설은 197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거둔 뜻깊은 성과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모더니티의 유동과 예측 불가능성의 형상화라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향후 우리 문학의 중요한 전범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현대사회가 야기하는 병리적 강박이나 각종 매체들이 일상 영역을 잠식해오며 전파하는 환각적 이미지의 포착, 타자와의 정서적 단절과 무관심, 합리성의 외피 밑에 숨어 있는 원시적 파괴적 욕망과 정념의 분출 같은 우리 시대의 민감한 증세에 대해 그의 소설은 선진적이면서 발랄한 접근을 보여준다. 모더니티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우리 시대에 그의 소설은 거듭 다시 파고들어가 채굴해야 할 풍부한 광맥을 은닉하고 있다.

달콤한 인생

<달콤한 인생> 최인호의 소설은 197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거둔 뜻깊은 성과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모더니티의 유동과 예측 불가능성의 형상화라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향후 우리 문학의 중요한 전범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현대사회가 야기하는 병리적 강박이나 각종 매체들이 일상 영역을 잠식해오며 전파하는 환각적 이미지의 포착, 타자와의 정서적 단절과 무관심, 합리성의 외피 밑에 숨어 있는 원시적 파괴적 욕망과 정념의 분출 같은 우리 시대의 민감한 증세에 대해 그의 소설은 선진적이면서 발랄한 접근을 보여준다. 모더니티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우리 시대에 그의 소설은 거듭 다시 파고들어가 채굴해야 할 풍부한 광맥을 은닉하고 있다.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 아름다운 아랑부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핏빛 같이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낸 『몽유도원도』. 아랑과 도미의 사랑을 통해 사람이 죽음을 넘어서는 믿음으로 사랑할 때, 우리에게 덧없는 삶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랑은 서로에게 오직 한사람이 되는것이라 말하고 있다. 낮잠의 짦은 꿈속에서 만났던 몽유의 여인을 현실속에서 찾고 자 했던 여경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 우리의 인생은 짧은 꿈과 같으며, 꿈속 도원경의 세계를 현실에서 찾으려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탄하고 있다.

꽃밭

<꽃밭> 소설가 최인호가 10년 동안 발표해온 글들을 모아 놓은 『꽃밭』은 대부분의 글들이 연작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짧은 소설집이라고 해도 무방할”글 모음집이다. 최인호가 강조하는 것은 용서와 인내와 화합, 현재에 머물지 않는 영원이다. 천재 작가로, 또한 인기 작가로 세상의 주목 속에서 살아오는 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상과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겨울 나그네 1

<겨울 나그네 1> 최인호가 들려주는 러브로망의 고전, 「겨울나그네」 개정판 제1권. 1984년 동아일보에 1여 년간 연재되었던 소설로, 제목과 소제목을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서 빌려왔다. 또한 마네가 그린 <피리 부는 소년>의 명화에서 영감을 얻어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는 저자는 작품의 모티프로 ‘민우’라는 주인공을 탄생시킨다. 병약하지만 불꽃같은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는 다혜는, 민우와의 순결한 사랑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힘을 깨닫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과 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민우의 삶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가슴에 묻어둔 첫사랑 다혜를 떠나려는 민우와 민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다혜. 지고지순한 이들의 사랑을 통해 작가는 '변치 않는 사랑의 원형과 청춘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20여 년 만에 개정판을 낸 작가는 청춘의 초상을 새롭게 그려낸다는 일념으로 200매 정도의 분량을 삭제 후, 부분부분의 장면들을 보다 세밀하게 개작해 펴냈다.

이상한 사람들

<개정판 | 이상한 사람들> 첫번째 이야기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의 주인공은 일평생에 걸쳐 자신의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집을 얻으려 애썼던 노인 ‘작은 노마’다. 어려서 홍수로 어머니를 잃은 작은 노마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을 갖는 것이 소원이다. 아버지와 동냥을 다니며 별이 무성하게 뜬 밤하늘을 이불삼아 생활하던 그에게 나무는 꿈꿔오던 이층집의 다락방이 되어준다. 그가 나무 위에 올라 잠이 드는 것은 하늘에 있는 어머니와 가까워지고픈 소망 때문이기도 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만의 집, 홍수에 떠내려가지도 않고, 비와 바람을 가려주는 집을 갖는 것이 소망이었던 노마는 일평생 노력한 끝에 “누우면 발가락이 문지방 밖으로 나갈 만큼” 작은, 그보다 작은 집은 이 지상에서 찾아볼 수 없을 법한 집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 소박한 행복도 잠시,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그는 집에서 쫓겨나버린다. 일평생 쉴 곳을 간구하며 떠돌았던 작은 노마의 삶, 끝내는 그 초라한 집마저도 잃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되묻게 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집이 아니라 누에고치나 새장 같았던 작은 노마의 집, 그가 일평생 꿈꾸고 지었으나 늘 부서지고 빼앗겨야 했던 ‘집’이 과연 무엇인지 말이다. 미국에 번역되어 소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2년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낭독했을 만큼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두번째 이야기 「포플러나무」.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높이뛰기 선수가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시절을 뒤로하고 대장장이로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그가 위대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에게 그는 국기 게양대를 뛰어넘고 나아가 거대한 산을 뛰어넘으며, 하늘에 뜬 구름과 빛나는 별들에까지 손이 닿도록 뛰어오를 수 있는 사람이다. 나아가 찬연히 빛나오는 무지개마저도…… 하지만 그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삶에 일어난 비극은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종일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만들지 못했다. 쓸모를 잃은 그를 동네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었지만 아이들에게 그는 여전히 위대하다. 아이들의 희망에 보답하려 철봉대를 뛰어넘으려다 남자는 그만 다리를 다친다. 사고 이후 남자는 마당의 빈터에 포플러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세번째 이야기 「침묵은 금이다」의 주인공은 서른다섯살이 된 기업체의 부장이다. 좋은 남편이자 이웃, 승진이 예정된 유능한 동료로 평가받는 그는 어느 날 아내에게 중얼거린다. “말이 싫어졌어.”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앞으로 나는 말을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입을 다물 거야. 나는 입을 열지 않을 거야.” _75쪽 가족은 물론 회사에서도 그의 변화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특히 그의 상사는 그의 침묵을 용서하지 않았다. 회사는 말을 하지 않는 그를 ‘쓸모없는 인간’이라 판단한다. 직장을 잃을 지경에 놓인 그는 그간의 침묵을 되돌아본다. 말을 않고 있는 동안 그는 행복했었다. 진실만을 얘기할 수 있을 때 입을 열리라 마음먹었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말을 요구했다. 그는 말 없이도 사랑을 나누고 들리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말은 다른 존재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방언方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 입을 열지 않는다면 그는 해고당할 처지였고, 가족들을 먹여살릴 일이 막막해졌다. 그는 뒤늦게 입을 떼어보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해신 1권

<해신 1권> 장보고는,『삼국사기』에는 '모반을 꿈꾸었던 반역자'로 『삼국유사』에는 '매우 미천한 해도인(海島人)으로 반란을 꾀'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통일신라 말, 타락한 지배계급에 맞서 혁명을 꾀하던 풍운아는 이렇게 역사의 패자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역사를 단순히 작품의 소재로만 활용하는 대신, 철저한 고증작업을 거친 재해석 작업을 벌여 전혀 새로운 인물을 우리 앞에 선보인다. 그는 장보고를 꺼져가던 신라왕실을 구하려던 충신으로, 노예로 팔려가던 신라인을 구한 '해신'으로 평가한다. 가진 것 하나 없던 망국 백제의 유민으로 괄시받던 그가 당나라의 일개 병사에서 통일신라 최고의 권력을 지니게 되기까지, 그리고 부하 장수의 칼날에 목을 빼앗겨버린 장보고의 일대기는 '잃어버린 역사'를 보는 씁쓸함과 역사의 물줄기 한복판에 버티고 선 영웅의 비장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백제와 일본의 고대사를 밝힌 『잃어버린 왕국』이나 조선 시대 거상을 다룬 『상도』등 역사소설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작가답게 이번 소설 역시, 현대와 고대를 넘나드는 광활한 무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더우기『삼국사기』와 『삼국유사』그리고 『일본서기』를 넘나드는 작가의 치밀한 고증은 좌절한 영웅, '장보고'를 오늘의 우리 앞에 데려다 놓기에 충분하다.

유림 1권

<유림 1권> 『유림』은 유교의 기원인 공자에서부터 유교의 완성자인 퇴계, 유가 사상을 잇는 제가백가들의 행적과 사상이 시공을 초월해 빠른 전개로 펼쳐진다. 공자, 노자, 맹자, 안자, 장자, 주자, 묵자, 순자, 왕양명, 조광조, 퇴계, 율곡…… 유가, 도가, 성리학, 양명학, 주자학…… 동양 교양과 고전의 원형인 대사상가들은, 『유림』에서 드라마틱하고 우주적인 조우를 갖는다. 아울러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소크라테스와 예수, 붓다의 이야기 등도 곁들이며 성인의 출생이 지닌 시대적 필연성을 되짚어준다. 1부 1권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은 공자의 정명주의를 바탕으로 왕도 국가를 세우려다가 실패한 조광조(1482~1519년)의 이상과 실패를 통해 진정한 왕도정치는 불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