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은 숙녀 [개정판][외전추가]

옷을 벗은 숙녀

요조는 숨기고 싶은 과거 때문에 시커먼 안경과 어두운 화장, 허름한 옷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꽁꽁 감추고 산다. 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족쇄와도 같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멀리 떠나는 것. 힘들게 모은 돈으로 마침내 미국으로 떠나기 삼 개월 전, 오래전 자신에게 친절했던 단 한 사람인 그가 임시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아 그녀의 곁으로 온다.
***
 
“그러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뜨거운 두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누구도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가슴은 여전히 서로의 것과 꼭 맞닿아 있었다.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두 입술이 얕은 욕망을 토했다. 
어떡하지.
완전히 붙들려 버렸다, 그에게.
팔도, 시선도, 마음까지도.
조금만, 조금만 더 기적을 바라도 될까.
무엇 하나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주제에 감히 바라면 안 되지만, 그래도 딱 한 번만 욕심내어 보면 안 될까. 딱 한 번만 미쳐보면 안 될까.
“… 안아주실 수도… 있나요?”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역시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나 보다. 주제를 모르고 탐을 내고 말았다. 그를 언짢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요조가 다급하게 변명을 붙였다.
“한 번만, 딱 한 번이면 되니까…….”
이번에 놀란 눈을 홉뜬 것은 요조였다.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그녀의 입술이 겸후에게 통째로 삼켜져 버렸다. 요조의 심장이 비 오는 거리 위로 툭 떨어졌다. 제 궤도를 이탈해버린 심장은 이어지는 뜨거운 키스에 제자리를 찾을 새가 없었다.
“하아…, 신요조 씨 부탁 기꺼이 들어줄게요.”
겸후는 그녀의 작은 어깨를 힘있게 꽉 끌어안았다. 긴장한 겸후와 더 긴장한 요조 사이에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그저 날뛰는 심장이, 요동치는 머릿속이, 빨라진 걸음이 그들을 겸후의 오피스텔로 순식간에 옮겨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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