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후였다.
게임 속 여주인공은 죽고, 여주인공의 약혼자는 실의에 빠져 칩거.
나라에는 치료법 없는 전염병이 돌고 있다.
게임 속에서 ‘가장 끔찍하고, 최악이며, 경멸스럽다’ 평가받는 엔딩 이후의 세계.
나는 여주인공의 쌍둥이 언니이자, 동생을 죽인 ‘흑막’이 되어 그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아. 망했다.’
새 삶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 버리고 말았다.
여주의 쌍둥이 언니, 아름다운 요정의 핏줄, 명문가의 마지막 남은 가주. 이름은 페이 오벨리.
화려한 수식어엔 의미라곤 없다.
나는, ‘페이’는 그저 여주인공을 죽여 버린 ‘흑막’이자 ‘진범’일 뿐이었다.
이미 엔딩은 났다. 되돌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쥐 죽은 듯이 입을 꾹 닫고 살고 싶은데.
“멍청하고, 오만하고, 기가 차……고작 이러려고 르네를 죽였나?”
아무래도 불가능한 모양이다.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나를 죽이고 싶어 안달하는 놈이 있다.
여주인공 르네를 사랑한, 르네의 의붓남동생. 데네브.
이제부터 나는 그에게서 어떻게 해야 도망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르네를 사랑하는 세계에서, 르네를 죽인 내가 과연 어떻게 목숨줄을 부지할 수 있을지.
‘망한 엔딩의 망한 캐릭터라도 죽기는 싫거든.’
좋아. 그럼 일단 도망부터 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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