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꾼. 불법 경매 상인. 그리고 후작 영애까지. 모두가 나의 신분이다.
황제의 명으로 도굴꾼 토벌을 맡은 테힐 공작은
유난히도 소심하고 조용한 후작 영애에게 자꾸만 눈길이 향했다.
도굴꾼 로즈와 밀라 코스터가 동일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물에 젖은 금발이 드러났다.
제국법으로 금지한 유물을 도굴하는 도굴꾼 로즈를 붙잡았다.
로즈를 생포하라는 황제의 명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가진 힘, 끓어오르는 마족의 피를 잠재워주는 그 힘이 중요했다.
‘역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로즈의 복면 끄트머리를 살짝 잡아 끌어 내렸다.
정체를 가린 천이 사라지자, 지난밤 연회장에서 함께 춤을 추었던 여인이 자신의 앞에 있었다.
“밀라 코스터.”
작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한 무게가 느껴졌다.
토벌대 대장으로서 로즈를 붙잡아야 하는 책임과, 남자로서 밀라 코스터를 원하는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
차라리 그가 다 알기 바라는 마음과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모순 때문에 심장 소리 말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공작의 손이 애타게 얼굴을 더듬었다. 그러다 손가락이 내 입술에 닿고서야 멈췄다.
“그대를 지키기 위해 내가 포기한 것이 무언지 알고 있나?”
내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 그는 울고 있었다.
“그만큼 너를 간절히 원한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것인지 그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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