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봄은 혼란의 가운데에 서 있었지만, 최주원이 있었기에 더없이 싱그러웠다.“자.”연주가 농구를 마친 주원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웬일이야?”“웬일은. 그냥, 뭐. 네가 내 뒤에 앉으니까. 뭐, 내가 청각에 예민하기도 하고. 아니, 근데 같은 반 친구들끼리 이 정도도 못 해주나?”그때 주원이 몸을 굽혔다. 흡, 연주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바로 앞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주원이 보였다.무감해 보이던 표정 위로 언뜻 감정이 비쳤다 사라졌다. 그 순간, 한쪽 눈을 찡그리던 그가 고개를 더 앞으로 했다.연주의 눈이 한계치로 뜨이면서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뭐, 뭐야. 왜 그렇게 봐?”그러다 이내 한쪽 눈을 뜬 그가 실수했다는 듯, 서둘러 고개를 뒤로 물렸다.그리곤 해사한 미소를 지은 그가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쿵, 하고 심장이 주저앉았다.“고맙다고.”“…….”“뭐 해. 안 가? 이제 곧 보충 시작인데.”그 말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어, 어! 가! 누가 안 간대?”주원이 낮게 웃었다.**일하는 약국에서 12년 만에 첫사랑을 재회했다.그런데 그 옆에는 그와 아주 똑 닮은 아이가 방긋 웃고 있었다. 12년 전, 그에게 말 한마디 없이 떠났던 게 잘못이었을까.연주는 애 아빠가 되어 나타난 그를 피하기 급급해했는데.“뭔가 오해했나 본데. 내 애 아니야.”“…어?”“민환이, 내 애 아니라고.”사고의 회로가 잠시 멈췄다 다시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조카야. 우리 누나 아들.”“아.”그제야 캄캄했던 시야가 다시 환하게 밝혀졌다.“내일 시간 돼?”“…어?”“우리 데이트하자. 그러니까 내일 시간 되면 비워 둬. 이번엔 네가 양보해.”12년 전과 달리 주원의 눈엔 일말의 주저함도, 흔들림도 없었다.그 순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너무 고요해서 나조차도 존재를 잊고 있었던 잔잔한 폭풍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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