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나 [외전 포함]

하바나

“남자는 말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밤새 비를 맞으며 기다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남은 동전 한 닢까지도 그녀를 위해 써야 한다.”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사랑하게 될 사람이 그녀라는 것을. 그래서 자신을 통제하고, 동전 한 닢까지 포기하지 못했다. 너무나 어리석게도.
***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지금처럼 겉으로만 연인행세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연인처럼 지내면 되는 거지.”
“연인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아요?”
채영이 이죽거리며 묻는 말에 도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알 필요 있어? 거의 온종일 붙어 있는 공간이 침대로 이어진다는 것만 달라지는데. 즐기다가 적당한 때에 깔끔하게 헤어지는 관계.”
채영은 즐기기만 하자고 확실하게 못 박는 도하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그럼 깔끔하게 헤어지는 건 언제인데?”
“네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거나 그 전에 내가 찾을 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본을 넘겨받게 될 때.”
“사본이 넘어가면 우리가 끝나는 거네요.”
“그렇지. 그 이후 더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군요.”
채영은 제 처지가 어떤 건지 새삼 깨닫게 되자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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