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여행은 늘 처음이라는 설렘으로 우리를 매혹한다. 그런데 그 설렘이란 게 사실은 두려움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 희망이 절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희망이 되기도 하는 것. 우리는 목적과 방향이라는 지도 한 장만을 손에 쥔 채 이리저리 헤매고 방황하는 여행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김정남 작가의 첫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은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기술해주고 있는 소설이다. 여행길에 오른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는 동안 우리는 고되고 피폐했던 한 인간의 굴곡진 역사를 만나게 된다. 그는 마지막 여행으로 이 길을 선택했지만 어찌 보면 그는 이 길 위에 버려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에게 삶은 한 자리에 정착할 수 없는 고난한 여행의 연속이었다. 이 책은 한 남자의 인생을 다룬 소설이며 일기이고 유서이다. 승호는 자폐아 아들과 함께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른다. 이 길은 곧 자신의 지난 삶을 다시 체험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굴곡진 인생의 한 페이지가 펼쳐졌다 다시 접힌다. 속초를 지나 강릉과 양양으로, 다시 주문진과 연곡을 거쳐 삼척, 울진, 경주, 포항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의 길을 동행하는 마음은 비통하다 못해 괴로울 지경이다. 산 자의 삶이 이렇게 비참할 수 있을까? 살았던 흔적은 모두 부서졌지만 상처는 고스란히 유적처럼 남아서 승호를 괴롭힌다. 중력은 없고 관성만 있는 삶을 살아온 승호. 그는 땅에 발붙이고 살게 만드는 힘,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중력이라고 부르는‘삶의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무엇을 위해’살아온 것이 아니라 ‘단지 살아 있기 때문에’살고 있을 뿐이었다. 아들을 태운 자동차가 7번 국도에서 문득 섰을 때, 그러니깐 광막한 우주에 홀로 버려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승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도대체 다시 삶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그리고 이 질문은 주인공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깊은 파장을 남긴다. 삶이 종종 여행으로 비유될 때, 우리의 인생은 ‘나’의 뿌리를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일 수 있으며, 고통과 외로움을 지난하게 견뎌내는 과정 혹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 행복하고 안락한 가정을 꾸미는 일상의 평범한 흔적들일 수 있다. 여행과 삶은 계속된다. 여행의 기술이란 길과 길을 연결하는 것이다.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할 때 포기하지 않는 것. 지나고 보면 하나의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상처와 고통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견뎌내는 것.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삶의 기술은 바로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상처를 꺼내 담담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7번 국도, 야윈 등줄기를 매만지듯 그 길을 걸어보라. 휘황한 세계 속에서 잃어버린 그대의 고적한 영혼이 거기 숨 쉬고 있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