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웠더니 전남편의 노예가 되었다.
하퍼에게 기억을 지운 이유는 중요하지 않지만
전남편인 세버라이드 공작의 생각은 달랐다.
“날 속일 생각 하지 마.”
하퍼는 무슨 영문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형처럼 맑고 투명한 눈을 깜빡거렸다.
“기억을 지우는 약? 내게 접근하는 방법도 가지가지군. 블래어가 꼬드긴 건가?”
“브, 블래어라니요? 저는 그런 사람 몰라요.”
“왜 몰라, 잘 어울렸으면서.”
“정말 몰라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할 텐가?”
하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세버라이드가 얼굴을 훅 들이밀어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겁을 먹었다.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은 블래어밖에 없어. 넌 어렸을 때도 블래어에게 칭얼거렸잖아?”
“제, 제가요?”
“넌 블래어의 마음을 이용했어.”
“아, 아니에요. 전 블래어라는 분이 누군지도 몰라요.”
하퍼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빈축만 샀다.
“블래어의 호기심과 장난기를 이용하려면 기억을 지우는 약만큼 좋은 것도 없었을 거야. 안 그래도 네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섰으니까 손 쉽게 속일 수 있었겠지. 블래어는 일부러 속아 주는 척하며 날 궁지에 몰아넣을 생각만 했을 거야. 그게 블래어의 낙이거든. 동생을 놀리는 것.”
“아니에요, 전 공작님을 속이려고 약을 먹은 게 아니에요.”
“그럼 왜 먹었지?”
“괴로워서 먹었다고 했어요. 그것 말고는 몰라요.”
“연극하지 마, 하퍼.”
하퍼는 정말 세버라이드가 의심한 대로 연극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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