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저러니 해도 롤 소설은 이만한 작가가 없다. 경기 묘사가 최고인 건 아니다. 주인공 성격이나 배경 설정이 최고인 건 아니다. 구단과 주변인 스토리가 최고인 건 아니다. 라이벌과 위기 묘사가 최고인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요소들을 황금비율로 조합해서, 실존했던 버그성 플레이나 OP같은 msg를 첨가해 그럴듯하게 완성해내는 데에는 뛰어나다.

거기에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양주에 취미가 들렸는지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전개가 등장하는데 이게 또 전문적이면서도 재미가 상당하다. 또한 극초기 메이플이나 인방 생태계 등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온 듯한 현지인스러운 스토리가 뛰어나 롤 하나만 있던 전작들보다 볼거리가 많다.

문제는 히로인을 못 쓴다. 여캐를 못 쓰는 게 아니라 히로인을 못 쓰는 거다. 물론 그렇다고 여캐를 잘 쓴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각자의 사정과 야망이 있고 개성 넘치던 히로인들이 주인공이랑 하룻밤 보내고 나면 주인공이랑 하는 섹스에 미쳐서 절대충성하고 특이취향을 섭렵하며 사랑받기 위해 자기개발에 끊임없이 애쓰는 현모양처 트로피 히로인으로 통일된다. 거기에 비중도 갑자기 사라져 가끔씩 '아 이런 애도 있었지' 하고 잠깐 섹스씬 등장하는 수준으로 추락한다. 중후반까지 독보적인 캐릭터성을 자랑하던 봄이마저 복선도 없이 딥키스하는 묘사가 나오더니 확 죽어버리는게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 카카오에선 15세로 내리려고 어느정도 검열됐을 테지만 조아라에서 봤을 땐 떡씬도 못 쓰던데 대체 왜 이런 전개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작가도 여캐 관리가 안됐는지 다 내던지고 801화에서 등장한 새 캐릭터한테 갑자기 주인공 전여친+개인사정+회귀전에 자살 서사를 날림으로 몰아준 다음에 "사실 내 찐사랑은 너뿐이였어!"로 재결합시키고 엔딩낸다. 1회차를 후회하는 독백에서조차 단 한 번의 언급도 없던, 작품 진행 91.5% 시점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최후의 승자가 된 것. 스캔들 났을 때 당연히 주인공이 모르는 사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벙찜.

또한 실존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온 적 캐릭터가 굉장히 많은데, 이때 해당 캐릭터의 내려치기가 심하고 처우가 열악해 고소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해당 인물들의 개인 팬이라면 읽으면서 꽤나 불쾌할 것이다.

그나마 나는 조아라 노블레스로 읽어서 별로인 부분은 쉽게 넘길 수 있었기에 정액권으로 읽을 수 있는데 평타 이상은 친 이 소설을 고평가하는 편이지만 편당결제는 그게 불가능하다. 아마 카카오에서 읽었더라면 최소 1점은 깎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