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폐황후가 도주했다 [독점]

어느 날 폐황후가 도주했다

“일국의 황제라 하더라도 결국은 사내고 수컷이다. 여인이 작정하고 휘감는다면 못 구슬릴 것도 없지.”
아버지의 명에 따라 황후가 되었다.
허울뿐인 아내지만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내 아내로서의 역할이라 함은. 내 아래서 내 씨를 받아내고 아이를 배는 역할 말인가?”
“…….”
“그런 역할은 밤에 졸라야지. 이런 대낮이 아니라.”
비록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과 경멸뿐이었지만.
*
“그러면 나를 원망해.”
바닥을 긁는 저음으로 그가 말했다.
“그대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해. 이런 짓을 벌이고서도, 나는 여전히 그댈 놓지 않을 생각이니까.”
“…….”
진득한 목소리에 루크레치아는 얕게 헐떡였다.
황제는 고작 자신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지만, 마치 무형의 올가미에 감싸인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또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시도해 봐. 대륙 끝까지 달아난 걸 찾는 데에 한 달이 걸렸지. 설령 바다 건너 다른 대륙으로 도망친다 해도 그보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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