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깨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잘못 태어난 놈이라고 생각했다.
-한수혁
넓고 커다란 남자의 등은 마치 고아 소년의 그것처럼 외로워 보였다.
-설수연
***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치 고백처럼 들렸다. 장미 송이를 안겨 주면서 아주 오랫동안 사랑해 왔다는 말을 들려주는 연인처럼 그는 더러운 말을 하고 있었다. 한수혁을 처음 보았던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치밀어 올랐던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수연을 꽉 채운 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그냥 안아 주고 싶었다. 타인을 동정할 처지가 아닌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가 불쌍했다. 그의 불쌍함이 수연에게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의 불쌍함을 견딜 수 없었다. 수연 자신이 느끼는 모욕감이나 불쾌함보다 그의 불쌍함과 고통이 더 쓰라렸다. 자존심을 잃는 것보다 그를 불쌍함 속에 혼자 두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이 남자의 나직한 음성 때문에, 너절한 제안이 담고 있는 그 조용한 말투 때문에 가슴의 살점이 너덜너덜 찢어지고 있었다.
이 이상하고 병든 감정의 이름은 무엇일까? 이것은 연민일까?
한수혁은 마약 같은 이상한 힘이 있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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