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밤

야수의 밤

“신재혁입니다.”유난히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남자가 본인을 소개했다.말끔한 얼굴과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은 감히 그쪽 세계가 연상되지 않았다. ‘불쌍한 놈 거둬서 먹여주고 입혀주었더니만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정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여자를 향해 걸어왔다. 그 배은망덕하고 영악한 새끼인 남자였다.“상속, 포기하세요.”그가 친절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여전히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로.“난 십 원 한 장도 포기할 생각 없어요.”“이제부터 하나같이 벌떼처럼 당신한테 달려들 텐데, 견딜 수 있겠습니까.”남자가 여유 넘치는 얼굴과 함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내었다.“상속 포기 각서에 도장 찍어요. 그게 당신 살길입니다.”도장을 찍기 전까진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그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그때,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관통하듯 나를 스쳐 지나갔다. ‘눈 감지 말고 똑똑히 봐요. 당신 위에 있는 내가, 누군지.’남자의 눈을 마주치면 자꾸만 떠오른다.몇 년 전 술김에 낯선 이와 함께한 그날 밤이.“못 하겠다면요.”남자의 시선에, 이상하게 점점 숨이 막혀오는 것 같은 질식감이 느껴졌다. 이 야수 같은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개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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